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구속, 15년 해고자 경력 노동투사의 이유 있는 변신
경영진과 해외시장 영업 나서고 경영 위기 돌파 위해 '노사상생' 강조
검사 출신 변호사와 자원봉사하다 만나 평생 반려자로 결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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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내외 모든 조선업계가 어려운 지금은 노사가 소통하고 협력하고 상생할 때다.
노사가 일치단결하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일단 돌파하면 우리는 탄탄대로로 갈 수 있다."
조선업계 회사 사장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노사 상생을 통해 지금의 경제 위기를 돌파하자고 역설하는 말이 아니다.
세계 조선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의 오종쇄(50) 노조위원장이 최근 치러진 18대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뒤 밝힌 소감이다.
현대중공업 노조 역사상 가장 높은 64%의 지지율로 노조위원장 연임의 첫 기록을 세운 오 위원장은 이처럼 그의 평소 언변만
보고는 회사 최고경영자(CEO)인지, 노조위원장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지난해 회사 경영진과 함께 발전설비를 수출하고 있는 쿠바 현지를 방문하는 등 노조위원장으로서 해외 영업 활동에까지
나서는 '파격 행보'로 주목받았던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소감인지도 모른다.
이런 행보만으로도 놀랍지만 그가 걸어온 과거사를 들여다보면 더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변신을 했기 때문이다.
오 위원장은 1980년대 말 소위 어두웠던 시절 노동운동의 최전방에서 투쟁을 외쳤던 열혈 노동 투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대기업 노조의 맏형 격으로 노사 화합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는 선두주자, 노조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실험적 노동운동가라는 안팎의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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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오 위원장이 올해 임금협상을 회사에 위임하기로 결정한 후 최길선 현대중공업 사장(우)과 위임식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오 위원장은 위원장 재임기간 2009년 임금협상을 위임한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중요한 순간으로 꼽았다. 사진.장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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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중심의 강성 노동운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즈음 새로운 변혁적 사고로 노조의 사회적 기여와 봉사, 희생, 그리고
책임감을 강조하며 노사 상생을 앞세우는 합리적 노동운동을 이끌어가면서 노조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선봉에 서있는
이가 바로 오 위원장이다.
특히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복수 노조와 노조 전임자 문제에서도 노조가 책임지는 독립된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런 그가 투쟁의 노동운동에 앞장서다 해고돼 1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해고자로 지내며 금속연맹(현 금속노조) 부위원장까지
지낸 핵심 노조 간부 출신이라면 쉽게 상상이 안 간다. 고교 졸업 후 시작된 오 위원장의 노동자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이다.
그는 기업노조가 설립되면서 한국 노동운동이 태동하기 시작한 1980년대 1세대 노동운동의 역사를 장식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현대자동차노조와 함께 당시 국내 노동세력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던 현대중공업노조(옛 현대엔진 노조)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권용목 씨와 더불어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 오 위원장이다.
현대중공업은 지금 15년 연속 무쟁의를 기록한 노사 화합의 모델로 거듭난 사업장으로 변모했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벌이며 한국 노동운동의 투쟁을 주도했던 노동계의 전초기지이자 파업의 진앙이었다.
1987년 7월 노조설립 후 첫 집행부의 교육홍보부장을 맡은 그는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다른
계열사 노조 집회까지 주도한 혐의로 그해 12월 첫 번째 구속 사태를 맞고 곧바로 해고된다.
15년 해고자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양심수 석방으로 1년여 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또다시 128일 간의 파업 현장에서 "복직될 때까지 사과 장사를 해서라도
투쟁하겠다"며 파업을 독려하는 연설 등의 불법 파업 지원한 혐의로 1989년 초 2차 구속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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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오종쇄 노조위원장의 부인 박서진 변호사(우측 두 번째)와 두 아들이 프랑스 선박
명명식에 스폰서(명명자)로 초청됐다. 선박의 스폰서는 완성된 배의 이름을 짓는 명명식의 주인공으로,
주로 선주의 부인이나 딸, 선주 측의 고위 여성 관계자 등이 맡는 것이 관례여서 노조위원장 부인이 스폰서로 초대된 것은
이례적이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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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조집행부는 노동 탄압에 파업을 선언하고 1990년 4월 노조 간부와 조합원 150여 명이 80여m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 투쟁을 벌인다. 말하자면 그 유명한 현대중공업노조의 '골리앗 파업'은 오 위원장이 원인 제공자인 셈이다.
1991년 출소한 그는 현대그룹 산하 10여 계열사 노조를 결합한 현대그룹노조총연합(이하 현총련)을 창립한 뒤 현대정공 파업에
또 한 번 개입하면서 3번째 구속되고 이후 1993년 현총련 투쟁을 주도하다 마지막 4번째 구속 사태를 맞는다.
