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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으로 자신을 경영하라

감정적이 되라고?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학습해온 감정의 개념으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성공하는 CEO의 습관 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가 감정적인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신은 너무 감정적이야!”라는 표현은 경멸과 모욕에 가깝게 여겨진다.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성, 혹은 합리성과 감정이 서로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되는 것은 데카르트 이후 서구철학의 유산이다. 그 후로 육체와 정신이 각기 다른 논리로 움직이며 정신에 의한 육체의 완벽한 통제가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후로 육체적 특징으로 여겨지는 정서와 감정은 통제와 감시를 벗어나면 위험한 것이 되어 버렸다.
엘리아스(Ellias)라는 문화학자는 서구 문명화의 과정을 바로 이러한 감정과 정서의 ‘온순화’ 과정으로 설명한다. 서구문명을 대표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서구귀족들은 미개한 천민들과 문명화된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해 감정의 통제와 이성적 행동의 규범을 정했다. 식탁에서의 예절과 각종 궁정행사에서의 예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때 문명화된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미개한 감정’의 절제에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심리학에서는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을 인지와 정서로 약간 다르게 표현한다. 그러나 정서의 영역은 여전히 미개하고 불완전한 영역으로 여겨진다. 동물적 본성과 생존본능의 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서의 영역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통제되어야 하고 승화되어 분출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로이드(Freud)는 이런 방식의 정서와 본능적 욕구의 억압은 갖가지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진 다고 경고한다. 이 때문에 이성의 통제가 느슨해지는 꿈이나 실수 등을 통해 드러나는 행동에서 정신 질환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프로이드는 주장한다.
서구문명, 즉 온순화된 서구적인 삶의 방식이 전 지구적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감정과 정서는 모든 문화권에서 회피하고 억압되어야만 하는 영역이 된다. 특히 경제, 경영의 영역에서는 감정이나 정서와 관련된 표현이 거의 금기에 가까운 단어로 여겨진다. CEO의 리더십과 관련해서는 감정이 더욱 터부시된다. 감정이 합리적 판단을 저해하는 가장 위험한 요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CEO는 감정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 감정에 의해 일을 그르치는 일이 절대 없어야 한다. 정말 그런가?
감정은 사회가 아무리 문명화되어도 여전히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예를 들어 “불이야!”하는 외침에 공포의 감정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저 단순한 옆집아이의 울음 정도로 들린다면 불이 난 곳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불을 피해 도망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결과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슬픔도 마찬가지다. 슬픔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다. 슬픔을 느끼고 우는 행위는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거나 몸이 아프면 눈물로 자신의 무기력함을 호소한다.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는 좌절의 상태에서는 누구나 슬픔을 느끼며 눈물로 자신의 무기력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울고 있는 CEO의 사진은 해외토픽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남자소변기 앞에도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필자는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나오던 소변이 꽉 막히는, 숨 막히는 경험을 한다.)
자유로운 감정표현의 억압은 생명을 단축한다. 지난 해 한국의 남녀 평균수명 차이는 무려 7년이나 된다. 여자의 평균수명이 79세인 반면 남자는 72세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여자가 남자에 비해 오래 살기는 하지만 이렇게 남녀의 차이가 큰 나라는 없다. 찜질방에서 아줌마들이 단체로 연속극을 보며 울고 웃는 사이, 존귀와 위엄을 갖춘 이 땅의 남자들은 오줌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이다. 이 땅의 남자들은 아무도 멋있게 보지 않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생명을 단축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죽었을 때의 일이다. 거의 한 달에 걸친 장례기간 동안 전 영국의 TV에서는 다이애나비의 생전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다른 프로그램은 거의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신데렐라와 같은 신분상승과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해 괴로워했던 삶의 흔적들, 갖가지 봉사활동에 몰두하는 모습들, 사건 장소의 참혹한 모습과 장례식 장면들이 쉬지 않고 영국인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런데 장례식이 모두 끝난 후, 흥미로운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장례식 이전에 비해 영국전체의 우울증 환자가 3분의 1로 줄었다는 것이었다.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야기된 자유로운 감정의 발산, 억압된 눈물의 자유로운 분출로 정신적인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신경생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눈물에는 카테콜라민이라고 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섞여 나온다고 한다. 한번 호탕하게 웃는 것은 100미터를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CEO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굳어 있다. 자신은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포커페이스가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이 그들의 생명은 단축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감정을 억압하는 기업경영은 뒤쳐지게 되어 있다.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일찍 죽을 뿐 아니라 사업도 망한다는 이야기다. 합리성이 보편화된 오늘날, 모두가 추구하는 합리적 경영 방식만으로는 남들과 차별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같은 합리적 구조로 경쟁한다면 자본투자가 많은 기업이 승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21세기 기업경쟁력은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을 벗어나 감정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가에 의해 결정된다. 감정을 적극적으로 경영에 포함시키는 능력이 휴경영의 핵심이다. 탁월한 판단능력으로 각광받던 CEO가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상실된 병에 걸렸다. 그 후 그가 내린 모든 결정은 형편없는 것으로 판명 났다는 사례가 있다.
