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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가입 3주년, 중국 속사정
13억 중국경제 서방 틀에 맞춰질까?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 가입한 지 지난 12월 11일로 3주년을 맞았다.
개혁ㆍ개방을 표방하며 1978년부터 추진한 정부 주도의 사회주의식 시장경제가 비로소 다각무역체제의 결합체인 WTO로부터 존재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WTO 가입 3주년을 맞는 중국경제의 실상과 중국시장 개방의 영향을 살펴본다.

‘세계공장’의 어제와 오늘
“역사적인 순간에 도달했다. 세계 경제무역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기여를 하겠다.”
2001년 12월 10일(중국시간) WTO 중국가입이 결정되는 순간 스광성(石廣生) 중국 대외무역경제합 작부장은 수락연설을 통해 이런 각오를 밝혔다. 가입신청을 낸 후 15년에 걸친 험난한 협상을 마치고 만장일치로 WTO 회원국이 된 순간 그는 기쁨과 함께 책임을 통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 중국은 ‘세계공장’으로 우뚝 섰다. ‘원자재 먹는 하마’가 발걸음을 빨 리 하려고 하면 세계의 원자재 시장이 요동치고, 금리나 환율 등 굵직굵직한 중국의 정책 향방에 세 계경제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의 WTO 가입 당시 142개 회원국들은 9.11 테러 이후 침체에 빠진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 으로 잔뜩 기대했다. 13억 인구를 가진 거대한 시장, 중국의 잠재력은 그만큼 매력이 있었다.
중국의 WTO 가입 이후 공식적으로 3개의 대리점을 낸 현대자동차 소나타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고 있는 여성 근로자
그리고 중국은 예상대로 욱일승천했다. 2001년 7.3%였던 경제성장률이 이듬해에는 8.0%로 상승하더니 2003년에는 9.1%라는 초고속 성장세를 실현했다. 너무나 큰 폭으로 성장하는 바람에 중국 당국이 2 004년 초 긴축정책이라는 긴급처방을 내릴 정도가 됐다. 교역규모도 2004년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 세계 3위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2004년 들어 10월까지 교역액은 9천200억 달러, 12월 말까지 1조1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004년 8천512억 달러였던 중국 교역액은 30%대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무역수지 흑자도 100억 달 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세계경제가 위축된 가운데 ‘나 홀로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시장과의 교역은 각국에 그야말로 사활이 걸린 경쟁이 되고 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바뀐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 세계 500대 다국적 기업들 가운데 450개가 중국 현지 생산체계를 구축했으며, 2003년 외국인 직접 투자(FDI)는 무려 535억 달러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쯤 되면 외형적으로 나타난 중국경제는 세계 다각무역 체제를 상징하는 WTO의 한 축으로서 전혀 부끄럽지 않은 지표를 자랑한다.
하지만 속사정은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 WTO 가입 당시 약속했던 ‘의무’의 이행정도를 면밀히 분석해 봐야 한다. 중국은 ‘시어머니’ 미국으로 인해 가입의 대가로 매우 적극적인 시장개방 일정표에 동 의했다. 미국과의 합의내용은 주로 관세의 대폭인하와 통신ㆍ서비스 시장개방, 외국인 투자대폭 확대 를 초점으로 하고 있다.
가입 이후 5년 내에 평균관세율을 17%로 인하하고 모든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며 농산물에 대한 수출 보조금을 없애기로 했다. 또 2005년까지 반도체와 컴퓨터, 통신설비의 관세를 폐지하고 자동차 수입 관세도 2006년까지 25%로 하기로 했으며 2004년 말까지 공산물 무역 및 유통에 대한 제한도 철폐하기 로 했다.
섬유에 있어서도 2005년까지 중국에 대한 섬유쿼터를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금융 분야에서도 외국계 은행에 대한 지역ㆍ고객 제한규정을 철폐하고 인민폐 영업을 허용하며, 법률 및 회계 등 전문직 시장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기로 했다.
당시 중국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주어진 시간표에 충실하게 이행하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실질적인 내용이다. 예를 들어 통신시장만 해도 중국시장에 진출한 외국기업 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국정부가 WTO 양허안에 따라 2004년 외국계 통신업체의 유선 전화시장 진출을 허용했으며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외국인 소유지분 비율을 현재의 35%의 49%까지 확대하는 등 통 신시장 개방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외국계 통신업체들이 실제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데는 여전히 규제와 간섭이 많다. 업계 관계자 들은 “중국정부의 간섭과 정책적 혼선으로 인해 시장진출이 정말 어렵다”며 제한적인 개방이라고 규정 하고 있다. 어쩌면 당시 미국과 유럽 각국이 중국의 이런 속성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미국 등은 WTO 가입 당시 중국에게 ‘15년간 비 시장경제 지위를 유지한다’는 족쇄를 채웠다.
최근 국제경제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중국의 위안화 절상문제에서도 당국의 간섭은 그대로 노출된다 . 사실상 달러화에 연동된 위안화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국은 달러의 폭락현상 속에서 유일하게 환율문제 에서 안정성을 유지하는 나라가 됐다. 이런 중국을 놓고 ‘비 시장경제 지위를 유지하는 비정상적인 나 라’라고 비난해도 중국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드러내놓고 반발하지 못하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나 원자바오 총리가 외국순방 길에 “해당국으로부터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받았다 ”고 하면서 크게 기뻐하는 내면에는 중국의 고민이 내재돼 있다. 어찌 보면 국가규모에서나 정치경제 적 구조에서나 여타의 WTO 회원국과 다른 중국에 무리하게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 데서 비롯된 문제일 수 있다.
