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이고 좋은 대우를 받는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일을 잘할 수 있다.”
박
인상(69) 국제노동협력원 운영위원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노동계 내부의 그늘진 현실에 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노동시장은 너무 분절돼 있다.
분단 노동시장이란 말이 있을 정도”라며 “오죽하면 좋은 조건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진입을 막고 있는 상황에
빗대어 ‘사다리 걷어차기’란 표현까지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시 땜질식이 아닌 종합처방전의 해법을 제시했다.
우선은 노사정 모두가 부작용을 인정하는 현행 비정규직 보호법을 당초 취지대로 비정규직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쪽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경영계는 비정규직을 비용절감이 아닌, 기업의 인적 경쟁력 차원에서 봐야 하고, 정규직 위주의 노동조합도 비정규직 보호를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보여 달라는 주문도 보탰다.
국내 노동운동의 대부 격인 박 위원장은 노동계 전반에서 원로로 추앙받는다.
한국노총 위원장이던 1996년 12월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노동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자 민주노총과 연대투쟁을 전개, 재개정을
이끌어냈다.
굳이 따진다면 전태일보다 9살 연장자로 노동운동의 선배지만 전태일의 직접적인 영향도 받았다.
1969년 10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파업을 주도해 구속됐던 그는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의 충격을 받아 1971년 부산에서
다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후배 운동가들에게 “마음을 맑게 가지면 모든 일이 이뤄진다”는 의미의 청심사달(淸心事達)을 당부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국내 노동 60년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노동이란 주제에는 사회.경제학적으로 워낙 많은 쟁점들이 얽혀 있어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60년간 자본에 맞서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아직도 노동은 자본과 상생협력을 논할 위치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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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파업’은 노동자는 물론 국민 대중들로부터 지지받아야 성공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이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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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 노동사에서 큰 획을 그은 사건들이라면.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 사건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법대로 시행해 달라는 생존권 투쟁이었고 고성장의
그늘진 단면을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였다.
또 87년의 노동자 투쟁은 오랫동안 억눌려온 노동자들의 불만과 요구가 민주화 투쟁과 함께 동시에 분출되고 노동운동의 공간을
자율적으로 넓히는 기폭제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1968년 대한조선공사 파업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조선공사 청년부장을 맡고 있었는데 국영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되면서 사측이 임시공(비정규직)에 대한 집단해고를
시도했다. 그에 맞서 파업을 전개해 집단해고 방침을 철회시켰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똘똘 뭉쳐 비정규직
집단해고를 막아낸 첫 번째 사례였다.
Q. 노동계가 지나치게 정치화됐다는 지적이 있다.
지나치게 정치화됐다고 보진 않는다.
어느 부분을 주목해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노동계의 정치화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다.
노동계 출신이 국회에 많이 진출했던 17대와 18대에도 고작 10명 내외에 불과했다.
나도 16대 국회의원을 했지만 국회에서 노동계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창구는 거의 없다.
민주노총의 정치파업도 마찬가지다.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노동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선 노동계가 정치적 요구를 걸고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
다만 정치파업은 노동자는 물론 국민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성공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Q. 귀족노조란 비판에 대해서는.
일부 조직 간부들의 도덕성 문제로 귀족 운운하는 듯 한데 대조직의 자금 여유나 잔업 및 철야근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다고
귀족노조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운동의 내용이 조합원 중심이냐 아니면 간부 중심이냐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
Q.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보다 세심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법과 제도적 측면은 물론 경영계와 노동계가 모두 더불어 사는 삶이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
비정규직법은 본래 취지대로 개정돼야 한다.
예컨대 차별시정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노조에도 줘야 하고 사용사유제한 역시 검토돼야 한다.
또 경영계는 비정규직을 비용절감의 차원이 아닌 기업의 인적 경쟁력으로 바라봐야 한다.
안정적이고 좋은 대우를 받는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일을 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계에도 마찬가지 주문을 하고 싶다.
현재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정규직 위주다.
노동계가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실천적인 내용이 부족하다.
비정규직을 같은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꺼리는 노조가 적지 않다.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고용을 방어해주는 고용의 안전판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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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내부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진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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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국내 노동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결이다.
자본에 비해 힘이 부족한 노동계로서는 단결을 해야 당당히 교섭하고 투쟁할 수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10% 대에 머물러 있는 조직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같은 조합원으로 끌어안는 노력이 중요하다.
Q. 노동운동가로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1996년 12월 26일 새벽 6시 집권여당 신한국당은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비롯한 11개 법안을 단 7분 만에 날치기 통과했다.
한국노총은 이에 맞서 국제노동단체의 지원 및 민주노총과의 연대로 총파업 투쟁을 전개했다.
결국 이듬해 1월 19일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여야 영수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는 선언을
받아냈으며 3월 10일 여야 합의로 노동법이 재개정됐다.
Q. 후배 운동가들에게 당부할 말은.
도덕성과 초심을 잃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길 바란다.
정규득 사회부 기자 | wolf85@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