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적 동질성 때문에 구별 짓기를 할 만한 게 없으니 아파트, 학교, 자동차,
명품 등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시대의 논객이자 사회비평가인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전공과 교양, 학문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강 교수가 이번에는 ‘강남’을 테마로 내걸어 파고들었다.
‘김대중 죽이기’로 성가를 높인 그는 ‘한국현대사산책’을 18권짜리로 줄줄이 엮고 ‘이건희 시대’를 내놓은 데
이어 독일월드컵 때는 ‘축구’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으로 비평문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아파트와 강남과 부유층은 일반인들에게 거의 동의어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선망의 대상이자 질시의 대상이기도 한 강남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부동산 전문가도 아닌 강 교수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강남을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
‘자료의 달인’답게 뒷받침하는 자료도 풍부하다.
이 시점에서 강남을 화두로 내건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강 교수는 강남 문화의 상징인 아파트는 한국인 코드의 핵심이라 말한다.
강남은 아파트이며 아파트는 곧 한국적이다.
다시 말해 ‘강남 신드롬’ ‘강남 정신’이란 용어가 어색하지 않게 다가올 만큼 강남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욕망과 욕구의 발신지가 됐다.
“한국 사회에 난무하는 갈등엔 공통점이 있어요.
역지사지를 불필요하거나 해선 안될 것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독재정권과 그에 대항한 민주화 투쟁의 유산이 아닌가 해요.
상대를 이겨야만 하는 제로섬 게임이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강남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그런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강남 문제는 한국형 갈등의 급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논쟁과 논란을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게 저의 문제의식입니다.”
그는 강남을 공정하게 바라보려면 도덕주의나 포퓰리즘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강남-비강남을 적대시하게 하는 건 문제를 어렵게 하는 결과만 초래한다며, 강남 사람의 목소리도 경청하면서 슬기롭다
못해 영악한 제도와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강남, 아파트, 부동산은 이미 경제학의 영역을 벗어났으며 정치학과 심리학으로 다가갈 때 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돼온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 거주율을 자랑한다.
지난해 11월 현재 전국의 주택 1천259만 채 가운데 아파트 비중이 52.5%를 차지해 절반을 넘어섰다.
이런 열풍은 광주(70%), 대전.울산(63%), 경기(62%)가 보여주듯이 지방으로 갈수록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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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거주율이 계속 높아지는 한편, 이의 반작용으로 전원주택, 콘도, 주말농장 등으로 무언가를 보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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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아파트 문화의 선구자가 바로 강남입니다. 이곳의 아파트 거주율은 80%에 육박해요.
욕망의 용광로이면서 구별 짓기의 아성인 셈이지요.
그런데 한국인들은 왜 아파트가 연구대상이 돼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으려 했듯이 강남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란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파트가 전성시대를 누리는 것은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아야 하기 때문일까?
강 교수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에 충격받아 그 현상을 연구하러 서울에 왔던 프랑스 학자 발레리 줄레조 교수의 견해를
들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협소한 영토에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서는 도시집중화가 대규모 주택건설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
줄레조 교수는 영토 부족의 강박관념과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현대적 삶을 상징했고,
고도성장의 포드주의적 양산체제에 더 들어맞았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정치학과 심리학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또 강남 정신은 곧 위계질서라며, 구별 짓기가 닫힌 구조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이는 강남 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강남은 남부와 북부로 나뉘고, 같은 강남이라도 신사동보다
청담동, 청담동보다 압구정동, 압구정동보다 대치동이 낫다는 식으로 세분화하며 구별 짓기가 이동한다.
이런 위계질서와 구별 짓기는 강남을 넘어 계속되기도 한다.
지방이 서울로, 강북이 강남으로 향하듯이 강남은 다시 해외로,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나선다는 것.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 또한 한국 안에서의 경쟁과 구별 짓기를 위한 내수용 성격을 띤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구별 짓기의 욕망 속에는 ‘인맥 만들기’가 들어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의 핵심이
바로 인맥 만들기이며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도 본질은 인맥 만들기 전쟁이라 주장한다.
서울대의 위대성이 타 대학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맥에 있듯이 강남 역시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강 교수는 강남 주민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갖는 건 옳지 않을 뿐더러 어리석은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이번 저서가 비판을 위한 비판서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강남 비판도 어디까지나 한국 자본주의의 농축된 형태로서의 강남이 시사해주는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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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신드롬엔 재앙적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오늘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도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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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강남의 아파트가 대형화.고층화.고급화로 치닫는다. 이런 ‘구별 짓기’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공통심리라면 한국인만의 특질은 아닐 텐데.
욕망은 인간 세계의 엔진입니다.
마르크시즘을 반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재산의 공유가 인간을 평등하고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고 그 이전에
인간에게는 숙명적인 적대감이 있고 그 적대감은 삶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태어날 때부터 지닌 타인에 대한 부러움, 이상적 자아에 대한 적대감과 파괴적 충동이 에로스의 본질이어서 재산의
균등이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지 못한다는 거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은 균등한 사회란 우리가 믿고 싶은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런 사회는
욕망을 제거한 사회여서 죽음의 세계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차별받을 때 평등을 원하지만 가장 참지 못하는 것 또한 평등이어서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Q.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아파트 사랑에 한국인들이 빠져드는 이유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구별 짓기는 매우 독특한 점이 있어요.
