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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한국경제
기업 내우외환 ‘위기가 기회다’

한국은 그동안 반도체, 가전, 휴대폰,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가격은 일본보다 낮고, 기술은 중국보다 앞섰다'며 역(逆) 넛크래커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 한해 한국기업은 성장하는 속에서도 안 밖으로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기업구조와 체질을 정비하고 가격, 기술, 품질 경쟁력으로 나서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수 있다.

거세지는 '한국기업 견제'

기술ㆍ품질 경쟁력 강화로 정면돌파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직전 미국 컨설팅 기관인 부즈 앨런 ＆ 해밀턴은 한국보고서에서 "한국은 비용이 싼 중국과 효율이 높은 일본의 협공을 받아 넛크래커(nut-cracker) 속에 끼인 호두처럼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반도체, 가전, 휴대폰,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가격은 일본보다 낮고, 기술은 중국보다 앞섰다'며 역(逆) 넛크래커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넛크래커'에 머물 것인가. '역 넛크래커'로 뒤집을 것인가.
2005년은 한국이 넛크래커를 역 넛커래커로 뒤집으려는 노력을 막는 세계시장의 역풍이 유독 거셌던 한해였다.

지난해 11월22일 삼성전자 주가는 인텔과 마이크론이 플래시 메모리칩을 생산하기 위해 합작키로 한 '인텔 쇼크'의 직격탄을 맞아 17개월만의 최대 낙폭인 4.99%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6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세계 반도체 업계의 맏형격인 인텔이 D램과 낸드플래시를 무기삼아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마이크론과 함께 합작사 'IM플래시테크놀로지'를 설립키로 한 것이다.

이 쇼크가 가시기도 전인 지난 12월 초 인텔은 다시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함께 휴대전화용 노어 플래시를 생산키로 함으로써 재차 삼성을 협공했다.

노어 플래시 부문 시장 1, 3위인 인텔과 ST마이크로가 힘을 합쳐 플래시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히 다져나가겠다는 전략을 내보인 것이다.

상하이자동차그룹 계열편입 후 열린 쌍용자동차 기자회견에서 소진관 대표이사 사장(뒤)과 장쯔웨이 대표이사가 웃으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또 일본의 히타치, 도시바, 마쓰시타, NEC, 르네사스 등 5개사는 차세대 반도체 공장을 공동으로 설립, 65나노 이하의 시스템 LSI(비메모리) 제조에 나서기로 해 삼성전자에 대해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지난해는 후지쓰, 소니, 마쓰시타 등 일본 전자, 반도체 업체들이 삼성전자 뿐 아니라 LG전자를 상대로 잇따라 특허위반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일본 업체들의 한국 기업에 대한 전방위 특허 공세로 점철된 해였다.

'잠에서 깬 용들의 디지털 공습'도 거세다. 중국은 백색가전에서 TV, 컴퓨터, 휴대전화,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전자산업 전반에 걸쳐 한국을 위협하면서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5월 국내 대표적인 PC업체인 삼보컴퓨터가 중국의 저가 PC 공세에 견디다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의 위즈다 부총재는 지난해 11월 한국 기자들을 불러놓고 '2010년 한국 3대 가전브랜드 진입'을 선언했다.

하이얼은 2006년 말까지 600여 개의 지역 특판점 및 전문점을 개설해 자체 유통망을 확보하고 2007년에는 A/S망을 200여 개로 늘리기로 했다. 하이얼은 한국시장을 세계 가전시장 공략을 위한 교두보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한국 기업 사냥'은 2005년 초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로 절정을 이뤘다. 중국의 BOE테크놀로지가 2003년초 하이닉스로부터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사업부문인 하이디스를 인수한 것은 한국기업 사냥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까지 자동차 수입이 12만8천대, 수출이 13만5천대로 처음으로 수출이 수입을 앞섰다.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품질 및 기술 수준 격차는 2010년이면 2년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이 조만간 한국 자동차산업에 위협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철강의 경우 세계 2위인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와 일본의 신일철, 중국 바오산철강이 최근 합작사를 설립하는 등 외국업계의 대형화 및 제휴 움직임이 거세다.

