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참여키로 결정함에 따라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할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적대적 인수ㆍ합병(M&A) 의도를 드러냈다고 주장한 반면 현대중
공업그룹은 주주 이익 극대화 차원에서 선택한 조치였다고 해명해 극명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 유상증자로 현대그룹 근소 우위
이번 유상증자는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모두 참여했지만 결과적으로 현대그룹이 경영권 분쟁에서 근소하게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현대그룹은 이번 유상증자를 통한 우리사주 청약과 현정은 회장 일가의 지분 추가 매입으로 현대중공업그룹과의
지분율 차이를 기존 2.51%에서 6.9%까지 벌리는 성과를 거뒀다.
물론 이 정도 지분을 가지고 경영권이 안정됐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현대중공업그룹의 갑작스런 지분 매입으로 받았던
충격에서 벗어나 반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현대그룹에게는 의미가 크다.
 |
|
정몽준 의원과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5월 19일 서울
삼성동 현대산업개발사옥에서 열린 고 정세영 명예회장 흉상 제막식에서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이정훈 기자
|
|
현대그룹은 또한 초기부터 현대중공업그룹의 유상증자가 M&A 의도를 보여주는 것임을 집중 성토하면서 대내외에
동정론을 펼쳐 어느 정도 지지를 얻는 성과도 거뒀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유상 증자 참여까지 철저히 무대응 전략으로 나서면서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그룹이 비난의 수위를 높일 때마다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한 투자"라고 강조하고 이번 유상
증자에서도 이같은 명분론을 펼쳤지만 거친 비난 공세에 내심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특히 현대그룹 총수인 현정은 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제기하면서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에 대한 인신 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아 현대중공업그룹에겐 이번 유상증자가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 경영권 분쟁 3라운드 돌입
현대중공업그룹이 지난 4월 27일 현대상선 지분 26.68%를 전격 매입한 것이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1라운드였다면
유상증자 대립은 지분율을 재조정을 둘러싼 2라운드였다.
양측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2라운드를 팽팽하게 치름에 따라 이제는 현대그룹 경영권 향배를 결정할 수 있는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최종 3라운드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현대상선 지분을 8.69% 보유하고 있어 올해 하반기부터 착수될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승리하는 측이
경영권 분쟁의 최종 승자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즉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지주 회사격이지만 사실상 현대상선이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여서 현대중
공업그룹이 현대건설을 '우군'으로 확보한 뒤 주주총회를 소집해 현대상선 경영진을 교체하면서 현대그룹 전체의
경영권까지 장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은 현대건설 채권단이 추진할 현대건설 매각과 연결되면서 KCC와 우호관계인
현대중공업그룹 그리고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치열한 인수전을 벌일 가능성이 커졌다.
현대그룹은 이미 지난해 11월 전인백씨를 그룹 총괄기획본부 사장에 임명하면서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으며 현대상선 유상 증자 목적을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대비라고 밝힌 상태다.
 |
|
현대그룹이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상선 지분 매입을 '적대적 M&A의 시도'로 규정한 가운데 지난 5월 2일
오후 종로구 적선동 현대상선 본사 대회의실에서 현대그룹 전인백 기획총괄본부 사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중공업그룹이 '백기사'가 맞다면 현대상선 지분 26.68％의 10％를 즉시 그룹에 넘겨야 한다"고 공식
요청하고 있다. 사진/서명곤 기자
|
|
현대중공업그룹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긴밀한 관계인 KCC가 2년전 현대그룹과의 경영권 분쟁을
벌인 전례도 있고 건설 쪽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이번 경영권 분쟁은 처음부터 장기전으로 가는 게임이었다"면서 "결국 최종 승자는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창과 방패의 싸움 승자는
현대그룹은 2년전 KCC와 경영권 분쟁을 통해 노하우를 습득한 만큼 다양한 방어책을 준비해두고 있다.
현대그룹은 일단 현대상선 자사주 매입, 유상증자 재실시, 현 회장 일가 및 우호세력 지분 추가 매입 등을 통해
현대중공업그룹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유상 증자를 또다시 실시할 경우 주가가 떨어지고 내부 경영이 부실화된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반면 현재 26.68%의 현대상선 지분을 보유한 현대중공업그룹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현대상선 1대
주주라는 점만으로도 현대그룹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해운 시황이 하강하고 있어 현대상선의 경영사정이 악화될 경우 내년 주총을 통해 경영진 해임을 건의할
수도 있어 현대중공업그룹은 1대 주주로 계속 남아있으면서 무언의 압력을 행사할 것을 보인다.
현대건설과 관련해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유상증자를 통해 4천300여억 원의 종잣돈을 마련해 인수전을 대비하고
있으며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산업 호황으로 인해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이라 서로 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심재훈 산업부 기자 | president21@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