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 기획
• 에너지 각축전
• 한반도 3면서 '신화'
  다시 쓴다
• 다시 불붙은 할인 마트
  경쟁
• 휘청거리는 지구촌









Home > 기획


에너지 각축전
중앙아시아
'제 2의 중동'


세계는 지금 치열한 ‘자원전쟁’을 벌이고 있다.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한 국제유가 폭등과 식량위기 시대를 맞아 자원 확보 여부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요소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원유와 가스를 비롯해 각종 자원이 풍부한 중앙아시아는 `제2의 중동'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 한승수 총리의 순방을 계기로 새 정부 자원외교의 첫 시험 대상에 오른 중앙아시아의 자원 분포 및 개발 현황 등을 점검해 본다

우즈베키스탄, 경제회생 위해 개방
옛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는 가장 부유한 나라이자 정치.군사적으로도 맹주국이었다.
우즈벡의 인구는 2천700만 명으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 5개 스탄국들 가운데 최대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2배인 44만7천400㎢에 달한다. 전체 인구에서 우즈벡인이 71.4%를 차지하고 러시아인(6.3%), 타지크인(4.7%), 카자흐인(3.9%) 등 130여 민족이 살고 있다.
특히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 1세대 및 후손 2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우즈벡의 확인된 원유 및 가스 매장량은 각각 약 6억 배럴, 1조8천억㎥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이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131억 달러, 1인당 GDP는 약 500달러로 주변 국가에 현저히 뒤처지는 빈국이다. 장기독재도 물론이지만 자본과 기술이 없는 나라가 1991년 독립 직후부터 폐쇄적 대외정책을 채택, 자급자족 수준의 자원개발만 해외 경제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 해상유전에서 채굴된 원유를 저장해 유럽으로 수송하는 바쿠∼그루지야 트빌리시∼터키 세이한을 연결하는 BTC 송유관의 시발점인 상가찰 원유터미널.
경제회생 위해 서방 측에 ‘손짓’ 1989년 우즈벡 공산당 서기장을 맡은 후 줄곧 집권해온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승리, 7년의 임기를 새로 시작하면서부터는 서방 측에 화해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경제회생을 위해선 서방 자본의 유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우즈벡은 당초 2001년 9.11 미국 본토 테러 이후 대(對) 테러전 협력의사를 밝히면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원활히 치를 수 있도록 자국의 공군기지를 내주는 등 서방관계 개선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우즈벡 정부가 2005년 5월 동부 안디잔시(市)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대를 ‘유혈진압’한 뒤 미국 등 서방측 비판이 쇄도하자 그 해 말 미군을 내쫓았다. 우즈벡 정부는 이어 러시아와 군사동맹조약을 맺는 등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대서방관계를 사실상 단절해왔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지난해 새 임기를 시작하면서 서방, 특히 미국에 대한 화해 제스처로 지난 1월말부터 미군이 필요할 때마다 자국내 독일 군기지를 이용해 아프간에 물자를 수송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는 지난달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도 참석, “우즈벡은 아프간 내 평화 및 안정 달성이 중앙아 전역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자국이 테러 및 마약거래 근절,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등 다른 부문에서도 나토와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이례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우즈벡 수도 타슈켄트에서 자영업에 종사하는 교민 A 씨는 익명을 요구하며 “현지 정부가 서방 등 외국 자본유치를 위해 읍소하다시피 하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에너지 값 상승으로 경제도 점차 개선 주변국들에 가스 등을 수출하는 우즈벡의 경제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세 등에 힘입어 최근 4년간 매년 평균 7%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점차 나아지고 있다. 투자유치를 위한 제도와 법률도 개선, 2006년에 전년 대비 25% 증가한 15억 달러의 외자유치에 성공했다. 또 에너지, 경공업, 기계, 정보통신 등 4대 부문을 중점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거시 경제정책 개선과 점진적인 구조개혁 등에 따러 경제상황이 호전됐다며 우즈벡 정부의 노력을 평가하기도 했다. 1992년 수교한 한국과의 교역은 2006년 공식 집계가 수출 6억4천900만 달러, 수입 4천만 달러이며 교역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공식집계로 1% 미만인 실업률이 실제론 최소 20% 이상으로 평가되는 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노동인력의 4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이 가운데 많은 이들이 면화생산에 매달려 있다. 세계 2위 면화수출국이지만 2~3차 산업이 거의 없어 많은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등지로 계속 떠나는 실정이다. 또 사회주의적 경제운용 시스템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데다 우즈벡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과실송금이 어려운 점 등 외국 기업 진출환경 개선도 속도를 못내고 있다는 게 우즈벡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의 지적이다.

자원외교 순방에 나선 한승수 국무총리가 11일 오후(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인근의 알마릭 광산에서 사나쿨로프(왼쪽) 광업,자동차 담당 부총리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한총리 오른쪽은 미르지요예프 총리.

