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6개월간 미 경제를 이끌면서 '경제 대통령'이란 칭호까지 이끌어 냈던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79)이 퇴임했다.
1987년 8월11일 의장 취임 후 두 달여 만에 찾아온 주가 폭락도, 걸프전 오일 쇼크도, 세계 금융 위기도, 9.11테러의
충격도 그린스펀의 분석과 처방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정도로 그의 능력과 업적은 탁월했다.
또 그의 통화정책은 미국의 수입을 촉진, 중국과 인도, 구소련 등 기존에 폐쇄적으로 운영됐던 국가들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었고 세계화와 정보기술(IT) 혁명에 걸 맞는 방향으로 미 경제의 체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처럼 그린스펀은 숱한 위기와 변수들 속에서도 고성장과 저물가, 저실업의 신화를 일궈내며 미 경제를 사상 최대의
호황으로 이끌었으며 공직 생활 말년에는 '워싱턴에서는 드물게 최고일 때 물러난다'는 찬사까지 듣고 있다.
요즘도 재즈 연주를 즐기고 늘그막에 NBC방송 여기자 안드리아 미첼과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던 그는 퇴임
후에도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강연과 회고록 집필에 나서는 등 경제 일선을 떠나지 않을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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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6개월 동안 초강대국 미국 경제를 이끌면서 그가 보여준 능력과 업적은 그런 찬사들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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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될 '그린스펀 신화'
'경제 대통령' '사상 최고의 중앙은행 총재' '천재'...
지난 1월 31일 퇴임한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79)에게 쏟아진 찬사들이다.
18년 6개월 동안 초강대국 미국 경제를 이끌면서 그가 보여준 능력과 업적은 그런 찬사들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뛰어났다.
의장 취임 후 두 달여 만에 찾아온 주가 폭락도, 걸프전 오일 쇼크도, 세계 금융위기도, 9.11테러의 충격도
그린스펀의 분석과 처방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숱한 위기와 변수들 속에서도 그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으로 미국 경제를 사상 최대의 호황으로 이끌었으며,
고성장과 저물가, 저실업의 '신화'를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 대통령' 그린스펀의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17세 때 줄리어드 스쿨에 입학했던 그의 소년시절 꿈은 음악가였고, 악단을 따라 순회공연을 다니다 회계와
세무업무를 보면서 뒤늦게 음악보다 숫자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곧 음악을 그만두고 뉴욕대 경제학과에 들어갔지만 박사학위도 받지 못하고 1954년 뉴욕에서 경영컨설팅 업무를
시작하면서 곧바로 실물경제에 발을 디뎌야 했다.
1974년 타운센드-그린스펀 경영컨설팅사 사장 재임 중 제럴드 포드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관계에 입문한 그의
역량은 1987년 8월 11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FRB의장에 임명된 뒤부터 한껏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정통 경제학자 출신이 아닌 그는 변화무쌍한 미국과 세계 경제의 흐름을 너무나 정확히 읽어냈고, 빈틈없는 선제적
정책을 구사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시장은 그와 그의 정책들을 신뢰했고,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미국 최초의
이코노미스트"라는 찬사를 받게 됐다.
경제 석학도 아닌 그가 이처럼 미국 경제의 흐름과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던 건 끈질긴 탐구와 분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는 1940년대부터 미국 기업들의 경기순환을 연구해왔고, 정부 통계 뿐 아니라 중앙은행과 기업 등의 데이터와
구체적 사례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해 면밀하게 분석해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갖춘 특유의 정치 감각과 유연한 사고, 커뮤니케이션 기술, 예리한 판단력 등도 그가 '최고의 중앙은행 총재'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로 꼽힌다.
물론 그린스펀 경제가 빛만 남긴 것은 아니다.
사상 최고치에 달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가계부채 등은 그린스펀 경제가 남긴 그늘로 꼽힌다. 부동산 경기 과열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미국민들은 20년 가까이 자국 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그린스펀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존경을 보내고 있다.
