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카스테라' 박민규
"문단의 칭찬 거추장스럽다. 내 길 갈 뿐"
"남에게 칭찬받는 것이 거추장스럽습니다.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부터 드니까요."
2년 전,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발표해 문학동네 작가상과
한겨레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등단한 박민규(37) 씨가 첫 소설집 '카스테라'(문학동네)를 냈다.
대중문화적 코드에 감각적이고 유쾌한 문체로 문단에 새 바람을 몰고 왔던 그는 "주변에서 나를 뭐라고
평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잘 조절해 흐트러지지 않고 글을 많이 쓰고,
그것으로 먹고 살면 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7년 간 길렀던 긴 머리를 잘라 노랗게 염색한 데다 히피들이 즐겨 썼던 독특한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그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지미 핸드릭스의 타입으로 (머리모양 등을) 해봤다"면서 "그동안 써놓은 30편의 단편
가운데 10편을 추려 이번 작품집에 실었다. 10편을 수록한 것은 추앙하는 지미 핸드릭스의 데뷔앨범에도
10곡이 실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첫 소설집에는 낡아서 소리가 시끄럽게 나는 냉장고와 동거하는 자취생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을 비롯해
비틀스의 멤버 링고 스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떠나는 우주여행을 다룬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전철의
'푸시맨'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등이 실렸다.
작가는 대왕오징어, 거대한 개복치,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 등 독특한 인물과 동물들을 등장시켜 밑바닥 삶에
대한 애정과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비판 등을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러스한 문체로 펼쳐 보인다.
책 서두에 '마이클 잭슨에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라고 밝혀놓았는데.
성추행 혐의로 법원 판결을 앞둔 마이클 잭슨이 잘못될 경우 2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그의 무죄를 믿지만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만약 엘비스 프레슬리였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마이클 잭슨이 흑인의 영웅이어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개인적으로 좋아해 두 사람에게 책을 바친다고 했다.
헤어스타일을 바꾼 이유는.
어릴 때부터 히피가 꿈이어서 그들처럼 뒷머리를 갖고 싶었다. 그동안 레게 풍 등으로 몇 번 머릴 바꿔봤는데
이번에는 지미 핸드릭스 타입으로 해봤다.
대중문화적 취향이 글쓰기와 어떤 연관을 갖나.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음악과 문학의 연관성이나 상호작용도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두 가지
모두 좋아하지만 음악은 재능이 부족해 듣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후 무슨 일을 했나.
2년 조금 넘게 광화문에 있는 해운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이후 '베스트셀러'라는 잡지에서 일했다.
그 때 인터뷰하느라 이외수 선생을 몇 번 뵙게 되면서 가까워졌는데 그의 문하생은 아니다.
사실 고교시절 이외수 선생의 '훈장'을 읽고 예술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외수 선생은 나에게
하나의 아이콘이다. 내게는 두 명의 아이콘이 있는데, 이외수 박상륭 선생이 그들이다. 의술로 치면 한 분은
개업의이고 한 분은 연구의다. 개업의의 기능과 역할도 중요하고,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훗날 아스피린 한
알을 세상에 내놓을 연구의의 역할도 중요하다. 욕심 같아선 두 가지 기능을 다 하고 싶다.
소설은 언제부터 썼나.
'베스트셀러'라는 잡지사에 다니다가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어서 사표 쓰고 나왔다. 문창과에 다닐 때는 시를
전공했다. 그 분야에 열정이 있어서라기보다 시는 소설보다 과제 분량이 적다는 이유였다. 내게 문학은 그런
식이었다.
나중에 소설을 쓰게 되리라고는 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다. 소설을 쓰고 싶어 어떻게 해서든 장편을 썼다.
그것이 '지구영웅전설'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내게 소설은 두꺼운 책이었기에 장편을
먼저 쓴 것이다.
두 작품을 쓰고 나서 소설 쓰는 선배들을 만났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물어보고 하지 그랬냐. 소설은
단편부터 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매우 크게 실수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그래서 단편을 마구
쓰기 시작했다. 30편 정도를 쓰고 나니까 만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왜 쓰는가.
왜 쓰는지 모른다. 나는 한 개인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나를 도구로 소설이 나를 쓴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회용이다. 죽을 때가지 소설이 날 쓰다가 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도서출판 '작가'가 소설가나 문학평론가들에게 추천받아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를 '지난해 가장 좋은 소설'로 뽑았는데.
뽑히면 뽑히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신경 쓰지 않는다. 등단 전에는 그런 것이 대단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런 것들이 글쓰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상금은 내게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고, 새로운 글을 쓰는데 탄환이 될 뿐이다.
그동안 썼던 30편의 단편을 신춘문예에 여러 번 냈는데 예심을 통과한 것은 '카스테라'뿐이었다. 그런데
등단하고 나니까 신춘문예에 떨어진 작품들이 주요 문학상 후보작에 올랐다. 세상의 시스템은 그렇게 돌아갈
뿐이다. 딴 생각 들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글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경제적 의미다. 먹고 사는데 큰 걱정은 없지만 모시고 사는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 그 때문에 걱정이
많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해운회사에 다녔는데 그의 영향을 받았나.
하루키는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다. 나는 그가 해운회사에 다닌 줄 몰랐다. 나는 대학 졸업 무렵 가세가
기울어 순전히 돈을 벌려고 해운회사에 취직했다.
첫 소설집을 낸 기분은 어떤가.
뭐가 뭔지 모르고 단편 30편을 마구 썼다. 이번에 책으로 묶어내고 보니 앞으로는 어떤 얘기라도 소설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단에서 상당한 주목을 하고 있는데 작가 자신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나.
문인이나 출판사와 교류가 없어선지 문단의 반응이 어떤지 잘 모른다. 어머니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밤에
집에서 나가기가 힘들다.
고교시절(울산 학성고) 내신 성적이 최하위였다. 그래서 담임선생이 나를 다른 반으로 내쫓으려 했다.
칭찬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인지 칭찬에 무감각하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어떻게 생각하나.
평론가들의 방에 가본 적이 딱 두 번 있다. 계명대 손정수 선생의 방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다 읽어 봤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대답해 매우 놀랐다. 그 다음에 백낙청 선생의 방에
갔는데 손 선생의 책보다 열 배는 많은 것 같았다. 물론 다 읽었다고 하지 않았지만, 그런 경험에 비추어
평론가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에 문예지가 와도 잘 읽지 않는다. 평론을 읽으면 고교시절 뒷자리에서 수업 받는 느낌이 든다.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고교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선생에게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그런
세계에 대해 거부감 같은 것이 있다. 물론 평론가 선생들과는 다른 경우다. 그래서 말을 할 때 조심스럽다.
쑥스럽긴 하지만 글을 쓰느라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 작가들이라면 다 하는 일이다.
몇 년간 다작을 했는데 청탁이 오면 모두 쓰나.
다른 작가들이 경우는 잘 모르지만 나는 거의 쓴다. 직장 생활할 때 하루 8시간은 의무적으로 일했듯이 전업
작가가 된 뒤에도 회사생활 기준으로 글을 쓴다. 밥 먹고 글만 쓰기 때문에 다작은 당연하다. 다만 고료가
적을 때는 무조건 안 쓴다. 장편을 쓸 때는 삼천포 등 시골을 다니며 썼는데, 1년 전부터는 집에서 쓴다.
최근 '창작과 비평'에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따로 전작 장편도 쓰고 있다.
정천기 문화부 기자 | ckch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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