한국 기업, 에너지 부분엔 최근에 진출 자원개발 부문에는 과거 ‘영주’격인 러시아가 2002년 처음 발을 디딘 후 중국과 말레이시아, 스위스, 한국이 뒤를 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대표적 진출 사례는 ‘수르길’ 가스전. 우즈벡 정부가 탐사를 마친 이 가스전은 2006년 3월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한국기업 4곳이 컨소시엄을 이뤄 넘겨 받았다. 현재 생산에 앞서 장비 등을 설치하는 개발단계에 와 있다. 석유공사는 중국, 러시아, 말레이시아, 우즈벡 업체와 컨소시엄을 이뤄 지난달 초부터 ‘아랄해’ 가스전 탐사도 진행하고 있다.
광물자원 부문에선 대한광업진흥공사가 동, 연, 아연 등 대형광구에 관한 공동탐사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즈벡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에너지 기업들의 진출이 다소 늦었지만 우즈벡 정부와 국영업체인 우즈벡네프티가즈와 협력관계를 잘 유지하면 사업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즈벡 정부가 옛 소련시절 고려인들이 달성한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등 한국에 우호적인 점도 한국 기업 진출에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기업 이외 부문에 대한 한국 기업의 진출은 빨랐다. 대표적 사례로, 대우는 독립국가연합(CIS) 시장을 겨냥해 1990년대 초 한국 기업으론 처음 진출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업의 상당부분을 손뗐다. 현재 ㈜대우의 후신인 대우인터내셔널은 섬유공장 2곳과 투자 및 무역법인 다수를 운영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우즈벡 지사의 전병일 CIS 총괄전무는 “당초 대우의 중앙아 진출 결정은 옳았다”며 “최근 중앙아 진출전략을 다시 강화했다”고 말했다.

