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공포영화
요가학원
'현
대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애초부터 공포영화의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일까.
'여고괴담 3-여우계단'을 만들었던 윤재연 감독은 사회가 강요하는 획일적인 아름다움과 그것을 향한 여성들의 맹목적인
욕망이 공포로 다가왔다고 영화 '요가학원'의 기획의도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의도를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캐릭터가 대거 등장하지만 인물 각자의 이야기를
살리지도 못했고, 같은 공간에 갇혀 있으면서도 인물들은 서로 연관성 없이 뿔뿔이 흩어진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과장되거나, 딱딱하거나, 어색하거나, 불안하다. 결정적으로 맥락 없이 이어지는 장면 어디에서 공포를
느껴야 할지 당황이 된다.
쇼호스트 효정(유진)은 잘나가는 후배에게 밀리자 불안하다.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던 선화(이영진)가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 효정에게 간미희 요가학원에 대해 알려준다.
효정과 함께 1주일간의 비밀 수련에 참가한 사람은 거울 없이 못사는 전직 아이돌 (박한별),
성형으로 얼굴을 망쳐버린 유경(김혜나), 다이어트 강박증에 걸린 인순(조은지),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진 보라(황승언)다.
요가 마스터 나니(차수연)는 거울을 보지 말 것, 수련 후 샤워를 하지 말 것, 밤에 음식을 먹지 말 것,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 것 등 몇 가지 금기 사항을 알려주지만, 하나씩 금기를 어긴 이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요가학원에 감춰진 비밀은 다 드러나고 나서도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설득력이 없다.
잘 이해되지 않기는 인물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학창시절 선화와 단짝이었던 효정이 갑자기 다른 친구들처럼 선화를 따돌리는
이유를 "넌 너무 가난해"라고 대놓고 말하는 대목 등이 그렇다.
8월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송한미희 문화부 기자 | eoyyie@yna.co.kr
슬픔을 견디는 방식
조용한 혼돈
누
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은 남은 자의 몫이다. 슬픔은 순간의 오열로 끝나지 않고 산 자의 일상을 바꿔놓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영화 '조용한 혼돈'은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고 딸과 남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피에트로(난니 모레티)는 동생 카를로(알레산드로 가스만)와 해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여자를 구해준다.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
장례를 치른 뒤 딸 클라우디아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첫날, 피에트로는 딸에게 학교 앞에서 계속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학교 앞 벤치에서의 일상. 피에트로는 신문을 읽고, 근처 카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매일 그곳을 지나는
다운증후군 소년에게 자동차 리모컨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젊고 매력적인 여자와 마주친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괜찮다고 말하고 오히려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포옹을 나눈다.
회사의 중역으로서 살아온 이전의 생활과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새로운 일상은 예상만큼 정적이지는 않다.
피에트로가 품고 있는 슬픔과 혼돈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말과 행동에서 모두 묻어나지만, 영화는 일상 속의 잔잔한 유머와
웃음도 잃지 않는다.
결국 오래도록 불안하게 눌러왔던 혼돈은 격렬한 환영으로 드러나고, 감춰뒀던 슬픔은 오열로 폭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보다 주변 사람들의 무심한 위로인사를 받아야 하는 피에트로의 당혹스러운 표정이나 딸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해서
회사에 갈 수 없다고 전화하는 모습이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관계에 대한 성찰을 전하는 절제된 연출과 연기가 인상적이다.
주연을 맡은 난니 모레티는 2001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들의 방'의 감독이자 주연배우다.
역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피아니스트'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깜짝 출연한다.
이탈리아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8월 27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한미희 문화부 기자 | eoyy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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