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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풍수 이야기
풍수사 얘기로 재계 떠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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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사에게 재산을 상속시킨 여성 부호 니나 왕에 대해 홍콩인들은 기이함을 넘어 존경심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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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콩에서 '점쟁이' 정도로 치부되던 풍수사가 갑작스런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풍수 관련 서적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젊은이들은 풍수사란 직업에 새삼스레 관심을 보이는 등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아시아에서 가장 돈 많은 여성 부호인 니나 왕(王如心) 차이나켐(華懋)그룹 회장이 지난 4월 3일 갑자기 사망하면서
유산 전액을 자신의 전속 풍수사인 토니 찬(47)에게 상속하겠다는 유언을 남긴 게 계기가 됐다.
홍콩인들이 상당 부분 기업경영에서 풍수사의 조언을 듣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1천억 홍콩달러(11조8천억 원)에 달하는 총재산을 풍수사에게 넘겼다는 소식은 홍콩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니나 왕은 두 차례나 납치됐다 실종된 부동산 재벌 남편 테디 왕의 유산을 둘러싸고 시아버지와 10여 년 간의 법정 싸움을 벌였던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죽어서까지 '엉뚱한' 풍수사에게 재산을 상속시킨 니나 왕에 대해 홍콩인들은 기이함을 넘어 존경심까지 보이고 있다.
홍콩 태생으로 캐나다에서 의대를 졸업한 토니 찬은 홍콩의 상류층 인사들에게 풍수지리를 봐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찬은 니나 왕의 남편 테디 왕이 처음 납치됐을 때 니나 왕에게 반드시 살아돌아올 것이란 점괘와 함께 도교사원에서 기도를
같이 하면서 가까워졌다.
실제 첫 납치에서 남편이 살아돌아오자 토니 찬에 대해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쌓였으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
남편이 두 번째 납치당한 뒤 영구 실종됐을 때도 토니 찬은 니나 왕에게 남편이 틀림없이 생존해 있을 것이란 믿음을 주며
니나 왕 곁을 지켰다.
풍수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이 궁극적 목표로 오행(土木金火水)의 기운이 서로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융화를 추구한다.
건물과 사물의 위치를 정하는 데 있어서도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편하게 지내자는 생각에서 발현됐다.
홍콩은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와 다르게 사고방식은 동양적이다.
이들은 행운과 불행이 모두 풍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무사안녕과 풍요를 소망하는 중국 남방인 특유의 전통문화다.
한국에서는 풍수가 대체로 `죽은 자'를 위한 묘지 자리 풍수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홍콩인은 철저하게 `산 자'를 위한 풍수에 집착한다.
바람과 물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며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집, 사무실, 활동, 기운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결혼, 개업 등 중요한 행사의 일시 선정을 풍수사에게 맡기는 것이 관례화돼 있고,
건물을 지을 때 반드시 풍수대가의 면밀한 조사 후에 부지선정, 건물의 방위, 문과 창문의 방향, 가구의 위치 등을 결정한다.
앉는 방향이나 색깔, 인테리어, 식물 등까지 세심하게 신경쓴다.
지난해 9월 홍콩에 디즈니랜드 테마파크를 세우면서 미국 디즈니랜드사는 현지 풍속을 고려해 홍콩 풍수사들과 자주 상의했다.
부지를 고를 때부터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하는 배산임해(背山臨海) 원리를 따르고 개장일도 풍수사들이 골라준
`손없는 날' 9월 12일로 잡았다.
결혼식 연회장 면적도 `행운의 숫자'인 888m2에 맞추고 오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 조리실에서 불을 사용치 않도록 하기도 했다.
심지어 정문 위치도 풍수사의 권고에 따라 12도 정도 옮겼다.
심지어 최근엔 홍콩 과학연구의 본산이라는 응용과학기술연구소가 이주 부지를 잡기 위해 세 차례나 풍수사를 초빙,
조언을 듣는 데 공금 18만 홍콩달러(2천200만 원)를 사용한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홍콩에서 건물을 설계할 때 설계사와 자본출자자, 풍수사의 의견이 어긋나면 풍수사의 의견을 따른다.
일반적으로 풍수 공정가는 1평방피트당 10위안 정도지만 대가의 경우엔 부르는 게 가격이다.
풍수가 보편화되면서 풍수사가 논어 교사로 채용되기도 하고 로펌처럼 여러 풍수사를 고용하는 풍수 전문회사도 생겨났다.
홍콩섬 도심 센트럴의 중국은행, 홍콩상하이은행(HSBC), 청쿵(長江) 타워 간의 `풍수전쟁'은 홍콩 풍수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얘기다.
먼저 1986년 준공된 홍콩상하이은행(HSBC) 건물은 영국을 상징하는 은행으로 빌딩 자체가 우물이 돼 땅의 기운을 흡수하는
동시에 정면 입구를 산 쪽으로 향하게 만들어 빅토리아피크에서 내려오는 용맥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놓았다.
'기'가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1층을 뚫어 놓기도 했다.
바로 옆자리에 1989년 완공된 중국은행 자리도 홍콩의 `기'가 뭉친 곳이다.
주권 반환을 앞두고 중국이 의도적으로 홍콩, 나아가 영국의 기를 꺾기 위해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연상케 하는
중국은행 건물을 세웠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칼날'을 마주보게 된 HSBC 측은 옥상 측면에 대포처럼 생긴 크레인을 설치, 포구를 중국은행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다른 주변 건물은 옥상에 반사유리를 설치해 중국은행 건물이 내뿜는 악운에 맞서고 있다.
중국은행에 인접한 아시아 최대 부호 리카싱의 청쿵타워도 풍수사의 조언을 따랐다.
사무실을 어항으로 에워싸고 수천만 원짜리 금붕어를 기르는 것으로 중국은행과 HSBC의 살기에 응수하고 있다.
풍수사들은 금붕어는 기에 민감해 자신의 기가 타인의 기를 이기지 못할 경우 죽어버린다고 믿고 있다.
중국은행의 칼을 대포, 또는 물, 거울로 맞서겠다는 뜻이다.
가까운 홍콩 총독관저도 HSBC에 의해 '기'를 빼앗기고 중국은행의 사기(邪氣)에 눌려 있는 곳이다.
주권 이양 후 퉁치화 행정장관은 이곳에서 거주하지 않은 채 외빈 접대용으로만 사용했다.
홍콩에서 최고층 건물인 국제금융센터(IFC)도 주변 빌딩보다 지나치게 높아 기를 모을 수 없다는 풍수사의 조언을 참고해
홍콩 상공의 좋은 기운을 빨아들이겠다는 뜻에서 독수리 발톱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홍콩은 작은 어촌에서 국제도시로 성장하는 데 100년이라는 세월밖에 걸리지 않은 탓에 타고난 길지(吉地)로 일컬어진다.
홍콩인들이 집요하리만큼 풍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부와 명예를 얻고 싶다는 바람이나 욕심보다 자연의 조화인 풍수에
거슬렀을 때 좋지 않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나쁜 기운이 있다고 믿으면 적극적으로 좋은 기운으로 흐름을 바꾸려 풍수진 대책을 세우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운명을 믿지만 운명에 순종하기보다 운명을 풍수로 극복하려는 의지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정주호 홍콩 특파원 |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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