한국 기업들은 이처럼 사방에서 거세지는 글로벌 공세에 맞서 연구개발(R&D) 투자, 인재 확보 등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해외시장확대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다.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시장 석권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해 메모리-시스템 LSI 시너지 극대화 추진으로 세계 초일류 종합 반도체 업체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이를 위해 2012년까지 신규라인에 총 330억 달러를 투자해 2012년 반도체 매출을 610억달러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1974년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이후 최대 규모의 투자 결정이다.

포스코는 글로벌 철강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2008년까지 고급재의 생산비율을 80%로 끌어올리기로 하는 등 제품 고급화로 맞서고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상품경쟁력 강화, 현지화, 브랜드가치 향상 등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매출액 5% 이상을 R&D에 투자하는 등 글로벌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상품성,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성장할수록 세계 곳곳의 공세는 더 거세질 수 밖에 없다"며 "이를 기술, 가격, 품질 경쟁력 강화로 정면 돌파하면 이른바 넛크래커를 역 넛크래커 현상으로 바꾸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악재에 갇힌 삼성공화국

윤리확립, 사회기여 솔선수범이 돌파구
'삼성공화국'으로 대변되는 경계론에서 각종 비리의혹과 송사, 안기부 'X파일'에서 드러난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지배구조 논란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지난해 유례없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이 "60년 전 그룹 창업 이래 최악의 한해였다"고 말할 정도다.

참여연대강당에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판결이후 참여연대 후속 대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강한구 기자
그러나 삼성의 지난해 시련은 모두 기업외적인 요인들과 관련돼 있다. 삼성의 기업경영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지난해보다는 못하지만 연간 7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은 좋은 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강력한 삼성의 성과가 잇단 시련을 초래하는 단초의 하나가 됐으며, 이런 점이 바로 재벌에 대한 일반의 곱지 않은 시각과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공정거래위의 조사 방해,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발생한 참여연대 측 인사의 폭행사건, 공직자 및 법조인 대거 영입 등이 여론의 빈축을 사면서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지난해 초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삼성은 급기야 사장단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 끝에 "삼성이 커지고 있는 데 대한 일부의 비판을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국가 대표기업으로서 경제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중소기업과 어려운 이웃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사랑받는 기업이 되자"고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삼성의 악재는 단순한 경계론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10월4일에는 편법 경영권세습의 수단으로 지적돼온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과 박노빈 현 사장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더욱이 장남 재용씨 등 이건희 회장의 4자녀에게 에버랜드 CB를 헐값에 배정하는데 그룹 비서실이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돼 상황에 따라서는 더 큰 형사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7월에는 옛 안기부 도청팀이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불법으로 도청한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의 대화 가운데 불법 정치자금 제공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음이 폭로돼 삼성의 윤리성이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이 사건이 불거진 후 이건희 회장은 '신병치료'를 이유로 출국해 아직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 체류 중 역시 미국에 유학 중이던 막내딸 윤형씨가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다.

삼성의 고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국정감사에 나선 국회 재경위와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이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 'X파일'을 통해 드러난 정치자금 제공의혹 등을 따질 계획이었지만 이 회장은 신병치료를 이유로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또 삼성의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이 발의돼 삼성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여당내 일부 강경파 의원들의 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운데 3.47%,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가운데 20.64%를 매각해야 돼 경영권을 위협받게 되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삼성은 '삼성공화국론'을 논의했던 지난해 5월말과 6월초의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인정하는 층도 있지만 삼성의 힘이 과대하고 우수자원을 독점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이 삼성경계론의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너무 크고 강하기 때문에 견제를 받는다"는 삼성의 자체 분석은 사안의 본질인 윤리와 도덕성의 문제를 외면한 자기중심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재계와 학계의 전문가들은 삼성이 한국의 대표기업에 걸맞은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윤리를 확립하고 사회기여 및 상생경영에 앞장설 때 사랑받는 한국의 '대표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두산사태와 기업의 도덕성

오너 비리 ‘폭로전'에 반기업정서도 확산
"두산그룹 오너들을 불구속한 것은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에 불과하다."

