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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 준
대림그룹 창업자
미래는 꾸준한 준비로 만든다
"양복을 맞출 때는 꼭 맞는 것보다 좀 헐렁하게 맞추게. 크면 줄여 입을 수 있지만 작으
면 늘릴 수 없거든. 이처럼 매사를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하네."
대림그룹 창업자 이재준, 그의 말에서 그의 경영철학이 그대로 묻어난다.
1969년 국회의사당 건립, 1970년 영동대교 건설, 1971년 서울지하철1호선 건설, 1973년
세종문화회관 건립, 1977년 서울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건립, 1984년 독립기념관 건축공사. 그리고
서해대교까지.
이 같은 굵직굵직한 공사들이 대림의 이력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
을까.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은 대림을 아파트 전문 건설회사 쯤으로 오인할 법도 하다. 하지만 대
림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건설의 산증인이고 역사이다.
1939년, 중일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즈음 이재준은 지금의 부평역 앞에 ‘부림상
회’라는 간판을 내 걸었다. 일제의 철저한 통제경제와 식민정책이 극으로 치닫고 있던 당시
이재준의 나이 22세였고, 그것이 오늘날 대림그룹의 시작이었다.
물론 이재준에게는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풍부한 사회경험이 있었다. 일종의 경
영수업으로 이미 18세 때부터 아버지의 정미소 일을 도와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림상회가 첫발을 내딛었던 부평의 당시 모습은 주위가 온통 전답뿐인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서 이재준이 시작했던 첫 사업은 남선재(南鮮材)와 석회(石灰) 및 철
물초자(?物硝子), 건자재 등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부평의 모습만큼이나 썰렁했다. 온전한 사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
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서대문에서 하고 있던 정미소를 그때까지 계속하고 있었던
탓으로 생계걱정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이재준에게 거짓말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부림상회를 열었던 부평 땅이
단순한 황량한 벌판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 될 것임을 이재준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한 큰 기회였다. 실제로 이재준은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부림상회를 개업할 당시의 상황을 이재준은 이렇게 회고했다.
“부평이라는 데는 그때만 해도 아직 한적한 한촌(寒村)에 불과했으나 인천과 영등포공업
지대와는 서로 연결되는 중간에 위치에 있었고 각종 공장들이 한창 들어서고 있어서 이 지
역이 곧 경인공업지구의 핵심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곳곳에서 농지를 박탈당한 농민들과 유랑민들이 노동품을 팔 요량으로 공교롭게도 부평으로
모여들었고, 그로 인해 부평은 때아닌 개발붐을 맞게 된 것이다. 그 같은 개발붐은 이재준의
사업종목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건자재. 부평은 건자재 수요가 폭증하여 없어서 팔 수
없는, 각재목(角材木) 2개 화차 분(약 2만 재)이 들어와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곧 바닥이
나버리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기회는 부림상회를 완전히 사업체로 성장시키는 중요한 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쯤
되자 이재준은 그때까지 계속해왔던 정미소를 정리하고 부평으로 거처까지 옮겨 부림상회에
전념하게 된다. 정미업이 일제의 갖가지 정책으로 인해 사양길로 접어들게 된 것도 이러한
결정의 배경이었다.
정미업의 정리는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힘이 되었고, 그것은 이재준이 사업을 더 적극
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이재준은 그때부터 단순히 용재(用材)를 구입해
서 다시 되파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직접 원목을 생산, 제재하여 판매하기로
한다. 그것은 부림상회의 작지 않은 규모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그 규모를 말해주듯 그 즈음 부림상회는 미쓰비시중공업 계열공장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일
체의 목재 독점 공급권을 따내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공장을 짓는데 필요한 자재의
공급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일제시대, 일본의 공장건설에 자재를 공급한다는 것, 그것은
이재준의 사업 가능성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것은 즉시 증명된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계기로 용재(用材)생산도 군사적 성격을 갖기 시작하면서 목재 수출을
허가제로 묶는 등 통제와 함께 관영 제재사업을 시작한다. 1942년에는 동양척식회사, 신의
주합동제재주식회사, 조선합동목재주식회사, 미쓰이물산 등을 대주주로 한 ‘조선목재주식회
사’를 설립한다. 각 지역에 지점을 두고 목재의 생산에서 제재,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관장하는 회사였다. 이는 전면적인 목재통제를 뜻하는 것으로 국내 목재사업관련
기업을 도산으로 기로로 내몰기에 충분한 조치였다.
하지만 부림상회에게 나타난 결과는 오히려 반대였다. 부림상회가 그 동안의 사업역량을
인정받아 총독부로부터 전국 11개 목재업체 중 하나로, 그리고 원목 생산업자 겸 제재업자
로까지 지정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일제의 생산활동 통제는 물자의 품귀현상으로 이어졌고 가격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았
다. 선급금을 내놓고 목재를 가져가야 했으니 당시의 상황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 즈음 이재준은 서울 신촌에 사택을 직접 신축하고 부천에 일반주택 4동을 지어 파는
첫 주택건설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해방 후 북쪽에 위치한 벌목장과 모든 부동산을 그대로 몰수당하는 재산손실을
입게 되지만, 부림의 명성은 계속된다. 귀환동포 및 피난민으로 인한 주택난이 심각해지
면서 다시 목재 수요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고, 이때 부림의 존재는 또 한번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전국으로 보내기 위해 서울역을 포함한 경기도 일원의 각 역구내에 쌓아놓
은 목재의 80~90%가 ‘부림상회’의 목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명성이었다.
하지만 이재준은 목재업을 접는 과감한 사업전환을 단행한다. 목재업에 대한 한계가 가장
큰 이유였다. 대부분의 산림이 북한에 편재되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였다. 그 고
민의 대안으로 떠오른 사업이 건설업이었다.
그리고 ‘대림산업주식회사’가 출범하게 된다. 그것은 부림상회의 발전적 해체였고, 그
때가 1947년이었다. 이재준은 사명을 변경하면서 ‘대림이라는 광대무안하고 전도 양양한
사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순조로운 일은 아니었다. 건설업체의 난립과 미군정 종식으로 인한 미군공사의 중
단, 그리고 전쟁까지.
이재준은 부산을 피난지로 택했다. 전쟁의 상처가 그렇듯 피난지 부산은 말 그대로 아수
라장이었지만, 그곳에서 흩어졌던 40～50명의 대림 가족들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당연한
일인 듯 그들은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까지 해왔던 목재업 때문에 목재를
구입해 넣을 수 있었고, 건설업을 시작했던지라 공사를 할 수 있어 집단 수용소를 짓는
공사부터 시작되었다.
아울러 전쟁 후 복구공사가 시작되면서 건설업은 호황을 맞게되고, 이재준의 대림 역시 다
르지 않았다. 특히 1960년대의 대림은 성장의 시대였다. 한국 최초로 태국, 베트남 등 해외
건설공사 진출, 경부 고속도로, 청계천 복개공사, 여수와 울산의 석유화학 및 비료공장
등의 영향으로 마침내 국내 건설업체 도급순위 1위까지 오르게 된다.
대림의 역사는 한국 건설의 역사다. 대림은 특히 공공건물, 수리시설, 발전소, 항만, 경부
고속도로 등 국가 기간산업시설 등 공공공사 경험이 많다. 이는 대림이 한국건설을 통해 성
장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업의 미래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까지 생각한
이재준의 사업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임순철 객원기자| top@isto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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