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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고공행진 이유 있다
웰빙 대표주자로 한식 세계화의 첨병 노릇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막걸리를 주제로 한 박람회인 ‘막걸리엑스포’가 11월 19일~22일 사이에 열렸다.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를 시음하고 있다. 사진.임헌정 기자

한 한국의 전통주 막걸리 판매가 불황 속에서도 급증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와인이나 위스키, 수입 맥주 등 고급 주류가 일제히 침체에 빠진 가운데 ‘나홀로 호황’이다. 특히 매년 20~30%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는 일본에 대한 올해 수출은 5천t(4백만 달러)을 넘을 전망이어서 국제 브랜드로의 성장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다.
‘탁주 반 되는 밥 한 그릇’이라는 말처럼 막걸리는 농부의 새참을 비롯해 서민의 오랜 친구로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던 술이다. 그러다 쌀 부족과 카바이드 막걸리 등장에 장기 보관의 어려움 등이 겹치면서 소비량이 줄곧 곤두박질치며 주당들의 시야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산균, 비타민, 식이섬유 등 풍부한 영양소로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부드럽고 깔끔한 뒷맛에 세련된 용기로 포장돼 나오면서 프리미엄 웰빙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10월9일 한일 정상회담 직후 가진 오찬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내외는 와인을 마다하고 막걸리를 선택했다. ‘코리아 와인’, ‘마코리’ 등으로 외국에서 더 주목받는 막걸리는 ‘동양적인 매력을 가진 건강 발효주’라는 이미지를 잘 구축하면 일본 술인 ‘사케’ 못지않는 국제적인 술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탁주, 농주, 박주, 회주에 이어 막사, 칵테일로 변신
   막걸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술로 역사가 삼국사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거른 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맑지 않고 탁해 탁주(濁酒)라 부르고 식량 대용 또는 갈증 해소용으로 농부들이 애용했대서 농주(農酒)라고도 부른다. 북한 지방의 방언으로 탁배기 또는 탁주배기라고도 하며 텁텁한 맛에 고급 술은 아니라는 뜻에서 박주(薄酒), 발효가 잘못된 경우 나뭇재나 풀재를 술독에 넣어서 시어진 맛을 중화시킨다는 뜻에서 회주(灰酒), 큰 술잔에 따라 먹는다고 해서 대포 또는 왕대포 등의 다양한 칭호를 갖고 있다.
주세법상 막걸리는 “곡류나 기타 전분이 함유된 물료(물건을 만드는 재료 또는 전분당)과 국(麴) 및 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술덧(술밑 또는 누룩)을 여과하지 않고 혼탁하게 제성한 것. 또는 그 발효”라고 정의돼 있다. 막걸리를 빚을 때에는 전분질, 누룩, 물의 세 가지가 들어간다. 전분질이 분해돼 이산화탄소와 알코올로 발효될 때 분해가 덜 된 물질을 깨끗이 걸러내면 청주 또는 약주가 되고 물을 부어가며 큰 덩어리만 채로 대충 걸러내면 막걸 리가 된다. 발효가 완전히 끝난 막걸리의 알코올 농도는 약 15도이지만 물을 부으므로 도수가 절반 정도로 내려간다.
최근에는 막걸리에 다른 술이나 과일 등을 첨가하는 막걸리 칵테일이 인기다. 막걸리 칵테일로는 비교적 오래된 ‘막사’(막걸리+사이다)나 ‘맥탁’(맥주+탁주)와 각종 과일막걸리, 막걸리 셔벗, 막걸리 아이스크림 등이 유명하며 쌀, 콩, 보리 등을 섞은 오곡막걸리와 수삼막걸리 외에도 더덕, 대추, 메밀, 밤, 고구마, 검은깨 등 각 지역의 특산물을 첨가한 막걸리에 이르기까지 막걸리의 변신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무궁무진해 보인다.
멜론, 수박, 딸기, 망고, 오렌지, 복숭아, 포도, 코코넛 등의 제철 과일을 섞으면 빨강, 노랑, 초록색을 띤 천연색 칵테일로 바뀐다. 과일 덕분에 막걸리 특유의 텁텁하고 시큼한 향이 사라져 여성들이 선호한다. 칵테일바에서는 최근 막걸리 칵테일이 인기가 높다. 막걸리를 멀리 하던 젊은층이라도 사발이 아닌 칵테일잔이나 도자기잔에 담아낸 고운 빛깔에는 열광할 수밖에 없다. 이밖에 막걸리에 설탕이나 꿀을 섞어 얼리고 나서 갈아 시원하게 마시는 막걸리 셔벗과 막걸리 아이스크림도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품목으로 등장했다.