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평가받는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조의 태동 단계에서부터 노동운동에 온 몸을
불사르며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현대중공업 입사 전 2년여 근무했던 자동차부품업체를 임금 체불로 그만두고 나와야 했던 쓰라린 노동 현장의 첫 경험이 그를
노동 투사로 이끈 원동력이 됐을 지도 모른다.
1994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이하 전노대)와 1995년 전노대를 토대로 한 민주노총의 출범까지 지켜본 오 위원장은 1996년
현총련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호주에 2년간 노동 연수를 떠났다가 1999년 산별노조의 전신인 금속연맹 부위원장에
당선돼 2002년까지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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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임태희 노동부 장관(좌측 네 번째)과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좌측 다섯 번째) 및
1990년 골리앗 점거 당시 투쟁했던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노사화합을 다지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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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반려자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노조 간부와 변호사의 인연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부인은 인천과 서울에서 검사로 활약했던 박서진(40) 변호사.
박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원으로 지내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2002년 오 위원장과 처음
대면했다. 당시 ‘아시아의 친구들’이라는 경기도 외국인 노동자센터의 한글교실에서 함께 자원봉사를 한 두 사람은 박 변호사가
2003년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들어간 뒤에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사랑의 씨앗을 싹 틔우다 결국 2004년 결혼에 이른다.
오 위원장은 부인을 만난 그해 현대중공업 노사가 일부 해고자 복직에 합의하면서 15년 만에 복직하는 기쁨도 함께 누린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03년 첫 출근한 그에게 또다시 불운이 찾아온다.
협착으로 인해 오른손가락 3개 마디가 잘려 나가는 산재를 당한 것이다.
그는 1년여 휴직하며 4번의 수술을 받은 끝에 2004년 다시 현장에 복귀한다.
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주변의 요청으로 2007년 노조 내에 설립된 노동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 노동운동의 전면에
다시 나서게 된다. 노조는 정책 역량이 필요하다는 신념에 따라 연구소 설립에 적극 나섰던 점도 고려됐을 게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꿈꾸는 노동운동을 실현하기 위해 그해 다시 노조위원장 선거에 나선 오 위원장은 높은 득표율로 당선의
영광을 안는다.
지난해 14년 연속 무쟁의 타결을 이끌어낸 데 이어 올해 임금 협상을 회사에 위임해 조합원의 고용 안정을 약속받으며
연속 무쟁의 타결 기록을 15년으로 갈아치운 뒤 12월4일 노조 역사상 첫 연임 노조위원장 취임과 함께 또다시 새로운 노동운동의
역사를 써 나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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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쇄의 노동철학
"노동=봉사,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과 최고의 복지 고용 안정 이루겠다"
1987년 설립 때부터 올해까지 22년간 현대중공업 노조의 역사와 운명을 함께 했던 오종쇄 노조위원장.
투쟁일변도였던 과거의 노동운동 방식에서 완전히 탈피해 노사 화합과 상생을 위한 합리적 노동운동의 새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이런 변화를 두고 본인 스스로는 "노동운동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 게 아니라 노동운동의 방법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 위원장이 추구하는 노동운동의 핵심은 '노동=봉사'라는 공식을 통해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과 노동자에게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최고의 복지인 고용 안정을 이루겠다는 두 가지 목표로 요약된다.
이는 항상 그가 머리와 가슴에 담고 있는 노동자로서의 꿈이라고 한다.
"내가 마지막까지 꿈꾸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대목에서는 강한 의지가 물씬 배어난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오 위원장은 과거의 그를 넘어서면서 오늘도 변함없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가 1세대 투쟁의 노동운동 방식을 던져 버리고 새로운 2세대 노동운동을 시작한 것은 2년 전인 2007년이다.
1987년 해고 이후 2003년 복직에 이어 2007년 현대중공업 노조의 제17대 집행부를 이끄는 위원장 선거에서 60% 이상의
높은 득표율로 당당히 당선되면서 자신의 꿈을 현실로 실현하는 데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합리 노선의 현장 노동조직과 뜻을 같이한 뒤 새로운 모습의 오종쇄를 보여 주겠다며 위원장 선거를 통해 다시 일어선
그를 현장은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해고 이후 꼭 20년 만에 현대중공업 노조의 수장으로 재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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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조가 펼쳤던 사랑의 장기기증운동을 위한 협약식 후 회사 민계식 부회장(좌측 네 번째)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오종쇄 위원장(좌측 세 번째) 사진.장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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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 노조위원장으로 많은 성과 올리며 노동운동 새 바람 불러
그가 이렇게 다시 시작한 노동운동은 노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혼신의 힘을 쏟았던 각종 노조 사업의 성과물로 나타났다.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기존 노조가 할 수 있었던 사고와 행동의 틀을 뛰어넘은 다양한 형태의 사업이었기에 각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위원장이 되기 직전 노조의 정책 역량을 키우고자 그가 주도해 설립한 노동문화정책연구소가 첫 번째였다.