분식회계 등 비리의혹에 연루된 두산 오너들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방침이 발표된 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보인 반응은 시민단체나 일반인이 재벌 오너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반기업 정서 확산은 특히 삼성그룹의 편법상속, 수 십조 원대 분식회계에 책임이 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의 귀국, 두산그룹 총수 일가의 비리가 연달아 터져나온 것도 크게 작용했다.

특정 대기업에 대한 비판 분위기의 지나친 확산이 기업활동의 위축과 세계시장에서의 브랜드 가치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도 나왔지만 국민의 싸늘한 시선만 받았을 뿐이다.

올해 검찰 수사의 도마에 오른 대기업은 삼성, 대우, 두산 등으로, 수사상 혐의내용에 총수들이 관련돼 그룹 오너에 대한 이미지를 떨어드리는 요인이 됐다.

회삿돈 326억 원 횡령과 수백억 원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용성(가운데) 두산그룹 전 회장과 박용오(왼쪽),박용만 총수일가가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출두하고 있다. 사진/최재구 기자

‘글로벌 경영의 전도사'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 후에 벌어진 검찰의 미온적인 수사 또한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켰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지난해 6월 귀국하자 두 달간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담당 관료들을 조사했지만 중대 의혹을 미제로 남긴 채 수사를 종결했기 때문이다.

경영전문 매거진 ‘엑설런스 코리아'가 주요기업 최고경영자 51명을 대상으로 김 전 회장의 사후처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6.9%가 ’원칙대로 사법처리 해야한다'고 응답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우중 사태로 마무리될 것 같았던 재벌 오너의 비리는 두산그룹 전 현직 총수 간에 집안 싸움이 터지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박용오 전 회장이 동생의 회장 취임에 반발해 검찰에 그룹의 경영현황을 비방하는 투서를 제출했고, 박용성 회장이 이를 반박하면서 ‘형제의 난'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양쪽의 폭로전과 검찰의 수사가 이어지면서 두산의 오너 일가가 분식회계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유산분배 비율대로 나눠 세금, 부동산 경비에 사찰 시주까지 했다는 어이없는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충격을 던져줬다.

하지만 검찰은 두산 총수 일가를 전원 불구속 기소하면서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그 이면에는 두산 오너형제들을 구속했을 때 안기부 도청사건과 관련해 조사 대상에 올려놓은 이건희 삼성회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에 대한 후폭풍을 우려한 조치였다는 의혹이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일련의 오너 비리에 따른 사회 전반적인 반기업 정서에 위기감을 느낀 대기업들은 자정 조치를 잇달아 발표하며 개선을 시도했다.

두산그룹은 박용성 전 회장의 퇴진을 계기로 비상경영위를 발족,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 확보를 위한 2개의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어 본격적인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곤욕을 치렀던 SK㈜는 사외이사들을 대상으로 울산 공장에서 FCC(중질유분해시설)를 비롯한 고도화설비 증설 추진 상황 등을 설명하는 등 사외이사들의 현장경영 참여를 통해 투명 경영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3월 정부ㆍ정치ㆍ경제ㆍ시민단체 등 4대 부문 대표가 체결한 ‘투명사회 협약'에 참여한데 이어 그룹 차원에서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한 ’삼성 경영원칙'을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포스코 또한 지난해 본격적인 윤리경영에 나섰으며 임직원의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타인의 금품수수 행위 신고때 10배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내ㆍ외부 신고보상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이런 표면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구조가 쉽사리 바뀌기 힘들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LG그룹은 지주회사제, SK는 사외이사제 강화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지배구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삼성은 삼성에버랜드, 두산은 두산산업개발 등 순환출자를 통해 오너의 지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되기 때문에 현재 대기업에서 이를 당장 시도하기에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두산측은 "우리 또한 지주회사제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금액을 치르고 지분을 사들여야하는데 지금 국내 대기업 중에 이런 능력을 보유한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재벌 오너들 또한 지난해를 겪으면서 인식의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대기업의 체질 또한 조금씩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통 겪은 현대 대북사업