그 해 수확한 햇포도로 만든 와인이 첫 선을 보이는 보졸레 누보 데이인 11월 19일 막걸리학교 주최로 서울 역사박물관내 레스토랑에서 국내의 햅쌀로 빚은 14종류의 햅쌀 막걸리가 선보여 시음 행사가 열렸다. 사진.배재만 기자

막걸리는 건강의 보고
   한때 숙취와 시금털털한 맛과 역한 냄새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막걸리는 제조기술 발달과 더불어 다양한 맛을 선보이며 누구에게나 친숙한 대중주로 자리매김했다. 막걸리는 맥주와 달리 단일 효모로 발효하는 술이 아니라 와인처럼 다양한 미생물로 발효하기 때문에 영양소가 다른 술에 비해 고르고 알코올 함량이 낮으면서 정장작용이 가능한 효모나 유산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장점이다.
막걸리의 성분은 물이 80%이고 알코올(6~7%)과 단백질(2%), 탄수화물(0.8%), 지방(0.1%)을 제외한 나머지 10%는 식이섬유와 비타민B. C와 유산균, 효모 등의 혼합물이다. 알코올과 물이 95~99%이고 겨우 1~5%만 몸에 좋은 무기질인 와인에 비해 영양가가 월등하다는 뜻이다. 고려대 부설 한국영양문제연구소 주진순 박사의 ‘막걸리 섭취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막걸리 200mL(4분의3 사발)에는 비타민 B2(리보플라빈) 약 68㎍, 콜린(비타민 B군 복합체) 약 44㎍, 나이아신(비타민 B3) 50㎍이 각각 들어있는데 특히 비타민 B군은 피로 완화와 피부 재생, 시력 증진 효과 등으로 중년 남성에게 도움이 되는 영양소다.
막걸리는 식이섬유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이섬유는 물 다음으로 막걸리에 들어있는 성분으로 웬만한 식이음료의 100~1,000배나 된다. 대장 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식이섬유는 변비에 좋으며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효과도 있다.
모든 막걸리에 유산균이 풍부한 건 아니다. 맥주도 생맥주와 살균 처리한 일반 맥주가 있듯이 막걸리도 생막걸리와 살균 막걸리가 있다. 누룩의 효모가 발효에 들어간 지 7일 정도 지나 만들어지는 생막걸리는 몸에 좋은 효모와 유산균이 살아있고 발효에 의해 생성된 탄산도 함유돼 있어 신선한 맛과 탄산의 톡 쏘는 맛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막걸리가 과발효되면 초산이 생성되는 경우가 많아 유통기간이 길지 못한 게 흠이다.
따라서 외국으로 나가는 병, 캔, 팩 막걸리는 물론이고 시중에서 유통되는 막걸리는 대부분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살균 막걸리라고 할 수 있다. 살균 막걸리는 열 처리를 하기 때문에 효모 등 미생물이 죽고 탄산도 사라지지만 상대적으로 순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바뀐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 외교단 초청 다과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막걸리 칵테일을 시음하고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올해 최고의 히트 상품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여러 가지 업태를 창출하고 있다. 막걸리 전문점이 대표적인 예로 최근 들어 최고의 창업 아이템으로 떠오르며 올해 수도권에만 200여 곳이 새로 생겼다. 토속적 분위기의 기존 막걸리집과는 달리 전문점은 세련되고 새로운 맛의 칵테일 등을 선보이며 막걸리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다. 막걸리의 용기가 다양화돼 기존 PT병 이외에 유통이나 보관이 간편한 캔 막걸리 등이 잇따라 출시되는 것도 막걸리의 인기에 한몫 하고 있다.
막걸리가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추세로 골프장, 특급호텔, 백화점 입성이 이를 웅변으로 입증한다.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골프장이나 고급 호텔이 늘고 있으며 유통기한이 짧고 가격대가 낮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백화점에서도 가파른 상승세의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다.
백화점과 편의점의 주류 매출에서 맥주, 소주에 이어 3위로 떠오른 것도 막걸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편의점에서는 올 4월부터 와인 매출을 앞질렀고 9월부터는 위스키도 제쳤다. GS25 관계자는 “편의점사업을 시작한 이후 맥주→소주→위스키로 이어지는 주류 빅3의 월별 매출 순위가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제껏 포도주나 민속주 등이 3위 자리를 집요하게 공략했지만 순위가 뒤바뀐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급 술을 파는 백화점에서도 막걸리는 올 9월부터 포도주와 위스키에 이어 3위로 부상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008년 11월부터 판매에 들어간 막걸리가 짧은 기간에 일본술 사케와 맥주를 추월했다. 신세계백화점 김은구 바이어는 “시범 판매한 막걸리가 인기를 끌어 와인 중심이던 주류매장에 막걸리 전문관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명인들이 제조하는 유명 막걸리를 다양하게 발굴해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막걸리 유행을 타고 집에서 직접 담가 먹는 게 유행이다. 누룩, 효모 등 막걸리 원료들이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포털사이트 게시판과 블로그에는 ‘막걸리 만드는 법’이 상세히 공유되고 있다.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www.auction.co.kr)은 누룩을 비롯한 막걸리 재료가 10월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100여 개씩 팔려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옥션에서 전통 방식으로 제조한 ‘산성누룩’을 판매하는 차원호 사장은 “최근 3개월간의 누룩 판매량이 작년 전체의 두 배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고 밝히고 “요즘에는 주문량이 너무 밀려 물량이 달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막걸리는 지난 10월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내 서비스로도 제공되기 시작했고 각종 국제 행사에서 만찬장에 건배주로 막걸리가 등장하는 것도 흔히 보는 풍경이다. 부산 신라대는 ‘막걸리세계화연구소’를 설립했고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촌스러운 이미지를 꺼리던 고려대는 막걸리 열풍에 발맞춰 ‘고대막걸리’의 브랜드화를 추진 중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막걸리 홍보팀장’이라고 자임하고 나설 정도이니 막걸리 열풍은 단연 ‘올해의 히트상품’ 반열에 오를 만하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주한 외교단 초청 다과회에서도 “막걸리가 건강에 좋고 여성들에게는 미용과 피부에 좋다”며 외국인을 상대로 막걸리 예찬론을 펼쳤다.

