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정책으로 외국인 투자가들이 말레이시아에서 등을 돌리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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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부유한 중국계에 대한 말레이족의 불만이 인종폭동으로 불거져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후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족을 위한 정치.경제적 우대정책을 40년째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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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실시된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안정의석 확보에 실패한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68) 총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야당은 집권 정당연합 내에 동조세력이 많아 언제든지 연립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위협하는 등 총선 후 정국이 난기류에
휩싸였다.
특히 이번 총선을 계기로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다수계인 말레이족 우대정책으로 인종갈등이 증폭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권력승계 표면화
압둘라 총리는 4월 11일 조호르 주에서 열린 집권당 ‘통합말레이국민기구(UMNO)’의 비공개 회의에서 총선 책임을 지고 총리직과
UMNO 총재직을 조기에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관영 베르나마 통신은 압둘라 총리와 후계자로 지목되온 나지브 압둘 라자크 부총리가 UMNO 전당대회가 열리는 올 12월에
권력승계에 대해 본격 논의할 것이라 전했다.
UMNO 내부에선 압둘라 총리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2003년 10월 압둘라 당시 부총리에게
총리직과 UMNO 총재직을 넘겨주고 은퇴했던 마하티르 모하마드(82)는 압둘라 총리의 즉각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압둘라 총리는 현지 영문 일간지인 ‘뉴 스트레이츠 타임스’와 인터뷰를 통해 “총선 패배에 대해 일단의 책임을 인정한다”면서도
“사법개혁, 부패방지, 범죄율 억제, 교통체계 개선 등 개혁과 변화를 위해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즉각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
명히 했다.
UMNO 중심의 14개 집권 정당연합인 국민전선(BN)은 3월 8일 치러진 12대 총선에서 하원 222개 의석 가운데 140석을 차지하는 데
그쳐 개헌을 위한 의결정족수이자 안정의석인 원내 3분의 2(148석)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말레이시아 독립 후 지금까지 50년간 집권해온 BN이 안정의석 확보에 실패한 것은 1969년 총선 이후 39년 만의 일이다.
더구나 BN은 총선과 함께 실시된 13개 주의 주의회 선거에서도 5개 주에서 과반의석을 야당에 넘겨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반면 야당연합 지도자인 안와르 이브라힘(61)은 인민정의당(PRK), 민주행동당, 말레이시아 이슬람당 등 3개 야당을 이끌고 총선에
나서 크게 선전하며 20석에 불과했던 야당 의석 수를 82석으로 늘렸다.
총리직을 노리고 있는 안와르는 4월 14일 “국가를 통치할 준비가 돼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다”며 “집권 정당연합 내에
우리와 동조하는 의원들이 많아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하티르 총리 집권시절 부총리를 역임했던 안와르는 그의 후계자로 지목됐으나 1998년 권력투쟁에서 패해 부총리직은 물론,
집권당인 UMNO에서도 축출됐었다.
인종갈등 전면 부상
3.8 총선 당시 최대 이슈로 등장한 인종갈등 문제는 총선 후 더욱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도계 권익옹호 단체인 ‘힌두권리행동의 힘(힌드라프)’은 총선 직후 국내안전보장법(ISA)에 따라 재판절차 없이 구금중인 P.
우타야쿠마르 힌드라프 대표 등 지도자 5명을 석방하지 않을 경우 대규모 거리 시위를 재개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들은 작년 11월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종차별 정책 철폐를 요구하며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거리 시위를 주도한 뒤
체포돼 국가안보를 해치는 중대 범죄자에게 적용하는 ISA에 따라 구금중이다.
힌드라프 지도자이며 최근 총선에서 의원에 당선된 S. 마니카바사감은 구금자들을 석방하지 않을 경우 “다시 거리로 나설 것을
정부 측에 경고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소수계는 말레이족 우대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3.8 총선에서 야당연합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말레이시아는 인구 2천700만 명 가운데 말레이족이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중국계(29%)와 인도계(8%)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1969년 부유한 중국계에 대한 말레이족의 불만이 인종폭동으로 불거져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후 말레이계
원주민 소유 기업에 정부조달 계약상의 혜택을 주는 등 말레이족을 위한 정치.경제적 우대정책을 40년째 시행하고 있어
소수계의 분노를 사고 있다.
힌드라프는 “말레이시아에서 소수민족은 공무원과 사기업에서 취업의 기회가 거의 없고 기업 설립이나 대학 입학에서도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종정책으로 외국인 투자가들도 말레이시아에서 등을 돌리고 있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미국, 호주의 FTA 협상에 말레이족 우대정책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으며, 유럽연합(EU)과는
작년 10월 FTA 협상을 시작했으나 이 정책 탓에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정책은 그동안 빈곤을 줄이고 소득격차를 줄였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이젠 효용성에 비해 부정적 측면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말레이시아 비정부 기구(NGO)들은 “인종.언어.종교적 골이 깊어지면서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다”며 말레이족
우대정책 폐기 등 적극적인 국가단합을 위한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전성옥 방콕 특파원 | sungok@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