신흥 맹주로 떠오른 카자흐스탄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소가 거의 모두 매장된 나라. 중앙아시아의 ‘사우디 아라비아’, ...” 각종 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은 최근 중앙아 국가 가운데 한국인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다.
최초 우주인 이소연(29) 씨가 탄 우주선이 카자흐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된 것도 한국 내 지명도 제고에 한 몫 했다. 카자흐 인구는 1천500만 명이지만 국토면적은 한국의 26배에 달한다. 2000년 이래 지속되는 국제유가 상승기를 맞아 매년 10%에 가까운 급속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400달러를 넘어 중앙아 5개 스탄국가 가운데 최고를 기록하며 맹주국 자리를 우즈벡에서서 일찌감치 빼앗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세계 확인된 원유 매장량의 3.3%(900억배럴), 가스는 1.7%(1조7천억㎥)를 각각 차지하고 있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은 매우 크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5월 17일 오후 카스피해안 도시인 투르크멘바쉬 석유화학단지를 방문, 엔진오일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급성장 주 요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98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을 맡은 이래 줄곧 집권해오고 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991년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핵무기를 포기하면서 서방측 협력 아래 미국 등 서방 원유 메이저 업체들을 대거 유치해 자국의 유전개발에 나섰다.
셰브론과 에니 등 서방의 대형 업체들이 일찌감치 유전개발에 나선 덕분에 지난해 생산된 카자흐의 원유 및 가스 콘덴세이트(초경질원유)의 양은 6천750만t에 달했다. 옛 소련 지역에서 러시아에 이어 2위 원유 생산국으로 발돋움한 카자흐는 2015년까지 연간 산유량을 현재의 두 배인 1억4천만t으로 늘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은 지난해 발생한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 여파로 그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됐지만, 성장 잠재력이 높아 기세를 곧 회복하리라는 데 이론을 다는 이는 거의 없다. 카자흐가 중앙아 국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미국발 신용경색 사태에 영향을 받게 된 것은, 자국 은행권이 해외로부터 과다차입해 자국 건설업체와 주택구입자들에게 대출해온 탓이다.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을 가진 카자흐는 2010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순회의장국을 맡고 다음해엔 동계아시안게임까지 개최하기로 돼 있다.
카자흐는 이들 ‘이벤트’를 계기로 국제무대에서 중앙아 신흥맹주국의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즈벡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에너지 기업들의 진출이 다소 늦었지만 우즈벡 정부와 국영업체인 우즈벡네프티가즈와 협력관계를 잘 유지하면 사업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적’ 리더십 극복과 민주화가 과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 통치로 비판받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힘을 실어주는 최근의 대표적 사례는, 집권 ‘누르 오탄’당이 장악하는 카자흐 의회가 작년 5월 실시한 개헌이다.
의회는 개헌을 통해 초대 대통령인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 한해 임기제한 규정을 철폐, 그의 영구집권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영구 집권할 마음은 없다. 언젠가는 젊은 세대에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이례적인 발언을 했으나 구체적인 권력이양 시점은 못박지 않았다. 서방국가들이 주축을 이루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작년 말 2010년 순회 의장국 자리를 카자흐에 맡기면서 민주개혁을 요구하기도 했다. 카자흐 현지인들은 나자르바예프의 장기집권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교사 출신인 50대 카자흐인 여성은 “카자흐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대통령이 계속 집권했으면 좋겠다”며 우회적으로 찬성입장을 나타냈다. 반면 역시 카자흐족인 택시 운전사는 익명을 요구하면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독재’정치를 펼치면서 부(富)의 양극화와 부패가 심화되는 등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부의 양극화와 관련, 실제로 카자흐에선 상위계층 1~3%가 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돌고 있다. 중앙아 국가들의 사정에 정통한 한 카자흐 지식인은 “정치적 독재가 지속되면서 집권층 및 공직사회 부패도 만연하지만 카자흐 사정은 그래도 여타 스탄국들에 비해선 훨씬 낫다”며 “정치적 독재 등의 현상은 발전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승수(오른쪽) 국무총리와 미르지예프 우즈베키스탄 총리가 12일 오후(한국시간) 타쉬켄트 비즈센터 나보이홀에서 확대회담을 갖고 있다.
한국 에너지 기업 진출 ‘붐’ 카자흐와 1992년 수교한 한국의 에너지 기업들은 자원부문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현재 한국 기업이 카자흐에서 탐사를 진행 또는 준비중인 광구는 7개의 육상 및 해상 광구. 2003년 한국 에너지 기업으로선 처음 카자흐에 진출한 한국석유공사 등으로 구성된 한국 컨소시엄은, 카스피해 해상광구인 잠빌에 대해 카자흐 국영에너지사인 카즈무나이가즈로부터 지분을 인수하는 계약을 조만간 체결한 뒤 탐사에 나설 예정이다.
잠빌광구 개발에 대한 한국측 참여 논의는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2004년 9월 카자흐 방문을 계기로 시작돼 이듬해 2월 한국 컨소시엄과 카자흐 정부 간 기본합의서가 체결됐다. 잠빌광구는 한국기업이 손대고 있는 카자흐 유일의 해상광구다. 석유공사는 또 LG상사와 컨소시엄을 구성, 악토베 지역에 있는 ‘아다’ 육상광구에서 탐사를 성공리에 진행해 현재 시험생산 단계에 있다.
석유공사는 이와 함께 GS칼텍스 등 한국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 서(西)카자흐스탄주(州)의 사우스 카르포프스키 육상광구에서도 탐사를 벌이고 있다. LG상사는 SK에너지와 손잡고 북(北) 카스피해 연안도시인 아티라우 부근 지역의 ‘8광구’ 육상유전에서도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지분 참여 중인 7개 광구들 가운데 아다 광구의 개발 진척률이 가장 높다. 한편 이명박 정부가 원유 자주개발률의 신속한 제고를 위해 본격 자원외교에 나서면서, 석유공사 등 한국 기업들은 ‘거액’을 들이더라도 현재 원유가 생산되는 ‘생산광구’ 지분을 인수하는 일에도 적극 눈길을 돌리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시절인 2004년 11월 카자흐를 방문한 바 있어, 한국 기업의 카자흐 진출에 남다른 관심을 두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곽정일 한국석유공사 카자흐스탄 사무소장은 “현재 진행중인 잠빌광구 등의 개발도 진행하면서 생산광구 지분확보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는 생산광구 지분확보를 측면지원하기 위해 카자흐 정부에 이미 협력을 요청해 놓았다”고 밝혔다

각종 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은 최근 최초 우주인 이소연(29)씨가 탄 우주선이 카자흐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되면서 한국 내 지명도 제고에 한몫 했다.
천연가스 최대생산국 투르크메니스탄
중앙아시아 천연가스 최대 생산국인 투르크메니스탄은 한국인들에게 아직도 생소한 나라다.
1991년 옛 소련 붕괴와 함께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투르크멘의 실태는 투르크멘을 21년간 철권통치 해온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고립정책으로 인해 그간 베일에 가려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야조프가 2006년 말 사망한 뒤 들어선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자원개발을 위한 외자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투르크멘의 인구는 500만 명에 불고하나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2.4배인 48만8천100㎢에 달한다. 자원의 보고로 알려진 카스피해의 연안국 중 하나로, 확인된 가스 및 원유 매장량은 각각 2조8천억㎥, 5억 배럴이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천200달러에 이른다. 국토의 80% 이상을 관개해 농경지로 바꾸고 그 곳에 면화를 재배해 한때 세계 10위 면화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근년 들어 흉작 등으로 수출량이 절반으로 급감하자 농업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음을 절감, 경제개혁에 나서고 있다.

