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도가 국제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 재계 서열 2위인 타타그룹 계열의 타타스틸이 대출과 주식교환 등을 통해 영국의 철강업체인 코러스그룹을
76억 달러에 매입한 것을 계기로 그동안 세계 M&A 시장에서 ‘소액 사냥꾼’ 정도로 치부돼 왔던 인도 재계의 위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
타타스틸이 코러스 인수에 쏟아 부은 금액은 인도 기업체들이 지금까지 외국기업을 사는데 투자한 총액인 100억
달러의 75%가 넘는 거액이다.
이 거래로 국제 철강업계에서 55위였던 타타스틸의 순위는 단숨에 50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세계 철강업체 가운데 수익률이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진 타타는 앞서 싱가포르의 낫스틸과 태국의 밀레니엄스틸을
매입했다.
하지만 이들 거래의 경우 대금이 수백만 달러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러스의 인수 시도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코러스는 자산 규모가 타타스틸의 무려 4배나 되는 회사다.
그룹 차원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인수 사례도 지난 2001년 영국의 테트리 그룹을 사면서 4억700만 달러를 지불한 것이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인도 기업들이 외국기업을 사들이기 위한 자본을 조달하는 데 ‘고수’가 되어
가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한때 가격에나 신경 쓰던 인도 기업들이 언젠가부터 외국의 금융전문가를 채용하고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더니
어느새 국제자본을 조달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
|
인도의 타타철강이 영국 코러스그룹을 우리 돈으로 76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위상을 높이고 있다.
|
|
컨설팅 업체인 언스트 앤드 영(E&Y)의 자예시 데사이 국장은 “인도 기업들이 엄청난 전환기를 통과했다”고 강조했다.
기업금융 전문 업체인 ‘인도자문 파트너스’의 제임스 윈터보섬도 “인도 재계는 이제 국제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세계적 기업을 경영할 능력과 야심까지 갖추고 있다”고 거들었다.
인도 자동차 업체인 ‘마힌드라 & 마힌드라’는 최근 중국의 장링 자동차와 영국의 스토크스, 독일의 제코 홀딩 등을
차례로 인수한 데 이어 앞으로도 대대적인 외국기업 사냥에 나설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이 회사의 아난드 마힌드라 부회장은 “자금을 조달하는 데 있어 인도 기업의 능력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면서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국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유동성은 그런 역동성이 명백한 나라로
몰리게 마련”이란 말로 자신감을 표현했다.
인도가 지난 1991년부터 경제개방에 나선 이후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능력을 개선시켰고 수익률도 높였다.
이런 과정에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능력도 향상됐다.
사실 마힌드라를 비롯한 인도 기업들이 해외투자에 관한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중앙은행에 요청했던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도 정부는 현재 기업들이 해외자산 규모의 곱절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자동차와 IT(정보기술), 차(茶), 소금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업종에 진출해 있는 타타의 경우 덩치나
명성 덕분에 자본 조달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 회사의 세계화 전략 책임자인 알란 로슬링은 “세계의 어떤 은행이든 우리한테 대출하지 못해 오히려 안달”이라고
말한다.
인도 기업의 해외투자는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영 에너지 업체인 ONGC가 공급망을 확충하기 위해 외국유전을 사들였던 것과 같이 필요에 의한 투자가
첫 번째였다면, 최근 수년 동안 봐왔듯이 IT 중심의 아웃소싱이나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해외 고객사를 인수했던 것은
두 번째 단계다.
이어 세 번째 단계는 대출이나 주식을 동원한 시장거래를 통해 회사의 덩치를 불려나가는 방식인데 이제 막 그런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금거래를 선호할 뿐 다른 회사를 사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것을 꺼렸던 인도 기업에 획기적인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타그룹은 최근 6년간 20여 개의 외국기업을 인수했다.
지난 8월에는 6억7천700만 달러를 투입해 미국의 건강음료 제조업체인 글라소의 지분 30%를,
지난 10월 중순에는 미국 보스턴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을 1억7천만 달러에 인수키로 했다.
마힌드라 부회장은 “이제 막 시작”이라면서 “쉽게 말해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고 본격적인 것은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나 한국 기업들이 성장 한계에 부딪힌 이후 M&A 시장에서 갈수록 손이 작아지고 있는 만큼
이제 인도가 정복에 나설 차례”라고 덧붙였다.
정규득 뉴델리 특파원 | wolf85@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