중국의 WTO 가입이 3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외국기업의 진출이 제한돼 있는 가운데 베이징의 시타은행을 이용하는 중국 고객들
국가경제의 30% 이상을 국영기업들이 담당하는 중국의 특성상 정부의 간섭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만일 다른 시장경제 지위국가처럼 중국이 환율문제에서 당국의 개입을 철폐한다면 중국의 금융시스템은 하루 아침에 붕괴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상하이 상차이 증권 진옌스 이코노미스트는 “13억 인구를 가진 거대한 중국경제를 서방경제의 틀에 맞추려는 것 자체가 무리”라면서 “장기간의 계획경제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의 상황도 어찌 보면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중국시장의 현실을 인정해주면서 주어진 공간에서 최선의 이 익을 얻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시 말해 중국정부가 WTO 가입 당시 약속한 의무를 최대한 이행하기 위해 ‘천천히, 하지만 착실하게’ 열어주는 점을 활용해 나간다면 소매유통 시장에서도, 통신시장에서도 빠르게 중국시장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강호 현대증권 상하이 사무소장은 “중국 당국이 금융개방에 대비해 아시아 국가와 금융기법 등에 대 해 협력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적극적인 금융분야 진출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국내기업들의 적 극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개방되는 서비스 시장
중국이 가입 당시 약속한 시장개방 양허안 가운데 특히업계의 주목을 끄는 분야는 서비스시장이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의 업체들은 실제 서비스 분야에서의 개방정도와 중국 당국의 의지를 파악하기 위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기업들의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구체적인 서비스 시장 개방내용은 2001년 중국이 제출한 WTO 서비스 무역 양허안과 외국인 투자산업 지 도목록 등 관련규정에 근거하고 있다. 우선 도소매 유통업은 2004년 12월 11일 이후 외국인 독자투자가 가능하다. 프랜차이징과 무점포 판매는 외자기업 설립 제한규정이 없어진다. 도로여객이나 화물운송 업은 12월 11일 이전에 독자경영을 허용하는 것으로 돼있다.
금융은 최근 외국계 은행에 대한 위안화 업무 지역제한을 순차적으로 풀어온 데 이어 생명보험과 주 식투자 펀드의 경우, 외국 측 지분율이 각각 3분의 1과 49%를 초과하지 않는 조건으로 외국인 투자가 가능해진다.
통신분야에서는 이동전화(음성 및 데이터) 서비스 합자기업의 외국 측 지분율이 49%까지 확대된다. 관 광은 합자여행사의 등록자본금이 12월 11일을 기해 400만 위안에서 250만 위안으로 크게 낮아지고 외 국 측 다수지분도 가능해진다. 법률 서비스는 WTO 가입 3주년에 맞춘 개방계획은 없지만 대표처 증설 조건 등을 점차 완화해 나갈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방확대 조치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시장진입 문턱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는 보이 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중국시장의 속성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통업의 경우 핵심법률은 중국 상무부가 2004년 4월 16일 공포하고 6월 1일 자로 시행한 ‘외국인 투 자유통 영역관리 방법’이다. 하지만 정작 현재까지 구체적인 시행세칙이 나오지 않고 있어 관리방법의 효력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만 시행세칙이 조기에 발표되지 않더라도 유통관리 방법에 따라 설 립 신청서를 우선 접수하고 이후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검토, 보완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
브라질 순방에서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 받는 것에 고무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유통업체의 분점 수가 30개를 초과하면 외국 측에 대해 소수 지분만을 인정하는 조건도 따른다. 프랜차 이징, 정제유ㆍ약품 유통, 경매업무에 관한 세부규정도 현재까지 발표되지 않고 있다. 프랜차이징이나 직접판매 관리조례는 당초 2004년 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시간이 갈수록 2004년 상반기로 미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직접판매의 경우 개방은 하되 등록자본금과 보증금 요건을 높여 당분간 진입 벽을 쌓아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자동차 소매업도 세부규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정제유 도소매업은 여전히 중국기업들의 독점체제에 있 어 외국기업의 진출방식은 합자(중국 측 지배지분 보유)에 국한될 전망이다. 외국인투자 일반 물류기업과 제3자 물류서비스 기업은 아직 보세구 등 특정 지역에서만 영업이 가능하 다. 운송업은 어느 업종 못지않게 각 지방 업체들의 보호주의가 심해 단기간 내 외국인 투자가 급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융업은 개방시점을 최대한 지연해 중국은행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간벌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당국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거듭 강조하는 데서 보듯 금융업의 개방은 어려운 난관을 여러 번 뚫고 나가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나 법률, 회계 등 전문 서비스업도 단기간 내 뚜렷한 개방조치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 다. 건축 서비스업은 12월 11일부로 독자진출이 가능하도록 돼있지만 최근 중국정부의 기술표준 강화 움 직임이 외국기업의 진입을 가로막는 시장진입 문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시장을 노리는 우리 기업들의 대응도 현지 실정에 맞게 추진돼야 한다. 현재 우리 기업들의 중국투 자는 약 80%가 제조업에 집중돼 있으나 내수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서는 유통이나 서비스 분야 진출이 필 수적이다.
코트라(KOTRA) 중국지역본부 박한진 차장은 “중국의 입법조치가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고 진입장벽이 여 전한 업종도 있어 시장진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 “충분한 법적인 검토가 없다면 2005년에는 더 많은 기업들이 진출하겠지만 그만큼 더 많은 기업들이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우탁 상하이 특파원 |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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