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의 가정집 건물에 있는 조그만 지하실.
이곳에서 일하는 20여 명의 젊은이들은 월풀을 비롯한 세계적 기업들의 신상품 라인을 디자인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인도 소비자들을 염두에 둔 제품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세탁기 디자인에 여념이
없는 한 20대의 귀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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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전업체인 월풀과 GE, 필립스, 보쉬 등 유수의 다국적 회사들이 인도에 디자인 연구센터를 속속 마련하고 있다.
사진은 월풀의 세탁건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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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디자인하는 것은 비단 제품만이 아니다.
인도 경제지인 이코노믹 타임스는 최근 ‘디자인 아웃소싱의 허브로 부상하는 인도’라는 기사에서 인도에 디자인을
하청하는 서방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이들 디자이너가 회계 등 기업의 특정 업무나 콜센터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인도
아웃소싱 산업의 얼굴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세계적 생활용품 메이커인 영국의 레킷 벤키저를 비롯해 최근 인도에 디자인을 하청하는 업체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또 월풀과 제너럴 일렉트릭(GE), 필립스, 보쉬 등 유수의 다국적 회사들은 이미 인도에 디자인 연구센터를 마련했다.
뉴델리 소재 데스마니아 디자인의 아누즈 프라사드 수석 디자이너는 인도에 대한 서방업계의 디자인 아웃소싱이 처음에는
소규모로 시작됐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비상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기획하고 인도에서 디자인한 뒤 중국에서 만들어 세계시장에 판매하는 것이 제조업의 최신 경향”이라는 게
그의 설명.
서방 기업들이 디자인을 인도에 맡기는 것은 무엇보다 비용이 싸기 때문이다.
선진국 디자이너들은 통상 인건비를 시간 단위로 받는데, 예를 들어 유럽의 경우 자동차 디자이너는 시간당 많게는
800달러를 줘야 하고 미국은 더 비싼 편이다.
반면 같은 능력의 인도 디자이너는 시간당 60달러면 족하고 굳이 시간 단위로 인건비를 계산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인도는 미국과 12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기업활동이 하루 24시간 내내 중단 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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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패션디자인 학교 학생들이 디자인한 의상을 선보이는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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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디자인 아웃소싱은 그동안 제품의 사이클이 짧은 소비자 가전업계가 주도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도 디자인 시장의 잠재력에 눈을 뜨는 다국적 기업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인도 디자이너들이 항공이나 자동차, 발전소 등과 같은 분야에서 3차원 모델링과 공장 엔지니어링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이면서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기업들도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산업과 제품 분야에서 뛰어난 디자이너가 부족하다는 점은 인도 디자인 업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영국이 15만 명, 중국과 대만이 각각 10만여 명의 디자이너를 갖고 있는 반면, 인도가 보유한 숙련된 디자이너는
1천500~2천 명에 그치고 있다.
인도 국립디자인연구소(NID)의 달리 오코시 소장은 “디자인 아웃소싱은 수년 전에 목격했던 IT(정보기술) 붐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면서 “부족한 인력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 분야의 성장세가 더욱 가속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프라사드 디자이너는 “수주 건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많은 디자인 업체들이 고객사 관리 차원에서 해외지사를
설립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현재 30억 루피(620억 원 정도) 규모인 디자인 아웃소싱 산업이 머지 않아 소프트웨어
분야의 성공신화를 재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규득 뉴델리 특파원 | wolf85@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