고립에서 개방으로 전환중 독립 이전인 1985년 투르크멘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니야조프는 1991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집권 22년째인 2006년 12월 갑자기 사망할 때까지 ‘고립정책’을 펼쳐왔다. 자원개발을 위해 외국자본에 거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과는 판이한 정책을 구사한 것이다.
니야조프는 집권 시절인 1995년 12월 유엔에서 투르크멘의 영구중립 결의안도 채택되도록 했다. 집권시절 야당세력을 철저히 거세한 니야조프는 국민에게 개인 우상화도 강요하기도 했다. 아직도 전국 방방곡곡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니야조프의 사망 이후 권좌에 오른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작년 2월 취임한 이래 전임자의 고립.폐쇄정책을 일부 수정하면서 ‘제한적이나마’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1당 독재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사회주의식 계획경제 체제도 여전히 가동중이다.
투르크멘 사정에 정통한 카자흐의 한 전문가는 “니야조프 대통령 시절 형성된, 외국자본에 ‘비우호적’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이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며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개혁이 시도되고 있지만 외국기업이 기업하기 편리한 환경이 조성되기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회교 순방길에 나선 한승수 국무총리. 정부와 기업이 역량을 쏟아 넣으면 중앙아는 한국에 자원개발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신임 대통령, 자원개발.수출경로 확보에 적극적 치과의사 출신으로 보건장관과 부총리 등을 거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자원개발을 위해서라면 러시아 자본이든 서방기업이든 무관하다는 ‘실용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미국을 방문,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만나 자국 자원개발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미국은 그가 취임 이후 방문한 첫 서방국가였으며, 투르크멘 지도자로서는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유엔총회에서 연설했다는 점에서 미국 등 서방은 그의 개방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자원수출경로 다양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 대통령을 처음으로 자국으로 불러들여 자국에서 출발해 카자흐를 거쳐 러시아로 이어지는 카스피해 연안 가스관 추가 개설에 합의, 서방측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이와 함께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 건설을 추진해오고 있는 카스피해 횡단가스관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카스피해 횡단가스관 건설을 위해 카스피해상 유전 소유권을 놓고 니야조프 시절 갈등을 빚었던 카스피해 서안의 아제르와도 관계개선에 적극적이다. 결국 아제르와 투르크멘 관계가 ‘완전히’ 개선되면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이 투르크멘에서 아제르간 최단 거리에 깔리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U와 미국은 투르크멘과 아제르간 관계 개선을 적극 주선해주고 있다.

치과의사 출신으로 보건장관과 부총리 등을 거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자원개발을 위해서라면 러시아 자본이든 서방기업이든 무관하다는 ‘실용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 기업 진출은 ‘걸음마’ 한국 에너지 기업의 진출은 본격화하지 않은 상태다. LG상사와 삼성엔지니어링이 최근 투르크멘 정부로부터 소련시절 설립된 노후한 ‘세이디’ 정유공장의 재건사업 입찰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각각 받고 참여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회사 중 한 곳이 다른 외국업체들을 제치고 낙찰받으면, 자원확보는 아니지만 자원관련 사업을 투르크멘에서 처음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바이무트라 호즈하무하메도프 장관은 최근 런던에서 열린 투자자 모임에 참석, “현재는 처리능력이 매우 작은 세이디 공장을 완전히 업그레이드해 연간 300만t의 원유 및 가스 콘덴세이트(초경질 원유)와 30억㎥의 가스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르크멘 동부에 자리한 세이디 공장은 1980년대 설립돼 수년간 가동한 뒤 현재는 멈춘 상태다.
주 투르크멘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대우, 코오롱 등 일부 한국 대기업들이 진출 검토차 투르크멘을 다녀갔다”면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진출을 검토하는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르크멘에는 현재 미국과 터키, 이란의 에너지 기업들이 진출한 상태다.
특히 투르크멘은 민족의 ‘뿌리’가 같은 것으로 알려진 터키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투르크멘과 1992년 수교한 한국은 지난해에야 투르크멘에 상주대사관을 개설했다. 교역량(2006년 기준)도 776만 달러로 미미한 수준이다.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로 불린다.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가명은 페르시아어인 ‘아자르’(Adhar:불)와 아랍어 ‘바이잔’(Beyqan: 나라)에서 유래한다. 고대부터 가스가 많아 지표면에서 가스불이 솟구쳐 올랐고, 조로아스터교(배화교)가 성행하기도 했다. 아제르는 몽골과 이슬람 지배를 거쳤으며, 현재는 종교적으로 이슬람 국가다. 카스피해 연안국중 하나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남(南) 카프카스(영어명 코카서스)에 위치한 아제르는 인구 860여만 명에 국토면적 8만6천600㎢로 한국보다는 좀 작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천 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확인된 원유 및 가스 매장량이 각각 70억 배럴, 8천495억㎥에 달한다.