연구소는 노사와 대중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는 노조로 거듭나려는 시발점으로 단순 역할의 노조 개념을 바꾼 의미 있는
시도였던 셈이다.
위원장 취임 후 얼마 안 돼 회사 경영진과 함께 이동식 발전설비의 해외 영업을 위해 쿠바를 방문한 것도 파격적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오 위원장은 쿠바에서 카를로스 라헤 당시 부통령를 포함해 기초산업부 장관, 전력청장 등을 잇따라 만나 노조 차원에서
품질 향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위원장의 해외 영업에 대해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노사가 함께 해외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앞으로도 회사 발전과 조합원의 고용을 위해서라면 또다시 해외 영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상주하는 외국인 선주와 선급사 고객들에게 매년 연하장을 보내고 대규모 수주 시에는 발주처에 서신을 보내
고품질 제품을 납기 내 공급하겠다고 약속한단다.
마치 CEO 같은 노조위원장의 모습이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봉사도 그의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한 대규모 경로위안잔치에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사업에 이르기까지 활동 내역을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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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쇄 위원장이 지난달 첫 연임에 도전한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뒤 조합원들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장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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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아름다운 생명을 나누는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에도 앞장서서 노조뿐 아니라 회사, 그룹 계열사 임직원 1만5천여 명의
장기 기증을 서약을 이끌어냈다.
장기 기증 단체 서약 기록으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기록이었다.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도 "장기기증운동은 그룹 임직원의 숭고한 사랑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하고 ”앞으로
사회공헌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봉사를 통해 노동하는 오 위원장의 실천적 행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지난해 14년째 임단협 무쟁의 타결을 이룬 데 이어 올해에는 노조 설립 이래 처음으로 임금협상을 회사 측에 위임하는
무교섭을 선언,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세계 1위의 조선사 노조가 임금협상을 회사 측에 위임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오 위원장은 "위기를 맞아 조합원의 고용 안정에 선택과 집중을 기한 것"이라고 말했했다.
그의 노력은 회사 측 대표와 조합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내용의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노조가 노사협상 과정에서 요구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무조건 파업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고 투쟁을 위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투쟁을 하지 않고 요구를 관철시키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협상의 길이라는 그의 믿음이 있었기에 15년째 무쟁의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2004년 노사 현안에서 이견을 보이던 민주노총에서 전격 탈퇴한 데에도 그의 신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오 위원장은 매년 상급 노동단체 이뀰부하던 연맹비 5억여 원을 적립해 마련한 27억여 원에 조합비를 더해 조합원과 협력업체
근로자, 지역 주민을 위한 대규모 평생종합휴양소를 짓겠다는 당찬 계획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오 위원장은 이와 함께 올 3월 이영희 노동부 장관,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각각 참석한 가운데 두 차례에 걸쳐 노사 화합을
대내외에 선포하고 대통령상인 노사문화대상을 수상하는 대규모 행사를 가져 또다시 주목받았다.
특히 현대중공업 노조 초창기 투쟁의 상징이었던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임 장관과 함께 '화합의 골리앗'이라는 현판을 부착하는
색다른 행사로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위원장 첫 임기에 그가 지나온 길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는 이정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젠 연임에
성공하면서 더 많은 활동이 기대된다.
“노조의 새 패러다임은 사회적 기여와 봉사, 책임감”
2009년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을 남겨 놓고 정부와 재계, 노동계 사이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복수 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가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고 있는 모양새다.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노조는 폭풍전야와 같은 이 시기에 벌써부터 조용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노동운동의 새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연임 집행부는 노조 조직을 저비용 고효율 체제로 운영하기 위해 기존의 12부를 7실로 슬림화했으며 향후 전임자를 줄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이며 현대중공업 노조가 한발 앞서 일을 진행하는 것뿐이라는 그의 설명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일에
과감히 앞장서려는 선구자적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노조도, 회사도 변해야 산다'며 노조의 새 패러다임을 사회적 기여와 봉사, 책임감으로 규정하고 있는 오 위원장은 복수 노조와
전임자 문제에 대해 새 집행부 간부들을 상대로 다시 한 번 목청을 높였다.
