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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다국적기업 유치 '척척'
달콤 쌉사롬한 세금감면의 유혹
스위스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소리없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1950년 이후 스위스로 유럽 지역본부나
핵심부서를 두고 있는 외국 대기업은 약 200개. 미국의 대형 소화물 택배업체인 UPS도 최근에 스위스
행을 택했다.
유명기업으로는 필립 모리스, 듀퐁, 이베이, 캐퍼필러, 제너럴 모터스, 프록터 앤 갬블(P&G), 다우
케미컬, 오라클, 시스코 등을 꼽을 수 있다. 포천지가 해마다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의 상당수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다. 캐터필러와 아고노트, 이스트만 케미컬은 마케팅 부서를 이전한
기업이며 이베이와 알코아, 엘로팍, 옴넥서스, 백스터 등은 재무부서를 옮긴 경우다.
미국 기업뿐만이 아니다. 퀴네 앤 나겔, 리브헤르 인터내셔널, 메트로 홀딩, 유로택스, 다이나미트/
노벨, SAP 같은 유럽기업들도 스위스를 선호하고 있다. 스위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단연 낮은
법인세 때문. 스위스에서는 연방정부가 아니라 26개 칸톤(주) 정부가 개인과 법인 소득세율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래서 칸톤 별로 적용하는 세율이 천차만별이다. 연간 10만 프랑(미화 7만6천 달러) 정도를 버는 부부
를 기준으로 하면 거주지에 따라서 개인소득세는 최저 6천100프랑에서 최대 2만1천 프랑으로 차이가 크
다.
스위스 북부의 추크 칸톤은 이곳에서도 세금이 가장 낮기로 유명한 곳. 추크 칸톤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
격세지감을 실감케 한다. 추크는 수십 년 전만 해도 한적한 농촌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들
과 외국인 직원들이 거리에 넘실대는 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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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뿐 아니라 갑부들도 세금부담을 피하기 위해 스위스에 정착한다. 독일의 테니스 영웅 보리스
베커(36) 역시 날아오는 고지서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스위스 국경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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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크에서는 세계적인 기업들과 부호, 전문직 종사자들이 지역주민들과 공존하고 있다. 인구는 10만3천
명이며 그 5분의 1이 외국인이다. 같은 이름을 쓰는 칸톤의 중심도시 추크의 주민은 2만2천 명. 칸톤에
등록된 기업은 그에 버금가는 1만8천 개에 달한다.
이처럼 기업도시로 부각된 것은 ‘달콤하고 쌉사롬한’ 세금감면의 유혹 때문. 절세를 위해 쉘, BASF,
존슨 앤 존슨 같은 귀에 익은 기업들이 이곳에 둥지를 치고 있다. 물론 세금감면만을 노려 서류상의 회
사로 등록한 경우가 상당수지만 우수한 인력, 기업친화적 환경 때문에 진출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추크
가 조세감면 정책을 도입한 것은 1946년부터. 지금의 영화는 앞을 내다보는 혜안, 오랜 세월에 걸친 노
력이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추크 칸톤의 개인소득세는 취리히의 절반, 바젤과 비교하면 3분의 1이다. 법인세율도 외국과 비교하면
영국, 프랑스의 절반, 미국,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다. 더구나 지주회사나 스위스 국외에 영업기반을 갖
고 있는 기업들에는 더욱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는 것도 매력이다. 이곳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추크에서
는 납세자를 채무자가 아니라 고객으로 간주한다고 입을 모은다.
추크에서는 회사 설립비용이 최소 500만 원이며, 설립기간도 3~15일에 불과하다. 외국인이 사업상 기업
이나 부동산을 사는 데도 제약이 거의 없다. 추크는 아직도 전원풍, 고풍의 주거환경을 간직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도매점ㆍ할인점ㆍ자동차 대리점 등 새 업종도 늘었고 덩달아 일자리도 크게 늘어
났다.
지난해 이곳의 실업률은 2.7%로 스위스 평균(4.1%)보다 훨씬 낮았다. 기업뿐만 아니라 갑부들도 세금부
담을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독일의 테니스 영웅 보리스 베커(36)가 대표적인 실례. 상대
방의 강력한 서브는 스트로크를 얼마든지 맞받아치겠지만 독일 세리들에게서 날아오는 고지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월경의 변이었다.
