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기업과 수많은 기업인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
성공하여 오늘에 이른 기업은 물론이고, 사라진 수많은 기업들의 희생 또한 진하게 스며있다. 그들의 도전과
노력 그리고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기에 한국경제는 그 시대의 터널을 지날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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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지금의 한국경제는 잔뜩 흐려있다. 곧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도 있고, 맑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불투명한 내일 때문에 더더욱 살기 어렵다고 말하는 국민들도 부쩍 많아졌다.
돌이켜보면 한국경제에 어렵지 않은 날이 있었던가. 본격적인 자립경제의 기반을 틀기 시작한 후 오늘까지
100년 동안 한국경제는 늘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을 계속해왔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를 비롯하여 전쟁의
소용돌이 같은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창업을 하고, 재기의 틀을 다졌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과 너무도
닮아있다. 그들은 그 이후, 수많은 곡절을 겪으며, 때로는 고도성장의 길을 걸었고, 또 침몰의 역사도
맛보며 한국경제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들의 부침의 역사가 곧 한국경제의 토대가 되었으며, 한국을
지금의 이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부침은 다시 한국경제 부침의 역사이기도 하다.
1876년 개항과 함께 시작된 기업과 기업가의 등장, 초기 주로 민족정신에 바탕을 둔 기업과 기업가들이라는
한계는 있었으나 분명 이들은 한국경제의 태동이었다.
그리고 기업들이 하나둘씩 탄생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본격적인 기업가적 자질을 보인 경제인물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초기 관 주도의 기업에 이어 서서히 자생적 기업의 모습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곧 한국경제의 선구자들이다.
박승직과 박두병, 한국의 최장수 기업 두산을 창업하고 성장시킨 기업가들이다.
개인 환포상으로 출발하여 거상이 된 박승직은 종로의 경제권을 주도한 인물로 그가 1896년 설립한
포목점 박승직상점은 오늘날 두산의 뿌리가 되었다. 이후 박승직의 장남 박두병에 의해 두산으로
상호가 바뀌며 제 2의 창업기를 맞는다. 박두병은 적산기업이 된 소화기린맥주를 불하받아 OB맥주를
키워내며 두산을 성장시켰다.
1897년에 설립 된 동화약품의 민병호도 있다.
동화약품은 우리나라 제조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100년을 넘긴 기업으로 구한말 선전관
(궁중무관의 일종)인 민병호에 의해 설립되었다. 오로지 소화제인 활명수를 양산하기 위해서
설립된 회사였다.
오늘날의 동화약품을 일군 사람은 1937년 5대 사장으로 취임한 보당 윤창식이다.
그는 동화약품을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기업다운 면모로 바꾸었고 일제시대 동화약품을 민족기업으로
일구어냈다.
정주영과 이병철 역시 동시대의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이다.
정주영은 과감한 결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현대그룹을 성장시키며 동시에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운
큰 경영인이자 입지전적 인물이다. 말 그대로 땅 파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의 현대왕국을 건설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의 사업에서의 결정적인 돌파력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의 그 같은 도전적인 돌파력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그래서 홀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던 그의 성장배경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이병철은 자로 잰 듯 정확했다. 그의 모든 사업에서는 철두철미함이 묻어났다. 스타일로
보면 정주영과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출발부터 달랐다. 천석지기 부농(富農)의 아들이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업에는 국내외 정세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하고,
무모한 과욕과 투기는 지양돼야 하며,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해야 하며, 실패할 때에 대비해 제2 제3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1931년, 포목점 구인상회를 시작으로 오늘날 LG그룹의 뿌리를 만든 구인회도 한국경제의 큰 인물이다.
락희화학에서 선보인 럭키치약은 한동안 한국 치약의 대명사였다. 이후 금성사를 설립하며 라디오,
선풍기 등으로 한국 가전시장까지 점령하게 된다. 보수적인 집안의 장자로서 당시로서는 천대받던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구인회의 사업철학은 ‘남이 안한 것을 먼저 한다’였다.
지금은 실패한 경영자가로 전락하여 해외를 떠돌고 있지만 대우의 김우중 역시 한국 경제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특히 그의 수출부분에서의 왕성한 활동력은 그를 한때 수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경성방직(경방)과 삼양사의 김연수, 김용완도 한국경제 여명기의 큰 사업가였다.
삼양사의 창업주이기도 한 김연수는 경성방직을 키워 조선 최대의 갑부대열에 오르기도 했고,
김용완은 인촌 김성수와 김연수의 뒤를 이어 경성방직을 안정기에 올려놓았다. 특히 김성수는 대지주
집안의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경성방직을 통해 한국최초의 주식공모에 의한 주식회사시대를 연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외에도 1945년 인천에 한진상사를 설립하며 출발하여, 1956년 미군 물자수송권과 월남전 당시
미군의 물자 수송을 맡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한진의 조중훈. 왕성한 활동력으로 금성방직과
쌍용양회를 설립하며 한국 기간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김성곤. 포항제철을 설립하여 세계적 철강회사로
키워 낸 철강신화의 박태준. 조선화약공판의 생산부 다이너마이트 계장으로 출발하여 한국화약을 키워
낸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 기업의 역할 및 기업인의 역할 그 전형을 보여준 유한양행의 유일한. 근면,
자조, 협동의 기치를 통한 자립경제의 출발점이자 ‘잘살아 보세’의 실체였던 박정희.
이들이 모두 한국경제의 큰 인물들이고, 연재되는 <한국경제인물 열전>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한국경제를 발전시킨 수많은 큰 인물들, 그들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 당시의 환경, 그리고 그들이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 담긴 이야기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장을 보란듯이 일으켜 세우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저력,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세계적 신화를 만들 수 있었던 그들의 도전과
한국경제건설의 이야기이다.
임순철 객원기자| top@istory.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