국산 쌀 사용 등 세계화 전제요건부터 선결해야
   막걸리가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인의 술’로 발돋움하고 있다.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한류 열풍과 함께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올해 수출도 23%이 넘는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막걸리가 인기를 끌자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일본에서 막걸리 TV광고를 11∼12월 두 달 동안 방영하고 있다. 막걸리 주요 수출국 순위는 일본에 이어 미국, 중국, 베트남, 호주 등이다.
지난 11월19∼22일는 국내 최초의 막걸리 비즈니스 전시회인 ‘막걸리 엑스포’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려 30여 막걸리 제조업체가 150여 종의 다양한 막걸리를 선보였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한 퓨전 막걸리가 나오는가 하면 막걸리 칵테일쇼, 전통 막걸리 제조 시연, 블라인드 테이스팅 등으로 풍성한 화제거리를 남겼다. 행사를 주최한 윤장배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은 “막걸리를 즐기는 소비자들을 위해 막걸리 엑스포를 매년 계속해서 개최하고, 나아가 독일의 세계적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와 같은 축제로 발전시킬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렇듯 정부까지 나서서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한순간 지나가는 바람에 그치지 않으려면 몇 가지 선결과제의 해결이 시급하다. 우선 막걸리의 주원료인 쌀을 국산으로 써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술 제조에 사용된 쌀 3만6천t 가운데 국산은 7천t으로 20%에도 못 미쳤다. 얼마 전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국내 막걸리 출고량 상위 20대 제조사의 쌀 원산지 현황’에 따르면 국산 쌀을 사용하는 업체는 단 1곳에 불과했다. 최근 쌀값 폭락으로 논을 갈아엎는 농민까지 나오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나 막걸리업계에서는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국내산 쌀이 수입산보다 3배나 비싼 현실에서 대부분 영세 규모인 국내 막걸리업체들에 대해 100% 국산 쌀 사용을 당장 강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의 와인이나 일본의 사케의 주원료는 당연히 자국산 포도와 쌀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수입산 쌀막걸리’를 한류 식품이라며 세계 시장에 내놓는 것은 아무래도 겸연쩍다.
막걸리의 고유 브랜드 보호도 시급한 문제다. 일본에서 ‘포천막걸리’ ‘포천일동막걸리’ ‘일동막걸리’라는 상표의 등록을 선점당해 자칫하면 ‘포천막걸리’라는 상표를 단 막걸리의 일본 수출 길이 막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엄연히 한국 고유의 브랜드이지만 일본 업체의 재빠른 상술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격이다. 이런 식이라면 ‘안동소주’나 ‘전주 이강주’ 같은 전통 주류와 식품의 상표권을 외국 업체에 넘겨줘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속출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치 종주국인 우리가 일본 ‘기무치’ 공세에 고전했던 전례가 또 되풀이돼선 곤란하다. 이밖에도 생막걸리 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보존기간 확대를 위한 연구와 소믈리에와 비슷한 막걸리 가이드 양성 등 막걸리의 세계화를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요구된다. 진정 세계인들이 사랑하고 부러워하는 술이 되려면 정책적 뒷받침과 더불어 업계의 끊임없는 연구와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 나라의 문화로 인식되는 술은 국가 경쟁력과 이미지 제고에도 이바지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의 전통 막걸리 역시 세계화에 전혀 손색이 없는 맛과 영양, 역사성, 가격 경쟁력 등을 갖추고 있다”는 국내 업계의 평가가 실속 없는 말의 성찬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

강성철 기자 |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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