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강화로 건물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고, 고도의 금융지식을 갖춘 남성 영업직원들이
질 중시의 보험영업을 선보이면서 ‘보험아줌마’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은행이 보험판매를 시작할 경우 중소기업에 압력을 가하며 적극적으로 나설지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인텔리전트 빌딩이 등장하면서 경비가 강화돼 '보험 아줌마'들이 옛날처럼 자유롭게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것이 원척적으로 불가능해졌다
1960년대 이후 진행됐던 일본경제의 고도성장기. 이 성장기의 여러 이미지 가운데 일본인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여성들이 있다. 이른바 '보험 아줌마'. 눈깔사탕과 껌 등 소정의 선물을 뿌리며 이
사무실 저 사무실을 오가면서 줄줄이 계약을 따내던 이들의 발걸음. 한편으로는 '생명보험 레이디'로
불리며 '전문직 여성'으로 활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으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던 억척
여성들이 오랜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이제는 존재를 위협받고 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의리(G)와 인정(N), 프레젠트(P) 등 이른바 'GNP 영업'으로 일본을 생명보험
대국으로 끌어올린 ‘생보 레이디’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급여 삭감과 구조조정에의 불안,
계약자 급감 등의 상황에 맞물려 인텔리전트 빌딩 등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사무실의 경비가 강화돼
옛날처럼 자유롭게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이 원인이다. 경제의 불황에
더해 기업들의 보안의식 강화 등 악재가 겹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금융개방으로 외국자본계의 생명보험이 공세를 펼치고 나섰고, 정부 금융당국인 금융청의
금융심의회(수상의 자문기관)가 은행 창구에서의 보험상품 판매 전면 해금을 위해 지난 1월부터 검토를
시작하는 등 강력한 라이벌마저 출현했다.
“연령과 가족구성을 생각하면 같은 보험료라면 사망보험보다는 의료보장을 충실하게 하는 쪽이 안심이
되죠.”
도쿄 시나가와(品川)구. 한 대기업의 점심 휴식시간이다. 일본생명 치요다(千代田) 지사의 한 영업직원은
계약자의 희망을 들으면서 휴대전화 단말기의 화면을 보아가며 재빨리 적절한 보험을 설계해주고 있다.
당연히 가지고 다니며 뿌려왔던 눈깔사탕 등의 선물은 건네지 않는다. 계약자에게 맞는 보험을 설계해
제안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뿐이다. TV 광고 등에서 낯익었던 ‘보험 아줌마’의 이미지는 없어진 지
오래다.
경비가 강화된 탓에 옛날처럼 기업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던 ‘특권’도 없어진 상황이다. 한마디로
‘생보 레이디’나 고객이나 익숙해져 있던 친밀도가 높은 영업은 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회사의 경우도 사내에서 보험영업이 가능한 것은 점심 휴식시간 단 한 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이처럼 짧은 시간에 계약을 따낼 수 있을지 여부는 “손님의 요망에 부응하는 상품을
적확히 제안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생보 레이디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생명보험 업계는 불경기의 여파가 초래한 신규계약의 부진 및 해약증가에 시달린 끝에 개인보험의
보유계약 건수가 7년 연속 감소하는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대형 생명보험의 고전이 두드러지고 있다.
생명보험 계약이탈이 어느 정도 심각한가는 베테랑 영업직원들조차 “평균 수입이 잘 나가던 시절에
비해 30% 정도 떨어졌다”는 탄식에서 그대로 입증된다.
계약을 한 뒤 첫 2년 안에 계약의 70%가 해지되고 있다고 한다. 생명보험 업계 전체의 영업직원 수도
1994년 3월말의 약 42만1천 명으로부터 2003년 3월말에는 약 28만4천 명까지 대폭 감소했다.
향후 은행 창구판매가 본격적으로 해금될 경우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입장을 이용해 중소기업에
압력을 가하면서 판매에 나설 우려가 있다”는 것이 생명보험 업계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이는
생명보험 레이디가 뛸 수 있는 무대 자체가 좁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어떤 타격에
비해서도 심각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은행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외국자본계의 생명보험 업계는 탄탄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아메리
칸패밀리 생명이라는 미국계 생명보험 회사의 작년 3월말 개인보험 보유계약 건수는 일본생명을 능가해
일본 내 최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는 등 토종 생명보험사를 앞지르고 있다.
고도의 금융지식으로 무장한 남성 영업직원에 의한 컨설팅과 철저한 비용삭감에 따른 할인 보험료 등
질을 중시한 스타일의 영업은 외국자본 생명보험이 인기를 끌고 있는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한마디로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지갑의 끈은 닫힌 데다 의리와 인정으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상황은
지난 시대의 꿈이 되고 말았다. “옛날 방식의 영업이 가능했던 시대는 끝났다”고 외국자본계의
생명보험 설계사들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들에 대해 대형 생명보험 업계는 “계약자의 목소리를 일일이 들으며 인간적으로 접근하던
종래의 전통적인 영업직원 중심 판매작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생명보험 레이디의
자질향상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상품지식뿐 아니라 세제, 연금 등 금융전반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추는 것이 영업의 전제가 돼야 한다는 인식인 셈이다.
일본 생명보험 업체들은 이에 따라 영업직원의 연수기간을 이전에 비해 1.5배 이상으로 늘리는 등
직원교육에 전력을 쏟고 나섰다. 또 마구잡이로 레이디를 뽑던 과거의 방식도 뜯어고치고 있다. 외
국자본계 생명보험사처럼 영업직원의 자질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올린 것이다.
과연 일본 생명보험사들이 그간 전문분야였던 인간관계 중시의 영업이라는 특기를 살리면서 해박한
상품지식으로 무장한 보험설계를 통해 잃어버렸던 고객을 다시 끌어올 수 있을까. 영업직원에 대한
개혁이 일본 생명보험 업계 부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