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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
보호감호제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스필버그가 필립 K. 딕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2054년의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의 미래세계에서는 완벽한 범죄예방시스템을 자랑하고 하고 있다. 세 명의 돌연변이 예지자에 의존하여 치안시스템을 구축한 특수경찰국 프리크라임 (pre-crime)의 활약 때문이다.
프리크라임을 지휘하는 존 앤더튼 반장(톰 크루즈 분)은 어린 아들을 유괴당한 충격이후 오직?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프리크라임의 전국화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앞두고 연방수사관이 시스템을 내사하러 방문한 그 날, 앤더튼은 살인자를 지목하는 예지자의 붉은 공에 또렷이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읽게 된다.
범죄 예상자로 낙인 찍혀 동료들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 앤더튼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미래사회의 갖가지 기술력들을 동원한 추격 속에서 필사의 탈주를 꾀하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출연한 영화배우 톰 크루즈
사회보호법과 프리크라임의 탄생
‘한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1980년 12월 18일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설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현재 형사사법시스템 안에서 작동되고 있다. 당시 신군부가 헌법과 법률의 근거 없이 설치한 일종의 ’쿠데타 위원회‘인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든 ’사회보호법‘이라는 법률의 속을 들여다보면 프리크라임이 중핵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법률은 원래 '신군부'가 사회정화차원에서 사회악을 일소한다는 명목으로 삼청교육대를 만든 뒤 그 만료시한이 다가오면서 위험성이 농후한 교육생들을 그냥 내 보내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로 만들어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회보호법 제5조에 의하면 ’동일한 범죄나 유사한 범죄로 2회 이상 금고이상의 실형을 받아 그 합이 3년 이상인 자', ‘일정한 범죄를 수회 범하여 상습성이 인정된 자', 또는 ‘보호감호를 받고 다시 유사한 범죄를 범한 자'등을 사회로부터 격리 수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범죄를 범하고 이미 ‘형벌'을 집행 받은 자라도 장래 다시 범죄를 범할 위험성(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빠삐옹도 탈출 할 수 없다는 철옹성인 청송보호감호소에 수용된다.
청송보호감호소는 시설 및 집행, 처우 등이 교도소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교도소에서 형벌을 집행 받은 자들을 다시 보호감호소에 수용하는 처우가 이중처벌의 의혹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형법은 누범 및 상습범에 대해서는 이미 그 형벌을 가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다시 형벌과 다름없는 보호감호를 부과한다는 것은 보호감호자의 인권이 과도하게 침해되어 비례성의 원칙에 반할 수 있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할 소지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학계나 인권단체에서는 보호감호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작년부터는 피감호자들의 단식투쟁이 언론에 널리 알려지기기 시작했고, 2003년 6월에는 천안구치소에서 한 미결수용자가가 자신에게 다시 보호감호까지 청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심리적 타격을 입고 자살하는 사태가 알려지면서 보호감호제도의 반인권성을 제거하려는 불길이 사회각계로 거세게 번지고 있다.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장하는 보호감호소 가출소자 모임 회원들
숙명론과 자유의지론
사회보호법상의 ‘보호감호제도’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와의 닮은꼴은 보호감호제도의 이중처벌성이나 반인권성 때문이 아니다. 보호감호제도가 바로 ‘한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인 것은 사회보호법상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에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보호감호라는 제재수단을 부과하기 위해 장래의 범죄행위에 대한 ’사전 예측‘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호감호를 청구하는 검사나 보호감호를 선고하는 판사 그리고 피보호감호자에 대한 가출소 등을 심의?결정하는 보호위원회의 위원들은 모두 프리 크라임에서의 돌연변이 예지자와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호감호제도가 미래 사회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프리크라임'단계에서의 예지자적 예언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은 유감스럽지만 우리의 현실 법제도의 모습이다. 프리크라임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미래가 그의 ’자유의사'에 따라 만들어져가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상태‘임을 전제하고 있는데, 그 결정론적 시각이 초래할지도 모를 재앙을 상상해 보면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보호감호제도는 예정된 범죄를 예방한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한 결단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복사판이다. 그러한 설정은 미래가 고정되어 있다는, 운명론적?숙명론적인 접근 방식으로서 자연과학적 사고가 풍미했던 19세기의 시대정신이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이 시스템 설계자의 설계에 따라 예정된 코스를 따라 일정한 궤도를 운행하는 전동차와 같다는 미래사회의 매트릭스적 사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사를 믿고 싶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바램을 버릴 수 없다. 그것은 예정된 미래의 불확실성을 입증하는 증거를 가진 자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임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머조리티 리포트
현재 청송감호소에 수용되어 있는 피보호감호자는 1600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중 약70%는 흉악범이 아니라 절도사범이고,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의탁할 곳이 없는 절대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같은 우리 사회의 ‘귀찮은 존재'들을 일소하기 위해 한국의 훌륭한 ’예지자'들은 "행위자의 출신, 가족관계, 교육정도, 초범연령, 행위유형, 범죄이전의 사회생활, 행위자의 지능과 성격, 전과의 유무와 회수, 재범의 빈도"를 고려하여 한 개인의 장래 재범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출신, 가족관계, 교육정도, 지능과 성격 등'을 어떻게 미래의 행위를 점치기 위한 예측수단으로 삼아 '확신단계'에 이를 수 있을지, 이 예측과정에서 나오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없는지 있다면 그 소수자의 의견은 전적으로 무시되는 것인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러나 최근 한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가 소멸될 징후를 보이고 있어 희망을 가져본다. 각계에서 보호감호제도의 폐지목소리가 드높아 가고 있고, 법무부의 수정안도 예언자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 ’프리크라임제도'를 포기하지 않는 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사회에서의 머저리티 리포트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판사나 검사의 장래의 범죄예측이나 예지자적 예언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자의 행위로부터 혹시 생길지 모를 행위로부터 사회를 방위해 줄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예언자의 그 ‘위험한 보고서'에 준거해서 시작될지도 모를 어떤 한 개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그의 파멸을 부채질하는 원시적 주술은 하루빨리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김성돈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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