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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 해결을 기치로 내걸다

김연수 삼양사 설립자

지난 1955년 재계 서열 1위의 기업, 그리고 지금까지 건재하고 기업 삼양사는 일반인들에게 삼양설탕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아니, 삼양설탕이 아니고는 삼양사에 대해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양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삼양사는 1924년 ‘삼수사(三水社)’란 이름으로 시작된 국내 최고(最古) 기업 중 하나로, 첫발을 내디뎠던 당시의 사업은 농장을 현대식으로 경영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농촌근대화를 목표로 시작된 ‘농업경영’회사로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의 일본인 농장주의 횡포로 피폐해 가는 우리 농민의 참상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없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회사였다.
김연수가 이 같은 농장관리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맏형인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가 설립한 경성방직의 상무직을 맡아 경영에 참여하던 시기에서 비롯된다. 당시 김연수는 일본에 유학하여 중ㆍ고등학교를 거쳐 京都帝大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한 이후였다.
김연수가 설립한 삼수사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업이 장성(長城)농장의 개설이었다. 농업학교 출신을 선발, 농민의 선도ㆍ계몽, 김연수 집안의 문건을 정리해서 자산목록을 작성하게 하는 등 전라도 일대에 흩어져 있던 자가농토를 정리해 나갔다. 그것은 체계적인 농장운영의 시작이었고, 그 같은 체계적인 농장운영으로 해마다 소출을 늘릴 수 있었다.
이때부터 농장의 개설과 삼수사의 성장은 시작된다. 1931년에는 함평의 굴포 간척지를 인수하여 방조제를 쌓고 논을 조성하기에 이른다. 이곳의 거대한 공사에 소요될 공사비는 모두 92만여엔(圓). 이 자금은 당시 시세로 백미 약 20만 가마를 살만한 큰돈이었다. 이렇게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 약 400정보의 땅에 농장이 개설되었고, 1940년 농장의 총 수확량은 1만 2000석에 이르렀다. 굴포는 쌀의 집산지로 이후 1937년과 1940년에는 80톤급 자체 수송선까지 운항하게 된다. 당시 삼수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농장경영이 궤도에 오르던 1931년 사명(社名)을 삼수사에서 삼양사(三養社)로 변경한다.
김연수의 농장 개설을 통한 기업활동은 만주에서도 이어진다. 1936년에 몇 차례의 현지답사를 거친 후 '만주 삼양사'라는 현판을 걸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하여 만주벌판에 두 개의 농장을 개설하기에 이른다. 이 두 농장의 수확은 연간 1만 6000여 석이나 되었다. 김연수는 넓은 만주벌판을 농장으로 개설하는데는 돈을 벌자는 뜻도 있었지만 이주해 온 동포들을 정착시켜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는데도 큰 뜻을 두고 있었다. 그 뜻은 전라도지방에서의 농장 개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만주에서의 농장이 성공하자 이번에는 만주에서의 기업체 경영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 첫 사업으로 남만방적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는 우리 나라 산업사상 최초의 해외현지공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만방적의 한인 종업원 식량의 자급을 목적으로 황무지를 확보, 개간하여 ‘남만방적자급농장’을 만들기도 한다. 이 농장 개설로 인해 1000여명 종업원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전주공단 내의 삼양섬유 생산라인
그리고 1945년을 맞는다. 하지만 삼양사에 있어서 해방은 기쁜 일만은 아니었다. 국토분단의 상황으로 만주 각지에 널려있는 농장과 남만방적을 비롯한 사업체 모두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삼양사 기반의 대부분이 날아간 것이다.
해방 후 삼양사의 또 다른 선택은 염전개발이었다. 어렵게 허가를 얻어 염전축조공사를 거쳐 1949년 천일염 약 9000여 가마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다시 전쟁으로 소금생산이 중단되고, 염전마저 공산군에 빼앗기고 만다. 게다가 1950년 공포된 농지개혁법은 그나마 삼양이 소유하고 있던 농지마저 정부에 넘어가게 된다. 총 수확 15만석에 달하는 규모의 농장이었다. 다행히 9ㆍ28수복 후 다시 소금을 생산하며 민생에 기여하게 되는데, 이는 삼양의 재기에 큰 생명수가 된다.
전쟁은 김연수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전쟁이 제공한 기회는 아니다. 하지만 김연수는 전쟁 중 피난처인 부산에서 ‘먹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설탕이었다.
김연수는 이때 울산에 설탕공장을 짓기로 하고 간척지 개발경험을 자산삼아 7만 여 평의 갈대밭 매립공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1956년 1월, ‘삼양설탕’이 첫선을 보인다. 삼양설탕의 인기는 단연 최고였다. 시설확장공사로 생산량을 해마다 20~30%씩 늘려가야했다. 수출부문에서도 기록적인 급증세를 보여 오일쇼크 등 국제경기의 불황을 겪으면서도 1980년에는 전년 실적의 양에서는 2배, 외화획득에서는 5배의 급신장을 가져와 그 해 수출의 날에 ‘1억불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1억불은 대단한 실적이었다.
삼양은 이어서 섬유업과 화섬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간다. 김연수 스스로 1922년부터 해방직후까지 경성방직에서 경영을 주도했었기에 섬유사업에 충분한 강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삼양은 경성방직, 남만방적, 삼양모방 등의 ‘의(衣)’와 농장경영, 간척사업, 염전, 제당 등의 ‘식(食)’을 사업방향으로 정하여 국민생활개선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농업이 전부였던 나라에서 농장경영을 기업으로 시작한 것은 사업성으로서만이 아니라 국민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했던 김연수의 의지는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사업성을 고려한 것이었겠지만,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원초적인 발상을 아무나 쉽게 할 수는 없었던 시대에 보여준 그의 사상은 특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양사는 지난 70여 년 동안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지도 않았으며,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무리한 투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주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 해 농업, 제당, 방직, 화섬, 의약?바이오 분야 등 서서히 조금씩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기본에 충실한 것으로 사업을 시작한 김연수의 사상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삼양사의 모습이다.

임순철 객원기자| top@isto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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