김윤규 경질에 北 반발..대북사업 파행
지난해 현대의 대북사업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는 현대 관계자의 표현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개성관광과 백두산관광 등에 대해 진전을 이룰 때만 해도 제2의 도약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경질을 놓고 북측과 엄청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금강산 옥류관에서 열린 ‘금강산 관광 7주년 공동 기념 행사'에 참가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리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이상학 기자
◇ ‘김윤규가 물러나야 현대가 산다' 현대 대북사업 희비의 중심에는 김윤규전 부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이후 김 전 부회장은 현대 대북사업의 실질적 ’선장'이었고 여기에 이견을 다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2003년 말 현정은 회장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현 회장이 ‘김 전 부회장이 견제세력 없이 대북사업을 마치 개인사업인양 좌지우지한다'며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던 중 현대 경영전략팀에는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의 각종 비리를 담은 제보가 지난 6월께 접수됐다. 그동안 김 부회장과 관련된 온갖 소문들이 떠돌고 제보도 적잖게 있었지만 증빙자료까지 꼼꼼히 첨부된 이 제보는 무게감이 달랐다.

7월초까지 이어진 감사결과 비자금 조성 등 제보의 상당부분이 사실로 밝혀졌고 결국 이는 김윤규씨의 대표이사직 해임으로 이어졌다.

◇ 예상치 못한 북측의 강력한 반발 김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사임했지만 현 회장이 지난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합의한 개성관광의 시범관광이 8월말 실시되는 등 대북사업에는 별 지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 회장 일행이 개성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던 당시 금강산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북측이 김 전 부회장의 경질에 반발해 9월부터 금강산관광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북측은 ‘김윤규 부회장 복귀'를 요구하며 금강산관광 규모 축소와 함께 롯데관광에 개성관광 사업을 제안하는 등 전방위로 현대를 압박했다. 김 전 부회장 문제는 남북협력기금 유용의혹까지 담은 현대그룹의 감사보고서가 일부 언론에 유출되면서 통일부가 발끈하고 나서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결국 현대그룹은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해당기관과 국민 여러분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송구스럽다"고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북측은 10월말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현대와의 모든 사업을 전면 검토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밝혀 양측의 갈등은 파국 양상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 현정은 회장의 뚝심경영 결실 이처럼 양측의 갈등이 갈수록 심화됐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때 해결의 실마리도 엿보였다.

북측의 아태 담화는 대부분 김 전 부회장을 옹호하고 현대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지만 담화문 말미에 "현대에게도 앞날은 있고 길은 있다"며 대화의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실제 담화문 발표 닷새만에 북측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현정은 회장과 리종혁 아태 부위원장간 회동이 지난 11월 10～11일 개성에서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현 회장은 금강산관광 정상화를 이끌어냈고 그룹 안팎에서는 "현 회장의 뚝심경영이 결실을 봤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북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을 점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 수개월간의 대북사업 파행은 득이 된 측면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김윤규 사태'는 현정은 회장이 아직은 초보 경영자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대의 한 임원은 "이번 사태에서 현정은 회장은 두 가지 큰 실수를 했다. 첫째, 김 전 부회장의 경질 방침을 북측에 미연에 알리지 않은 것이다. 경질 시기만 조절했어도 이처럼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두번 째는 감사보고서 유출이다. 보고서 유출로 인해 논란의 초점이 비자금에서 남북협력기금 유용으로 넘어갔고 북측과 통일부를 자극했다. 여기에 현대가 억지로 보고서를 흘렸다는 음모설까지 나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현대그룹은 올해에는 대북사업의 새 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임직원 모두가 힘을 합쳐 큰 위기를 넘겼다"면서 "올해에는 금강산관광은 물론 개성관광과 백두산관광 등에서 모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해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표상 호전에도 체감경기는 ‘냉랭'

'새 시장' 부재로 설비투자도 제자리
내수 부진과 이로 인한 설비투자 감소세가 지속되면서 지난해 경기는 수출에 기댄 채 연명하는 최악의 연속이었다.