`그린스퍼니즘'은 왜 없나
세계의 중앙은행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지난 18년간 성공적으로 이끈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운영철학은
무(無)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듯하다.
사람들은 흔히 훌륭한 업적을 쌓은 인물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 '~주의', '~이즘(ism) 등을 붙이지만
그린스펀은 세계 중앙은행의 표준을 확립하는 역사를 이뤄냈음에도 딱히 '그린스퍼니즘'으로 부를 만한 특징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그린스퍼니즘이 없다는 것, 그만의 도그마가 없다는 점이 그린스펀의 가장 큰 특징인 셈이다.
그린스펀에게 철학적 배경을 제공한 사람은 18세기 영국의 수학자 토마스 베이스로 그린스펀은 스스로를
'베이지언(Bayesian)'으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베이즈주의는 현대 철학과 수학, 통계학 등에서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이론으로 임의의 사건에 대해
발생빈도에 따라 확률을 부여하는 프리퀀티즘(Frequentism)과 반대로 어떤 명제와 사건에 대한 믿음의 정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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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위기와 변수들 속에서도 그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으로 미국 경제를 사상 최대의 호황으로 이끌었으며, 고성장과 저물가, 저실업의 '신화'를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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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즈주의가 최근 설명력을 높여가고 있는 이유는 세계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으로 과거 고전경제학이
균형 상태와 최적 등에 대해 '가정'했으나 점차 이 가정들이 의심받고 있다.
단 하나의 균형이 아니라 복수 균형이 존재할 수 있으며 초기 우연성은 곧 사라지지 않고 사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비효율적인 균형에 경제가 고착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베이즈주의 하에서 개인의 해석범위는 넓어지고 한계영역을 벗어난 변수들도 고려대상이 되며 결정적으로
하나의 결과에 집착하는 잘못을 피하게 된다.
이는 그린스펀으로 하여금 도그마에 집착하지 않게 했고 한 모델의 설명력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로 하여금 기어를
바꿔 넣게 했다.
그린스펀의 베이지언적 특징은 그의 화법에서도 잘 드러나 그의 화법이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하지만 많은 설명력을
갖게 했다.
그가 지난 2003년 8월 "불확실성은 통화정책의 한 특징이 아니라 통화정책 그 본체"라고 말한 것은 그의 베이즈주의
철학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전문가의 정치적 결정(Expert Political Judgement)'의 저자인 버클리대 심리학과의 필립 테트록 교수는 저서에서
전문가들은 고슴도치와 여우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며 고슴도치들은 자신의 생각에 반대되는 의견을 배척하지만
여우들은 다소 기괴하다고 생각되는 것들까지도 불가피한 것들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테트록 교수는 그린스펀을 전형적인 여우로 꼽으면서 여우들은 훌륭한 전망을 할 수 없게 생겼다고 주장하고
그린스펀이 1987년 상원 인준과정에서 의원들이 그의 정확치 못한 전망과 낮은 수익률을 추궁할 때 그는 겨우
`그 외 나머지 것들은 훌륭했다'고 답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테트록은 그린스펀의 비록 정확한 전망을 하지는 못했으나 많은 변수들을 계산해 내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고
이는 성공의 원천이 됐다고 평가하고 그의 재임 중 미 경제가 짧은 침체를 겪었지만 1930년대 같은 대공황과
1970년대처럼 인플레이션 재앙 등은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거장 그린스펀 무얼 남겼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지막으로 18년간 정든 FRB를 떠난 거장 그린스펀에 대한 평가작업이 한창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을 통해 그린스펀 의장에 대한 일종의 신비감 속에 그의 업적에 대한 찬사는 자자하지만
구체적인 업적에 대해선 아무도 정확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설은 이와 관련, 그린스펀 의장이 벤 버냉키 의장에게 '기록'은 남겼지만 '방법'은 남기지 않았다는 말로 그린스펀
의장의 장기집권 비결을 표현했다.
그린스펀이 남긴 업적 가운데 금융시장에 대한 책무만큼은 찬사를 보낼만하다고 신문은 평가했다.