이와 관련해 신경생리학의 대가인 아이오와 대학의 다마지오(Damasio) 교수는 대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이 사고와 추론영역의 통합적인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즉, 감정이 이성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정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너무나 중요한 정보와 행동의 준거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째, 공포(fear)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피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불이야!”하는 소리로 인해 생겨난 공포는 우리의 행동을 민첩하게 만들어 화재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시킨다. 그런데 불이 났는데도 안 무섭다고 폼 잡는 바보가 의외로 많다. 실제로 지난 IMF 사태 때 많이 봤다.
둘째, 화(anger)는 그저 억누를 일만이 아니다. 화가 나면 싸울 용기가 생긴다. 부정과 오류, 불합리한 요인들에 적극적으로 대항할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화가 나면 그냥 걸으며 삭히라는 외국 스님의 가르침은 하루 세 끼를 벌어야 하는 보통사람들이 따르기에 황당한 측면이 있다.
셋째, 슬픔(sadness)은 ‘나는 약하다. 나를 도와다오’라는 표현이다. 즉,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를 구하는 행동이다. 그동안에는 낭떠러지에 매달려서도 자존심 때문에 남에게 손을 벌리지 못하고 버티다 떨어지는 사람을 ‘싸나이’로 여겨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사람들을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 역시 아주 자주 가까운 이들에게 이런 바보짓을 한다. 특히 아내에게.
넷째, 혐오감(disgust)은 자신이 받아들이고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물론 인내할 수 있는 한은 인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종류에 따라 다르다. 입에 쓴 한약은 참을 수 있는 한 참고 들이켜야 한다. 그러나 상한 우유를 삼키며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달다’고 할 멍청이는 없다. 그럼에도 독약인 줄 알고 들이키는 사람들이 요즘 뉴스에는 너무 많이 나온다.
다섯째, 흥미로움(interest)을 느끼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삶이 재미있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신만 재미있어질 뿐 아니라 남도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다른 사람들을 이 재미에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나기 때문이다. 필자 주변에는 요즘 들어 골프를 치자는 친구들이 많다. 대부분 이제 갓 100타를 넘긴 친구들이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함께 하자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밖에도 보다 다양한 삶의 재미가 있어야 할 텐데.
여섯째, 놀람(surprise)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사람들도 안 놀란다. 중요하거나 예상치 못했던 일일수록 사람들은 놀란다. 놀란다는 것은 중요한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상대가 태연한 척 한다면 분명 얄미운 사람이다. 느닷없는 변화에는 소스라치게 놀래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호들갑 떤다고 뭐라 할 일이 아니다.
일곱째, 기쁨(joy)은 우리가 정말로 추구해야 할 감정이다. 세상에 기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기쁜 일이 생겨도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특히 기뻐할 줄 모르는 상사를 둔 직원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자신의 기쁨을 함께 해주는 사람과는 언제든 함께 일하고 싶지만, 기쁨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과는 상종도 하기 싫은 법이다. 기쁨은 창조적인 재생산의 원천이고 기쁨의 공유는 삶의 활력이다. 아무도 공유하지 못하는 기쁨은 기쁨이 아니다.
이와 같이 감정은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 동반하여 일어난다. 자신의 감정변화에 민감한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다. 남들의 감정에도 충실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CEO는 감정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능력을 살로베이(Salovey)와 마이어(Mayer)는 정서지능이라고 부른다. 정서지능은 다음의 세 가지 능력으로 요약된다. 자신의 정서를 수시로 점검하고 확인하고 표현하며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정서를 확인하고 해석하고 이해하 는 능력,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이런 정서의 정보들을 활용하는 능력.
쉽게 정리하자면 자신과 타인의 정서가 주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경우 타인의 정서가 주는 정보는 매우 잘 활용하면서도 자신의 정서가 주는 정보에는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마디로 정서의 불균형이다. 자신의 정서가 주는 정보에 둔감한 사람은 타인의 정서가 주는 정보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특히 권위적 리더십에 길들여진 한국의 CEO들은 자신의 정서를 숨기는 데 능하지만 자신의 정서를 합리적 판단의 기초로 사용하는 데는 미숙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정서가 주는 정보들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억누르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면 아주 극단적인 태도를 취한다. 최근 연이어 일어난 유명인사들의 충격적인 자살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서가 주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서지능이 높은 CEO가 되려면 자신의 정서를 글로 써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정신적으로 위기감이 느껴지며 괜히 두려워지는 느낌이 들수록 자신의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리해 보려고 노력한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첫째, 아무도 방해 받지 않는 장소를 찾는다. 요즘 같이 날씨가 좋을 때면 한적한 노천카페에 혼자 앉아 노트를 펼쳐 적어본다. 이 때는 맛좋은 카푸치노가 적격이다. 둘째,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서 적어본다.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적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즘은 좋은 펜션이나 콘도가 많다. 한번이라도 혼자 가보도록 하자. 셋째,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것들을 적어본다. 아무 단어라도 떠오르는 대로 적어본다. 섣불리 글 쓸 생각을 못하는 이유는 폼 나게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글은 남에게 보여주는 자서전이 아니다. 자신의 문제를 확실하게 찾아내는 방법일 뿐이다. 다섯째, 가능한 한 많이 떠오르는 대로 써본다. 문법 무시, 맞춤법 무시는 필수다. 그래야 솔직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참다가 곧 맞이하게 될 ‘죽거나 다치거나’ 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김 정 운
명지대학교 기록과학대학원
여가정보학과 주임교수
명지대학교 여가문화연구센터 소장

저 서
[문화의 심리], [휴테크 성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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