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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 등을 놓고 정부와 대립하는 한국노총이 11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대규모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사진.임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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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는 지금 국내 노동운동의 흐름에 큰 변혁을 가져올 두 가지 화두를 놓고 찬반양론이 뜨겁다.
하나는 복수 노조 허용이고 다른 하나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다.
이들 사안은 벌써 10여 년 전 여야 합의로 입법이 마무리됐으나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행 시기가 세 번이나 미뤄졌다.
지난 1997년 3월 법을 제정하면서 시행은 2002년으로 넘겼고 2002년이 되자 다시 5년 뒤인 2007년으로 미뤘으며 2007년이 되자
또다시 2010년으로 연기했다.
유예기간이 오는 12월30일로 끝나므로 추가 연기 여부를 당장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건강한 노사문화 정착을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내년 시행 방침을 예정대로 밀고나갈 태세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노동운동을 말살하려는 의도”라며 강력히 반발하며 총파업도 불사할 태세이고 재계는 재계대로
“산업 현장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귀결될지 점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왜 복수 노조인가
단일 노조는 조합원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발의하고 권익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한 목소리로 단합할 수 있지만 모든 구성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
사업장 내에 생산직, 사무직 등 다양한 직종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역할만 강요받고 혜택과 권리는 무시당하는 사례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게 맹점이다.
이에 비해 한 사업장에 여러 노조가 병립하는 복수 노조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고 다수결에 의한 소수의
희생이나 불필요한 의견 싸움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예컨대 생산직 위주의 노조와는 별도로 사무직도 노조를 만들거나 여직원들만 따로 노조를 설립하는 식이다.
노동문제 전문가인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그 동안 먹여 살리던 사람을 자립시키는 것이고
복수 노조 허용은 여러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새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복수 노조는 그러나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대자동차 등 강성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복수 노조 허용으로 노조의
요구사항이 더 복잡하고 다양해질 우려가 있고 삼성처럼 우호적인 노동자로 구성된 기존의 노조에 추가되는 신설 노조는 새로운
노사 분규의 불씨가 될 소지가 있다.
이종훈 명지대 교수는 지난 10월22일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을 주제로 열린 노사관계 학회 토론회에서 “복수 노조와 전임자
문제는 원칙과 현실을 동시에 고려하는 균형적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행이 13년간 유예됐다는 사실을 놓고 ‘원칙이 무시됐다’고 인식할 수도 있지만 ‘우리 현실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분석하고 “복수 노조가 허용되면 그 동안 단결권이 침해됐던 부분은 해결되겠지만 동시에 안정적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사업장에서는 노노 갈등의 혼란에 따른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시대 역행 vs 선진화 계기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1월11일 ‘복수 노조와 기업의 대응’을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박성조 베를린 자유대 교수를 비롯한
발표자들은 기업 경쟁력 약화 등 복수 노조 시행에 따른 후유증을 우려했다.
하지만 복수 노조 허용과 함께 노조 전임자 급여의 사용자 부담 금지 조치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노사관계가 크게 개선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박 교수는 “영국, 아일랜드, 호주 등은 복수 노조가 감소 추세”라고 밝히고 “1980~90년대 이후 복수 노조의 경제적 성과는 좋지
않게 평가받는다”고 소개했다.
외국 투자자의 기업 인수.합병 시 단수 노조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사례가 많은 데다 복수 노조 간에 새로운 조합원의
스카우트, 기업 내 세력 확장, 단체교섭에서 유리한 조건 선취를 위한 과도한 경쟁 등이 복수 노조 쇠퇴의 주요 원인이란다.
조영길 아이앤에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복수 노조 허용 조치가 기존 노조의 분화, 노조 신설 흐름의 촉발, 복수 노조 상호 간
경쟁 등의 변화를 노사관계 현장에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조 변호사는 “복수 노조 허용으로 기업의 노사관계 관리비용 증가 등이 뒤따르겠지만 복수 노조 허용이나 이와 연계된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모두 보편타당한 원칙에 들어맞는 제도”라고 강조하고 “두 제도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노사관계 개선에 이바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담스럽긴 노사 마찬가지
복수 노조 시행이 부담스럽고 속이 타들어 가기는 노동계나 재계가 다를 게 없다.
노조로서는 회사가 어용 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조의 대항마로 삼을까 봐 두려워한다.
복수 노조 체제가 되면 온건파보다 강경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큰 것도 걱정거리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에 잠식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민노총은 민노총대로 노조의 핵심 세력이 분열하거나 약화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노조 간 과열 경쟁, 즉 노노 갈등이 격해지고 외부 세력이 사업장에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사용자 측으로서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박종남 대한상공회의소 상무는 “복수 노조를 허용하면 교섭비용이 증가하고 공연히 노노 갈등만 불러일으켜 기업이 피해를
볼 공산이 크다”고 밝히고 “노사 교섭창구 단일화를 의무화해야 복수 노조로 인한 혼란과 피해를 최소화 할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복수 노조를 한다면 창구 단일화는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수의 노조에 각각 교섭권이 주어지면 조합원 확보를 위해 다른 노조보다 높은 요구조건을 내걸고 사측을 과도하게 압박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노조 간 경쟁 과열과 갈등으로 인한 부담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노동계는 그러나 교섭창구 단일화를 반대한다. “나머지는 들러리냐”는 논리에서다.
최근 일본 하토야마 내각이 처음으로 공적 자금 3천억 엔 투입을 결정한 일본항공(JAL)은 복수 노조가 기업의 발목을 잡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사내에 직능별로 무려 8개의 노조가 있어 중요한 고비 때마다 효율 경영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최근 임태희 노동장관과 만나 복수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고 경제5단체장 조찬 모임에서는
“복수 노조의 폐단을 감내할 길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복수 노조 허용과 더불어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방만한 노조 운영을 억제하고 노동 유연화에도 탄력을 더해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을 충족하면서 자유무역협정(FTA)의 노동 분야에서 항상 지적되는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복수 노조가 기업 경영의 효율을 저해하는 독(毒)이 될지, 아니면 노사관계 선진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약(藥)이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강성철 기자 | wakaru@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