신용파생상품을 통해 금융기관들이 리스크를 다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이는 불황 및 금리인상기에
나타나는 금융기관의 파산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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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에린 크로우의 ‘굿바이 그린스펀’ 작품들이 뉴욕에서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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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또 FRB 의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달러의 가치를 얼마만큼 잘 지켜냈는가 라며 이
관점에서 볼 때 그린스펀 의장은 이제까지 FRB의장을 역임했던 모든 전임자들보다 나은 업적을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그린스펀 의장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세계경제 불균형 문제도 그린스펀 의장의 잘못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WSJ은 세계 경제불균형 문제로 그린스펀 의장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러한 불균형은 그린스펀 의장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가 투자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글로벌 투자자금이 유입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 되고 있지만 유럽은 상대적으로 투자에 적합하지 않고
중국은 경제발전에 비해 금융시스템이 원시적이어서 투자자금이 몰리지 않기 때문에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RB를 이끌어가는 것은 의장 단 한사람의 능력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며 세계경제가 25년간 그린스펀 의장을 포함해 단 두 명의 의장을 가지게 된 것은 행운이라며
오랜 기간 쌓아온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이기창 워싱턴 특파원 | kc@yna.co.kr
정리 주성남 기자 | jsn@yna.co.kr
<미국과 세계를 움직인 그린스펀 어록>
---------------------------------------"공정하다는 믿음없는 사회 성공할 수 없어"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완곡한 어법으로 유명하다.
1987년 FRB의장이 된 뒤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내 말을 여러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이다"라고 했듯이 그는 엄청난 자기 말의 위력을 조절이라도 하려는 듯 언제나 에둘러 메시지를
전했다.
시장은 언제나 그린스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해석하는데 매달렸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미국과 세계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18년 반 동안 미국 경제를 이끈 `경제 대통령' 그린스펀의 주요 어록을 살펴본다.
▲"(증시의) 비이성적인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은 자산 가치를 과도하게 상승시켜, 일본에서 지난 10년간
그랬듯이 갑작스럽고 장기적인 경기위축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1996. 12. 5 연설을 통해 주가가 과대평가돼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암시하면서)
▲"이 풍요의 시기에 미국이 지닌 것으로 보이는 큰 문제는 소득 분배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그 사회가 공정하고
기회가 주어졌다고 믿지 않는다면 어떤 사회도 성공할 수 없다."(2000. 1. 26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당장의 막대한 손실과 경제적 결과를 파악하는 데에도 주력해야 하지만 이런 가공할 사건에 의해서도 크게
위축되지 않은, 보다 장기적인 전망에 대한 통찰을 놓쳐서는 안 된다."(2001. 9. 20 9.11 직후 상원금융위원회
증언에서)
▲"과거에는 그렇게도 잘 이뤄져온 기업 관리의 점검과 균형이 왜 무너졌는가? 우리 기업사회 대부분이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에 사로잡힌 것 같다."(2002. 7. 16 엔론사건 이후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거품이 터져 그걸 입증하기까지는 거품이 있는지 확실히 알기가 아주 어렵다. 설령 거품을 미리 파악했다 해도
중앙은행이 그 같은 결과를 피하고자 하는 경기 위축 등을 포함한 선제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지는 더욱 확실하지
않다."(2002. 8. 30 잭슨홀 회의에서 FRB가 증시 등의 거품 터뜨리기 정책을 취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수십 년간 응답하지 않는 걸 연습했다고 말하고 싶다. 나도 유가를 떨어뜨리고 싶다."(2004. 6 자신이 왜 유가에
대한 질문에 응답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주택가격의 거품이 나타난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집값이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오른
것으로 보이는 일부지역 시장에서는 거품의 조짐이 드러났다."(2005. 6. 9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에서)
▲"경제가 유연할수록, 불가피하고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대처할 때의 자정(self-correct) 능력도 커진다."(2005.
8. 26 잭슨홀 회의에서 미국 경제의 탄력성과 유연성이 커졌음을 강조하면서)
이기창 워싱턴 특파원 | k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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