아제르바이잔 바쿠 해안에 있는 폐유전. 아제르바이잔에서 육상 유전은 거의 개발이 끝났고 이제는 카스피해 대륙봉에 있는 해상에서 유전을 개발해 상가찰 원유터미널 저장한 뒤 바쿠∼그루지야 트빌리시∼터키 세이한 송유관을 통해 유럽으로 보내진다.
국토 20% 아르메니아에 점령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야, 이란, 러시아, 터키와 인접해있는 아제르는, 현재 국토의 20%에 해당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이 아르메니아군에 점령돼 있다. 카라바흐 지역 주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아르메니아계가 1988년부터 6년간 아제르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아르메니아가 이들 주민 편을 들며 개입해 카라바흐 지역을 점령한 것.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는 1994년 러시아 등의 중재로 휴전협정을 맺었지만 카라바흐 지역에 주둔중인 아르메니아군과 아제르군간 무력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방국가들이 주축을 이루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협정 체결 이후 줄곧 ‘카라바흐 분쟁’ 해결을 중재해오고 있지만, 아제르는 카라바흐 지역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아르메니아도 유사한 입장을 취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 아제르는 축적되는 오일달러를 군비증강에도 대거 투입하고 있어, OSCE측은 아제르와 아르메니아간 전면충돌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아제르 측은 “10여년째 OSCE가 중재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만큼 군사적 해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최근 부쩍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문제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G)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깨지기 쉬운 휴전협정은 아제르측이 오일달러로 군비증강에 나서면서 더욱 위협받고 있다”며 “전쟁위험이 커지는 만큼 국제사회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전쟁이 재발할 가장 위험한 시기는 아제르의 원유수출이 줄면서 경제적 문제가 야기되는 2012년 쯤이 될 것”이라며 “카라바흐 지역 부근의 원유 및 가스 수송관이 새 전쟁의 첫 ‘사상자’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앙아 에너지를 유럽으로 가져오는 통로의 하나인 남카프카스의 이런 상황은 유럽연합(EU)과 미국에 고민거리로 대두된 상황이다.

