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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협상 개시 쟁점과 대책은
박웅두 전농 정책위원장 "살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에 따른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이 올 연말로 끝난다. 이에 정부는 5월 6일 미 국과의 양자 협상을 시작으로 쌀 재협상에 들어갔다. 엄청난 충격파가 예상되는 쌀 재협상의 쟁점과 대책 등을 살펴본다.


진도군 농민회원들이 쌀 개방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쟁점과 주요 상대국
“깜깜한 상황이다” “관세화 유예를 기본 입장으로 하되 명분보다는 실리를 찾겠다.”
쌀 재협상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현재까지 이렇게 요약된다. 그러나 당장 손에 잡 히는 것은 거의 없다.
5월 6일 오전 9시(한국 시간 오후 11시)부터 워싱턴에서 한?미 두 나라의 양자 협상이 시작됐지 만 아직 협상 범위조차 뚜렷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번 쌀 재협상은 모든 교역품목의 관세화 개방이 원칙인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 최소시장 접근(MMA) 방식의 제한적 수입을 조건으로 10년간 쌀 관세화를 유예 받은데 따른 것이다.
올해가 바로 10년째가 되는 해여서 우리 정부는 연말 이전에 쌀 재협상을 끝내야 한다.
지난 1월 쌀 관세화 유예 의사를 담아 세계무역기구(WTO)에 협상 개시를 통보한 뒤 협상에 참가하 겠다고 밝혀온 나라는 미국, 중국, 호주, 태국, 캐나다, 인도, 이집트,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등 모두 9개국이다.
◆쌀 재협상 쟁점= 관세화로 전환할 것인지 아니면 관세화 유예 기간을 연장할 것인지 여부를 선 택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보면 쌀 재협상은 아주 단순하다.
쌀 시장을 관세화할 경우 초래될 국내 피해와 관세화 유예 시 감수해야 하는 의무 수입물량 등의 부담을 저울에 달아 유리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문제는 UR에 이어 `뉴 라운드'로 일컬어지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DDA 협상의 당초 일정대로라면 이미 작년 3월 추가적인 관세 감축률 등이 정해졌어야 했다.
하지만 DDA 협상의 지연으로 DDA시대에 적용될 쌀 관세율을 모르는 상황이어서, 관세화와 관세화 유예 중 어느 쪽이 유리한 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정부는 일단 관세화 유예 연장을 기본입장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국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오는 등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면 관세화 전환도 검토하 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양자 협상 중반까지는 관세화 유예 연장 조건이 주로 논의되겠지만 협상 기한인 9월말 직 전까지 절충이 안 되면 관세화 전환에 대해 본격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 초반에 쟁점화될 유예연장의 조건으로는 MMA 수입량 규모, 수입쌀의 관리방식 등을 예상할 수 있다.
MMA 쌀의 경우 기준연도(88∼90년) 평균 소비량의 1%(5만1천t)를 시작으로 올해 4%(20만5천t)까지 늘어나지만 어느 정도 추가적 증량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떡, 쌀과자 등으로 용도가 제한돼 있는 MMA 쌀의 작년 10월말 현재 국내 재고 물량이 274만 9천석으로 전체 재고미(763만2천석)의 36%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MMA쌀 증량 자체가 정부에게는 큰 부담이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쌀 수입개방 반대구호를 외치고 있다
획기적인 용도 확대 방안이 강구되지 않는다면 MMA쌀 재고 부담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쌀에 대해 관세화 유예를 적용받았다가 99년 관세화로 전환한 일본의 경우도 관세화 유예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가 재고 부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용도 자체도 주요 논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MMA쌀의 용도를 가공용으로 제한하지 말고 일반 가정용으로 유통될 수 있게 해줄 것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이와 맞물려 현재 농수산물유통공사를 통해 국영무역으로 수입쌀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 이 나올 수 있다.
아울러 우려되는 대목은 쌀 이외 다른 분야에서 요구사항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UR협정에 따른 농업협정문 부속서에는 관세화 유예 연장을 위해 상대국에 `추가적이고 수락 가능한 양허를 제공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으나 양허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쌀에서 양보하는 대신 광우병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스크린쿼터 등 다 른 통상 현안에서 양보를 받아내려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중국과의 마늘분쟁에서 마늘과 휴대폰이 연계된 것을 비롯해 국제 통상협상에서는 다양한 카 드가 오고간다는 것이 통상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양자 협상 상대국= 9월말까지 진행해야 하는 양자 협상 참여국 중 가장 위협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전세계 쌀 생산량의 31%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쌀 생산국이고 품질이나 가격 측면에서 도 경쟁력이 뛰어나다.
생산비의 경우 지난 95∼2000년 t당 80∼90달러 정도로 미국의 절반 미만이다. 특히 `동북 3성' 을 중심으로 해외 자본과 도정시설이 많이 들어와 고품질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 3월말 실무 논의를 위해 `한-중 쌀 협력분과위' 첫 회의를 가졌으나 중국측은 분 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첫 양자 협상 상대국인 미국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미국 내에서 쌀 재배 면적은 전체 경작지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 쌀 수출시장에서 차 지하는 비중은 태국, 인도에 이어 3∼4위권이다.
우리가 먹는 중단립종 쌀의 경우 70%가 캘리포니아주에서 생산된다. 게다가 미국쌀은 품질도 우수하다.
그러나 중국산에 비해 가격 등 종합적인 경쟁력에서 밀리는 만큼 미국은 굳이 관세화를 고집하지 않고 일정 수입량 보장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에서 민간자율수입(SBS)분으로 들여온 쌀 중 중국산 점유율은 95년 22.3%에서 지난해 78.8%로 높아진 반면 미국산은 53.4%에서 18.2% 떨어졌다.
다른 협상 참가국 중 우리나라에 MMA 방식으로 쌀을 수출했던 나라들로는 태국, 호주, 인도 3개국 을 꼽을 수 있다.
태국, 인도가 수출하는 쌀은 국내산과 다른 장립종이어서 우리 시장에 대한 이해관계는 크지 않다. 호주는 토양의 특성 등을 감안할 때 쌀 수출량을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 밖에 이집트,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캐나다 등도 우리 쌀 시장에 큰 이해관계는 없다고 전문 가들은 말한다.