"복수 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만큼 모든 노조 간부는 조합원들에게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과거 안일한 노조의 개념을 벗어던지고 새 시대가 요구하는 봉사하고 희생하는 노조를 준비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덧붙여 그가 강조하는 노조와 노조 간부의 새 역할론은 모든 노조가 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듯하다.
"노조는 이제 단순히 임금, 복지와 같은 생활의 윤택만 생각할 게 아니라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한 고용 유지와 고용 창출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작은 이득보다는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양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이로 인한 성장과 발전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생활여건을 확보하는 노조야말로 치열한 국제 경쟁구도 속에 있는 오늘날에 필요한 노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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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 노조위원장 재임기간에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중요한 일을 꼽는다면.
2007년 말 노조위원장에 처음 당선된 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회사 측과 두 번의 임단협 교섭을 벌였는데
올해 임금 협상을 회사에 위임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중요한 일이었다고 꼽고 싶다.
2005년부터 조선업계가 좋았고 2009년 최정점에 있었다. 물량도 많았다.
가장 좋을 때에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회사에 임금 협상을 양보한 것이다.
이는 어려울 때에 모든 조합원의 고용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라고 회사에 제안한 것이다.
회사에도 사람 중심의 경영으로 가자고 요청했다. 직원을 자르는 구조조정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아울러 현대중공업 노사의 이런 모습에서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본다.
지난해에 잘 했기에 2009년 임단협을 위임할 수 있었다.
- 현대중공업 노사가 15년간 무쟁의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보나.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노사가 서로에게 가져야 하는 신뢰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노사 간의 신뢰와 믿음은 앞으로도 계속 깊어져 가고 커져 가야 한다.
그리고 노조 설립 이래 협상과 투쟁을 해오면서 노동자의 최대 복지로 생각하고 있는 고용 안정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그 밑바탕이 됐다고 본다.
-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노사관계에서는 신뢰와 믿음뿐 아니라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굉장히 중요하다.
노조가 투쟁한다고 해서 들어준 요구라면 대화를 통해서도 들어줘야 한다.
반대로 대화를 통해서도 안 된다고 했으면 투쟁을 통해서도 안 된다고 해야 하는 원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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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위원장이 강조하는 노조와 노조 간부의 새 역할론은 단순히 임금, 복지만 생각할 게 아니라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한
고용 유지와 고용 창출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장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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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연임 노조위원장인데.
연임을 밀어준 표심에는 안정 속에서 조합원의 권익을 높이는 데 더욱 최선을 다해 달라는 많은 조합원의 바람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본다. 믿고 지지한 만큼 절대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연임의 기쁨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책임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 내년 임단협은 어떻게 진행하나.
올해처럼 위임은 하지 않는다. 단협까지 해야 하는 내년에는 정상적인 협상을 진행한다.
올해 임협 위임으로 인해 노조와 조합원 사이에 일부 오해도 있었다.
내년에는 조합원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협상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강성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어떻게 평가하나.
거기에도 노동자들을 위해 같은 노조 활동,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과 방법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하기에 별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 조선업계가 수주 부진으로 위기에 빠져 있다. 전망은 어떤가.
개인적으로 조선시장은 앞으로 상당 기간 호황의 시대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
현재 전 세계의 발주량이 100이라면 생산능력은 200이다. 50% 이상은 구조조정해야 하는 실정이라는 의미다.
신규 선박 가격이 2005년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다. 최대 50%에서 30%까지 하락했다.
덤핑으로 인한 교란이 일어나면 세계 조선시장은 더욱 어려워진다.
세계 1등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이 이 상황에서 본격적인 수주전에 뛰어든다면 이는 덤핑전에 가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 위기의 조선을 위한 대책이 있다면.
우선 노사를 중심으로 위기 상황에서 긴밀히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조선 노동자의 경우 다기능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철판 용접자가 파이프 용접도 하는 등 다기능, 고기능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조선업계의 선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노동자들은 내가 받는 임금 이상으로 생산성을
높인다는 마음으로 생산성 향상에 적극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회사는 영업에 최선을 다해 많은 선박을 수주하는 데 노력하면서 조합원의 고용 유지를 위해서도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 대기업 노조의 역할에 대해 평소 갖고 있는 생각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원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노조를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를 1등 기업으로 만들고 1등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키는 노조,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노조가 돼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항상 하는 말이지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노동운동도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다.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면서 살아갈 것이다.
생산 현장에서 현장을 중심에 두고 현장을 중시하는 노조를 운영하고 노동운동을 해갈 것이다.
- 조합원과 회사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국내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조선업계는 침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사가 직면한 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려면 역시 내 것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노사가 협력하고 힘을 집중해야 한다.
장영은 울산취재본부 기자 | young@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