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대란
계약해지 통보 언제?
|
언제 날아올지 모를 계약해지 통보에 불안한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2년 뒤 재현될 해고 악몽에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
7월
에 비정규직 보호 관련법 시행 2년을 맞으면서 한 직장에서 2년간 일했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비정규직들의 불안감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금융권이나 일부 대기업 등에서 2년간 고용했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나오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비정규직들이 언제 날아올지 모를 계약해지 통보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더라도 또 다시 2년 뒤면 재현될
해고 악몽에 시달려야 하는 탓에 법 시행 2년을 맞는 비정규직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2년 돼가니 그만 쉬라네요”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A(48.여) 씨는 최근 학교로부터 2학기부터는 더 이상 강의를 맡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는 경영여건이 어렵다는 점을 계약해지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시간강사로 일한 지 2년을 앞둔 A씨에게 학교의 해고 사유는 너무도 뻔했다.
자신을 계약직으로 다음 학기까지 고용할 경우 정규 교원으로 채용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A씨는 “경영상의 이유라고 하는데 다 핑계다.
법 시행 2년을 앞두고 나 같은 사람들을 다 정리해 버리려는 것 아니겠냐”고 따져 물었다.
A씨가 일하는 학과엔 비슷한 처지의 강사들이 4명이나 더 있다.
 |
|
경영계는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의 고용 경직성에서 비롯된 만큼, 고용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게 비정규직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이라 주장한다. 사진은 한 자리에 모인 전경련 회장단 사진.박지호 기자
|
|
이 중 일부는 A씨처럼 다음 학기 강의배정이 안 됐고 어떤 강사에겐 한 학기만 쉬면 강의를 주겠다며 일시적 계약해지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A씨는 전했다.
그는 “비정규직법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 요리조리 고용을 회피하게 만들어주는 법은 아니지 않나”라며
“4년 연장법안도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비정규직법의 맹점이 너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종합병원에서 의무기록사로 일하는 B(25.여) 씨도 6월로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동안 병원과 2~4개월씩 고용계약을 연장해
왔지만 최근 병원으로부터 더 이상 고용계약을 맺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받은 것이다.
그는 6월까지 일하면 2년을 채운 계약직이 돼 정규직 전환을 내심 기대할 수 있었지만 대답은 정반대였다.
B씨와 함께 근무했던 안모(23.여) 씨는 “2년을 근무하면 계약직이라도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춘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
계약직들은 늘 계약연장이 될 수 있을까라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고 푸념했다.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C(40) 씨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2007년 2월부터 계약직 조리사로 일해 왔으니 정규직 전환을 기대해
봄직 하지만 회사에선 기다리란 말로 대답을 피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이번에 정규직 전환이 안 되면 다른 업체와 다시 고용계약을 해야 한다.
이왕이면 일하던 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며 “4년 연장법안은 차라리 통과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량해고 사태 오나
 |
|
정부는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비정규직 법안 관련 자료를 살펴보는 한나라당 의원들 사진.황광모 기자
|
|
사용자 입장에 있는 기업들도 고용기간 2년이 되는 정규직 대상자들의 고용연장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계약해지로 한꺼번에 정리하자니 사업장이 흔들리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니 비용이 증가하는 탓에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법 개정안 통과를 내심 기대해온 터라 계약 만료대상자들의 고용연장 결정을 여태껏 보류해 왔다.
하지만 일부에선 법 통과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이들을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분위기다.
7월 전에 모종의 결론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움직임이 기업체 사이에 급속히 확산될 경우 대량해고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잿빛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한 인력업체는 직원들을 파견한 회사들로부터 근로계약이 만료된 사람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4월까지만 해도 파견직원들의 고용연장이 점쳐졌지만 비정규직법 개정안 통과가 불투명해지면서 사용 사업주가 계약해지로
마음을 돌린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 직원을 썼던 회사들이 근로계약이 만료된 사람들을 내보내고 신규 채용키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이렇게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 일각에선 법 개정안 통과 여부를 떠나 계약직 사용기간 연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사업장 전반에
정규직 전환을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때에 맞춰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했던 사업장의 발목마저 잡았다는 얘기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자체 조사결과 법 개정안이 나온 이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계약기간을 연장하도록 법을 바꾼다고 하니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늦춘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어 “법 제정 당시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누누이 얘기했지만 정부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대량해고를 우려하며
사용기간 연장에 동조할 게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배경을 보라”고 강조했다.
타협 없는 법 개정 논란
 |
|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자문위원회의에서 노동부, 교수진, 양대 노총 관계자 등이 비정규직 고용안정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김병만 기자
|
|
비정규직 근로자 수십만 명은 당장 7월부터 해고냐, 정규직 전환이냐는 운명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비정규직으로 2년을 근속하면 정규직으로 바꿔주도록 의무화한 비정규직 관련법이 시행된 지 7월로 2년이 되면서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이 급속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근로자 입장에선 정규직 전환의 꿈을 꿀 수도 있지만 정반대로 사용자가 이를 거부하며 해고하면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말 그대로 운명이 엇갈리는 것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런 운명의 기로에 놓인 근로자는 무려 70만 명에 달한다.