건설경기는 지난해 8.31대책 이후 10월 한달 간 수도권 건설 물량은 9천540가구로 2004년 같은 달에 비해 60.2%나 감소했다.
◇ 소비ㆍ건설 투자 회복세 미약 내수 경기 가운데 민간 소비 부문은 그나마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강도는 아직도 미흡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민간소비는 최근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나 지난해 3/4분기까지는 2004년 같은 기간에 비해 4.0% 늘었으며 연간으로도 3.0% 성장한 것으로 예측된다.

백화점을 보더라도 매출액이 지난 2년간 정체하거나 감소했으나 지난 10월까지는 9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 늘었다. 전문가들은 민간소비가 가계부채 조정과 소득ㆍ고용 개선, 주가상승 등의 영향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저소득층 소비 심리가 풀리지 않아 전체적으로 회복 속도가 답답할 정도로 느린데다 2004년 워낙 부진했던 데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돼있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치 않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기대지수는 지난 11월에 98.5로 3개월 째 오름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기준선인 100에 도달하지 못해 6개월 후의 경기ㆍ생활형편ㆍ소비지출 등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의 수가 더 적은 상태다.

건설경기는 사정이 더 좋지 않아서 건설교통부가 내놓은 ‘2005년 1～10월 주택건설 실적'에 따르면 전국 주택건설은 28만9천789가구로 작년 동기대비 3.7%, 최근 5년 평균 39만5천327가구에 비해서는 10만 가구 이상 줄었다.

특히 8.31대책 이후 10월 한달 간 수도권 건설 물량은 9천540가구로 2004년 같은 달에 비해 60.2%나 감소했다. 주택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지난 10월의 국내건설수주는 2004년 같은 달에 비해 34.8% 급감했고 건설기성도 3.4% 늘어나는데 그쳤다.

◇ 설비투자 침체의 늪 설비투자는 2003년 1.2% 감소했다가 2004년에 3.8% 늘어나며 마이너스 성장을 면했으나 2005년도 3.9% 증가하는데 그치며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활동동향의 설비투자추계 지수(2000년=100)를 보더라도 지난해 10월에 2004년 동월보다 1.7% 높아진 98.1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그나마도 2004년 동기에 마이너스를 보였던데 따른 기저효과의 영향이 적지 않고 아직 운수장비투자가 감소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특히 ‘굴뚝산업'으로 통칭되는 전통적 제조업과 경공업, 일반 서비스업 부문에 설비투자가 계속 뒷걸음질친 것이 눈에 띄었다.

비정보통신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1/4분기 -0.8%, 2/4분기 -1.8%, 3/4분기 -1.9% 등으로 매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설비투자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나타냈다는 것은 가동 설비의 노후ㆍ감가상각으로 인한 대체투자가 이뤄지지 않거나 중고 설비가 해외로 철수함을 뜻한다.

반면 정보통신산업의 작년 동기 대비 설비투자 증가율은 1/4분기 10.9%, 2/4분기 11.0%, 3/4분기 15.2% 등으로 매분기 두자릿수의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설비투자 부진은 기업들이 반도체 등 기존 정보기술(IT)산업 이후 확신을 갖고 투자할만한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지 못한 데다 '공동화'를 겪는 제조업을 대체할 서비스 산업도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이제 저부가가치 산업은 중국에 투자하고 국내에서는 기술집약적 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나 아직 연구ㆍ개발 역량 등이 부족 해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 아이템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경숙 산업부 기자 | ksh@yna.co.kr
추왕훈 산업부 기자 | cwhyna@yna.co.kr
심재훈 산업부 기자 | president21@yna.co.kr
이정진 산업부 기자 | transil@yna.co.kr
최윤정 산업부 기자 |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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