서방자본에 개방적..급속한 경제성장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카라바흐 지역문제를 놓고 벌어진 국내 정치세력간 다툼 후 1993년 3대 대통령에 오른 게이다르 알리예프는, 정치안정을 도모하면서 서방 원유 메이저 업체들과 원유.가스 개발계약을 체결해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옛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 출신인 게이다르 대통령이 집권 10년만인 2003년 사망한 후 치러진 대선을 통해 당선된 그의 아들 일함 알리예프 현 대통령은, 부친의 국가발전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아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다. 물론 국제유가 상승도 일조했다. 일함 알리예프는 오는 10월 대선에서도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아제르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2006년 6월 카스피해 원유를 지중해로 실어나르는 ‘바쿠(아제르)-트빌리시(그루지야)-세이한(터키)’ 송유관(BTC)도 개통,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BTC 송유관에 카자흐스탄 원유도 받아들이는 합의도 이끌어내 후속작업을 진행중이다. 카자흐 원유가 BTC 송유관을 타고 유럽으로 흘러가게 되면 아제르는 짭짤한 ‘통행료’ 수입도 챙길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투르크메니스탄 가스를 자국을 거쳐 유럽으로 보내기 위한 카스피해 횡단가스관 건설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제르와 투르크멘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건설을 위해, 과거 카스피해 유전 영유권을 둘러싸고 빚어진 외교적 갈등을 급속히 해소해가고 있다. 아제르는 언론탄압 등에 대한 서방측 비판도 받고 있지만, 국내정세는 대체로 안정적이면서 일정 부분 민주화도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자흐스탄 북서부 아티라우시에서 동남쪽으로 300km 떨어진 ‘8광구’ 탐사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EPC 무나이’ 직원들. 이들은 24시간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 기업 진출 본격화 한국 에너지 기업들의 진출은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2006년 5월 아제르를 공식 방문한데 이어 알리예프 대통령이 작년 4월 한국을 답방한 이후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아제르에는 한국석유공사와 GS칼텍스 등으로 구성된 한국 컨소시엄이 카스피해 유전 이남광구에 대한 탐사계약을 작년 10월에 체결, 탐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광업진흥공사도 아제르 정부와 카프카스 지역 광산(구리.동 매장 추정)에 대한 탐사계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2006년 개설된 아제르 주재 한국대사관의 조택연 산자관은 “아제르에 대한 한국 기업 진출은 초기단계”라면서 “아제르에선 육상 유전광구들은 생산이 거의 끝나 한국측은 추후 카스피해 해상광구 탐사권을 따낼 수 있도록 아제르측과 접촉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와 비효율 등 독재의 그늘 짙어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10만 달러를 큰 돈으로 느끼지 않나 봅니다. 웬만한 인허가를 받으려면 별 생각 없이 10만 달러를 내라고 요구해 정말 죽을 맛입니다.” 카자흐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의 간부 A 씨는 “관리는 물론이고 민간인들도 정상적인 일처리 대가로 뒷돈이나 급행료를 요구하는 게 일상화 돼 있다”면서 갈수록 뒷돈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개발 성공에 따른 이익이 큰 유전이나 건설 부문의 경우 그만큼 건네지는 검은 돈 규모도 다른 업종에 비해 커 업체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사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전역에서 뇌물과 급행료는 오랜 관행이며, 중앙아 국가들의 자원과 시장을 노리고 물밀듯이 현지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들로선 반드시 ‘적응’해야 하는 일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 부담이 늘어나 고심 중이다. 중앙아 국가들 가운데 외국기업에 가장 개방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카자흐가 뇌물과 뒷돈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도 있으나,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패 관행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 폐쇄적인 우즈벡과 투르크멘 등지에서 사업하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검은돈의 규모는 카자흐보다 훨씬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앙아 국가들의 사정에 정통한 카자흐인 B 씨는 “뒷돈거래 등 부패정도를 주먹구구식이나마 따져보면 우즈벡과 투르크멘 등지의 부패 정도가 카자흐의 2~3배로 보면 맞다”며 “투르크멘에서는 대통령 최측근을 만나 엄청난 뒷돈을 줘야 사업진행이 겨우 가능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앙아 국가들은 옛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공산당 간부 등 기득권층이 그대로 부와 권력을 거머쥐게 됐고 경제발전이 진행되면서 이들 기득권층의 부는 더욱 커지면서 나머지 90% 이상 국민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는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이런 과정에서 불법적으로나마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공무원들”이라고 말했다. 행정업무를 가능한 많은 단위와 단계로 세분해 여러 공무원들이 처리토록 하는 것은 이들 공무원이 알아서 ‘뒷돈’을 챙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교민 C 씨는 “한국에서라면 동사무소에 들러 10분이면 마칠 수 있는 일을 카자흐에선 행정업무 세분화로 최소 반나절 내지 하루 걸리거나, 혹은 담당 공무원이 자리를 비우면 다음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 간부인 카자흐인 D 씨는 “경찰 등 공무원들이 뒷돈을 받는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해당 공무원이 뒷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 시정시키기가 어렵다”면서 “지방정부 공무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게 상책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행정개혁과 부패청산이 지연되는 이유 가장 큰 이유는 장기집권과 독재 등 정치 구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중앙아 국가들에도 부패 처벌 법규가 있고, 드물게 부패 공무원 처벌도 이뤄지고 있다.
자크시벡 쿨레케예프 카자흐 철도청장은 업무와 관련해 뇌물 1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지난달 초 사법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최근 카자흐 옛 수도 알마티에서 열린 한국의 증권사 알마티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알마티 국제금융센터장(장관급) 아자마트 아리스타노프는 “카자흐 당국은 앞으로 외국 기업이 최소의 위험으로 사업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과거 보다는 부패와 비효율이 개선됐으며, 이런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외자를 유치하는 일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중앙아 국가들의 노력이 시작됐으나 아직 이곳에서의 사업은 고수익 가능성 못지 않게 고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카자흐스탄 북서부 도시 아티라우와 ‘쿨사리’란 소도시 사이에 위치한 ‘도소르’ 마을 안내판. 8광구는 쿨사리에서 100㎞ 떨어져 있다. 안내판에 있는 ‘1911’이란 숫자는 이 도시에서 1911년부터 원유생산이 시작됐다는 의미로, 도소르는 유전개발로 형성된 소도시다.
한국기업들 8광구서 희망을 뚫다
카자흐스탄 옛 수도 알마티에서 카스피해 연안도시 아티라우까지 2시간 남짓 비행기로 날아가 다시 자동차로 5시간 동안 광활한 스텝지대를 덜컹거리며 내달렸다. 작은 도시 두 곳을 지난 이후 몇 시간 동안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낙타와 소들만 가끔 보일 뿐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마침내 저 멀리 ‘인간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자흐 육상유전 8광구 탐사현장이었다. 아티라우에서 동남쪽으로 300㎞ 떨어진 8광구는 약 3천700㎢ 규모의 대형 육상광구로 SK에너지와 LG상사가 절반씩 지분을 투자해 만든 현지법인 ‘EPC 무나이’(이하 무나이)의 소유다. 무나이는 2006년 7월 카자흐 정부로부터 광권을 매입한 후 탄성파 탐사(인공지진파로 지하구조를 파악하는 일) 등을 거쳐 올해 2월23일부터 4월4일까지 제1 시추정(깊이 1천927ｍ) 굴착을 완료했다. 지난 4월22일부터는 제1시추정과는 30㎞ 떨어진 지점에서 제2 시추정 굴착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오가 지나 도착한 제2 시추정 작업현장에는 20ｍ 남짓한 높이의 시추기에서 카자흐인, 중국인, 태국인 등 다국적 노동자들이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땀 흘리며 작업하고 있었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현장 주위에는 희고 미세한 먼지들이 발목까지 깔렸고 이동할 때마다 먼지가 바람에 풀풀 날렸다. 안전모와 장화를 착용한 채 시추기에서 작업하던 직원들은 지하 256ｍ지점에서 비트(Bit. 곰 발바닥처럼 생긴 드릴의 날)에 진흙이 엉겨붙는 바람에 시추를 중단하고 비트를 지상으로 끄집어냈다.
이어 비트와 시추기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비트를 물로 세척한 뒤 작업을 재개했다. 탐사현장 경험이 10년이라는 카자흐인 현장소장 알리벡 자니베코프(31) 씨는 “비트가 진흙이 엉겨 붙어 공처럼 되면서 굴착이 안 되는 이른바 ‘볼링(Balling)’ 현상이 가끔 생긴다”며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SK에너지와 LG상사가 절반씩 지분투자한 카자흐 현지회사인 ‘EPC 무나이’가 카자흐 북서부 아티라우시(市)에서 동남쪽으로 300㎞ 떨어진 육상광구 '8광구'에서 탐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탐사현장에 우뚝 서 있는 시추기의 모습.