사회문화적 동질성 때문에 구별 짓기를 할 만한 게 없어 구별 짓기가 아파트, 학교, 자동차, 명품 등에 몰릴 수밖에
없는 거죠.
강남은 구별 짓기의 선도 지역으로 주목받아 왔어요.
구별 짓기는 아파트 고급화는 물론 8학군, 대치동 학원가가 말해주듯 교육으로 먼저 나타났습니다.
구별 짓기의 지존으로 강남 파워를 웅변해주는 건 타워팰리스입니다.
철저한 ‘분리의 원리’를 지향하는 타워팰리스는 안과 밖을 나누며 차별의식을 낳고 있어요.
도시 중산층이 더 이상 아파트로 구별 짓기를 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가지면 아파트 단지는 급격히 사양길로
들어설 것이고 도시 문제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거품경제를 겪으면서 장기침체 국면으로 추락했듯이 한국 경제 추락가능성의 뇌관은 바로 강남 땅에
묻혀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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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 짓기의 지존인 타워팰리스는 철저한 분리의 원리를 지향하면서 안과 밖을 나누고 차별의식을 낳는다.
사진.최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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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회만 된다면 강남으로 진출하겠다는 강남 신드롬은 이미 전국적인 현상이 된 것 같다.
구별 짓기와 차별이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파트는 한국인 코드의 핵심입니다.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단일성과 밀집성을 아파트가 상징하는 동시에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입니다.
남들과 구별되려는 인간의 본원적 욕망을 실현할 소재가 빈약한 ‘아파트 공화국’에선 아파트를 통한 구별 짓기가
가장 중요한 구별 짓기 양식이 됩니다.
‘강남 정신’은 곧 위계질서이겠는데, 더 나은 칸막이 속으로 들어가려는 몸부림은 한국 현대사가 요구해온 철칙입니다.
여기서 하락은 공포이고 공포는 분노를 낳기 마련이죠.
다시 말해 분노와 공포는 한국인의 삶을 전투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위계를 중시하는 강남 정신 중 하나인 기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는 것이라 함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Q. 강남의 부가 부동산 붐을 타고 형성된 불로소득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수
비강남인들에겐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과 억울함 같은 게 있는데.
비강남인의 고통과 억울함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걸 해소하는 방향입니다.
그 방향이 강남인을 향해선 안 됩니다. 그런 게임의 법칙을 만든 제도와 정책으로 향해야지요.
평소엔 그런 제도와 정책에 별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소극적이나마 순응하면서 경쟁하다가 그로 인해 나타난 결과에
대해 그 게임의 법칙에 따른 승자를 대상으로 원망과 질시를 하는 건 잘못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려면 그걸 이루기 위해 희생된 게 있다는 점에도 눈을 돌리자는 겁니다.
늘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순 없지요.
축복의 이면에는 저주가 있고, 저주의 이면엔 축복이 있다는 명암 이론입니다.
강남 신드롬엔 재앙적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오늘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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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강준만 교수가 이번에는 '강남'을 테마로 '강남,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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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게임의 법칙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정부 정책대로 시장이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정책 실패 때문이지만 그 바탕엔 문제의식 박약이 자리 잡고 있어요.
강남의 입장에선 진보적이라 할 대통령마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하면서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는 논리로
합리화했지요. 이건 무서운 얘기입니다.
강남을 껴안고 전문가들의 생각을 경청하면서 효과적 대안을 모색해야 했는데, 강남을 적대시하면서 알맹이는 엉터리로
가져갔으니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책임 추궁이 강남 거주자에게 향하면 그들이 이를 수긍할까요?
그런 기조에 의한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앞으로 투기는 발붙이지 못할 것’이라거나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는 등
현 정부만큼 부동산 문제에 호전적인 말을 쏟아낸 정부도 없었어요.
그런데 결과는 말뿐이었지요.
강남 일부 아파트 평당 가격이 1천만 원 돌파(2003년 4월), 2천만 원 돌파(2003년 8월), 3천만 원 돌파(2006년 2월)
기록을 세운 건 모두 현 정부 들어서입니다.
Q. 아파트에 붙잡힌 한국인들은 여기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떨려나갈까 걱정이다.
이런 심리의 저변에는 무엇이 깔려 있을까.
포드주의적 효율성과 더불어 ‘빨리빨리 문화’ ‘대세 추종 쏠림 현상’ ‘물질적 합리주의’ 등으로
아파트 거주율이 계속 높아지리라 봅니다.
그런 생활방식의 반작용 때문에 전원주택, 콘도, 주말농장 등으로 무언가를 보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질 겁니다.
떨려나갈까 하는 걱정은 한국인 대다수가 갖고 있는 ‘주류(대세) 콤플렉스’의 발로겠지요.
이는 한국 근현대사가 만든 학습효과입니다.
임형두 편집위원 | ido@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