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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포럼과 중국, 그리고 한국



다보스 포럼을 국제기구로 이끈 클라우스 슈밥 회장
스위스의 조그만 산골마을 다보스에는 매년 겨울 가장 추운 시기에 전세계의 정치인, 관리, 기업인들이 대거 모여든다. 다보스 주변에 스키 휴양지가 있지만 전세계의 엘리트들이 유독 같은 시기에 스위스 시골 마을에 스키를 즐기러 온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일명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1970년 유럽의 일부 재계 인사들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첫 모임을 가짐으로써 출발한 다보스 포럼은 오늘날 2천여 명의 전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로 성장했다. 이제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지 못하면 국제무대에서 명함을 못 내민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독일 출신의 제네바 대학 경영학 교수인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이 34년 전 유럽의 경영자들을 스위스의 촌동네에 불러 모은 것은 정치와 경제 분야가 협력함으로써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슈밥 회장의 비전은 산골 마을을 전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의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슈밥 회장은 세계경제포럼을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기구이자 유엔 자문기구로 성장시켰으며, ‘국가경쟁력보고서’ 및 격월간 기관지 ‘World Link’등을 통해 전 세계의 경제정책 및 투자환경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번영과 안보를 위한 협력’이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다보스 포럼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딕 체니 미국 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 등 정치지도자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조지 소로스 퀀텀 펀드회장 등 거물 기업인을 포함, 전세계 94개국에서 2천100명의 정치, 경제계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일부 초청 인사를 제외한 참석자들 대부분은 거액의 참가비를 내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참가비만 8천 달러에 달하고 연회비까지 포함하면 약 2만5천 달러의 거금을 주최측에 내야 한다.
시설도 좋지 않고 교통도 불편한 스위스 산골마을에 내로라하는 전세계 엘리트들이 모여드는 것은 이 곳에서 고급 정보를 얻고 세계 정치와 경제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한 기업인은 “일년 내내 세계 전역을 돌아다녀 봐야 다보스 포럼에서 며칠 동안 만나는 유명인사의 10분의 1도 못 만난다. 그것이 내가 매년 이곳에 참석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물론 다보스 포럼이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공식 국제회의가 아니기 때문에 고급 사교클럽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며 `‘부자들의 돈 잔치’라는 비난을 사기도 한다. 회의장 주변에서는 반(反) 세계화 시위가 회의 기간 내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다보스 회의에서는 세계화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됐으며 그 방안으로 `‘나눔’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제기됐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뒤처진 사회 구성원을 함께 끌고 가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다. 가이 라이더 국제자유노련 사무총장은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걸 노조도 잘 안다”면서 “근로자들이 소외되지 않게 기업들이 배려해야 기업이 분쟁 없이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에반스 미국 상무장관도 “근로자들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는 270여 개의 다양한 주제가 논의됐지만 참석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가장 큰 화두는 중국이었다. 특히 경제전문가들은 중국경제 문제에 참견하지 않고는 못 배길 분위기였다. 중남미 경제를 전공한 프랑스의 한 교수가 왕따 당하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중국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며 글로벌 경제의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보스 포럼에 참가, 연설하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스프트 회장
미국 투자회사 골드만 삭스는 오는 2041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중국은 세계적 기업들이 반드시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될 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카를로스 곤 닛산 자동차 회장은 “중국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은 다른 곳에서도 돈을 벌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한 중국에 대한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홍콩 퍼스트 이스턴인베스트먼트 그룹의 CEO는 “중국 정부가 위앤화를 달러뿐 아니라 엔화와 유로화까지 포함한 통화 바스켓에 연동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그 가치가 절상될 것”이라며 “중국에 투자할 최적의 시기는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전자회사 인피니온의 울리히 슈마허 회장도 향후 3년간 인피니온의 전세계 투자액 중 30%를 중국에 배정할 것이라 밝히고 “지금이 중국에 대규모로 투자할 때”라고 말했다.이번 포럼에서는 중국경제의 과열 여부와 고성장 기조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다보스 포럼 참가자들 사이에서 열띤 논란이 벌어졌다.
푸 준 베이징 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중국 정부 내에는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잘 이해하는 우수한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있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에반스 미국 상무장관은 중국 지도부가 상당히 순조롭게 권력이양을 마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에반스 장관은 또 미국과 중국간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점을 들면서 중국 지도부의 장기적인 경제비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시각이 긍정 일변도는 아니다. 에반스 장관은 부실 대출과 관치금리가 돈의 효율적인 분배를 저해하고 있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무관심이 도약에 필요한 혁신과 외국인 투자를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회의에서 중국은 환율을 조작하는 국가, 서구경제권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국가, 개도국의 노동기준을 끌어내리는 국가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처럼 전세계 지도자들이 세계의 나아갈 방향과 중국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벌이는 자리에 `한국은 없었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위기가 고조되고 국제사회의 해결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북한 핵문제는 글로벌 이슈로 부각됐다.
북핵 관련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은 전세계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지만 한국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이 포럼 개막을 불과 1주일 앞두고 전격적으로 교체돼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가 참석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국제사회의 의문에 친절히 대답해줄 기회를 놓친 셈이다.
민간 차원에서도 다보스 포럼에서 한국의 위상은 초라했다. 자비로 참가한 한국기업인은 10여 명에 달했지만 주최측으로부터 패널리스트로 초청받은 경우는 한둘 정도에 불과했다.

송병승 국제뉴스국 기자 |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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