24시간 교대로 진행되는 제2 시추정이 5월말로 끝나면 이곳에서 약 50㎞ 떨어진 곳에서 9월말까지 제3 시추정을 뚫는다. 제 3시추정 작업은 지하로 무려 4천 미터를 뚫고 들어가야 하는 난공사다.
SK에너지 소속인 한영주(45) 무나이 탐사부장은 “제2 시추정 작업이 진행중이지만 머릿속에는 벌써 난이도가 높은 제3 시추정 작업으로 복잡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현장 사람들은 시추작업들이 원만히 진행돼 원유가 나오고 올해 말이면 시험생산까지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 묵묵하게 일을 진행해 나간다. 확인된 원유 매장량만 900억 배럴로 중앙아 최대 원유 매장국 카자흐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현재 ‘8광구’를 비롯해 7~8개 광구에서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광구 중 해상광구는 카스피해의 ‘잠빌’이 유일하다. 잠빌광구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공을 들여온 광구로 이르면 연내에 탐사가 진행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해상광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전작업이 수월하다는 육상광구도 탐사-개발(장비 설치)-생산 단계에 이르기까지 만만찮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한국기업들은 이제 탐사를 하는 단계에 있다.
유전개발 경험이 일천해 관련 인력이 별로 없는 한국으로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풀 코스’로 유전을 개발하면 그만큼 노하우를 많이 축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에너지 자원 자주(自主)개발율의 신속한 제고라는 목표를 세운 이명박 정부 때부터는 생산광구 지분을 확보하는 일도 병행 추진되고 있다.
한편 다국적 거대기업이나 러시아 국영업체 등에 비해서는 뒤늦게 카자흐에 진출한 한국 에너지 기업들의 광구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이러저런 애로점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8광구의 경우는 이른바 ‘오지’에 위치하다보니 필요한 장비를 제때 공급하는 일이 가장 큰 문제다. 24시간 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장비가 제때 공급되지 못해 작업이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하루 수만 달러의 비용이 날아간다. 직원들이 다양한 민족 출신이어서 언어소통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일부 직원들은 공용어격인 영어가 안돼 통역이 필요한데, 민감한 작업이 진행되는 도중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하면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지질관련 자료 분석 ‘베테랑’인 한 부장은 “각종 스트레스도 원유가 발견되면 ‘한방’에 날아간다”며 “현 단계에선 이곳 8광구에서 원유가 발견될 가능성을 말하기는 이르지만 ‘희망의 끈’을 꼭 붙잡고 매진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신혼임에도 아내와 떨어져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카자흐인 엔지니어 사기 누로프(22) 씨는 원유발견 가능성을 묻자 “느낌이 좋다”고만 밝히며 말을 아꼈다.

예르잔 빌야로프
카자흐스탄 석유협회 전무

“한국의 ‘자원외교’, 한국 에너지 기업의 카자흐스탄 진출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닙니다.” 카자흐스탄 석유협회의 예르잔 빌야로프(58) 전무는 알마티 시내에 위치한 협회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카자흐 유전 개발은 이제 막 시작한 상태”라며 이렇게 밝혔다.
빌야로프 전무는 “물론 지금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의 사업비용은 예전보다 더 많이 들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자본을 가진 한국 기업과 그렇지 못한 카자흐 기업이 합작사를 만들면 얼마든지 진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알마티에서 태어나 러시아와 미국, 독일에서 두루 공부한 빌야로프 전무는 카자흐 경제부 차관을 거쳐 한국계 미국인 방찬영 박사가 총장으로 있는 알마티 소재 키멥대에서 경영학 교수로 10여년 재직한 뒤 작년 8월 석유협회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은 일문일답.

