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6, 70년대만 해도 말 잘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중
에서도 나는 유난히 쑥맥이었는데 어머니와 단 두 식구란 환경이 점점 말없는 아이로 몰고
간 것 같다. 물론 지금이야 집사람도 있고 딸로 있지만 결혼하기 전엔 집사람도 없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점점 말없는 아이가 되었고, 내가 입을 여는 경우는 오직 하루 한 번, 국어 시간에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책 읽을 때 뿐. 내성적이라 고통 받은 추억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때 분단이 다섯 개 있었다. 가운데는 수 분단 양 옆이 우 분단, 미 분단, 맨 가
쪽이 양 분단, 가 분단. 수 분단은 천국이었다. 수업시간엔 선생님이 가장 눈을 주었고,
무엇보다 화력 좋은 조개탄 난로가 수 분단 중간에 있어 도시락을 구워 먹는 것도 수
분단의 특권이었다. 어쩌다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가 분단 아이가 도시락 올려놓으려
하면 선생님의 핀잔 한마디.
“꼭 공부도 못하는 애들이 먹는 건 엄청 신경 써요.”
난 수 분단 빼놓고 안 앉아본 곳이 없었는데 짝사랑하는 여자애 환심을 살 목적으로 코피
흘려가며 공부한지 두 달 만에 드디어 수 분단에 입성했다. 그 때 반에서 헤게모니를 잡고
있던 친구가 내게 면박을 준다.
“넌 수 분단 자격이 없어.”
아마 멍청하고 소심한 얼빵이가 자신과 같은 레벨로 취급받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내성적이지만 한 번 배시시 웃은 적은 있었다. 당시 외향적인 친구들은 두 가지 놀이를
즐겼다. 고무줄 놀이와 여학생 치마 들추기. 제일 처음 들은 고무줄 노래가 지금도 생각난다.
“칙칙 감아 던지면 꼿꼿하게 서서 뱅글뱅글 뱅글 뱅글 잘도 도는 팽이.”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남아가는 데 초개로구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외향적인 친구들이 참 한심하게 보였다. 이 친구들은 치마를
들추기만 하지 그 안을 보진 못했다. 도망가기 바빠서,... 보는 건 오히려 우리 같은 내성적인
애들이었다.
집안이 가난한 것도 내성적인 성격이 형성되는 데 한몫했다. 종례시간에 선생님이 가정환경
조사서를 했다.
“에.. 오늘은 가정환경 조사를 하겠다. 거짓말 하는 사람은 각오해라. 나중에 조사해서 다르면
박살난다.. 에 그럼 먼저... 집에 자가용 있는 애 손들어 봐.”
평지에 살던 친구들 중 몇 명이 든다. 그러나 산꼭대기 판자 촌 달동네 바로 우리 동네 애들은
한 명도 안 든다.
“이어서.. 에... 전축 있는 애, .... 자전거 있는 사람,.... 전화, ...TV....”
우리 동네 애들은 고개를 숙이고 기가 죽어서 그저 침묵을 형성하고만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한 번 들었다.
“냄비 있는 애!
중학교 때도 역시 내성적인 성격은 마찬가지였다. 한 친구가 하도 괴롭히고 쥐어 박길래
“한번 붙자.”
싸움의 결과는 내가 이겼다. 나 자신이 미웠다. 차라리 센 친구에게 맞았으면 몰라도 저런
약골들까지도 날 우습게 봤다니.
고등학교 들어가고부터 남 앞에 의식적으로 섰다. 여학생들과의 미팅을 주선했다. 재미있었
다. 누구도 나의 별명이 기지배란 걸 눈치 채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선 응원단의 일원으로
수천 명 앞에 서서 응원 리드도 하고 연극과 판토마임으로 웃음을 유도해냈다.
리더십에 법칙이 있듯이 유머에도 법칙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웃고 저렇게 말하면 안
웃었다. 사람들은 연사가 자연스러우면 웃고 부자연스러우면 안 웃는다. 말투, 제스처, 눈빛
등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보았다. 그 부분을 메모했다. 언제 웃는가를, 왜 웃는가를. 이
말하면 웃을까했는데 안 웃는다. 왜 안 웃을까 생각하고 연구해서 공식과 법칙을 만들었다.
웃음이 리더십을 위해 크게 공헌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웃
음을 유도한 후 감동적인 말을 했더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고 난 후 실천을 요하니
모두들 따랐다. 웃게 한 후 매시지를 전하니 조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은 물론이요 똑같은
메시지라도 훨씬 더 잘 받아들였다.
유머도 결코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두 가지만 준비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자신이 우연히 라도 사람들의 웃음을 유도해 냈을 때 혹은 실패했을 때 상황을 기록해놓을
노트한 권. 이 두 가지가 당신을 품격 있는 유머의 대가로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가 유머하면 보통 전두환 시리즈나 사오정 시리즈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것 만이
유머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유머는 상대방을 웃기는 것이다. 웃길 수만 있다면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든 모두가 유머로 성립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리더가 너무 오버할 수는 없는 일. 말로 해야 하는 데 유머란 게 잘하면 좋지만
시원찮게 전하면 썰렁해지기 십상이다. 후유증이 생긴다는 말이다. 듣는 사람이
“저 사람 유머 시원찮구만...”
“센스가 없구만.”
이런 표정을 지으면 말하는 사람은 더욱 주눅이 들어 유머를 할 맘이 없어진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고 미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썰렁함을 없애주는 비결이 바로
체험담 유머다. 시리즈 유머가 자신 없는 사람이라면 필자가 소개한 대로 자신만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전하기 바란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어린 시절 이야기, 그게 바로 최고의 유머가
될 수 있으니.
중년의 유머기법 한 가지 더 소개한다. 일명, 조간신문 기법! 오늘 아침 조간신문을
훑어보시라. 그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하나를 조회 시간이나, 회식 시간 혹은 골프 치는 중
전해보라.
“야 이런 일이 있었더구만.”
스포츠도 좋고, 사회면, 정치면 이야기도 좋다. 조간신문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좌중을
리드하는 대화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다. 물론 꼭 조간신문이 아니라도 좋다.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하는가? 라디오 출연자 역시 조간신문을 보고 대화 주제로 삼게 되어있다. 체험담 기법과
조간신문 기법 이 두 가지로 유머 업그레이드를 이루어 보자.
김 진 배
유머개발원 원장
국내 유머강사 1호
한양대, 명지대, 안양대 강사(개그학)
한국산업교육연합회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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