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아파트'로는
집값 못 잡는다
이도선 편집인 yds@yna.co.kr
정
부는 지난 8월27일 내놓은 부동산대책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공급하는 보금자리주택의 양을 대폭 늘리겠다는 게
핵심이다. 오는 2012년까지 공급할 그린벨트 내 보금자리주택을 당초 계획했던 연간 3만 가구씩 모두 12만 가구에서 연간 8만
가구씩 총 32만 가구로 대폭 확대했다.
이와 함께 사전분양제를 도입해 10월에 분양하는 올해 공급분의 시범지구로 서울 강남 세곡과 서초 우면, 경기도 하남 미사와
고양 원흥의 4곳을 선정하고 이달 중 분양한다.
분양가는 세곡과 우면지구가 시세의 절반선인 3.3㎥당 1천150만 원으로 책정됐고 미사와 원흥은 각각 950만 원과 850만 원으로
시세의 70%선이다.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값이 형편없이 싼 땅에 서민형 공공 주택을 지으면 집값이 내려가는 건 당연하다.
이로써 말 많던 ‘반값 아파트’가 드디어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로또아파트’ 전락 우려 커
집값을 안정시키고 서민 복지도 증진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말이 좋아 ‘반값 아파트’이지 실상은 소수의 원분양자가 엄청난 특혜를 독식하는
‘로또아파트’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벌써부터 시범지구는 물론이고 앞으로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그린벨트에서도 투기가 일어날 조짐이 엿보이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단속에 들어갔다고 소식이다.
정부는 투기를 우려해 5년 의무 거주와 7~10년 내 전매 불허라는 단서조항을 내걸었다.
그러나 과문 탓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전매기간 제한 등의 규정이 무서워 투기꾼들이 가만히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채권입찰제든, 세무조사든, 어떤 규제를 가해도 정책입안자들 머리 위에 올라앉은 양, 온갖 편법으로 피해 가곤 하는 게 투기꾼들
아니었던가.
‘반값 아파트’에 인기가 쏠리는 건 인지상정이다. 주거 여건도 좋고 값도 그렇게 싸다면 누가 매달리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린벨트를 마냥 풀어 싼 아파트를 공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초 2018년까지 계획돼 있던 것을 이 대통령 임기 내로 6년 앞당겼지만 보금자리주택용으로 배정된 그린벨트 해제 물량 78.8㎢가
그 때까지 모두 처리될 수 있을지부터 미지수다. 게다가 그린벨트 추가 해제에 대한 정책적 판단은 별개 사안이다.
3년 반 후에 들어설 새 정권이 현 정권과 같은 열정과 의지로 그린벨트 내 아파트 짓기를 계속할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그린벨트 내 보금자리주택 공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책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과거 1980년대 말 노태우 정부도 최빈곤계층을 위한 영구임대주택의 대량 공급을 약속했으나 결국 일회성 선심정책에 그친 전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아무런 보완대책 없이 ‘반값 아파트’ 정책을 고수한다면 서민용 주택시장은 ‘로또 광풍’이 예고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안 되고 극소수 원분양자만 횡재하는 식이라면 집값 안정과 서민 주택 복지 증진이라는 원래의 정책
취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지금이 부동산 과열인가
해법은 보금자리주택을 사고파는 데 따른 투기 이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환매조건부 분양이 하나의 방법이다.
사기는 싼값으로 사지만 팔 때에는 의무적으로 토지주택공사에 넘기는 식이다.
물론 물가상승률이나 감가상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격이 결정되겠지만 원분양자라고 해서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투기 이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 아무리 싼 값에 공급해도 인기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투자 내지 투기 수요와 실수요를 분리하지 않으면 어떤 주택정책도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집값 상승에 따른 이익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민영 주택시장으로 가고, 보금자리주택 분양은 투기 이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만 해당된다는 인식이 뿌리 내려야 한다.
아울러 대기시간의 길고 짧음은 있겠지만 실수요자라면 언젠가 보금자리주택을 분양받는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공급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집값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의 기본 원칙으로 잡아야 한다.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 5대 신도시를 비롯한 ‘200만 호
건설정책’으로 집값을 안정시킨 것만 봐도 가격 안정에는 수급 균형이 제일이다.
다만 집값 안정에 치우친 나머지 능력 이상으로 공급하는 바람에 건자재 파동과 인건비 급등이라는 커다란 후유증을 낳았던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노무현 정부 때처럼 공급은 외면한 채 세금과 규제 폭탄으로 수요만 때려잡은 것도 현명한 처사라고 할 수 없다.
집값은 간신히 잡았으나 부동산시장 자체를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대체제가 없는 주택의 안정적 수급 계획은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짜야 한다.
정부는 최근 부동산시장이 다소 동요하자 “투기로 번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경제 위기까지 겹친 데 따른 기저효과라는 측면도 감안해야 한다.
공공 부문이 주택 공급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으며 어차피 민간 부분의 보완 역할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집값이 꽤 높은 수준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너무 억누르면 주택 시작을 위축시켜 민간 부문의 공급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난다. 몇 년 뒤 공급 부족과 집값 폭등이라는 악순환을 예방하는 것이야말로 당장의 투기를 막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당국의 책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