--협회의 출범 배경과 활동은.
   1990년대초 카자흐에 진출한 서방 원유.가스업체들이 옛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카자흐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사업상 갖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비공식적 월례모임을 갖고 문제해결을 공동으로 모색했다. 이 모임이 1998년 협회 창립으로 이어졌고 올해로 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협회는 회원사들의 탐사 및 생산 활동을 지원하고 회원사, 카자흐 정부와 현안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의 새 정부가 중앙아시아 자원외교에 본격적으로 나선 데 대한 평가는.
   먼저, 한국의 자원외교 가동에 환영과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카자흐의 카스피해 지역 자원개발은 막 시작한 단계로 이 지역에 대한 투자전망은 밝다. 이런 면에서 한국 기업들의 카자흐 진출은 이제라도 결코 늦지 않다. 물론 한국 기업들이 이제 진출하면 비용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일례로 자본력을 갖춘 한 영국 기업이 근년 들어 카자흐에 진출, 유전개발 라이선스는 있지만 자본이 없어 고심하던 카자흐 현지 업체와 손잡고 합작사를 세워 현재 잘 활동하고 있다. 유전개발 업체가 라이선스를 갖고 있어도 계획대로 일을 진척시키지 못하면 정부로부터 라이선스를 박탈당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카자흐 진출 에너지 업체들의 ‘전형적’ 사업패턴이 됐다.

--현재 카자흐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평가는.
   한국 기업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 다른 회원사들에 도움을 줄 부분이 있으면 도움도 주는 등 모범적 회원사들이다.

--카자흐에서도 중앙아 여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부패문제가 외국 기업의 활동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데.
   카자흐의 모든 부문에 부패현상이 있다. 부패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시스템상 문제에서 주로 기인한다고 본다. 예컨대 카자흐의 대학 교수는 월 500~700달러를 받고 ‘잘 나가는’ 외국계 대학 교수는 10배 가까운 월 5천 달러를 받는다. 카자흐 대학 교수들은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또 다른 예로, 알마티시(市) 구청장들의 봉급은 월 500달러 수준이다. 물가수준이 살인적인 알마티에서 현지인이 생활하려면 최소 월 1천 달러는 드는데, 상황이 이러니 인.허가건 등과 관련해 ‘유혹’에 빠지기 쉽다. 카자흐 정부도 느리지만 부패현상을 극복하려 힘쓰고 있다.

--중앙아에선 벌어지는 열강의 자원 각축전은 어떻게 보는가.
   어떤 나라든지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자원을 확보하려 어디에서든 열심히 뛸 수 밖에 없다.
중앙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원유와 가스는 언젠가 고갈된다는 점에서 제한적 자원이다. 따라서 각국은 대체 에너지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카자흐가 여러 갈래의 송유관을 구축하려 하고 있는데
   카자흐는 러시아와 중국, 유럽으로 송유관을 연결했거나 하려한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어떤 나라와도 척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옳다. 경제적으로도 특정 송유관에만 매달려 있다가 수출판로가 막히게 되는 위험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전략이라고 본다.

--카자흐에서도 ‘자원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다는 서방측 비판이 일고 있는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 대통령에게 할 질문인 것같다.(웃음) 개인적 견해를 말하겠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누차 밝혔듯이 자원 민족주의란 말은 타당하지 않다. 카자흐는 원유회사를 국영화한 베네수엘라와는 다르다. 1990년대 초 자원개발을 위해 카자흐에 들어온 서방 원유 메이저들은 카자흐 정부와 계약을 맺으면서 ‘지시하는’(dictate) 입장이었으나, 이젠 사정이 달라져 카자흐 정부가 그 위치에 서는 등 변화가 생겼을 뿐이다. 새로 시작하는 자원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카자흐 국영 에너지사인 카즈무나이가즈가 주도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카자흐 정부는 최근 원유 수출관세를 원유업체에 부과키로 결정했는데, 부과규모는 t당 100달러 남짓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원유 수출관세는 이미 t당 4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카자흐의 관세 부과액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다. 이런 점을 알아야 한다. 외국 에너지 기업을 위한 카자흐 투자환경이 이전에 비해 나빠졌다고 할 수 있으나, 종합적으로 볼 때 카자흐는 여전히 외국 기업들이 진출해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매력적인 국가다.

유창엽 알마티 특파원 | yct9423@yna.co.kr
  기사제보 | 구독신청 | 광고문의 | 회사소개

(110-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85-1
TEL 02-398-3760~9, FAX 02-398~3767 웹지기 mida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