파장과 대책
지난 90년대 초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진행될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정부는 쌀에 대한 관세화는 물론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의 수입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개방 절대 불가' 방 침을 세웠다.
식량안보 등 다른 이유도 있지만 쌀이 농가소득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농민 반발 등 정치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던 정부도 결국에는 미국 등의 거센 압력에 밀려 10년간 쌀의 관세화를 유예 받는 조건으로 M MA 수입을 받아들였다.

지난해 해남지역 농민들이 정부의 개정농정 등의 항의표시로 벼 수십 가마를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보내고 있다
10년째인 올해 우리 정부는 쌀 시장 추가 개방 문제를 다룰 쌀 재협상에 나섰지만 상황은 별로 달 라지지 않았다.
UR 이후 농촌경제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높아져 2002년 쌀의 농업소득 비중은 46.9%, 농가소득 비중은 21.6%에 달했다.
◆추가 시장 개방은 불가피= 관세화나 관세화 유예 중 어느 쪽을 택하든 추가적인 시장 개방은 불 가피한 상황이다. 그럴 경우 UR 때와 마찬가지로 농민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농 등 농민단체들은 추가 개방 절대 반대의 원칙을 세워놓고 내달부터 `길거리 찬반 투표' 등의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박웅두(朴雄斗) 전농 정책위원장은 "쌀 문제만큼은 농민들이 물러설 수 없다"면서 "9월에는 전국 농민 대회를 열고 쌀 협상안에 대해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농 등 농민단체에서 주장하는 쌀 추가 개방 반대 논리 중 하나는 식량자급 확보다.
지난해 곡물 자급도가 27%에 불과하고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5%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자급을 유지하고 있는 쌀마저 추가 개방되면 국내 농업 기반이 붕괴되고 식량 위기도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다.
농림부는 식량자급 논리와 관련, 자급률 목표치와 산출 방식은 다르지만 어느 정도 필요성을 인 정하면서 설정 목표를 검토 중이다.
최근 3년간 전세계 쌀 생산량이 소비량을 밑돌면서 지난해 쌀 재고율은 20.2%로 82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쌀은 전체 생산량 중 교역물량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지난해 전세계 교역량은 생산량의 6.6%인 2천 583만t에 불과했다.
특히 국내에서 소비되는 자포니카 계열 중단립종 쌀은 전체 교역량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돼 기상이변 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냉해로 국내 쌀농사가 흉작이었던 지난 1980년 당시를 봐도 연초 t당 346달러였던 국제 쌀시세가 이듬해 4월에는 t당 541달러까지 치솟았다.
성공적으로 관세화 유예를 타결짓고 현재처럼 가공용 및 주정용으로 MMA쌀의 용도를 한정할 경우 정부가 안게 되는 골칫거리는 MMA쌀 재고물량이다.
관리비만 100만석 당 연간 82억원이나 들지만 현재처럼 용도를 제한할 경우 재고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사료용 처리 방안이 한 때 검토됐듯이 사용 용도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불가피하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대북 지원용의 경우 MMA 쌀을 사용하기에는 역시 통상 문제 소지가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정부 대책= 우선 국내 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013년까지 6ha 이상 쌀 전업농 7만호를 육성 , 생산의 50% 이상을 맡게 하는 등 규모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농가의 소득보전 대책도 다양한 직불제를 통해 추진된다.
이미 올해부터 경영이양 직불제를 연금형 방식으로 전환, 지원을 대폭 강화한 데 이어 논농업 직불제, 친환경농업 직불제, 쌀 소득보전 직불제 등 다양한 직불제가 도입 또는 확대된다.
아울러 쌀값 하락 시 농지가격의 하락과 경쟁력을 잃은 농가들의 탈농이 예상됨에 따라 농지의 소 유와 이용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농지제도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
농림부는 특히 추곡 수매를 통한 쌀값 지지 효과가 한계에 이른데다가 쌀 재고 문제도 가중됨에 따라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쌀을 시가로 매입해 시가로 방출하는 공공비축제를 적정재고 600만석 내외를 목표로 내년께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 대책의 실효성이 실제 집행 과정에서 제대로 확보될 지 의문시된다. 게다가 이미 한 -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에서 농민 설득용으로 써버린 카드여서 추가 대책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특히 공공비축제가 도입되더라도 MMA쌀을 식량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정부 에 별도의 재정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경수현 생활경제부 기자 | ev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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