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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 위기로 흔들
새로운 국제질서 시동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시장규모나 향후 잠재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신흥국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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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로서 가졌던 달러화의 지위가 유로화와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등에 일정 지분을 내주기 시작했다.
사진은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의 외환시세표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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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의 패권이 위협받고 있다. 구 소련과 동구권 몰락 후 20여 년을 독주해온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유럽통합, 중국.인도 등
이머징 마켓의 부상이란 예열 과정을 거친 뒤 2008년 9월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급속도로 재편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이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나 다극의 한 축으로 전락하게 되면 오바마가
그 첫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극화로의 세계질서 재편에 대해 혹자는 “엄청난 혼란과 무한경쟁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 우려하지만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진행
방향”이란 견해들이 많다.
국제질서의 재편 움직임은 정치.경제.안보.문화 모든 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경제 분야의 흐름이 가장 빨라 보인다.
우선 선진국들이 장악해온 국제금융 권력에 일대 변화가 오고 있다.
지난 12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엔 한국을 비롯한 중국.브라질.인도 등 이른바 신흥시장국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번 금융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G7(선진 7개국)만으론 힘이 벅차다고 느낀 기존 국제금융 권력이 콧대를 꺾고 신흥국가들의
참여를 허용한 것이다.
이는 신흥국가들의 발언권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며, 경제권력이 분점기로 접어들었다는 해설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뉴욕타임스는 “개도국들이 4각 링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G20 정상회의에선 IMF,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구 내에서 신흥시장국과 개도국들의 경제력을 반영해 이들 국가의 대표성이
확대돼야 한다는 원칙이 합의됐다.
출연금과 GDP, 외환보유액 등에 따라 개도국의 의결권을 높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들 기구의 창립 멤버로서 기득권을 누렸던 선진국들이 스스로의 의결권을 줄이겠다는 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공멸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하지만 이는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서서히 시장규모나 향후 잠재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신흥국 쪽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란 지적들이 많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각각 12억, 11억의 인구를 갖고 있어 향후 이들이 선진국과의 기술수준을 좁히고 국민소득을 향상시킨다면
10년 내에 세계 소비시장은 이들 국가가 주축이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을 정도다.
변화의 움직임은 달러화의 불안정성에서도 읽혀진다. 그동안 기축통화로서 가졌던 달러화의 확고부동한 지위는 지난 2002년부터
유로화의 도전을 받아왔고, 최근에는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등에도 일정 지분을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또 세계 1위와 3위의 외환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위안화와 루블화를 무역대금 결제수단으로 상용키로 합의하는가 하면,
중국은 “지금이 세계 금융질서 건설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며 금융위기 와중에 위안화의 위상을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한.중 통화 스와프 협정이나 동남아 각국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을 중국 런민비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그 단적인 예다.
정치.안보 면에서도 다극화의 조짐은 뚜렷하다.
중국이 미국과 양보 없는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미국 대통령에게 공공장소에서 신발을 던질 정도의 반미
정서가 중동을 지배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무력으로 침공했지만 ‘명분 없는 전쟁’이란 평가 속에
9.11의 희생조차 희미해져 가는 상황이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승산 없는 이라크 전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와중에 러시아는 그루지야를 침공해 역내에서 자국의 힘을
공고화하려 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친미 정권이 몰락한 뒤 서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점차 퇴색해 가고 있다.
국제기구의 상징인 유엔에서도 변화의 기운은 오래 전부터 감지돼 왔다. 미국의 발언권이 점차 EU에 밀리고 있고, 여기에 영국이
EU에 가입하게 되면 EU는 환경.인권 등의 지구촌 핵심이슈를 장악하면서 그 영향력을 더욱 넓힐 공산이 크다.
또 유엔 개혁이란 이름으로 진행중인 상임이사국 확대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경우, 현재 미.영.프.중.러의 5개 상임이사국
위상이 약화되면서 일본.독일.브라질 등이 다극화의 한 축으로 자리 매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질서의 재편 와중에서 변방의 약소국으로 취급받아온 국가들도 나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 방편은 역내 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이다.
동남아 국가연합, 남미국가연합, 아프리카지역기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경제와 통상 분야에서 통합과 결속뿐 아니라 안보
분야에서도 집단 방어태세를 갖춰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살아남는 것이 아닌 다극화의 한 축으로 미국이나 EU, 중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계산속이다.
미국이 세계정부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다극화로의 진행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싹트고 있는 질서재편의 움직임을 억누르고
다시 한번 세계 중심국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화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다만 오바마 당선인 인수팀이 차기 행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로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 리더십에서 탈피해 국제무대에서 동맹국들과
공조.협력의 틀을 확대하는 동시에 국제기구나 다자협력의 틀에서 문제를 해결해갈 것’이라 밝힌 것은 시사점이 크다.
이는 금융위기로 수세에 몰린 미국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합리적 리더십으로 방향 전환할 것임을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많다.
마지막 냉전질서에 갇혀 있으면서 대미 의존도가 어느 OECD 국가보다 높고, 세계질서 재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중국.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우리로서는 또 다른 도전에 대한 응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김현재 뉴욕 특파원 |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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