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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밖에 모르는 은둔의 CEO
김정주 넥슨 대표이사
올해 스타크래프트를 제치고 최고의 국민게임으로 부상한 ‘카트라이더’의 붐으로 넥슨이란 회사는 이제 일반인에게도
전혀 생소하지 않은 기업이 됐다. 넥슨의 창업자 겸 소유주인 김정주(37) 대표이사는 온라인 게임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지난 1994년 자본금 6천만 원으로 창업한 넥슨을 11년 만에 국내 게임업계 정상을 다투는 대형 업체로
키워낸 인물.
그러나 타 ITㆍ벤처업체와 판이하게도 외부투자를 받거나 증권시장에 상장을 하지 않는 완전자립 경영체제로
초고성장을 이뤄낸 데다 지난 6월 CEO로 나서기 전까지 10년간 경영 일선에 전혀 나서지 않은 특이한 면모로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기도 하다.
김 대표를 서울 역삼동 넥슨 사무실에서 만나 독특한 경영철학과 생활 스타일, 넥슨의 장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게임 개발만 아는 낙제 CEO
“나는 낙제 CEO이고 사회 부적응자입니다.”
지난 10년간 은둔 아닌 은둔의 이유를 묻자 김 대표의 대답은 파격적이었다.
“CEO는 회사에 앉아 있으면서 회사 운영에 필요한 온갖 일을 다 해야 하는 사람인데 저는 그렇지 못하거든요.
조직가 스타일이 아니고 좋은 CEO가 갖춰야 할 덕목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서 CEO로는 낙제예요.”
조직, 경영 등 통상적인 CEO의 임무보다 게임개발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김 대표의 바람. 하지만 전임 대표가 갑자기
회사를 떠나면서 적임자를 찾지 못한 데다 해외진출 등 직접 챙겨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결국 CEO라는 ‘고역’을
맡게 됐다.
“조직관리보다는 좋은 게임을 내놓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CEO가 없어서 아직 넥슨이 연륜에
비해 조직이나 시스템이 모두 미흡해요. 정말 CEO다운 CEO가 와서 회사를 회사답게 만들었으면 합니다.”
외부투자를 받지 않고 상장도 안한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투자를 안 받은 것이 아니고 못 받은 것”이라 잘라
말한다.
“회사를 세운 지난 94년엔 벤처투자란 게 없었을 때였고 상장은 회사를 30년 정도 잘 하고 난 뒤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그때 배웠거든요. 회사도 빌린 돈으로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외부투자가 없고 상장도 안 하는 회사가 된
거지요.”
하지만 이처럼 구시대 사람(김 대표 자신의 표현)과 같은 우직한 면모가 지난 수년간 명멸했던 ‘반짝 벤처’들과
넥슨의 가장 큰 차이를 만들었다.
넥슨, 성장의 비밀
자신을 낙제 CEO라고 부르는 김 대표의 겸손함이 무색할 정도로 넥슨의 경영실적은 빼어나다. 상반기만 해도 매출액
1천57억 원으로 순수 게임업체 최대 규모인 엔씨소프트의 턱밑까지 바싹 다가섰으며, 영업이익률도 37%로 업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넥슨이 쾌속질주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 핵심 경쟁력은 바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업문화라고 김 대표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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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이 KTF 프로게임단 매직엔스 소속 홍진호, 박정석, 강민 등 프로게이머들을 소재로 내놓은 아바타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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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콘텐츠도 그렇지만 게임은 엉뚱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을 통해 얻어진 자신감으로 남들이 안될
것 같다는 일을 자신 있게 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게임 같은 콘텐츠 회사는 일반 제품을 만드는 회사와 다릅니다. 사용자에게 즐거움을 주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짜내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몰입해서 즐겁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규제나 계획보다는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가 좋습니다."
일반 회사보다는 어린이 놀이방을 연상시키는 화사하고 자유분방한 회사 인테리어나 김 대표의 집무실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점은 넥슨의 자유롭고 다소 느슨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 같아요. 돈을 많이 벌어다주고 똑똑한 사람보다
진정 일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저 같은 낙제 CEO를 주변에서 받쳐주고 있으니 행복한 일이지요."
다만 예전에 회사가 작았을 때는 스키여행 등 직원들과 같이 놀러 다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젠 사람이 너무 많아
예전의 재미가 줄었다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이다. 인재를 중시하는 김 대표가 보는 인재관은 ‘인재는 뽑기 나름이
아니라 쓰기 나름’이란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탤런트(타고난 재능)가 있거든요. 훌륭한 사람을 뽑아서 회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더
적합하고 일을 잘 하는 분야를 찾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일 저런 일 시켜보면 모두 언젠가는 숨겨진 재능을
보여주더라구요."