일부에선 실업대란마저 우려하는 상황이지만 비정규직 관련법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개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는 아직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해당사자들이 한 치의 타협점도 찾지 못한 채 각자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기간 2년으론 자연스럽게 정규직 전환으로 이끄는 힘이 달리겠지만 고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기업 입장에서도 4년간
업무를 익힌 근로자가 아까워서라도 정규직으로 돌리지 않겠느냐는 것이 법 개정을 추진하는 정부의 인식이다.
노동부의 허원용 고용평등정책관은 “2년 고용 후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한 현행 법안이 그대로 유지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기보다 그냥 해고시키는 사업장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가 나빠지면 일부 직원을 해고시켜 수익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게 기업의 속성인데 해고가 까다로운 정규직을 더 늘리려는
사업주가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
|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경기 농협성남농산물종합유통센터를 방문, 비정규직 근로자와 7월부터 시행되는 비정규직법
기간제한 적용에 따른 고용불안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노동부
|
|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이에 대해 “비정규직법의 취지를 말살하기 위해 실업대란 운운하며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행 노동 관련법으로도 구조조정 등을 위해 정규직 해고가 충분히 가능해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꺼릴 이유가
없는데도 정부가 대량해고 가능성을 흘리며 관련법을 개악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민주노총의 김태현 정책실장은 “비정규직법 시행 후 상당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등 법의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임신이나 육아휴직 등 특정한 사유로 일시적인 업무공백이 발생한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마련해 민주노동당을 통해 입법을 추진중이다.
야당인 민주당도 노동계에 동조해 정부안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저지해야 할 악법으로 규정하고
정규직 전환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노동계와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여당인 한나라당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4월에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선 현행 법의 시행을 4년간 유예하자는 일종의 타협안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사용자 측인 재계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 고용기한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비정규직 고용기한을 4년으로 연장하거나 현행 법 적용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사용기한 규정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노동계, 야당, 재계의 목소리가 모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는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여야 대립이
격화되면서 6월 내 비정규직법 문제가 타협을 통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
|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사 앞에서 비정규직 노조와 지역 시민단체들이 쌍용차의 비정규직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심언철 기자
|
|
솔로몬의 해법은 없나
한국 사회의 오랜 논란거리인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현재 정치권 등에선 비정규직 관련법의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량해고 가능성을 앞두고 불거진 것일 뿐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안정을 통한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이란 노동계의 주장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증대를 통한 경쟁력
확보’란 재계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양쪽을 두루 만족시킬 해결책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의 산업구조상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한 사회갈등 요인으로 대두될 게 뻔하다.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종사자 비율이 높은 유통업 등 서비스 업종이 팽창하는 추세여서 전체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대로 두면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 전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비정규직 해법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재계와 노동계의 판이한 시각만큼이나 다르다.
우선 노동계와 친노동계 연구단체는 비정규직을 줄이려면 비정규직을 써야 하는 업종이나 업무범위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는 비정규직을 양산한 이유가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는 업종이나 업무의 범위가 너무 넓어 정규직을
써야 할 곳에도 비정규직을 쓰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비정규직의 고용기간 제한과 사용사유 제한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계속 사람을 써야 하는 곳엔 비정규직을 쓰는 것을 제한하고 정규직을 채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돈문 교수도 “우리 산업은 비정규직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쪽으로 가지 않으면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일부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이 방안이 시행되고 있으며, 실제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
|
KBS 기간제 사원협의회는 최근 여의도 본사 앞에서 KBS 경영진이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추진하고 있다며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한상균 기자
|
|
반면 경영계의 시각은 정반대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고용 경직성에서 비롯된 만큼, 고용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게 비정규직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이란
게 경영계의 논리다.
정규직을 해고하기 힘들다 보니 경영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따라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비정규직 채용을
늘렸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유경준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원인은 정규직의 과보호에 있다”면서
“정규직의 해고를 지금보다 쉽게 할 수 있다면 비정규직 채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 말했다.
양쪽의 시각차가 워낙 크다 보니 결국 양쪽의 주장을 모두 반영하는 방향으로 해법이 수렴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즉, 지금보다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동시에 정규직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처방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철폐하면 노동자의 애사심은 물론, 숙련도도 높아져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에 이익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 2007년 8월 비정규직이던 캐셔 5천여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던 신세계의 경우, 2년 가까이 지난 현재 정규직 전환에
따른 임금상승의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사원들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업무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면서
“비용부담이 늘긴 했지만 생산성 등에서 훨씬 긍정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자금여력이 있고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대기업에서나 시도할 수 있을 뿐 중소기업은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상승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현실적으로 시행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양정우 특별취재팀 기자 | eddie@yna.co.kr
임수정 특별취재팀 기자 | sj9974@yna.co.kr
안승섭 특별취재팀 기자 | ssahn@yna.co.kr
이정진 특별취재팀 기자 | transil@yna.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