유명가수인 티나 터너, 데이비드 보위, 독일이 낳은 자동차 경주의 스타 미카엘 슈마허도 세금을 피해
정착한 케이스. 사이클과 축구의 달인인 얀 울리히, 프란츠 베켄바우어도 스위스로 ‘이적’한 독일인
이다. 독일의 낙농식품 재벌인 테오 뮐러도 최근 엄청난 상속세를 물지 않기 위해 남쪽 국경을 넘었다.
추크의 성공사례에 자극받아 스위스의 여러 지자체가 감세정책을 속속 도입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스위스 중부의 슈비츠는 못사는 칸톤이었다. 그러나 감세정책을 과감히
도
입하면서부터 일약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구가 10만에서 13만으로 늘었고 등록기업이 3배나 늘었
으며 스위스에서 7번째의 부자 칸톤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소득수준 기준으로 26개 칸톤 가운데 18위에 머물고 있는 북부 샤우프하우젠 칸톤은 고소득 개인과 가
구, 기업을 위한 감세 여부를 주민투표에 부칠 방침이다. 칸톤 측은 오는 2007년이면 정부 재정이 손
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감세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샤우프하우젠보다 여건이 나쁜 쥐라와 발리스 칸톤은 감
세를 위한 여유가 적다는 것이 고민이다. 또 칸톤들의 감세 경쟁이 국가 전체적으로는 결코 유익한 일
이 아니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간 조세 균등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스위스의 상대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요인. 존 디어와 랄프 로렌, 제너릴 밀스, 질레트, 카길 등이 유럽본부를 파리나 런던에서 스위스로 대
거 옮긴 것도 세금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필립 모리스는 스위스 로잔에 소규모 지사만을 두고 있었으나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상당수 인력을 로잔
으로 전보시켰다. 미국 컴팩이 지난 98년 라이벌인 DEC를 인수하자 스위스 관리들은 컴팩의 유럽ㆍ중동ㆍ아
프리카 본부5를 제네바로 이전토록 로비를 벌였다. 컴팩은 당시 독일의 뮌헨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2년
뒤 더 나은 세제 혜택을 고려해 제네바로 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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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루간도 호수. 최근 들어 스위스에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유럽기업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낮은 법인세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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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회원국 가운데 세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프랑스와 독일은 이미 상당수 기업들이 해외로 이탈한 실정
.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도 정책의 영향을 받고 있다. EU의 조세 균등화 정책 때문에 세제 혜택을 주기
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한때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에서 선두를 달렸지만 최근 들어 규모가 급감하고 있다. 경
제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탓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세금에 대한 고려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만만
치 않다.
직원들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없는 네덜란드의 노동환경과 문화도 기업들의 이탈을 부르는 다른 의견이
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급기야는 네덜란드의 기업마저 더 나은 조세 여건을 찾아 사업 일부를
해외로 옮기고 있다. 이 나라의 거대 소매유통 체인인 아놀드 NV는 지난해 재무본부를 암스테르담에서
제네바로 옮겼다.
물론 외국기업들이 스위스에 끌리는 것은 세금 때문만이 아니다. 스위스 내부에서도 세금의 우위는 장
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던 유럽 각국의 법인세가 최근 수년간 점차 인하
되고 있고 동유럽 국가들이 EU에 가입함으로써 그 추세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아서 D. 리틀은 스위스의 매력을 단순화하기 곤란하다며 정치적 안정, 안정적
인 통화(스위스 프랑), 지리적 위치와 교통의 편의성, 기술친화적 환경, 우수한 인적자원 등도 감안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밖에 전통적으로 금융서비스가 발달해 있고 화이트 컬러 노동자들이 생활하
에 좋은 청정 자연 및 쾌적한 주거환경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라는 것.
다만 취업허가를 얻기가 까다롭고 국제항공편의 연결이 충분치 않으며 외국인 자녀를 위한 인터내셔
널 스쿨이 미흡하다는 점, EU와는 다른 법률제도,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 등은 부정적인 요소라는 게
아서 D. 리틀의 진단이다.
문정식 제네바 특파원 |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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