하지만 김 대표로서도 자신들과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젊은 직원들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은 노력 없이 안 되는
일이다.
“저를 어려워해서 솔직하게 대하지 않는 직원들을 보면 세대차를 느껴요. ‘얘기해도 아저씨라 이해하지 못할
거야’하고 생각하는 거죠. 그럴 때마다 비참해져요. 나도 할 수 있다고 소리지르고 싶어지지요."
새로운 것을 접하려는 김 대표가 최근 빠져 있는 것은 격투기 대회 ‘프라이드’로, 지난 8월에는 일본에서 열린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와 미르코 크로캅의 경기를 직원들과 함께 직접 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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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씨게임즈의 신작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이미지(우)와 이를 표절해 물의를 빚은 넥슨의 온라인 게임 ‘제라’의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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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적 생활 지향
잘 나가는 IT 업체의 CEO라는 간판과 대조적으로 김 대표는 일상생활에서 아날로그적 삶을 추구하는 편이다. 업무
처리도 이메일, 메신저보다 직접 찾아가서 사람을 만나는 방식을 선호하고, 뉴스도 인터넷보다 종이로 된
신문ㆍ잡지를, 쇼핑도 쇼핑사이트보다 오프라인 상점을 찾아가는 게 더 좋다.
“1~2년 전에 생각해 보니 20년간 모니터 화면만 보면서 살아왔어요. 깨어 있는 시간을 거의 다 모니터만 본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 싶더라구요. 직접 겪는 것이 훨씬 풍부한 인생이라 생각하며 바꾸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물론 아날로그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며,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김 대표는
설명한다. 특히 게임업계의 후배들에게도 아날로그적인 다양한 체험을 하고 경험의 폭을 넓히라고 김 대표는
주문한다.
“직원들과 용평에 스키를 타러 갔는데 그 곳까지 게임기를 가져와서 밤새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사흘
휴가를 주면 72시간 내내 게임만 하고 얼굴이 하얗게 떠서 출근하는 직원도 있구요. 가슴 아픈 일이지요(웃음)."
김 대표의 가장 큰 취미인 여행도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그의 성향과 맞닿아 있다.
“여행을 가면 고생스럽긴 하지만 새로운 것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게 해줘 제게 힘이 됩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려 애쓰고 있어요."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자금성을 찾아 황제의 거처를 보면서 불과 100~200년 전까지 아무나 갈 수 없었던 곳을
걷고 있다는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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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은 지난해 대학교 순회 기업설명회를 진행하면서 등교시간에 학생들을 강의실까지 오토바이로 데려다주는 ‘강의실까지 태워드려요’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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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유료화가 성공의 분수령
IT 업계에서 넥슨처럼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큰 기복 없이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려온 회사도 찾기 힘들다. 11년
중에서도 지금의 넥슨을 만든 결정적인 순간으로 김 대표는 지난 96년 4월 ‘바람의 나라’ 게임의 유료화(상용화)
결정을 꼽는다.
바람의 나라는 1년 전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그 때까지 김 대표의 말을 빌면 ‘동시접속자 수십 명 수준에, 게임도
제대로 안 돼있고 서버도 매일 장애를 일으키는 너무나 한심했던’ 게임이었다.
“더 미뤄서 훌륭하게 만들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상용화가 되자 우리도 프로의 책임감을 갖고 게임을 더 발전시키게
됐습니다."
특히 기존 패키지 게임과 달리 게임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후에는 개발사가 사용자와 대화하면서 의견을
들어 개발에 반영하는 문화가 이 일을 계기로 싹텄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한국 온라인 게임의 가장 큰 경쟁력인 상호작용성을 처음 구현한 사건이었지요. 그 때 상용화가 제대로 안 됐다면
지금의 넥슨은 없었을 겁니다."
다만 그 못지않게 실수도 매우 많이 했으며,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면 특히 가슴이 아팠다고 김 대표는
털어놓는다.
그를 만든 사람들
김 대표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사람으로 부모님과 은사인 전길남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꼽는다.
“부모님은 제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길러주셨어요. 제게 강요는커녕 어떤 권유도 안 하고 거의 내놓고
키우다시피 했던 것 같습니다."
초창기 국내 인터넷 관련 벤처업체들의 창업을 도우면서 한국 인터넷의 ‘대부’로 불렸던 전 교수는 김 대표에게
엄격하고 무서운 스승이었지만 회사를 이끄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쳤다는 것이 김 대표의 회상이다.
“강하고 독특한 분이어서 밑에 있을 때는 원망도 하고 박사과정도 잠깐 하다가 관뒀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하다
보니 그때 배웠던 것을 쓰게 되더라구요. 지금도 회사를 이끄는 잣대는 전 교수님이 주신 것입니다."
동료 CEO 중에서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의 총명함과 이해진 NHN 부사장의 성실함과 현명함, 나성균 네오위즈
사장의 열정을 높이 사고 있으며, 이 중 대학 학과 동기인 이 부사장과는 특히 절친한 사이다.
하지만 여가시간에는 이 부사장 등 업계 사람보다는 다른 분야의 친구들과 함께 스쿼시, 스키, 스노보드, 스쿠버
다이빙 등 격렬한 운동과 여행을 즐기면서 다른 세계의 얘기를 듣고 균형을 맞추려 애쓴다.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감량 작전에 나서 몸무게를 13kg나 빼면서 홍콩 영화배우 리렌제(이연걸)을
연상시키는 날렵한 얼굴과 몸매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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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중국 최대의 게임전시회에 참가한 넥슨 게임 ‘마비노기’의 장나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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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 앓는 넥슨
‘카트라이더’의 대히트로 넥슨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지만 높아진 관심만큼 넥슨 입장에서 신경쓰이는
일도 많아졌다. 특히 올 상반기 ‘카트라이더’ ‘제라’ ‘워록’ 등 넥슨 게임들이 잇따라 모방 논란에
휩싸이면서 넥슨은 적지 않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게임을 많이 만들다 보니 걸리는 것이 많기도 하고 게임이 기존의 것을 조금씩 개선, 변형하는 분야여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그런 시비에 대해 책임을 전혀 부인하는 것은 아니고 더
노력해야지요."
결국 개발자들이 새로운 장르, 특이한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만이 해법이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다고 김 대표는 토로한다. 하지만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게임 중독증과 관련한 외부의 비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다.
“개인적으로 게임에 너무 몰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우리 게임도 현실과 혼동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지요. 하지만 게임만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사회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특히 게임이 청소년 문제의 주범인 양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강하게 항변한다.
“요즘 아이들이 뛰어놀 곳이 어디 있습니까. 12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해야 할 아이가 게임을 하니까 문제라는
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게임이 공부와 학원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10년, 넥슨의 성장동력
최근 국내외 게임시장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업계에서 낙관론이 예전보다 힘을 잃은 것이 사실. 하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한국 게임산업의 장래를 매우 밝게 전망하고 있다.
“다중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시장은 포화상태이고 캐주얼 게임은 회사가 많아 경쟁이 치열한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앞으로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여가도 조금씩 늘어날 것이어서 전체 게임시장은 아직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게임업계에 유행처럼 번지는 세계시장 진출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선을 긋는다.
“아시아 사람들은 우리 게임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대충 예측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난 97년 미국에 진출해보니
나라가 아닌 대륙의 장벽을 넘는 것은 정말 어렵더라구요."
따라서 서구보다는 중국, 일본을 시작으로 인도, 태국 등 아시아 시장에 집중해 한 나라씩 정성을 들여 거점을
마련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구상이다. 김 대표는 카트라이더 이후 차기 주력작품을 묻는 질문에는 특유의 겸손함을
내보였다.
“작년까지 게임이 잘 될지 아닐지 예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다 뒤집어졌어요. 아직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은 게임에
대해 전망하는 것은 신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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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출생 1968년 2월 22일(양력), 서울
취미 여행, 스쿼시
주량 전혀 못 마심
체력유지법 스쿼시, 스키, 스노보드, 스쿠버 다이빙 등
종교 없음
존경하는 은사 전길남 KAIST 전산학과 교수
친한 CEO 이해진 NHN 부사장
최근 읽은 인상적인 책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
학력 광성고(86년), 일본 조치(上智)대 국제학 과정 수료(88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91년), KAIST 전산과 석사(93년), KAIST 전산과 박사 수료(96년)
경력 넥슨 창립(94년), 넥슨 미국법인 설립(97년), 넥슨 일본법인 설립(99년), 모바일핸즈 설립 대표이사(01년), 넥슨 대표이사 사장(05년 6월~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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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형 정보과학부 기자 | jhpark@yna.co.kr
신유리 정보과학부 기자 | newgla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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