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 조류독감(Bird flu)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은 길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류독감이 발생했
는데도 불구, 은폐해오다 최근에서야 이를 시인해 국제사회의 분노를 샀다.
이들이 조류독감 발생사실을 숨긴 데에는 각 국가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경
제문제가 가장 큰 이유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은
최근 경기가 겨우 살아나고 있는데 또 한 차례 조류독감으로 된서리를 맞게 되자 이에 의연
하게 대처하기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은폐기도는 오히려 의혹만 키운 데다 적기에 조류독감에 대처하지 못해
피해지역을 확산시키기만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시아 금융전문가들은 현재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지난해 77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스
와는 달리 `인간 대(對) 인간' 전염이 일어나지 않고 있어 조류독감의 강력한 세력확장에도
경제적인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보건기구의 방역전문가들은 그러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대 인간
' 전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사스보다 1천배 이상 무서운 전염병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
하고 마치 조만간 엄청난 폭발을 일으킬 시한폭탄(timebomb)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스이어 조류독감에 아시아 신음
지난해 말 아시아에서 조류독감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된 것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다.
농림부는 지난해 12월15일 닭들이 집단 폐사한 충북 음성군 삼성면 한 종계(種鷄) 사육농장
의 닭을 상대로 정밀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조류독감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베트남(12월23일)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으며 올해 들어서는 일본(1월12일), 대만(1
월15일) 등에서도 잇따라 조류독감 발생사실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 됐다.
이어 1월 하순 접어들어 태국(1월23일), 캄보디아(1월23일), 인도네시아(1월25일), 파키스탄(1
월26일), 라오스(1월27일), 중국(1월27일) 등 마치 들불처럼 아시아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게다가 조류독감에 감염된 사람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사스와 광우병에 이어 `동물에 의
한 새로운 저주'로 인식되면서 아시아인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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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의 푸옹마이 지역에서 조류독감에 걸린 닭들을 소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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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보고 놀란 가슴
아시아 각국은 조류독감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지난해 사스를 떠올리며 전전긍긍했다.
지난해 아시아 국가들은 사스로 인해 핵심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관광산업이 침체되면서 항
공과 외식산업 등 각종 서비스산업까지 위축돼 희생자 속출 등 직접적인 손실 이외에 경제
적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는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사스가 일본과 북한을 제외한 아
시아 경제에 미친 영향을 금액으로 환산한 결과 무려 6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
는 아시아지역 국내총생산(GDP) 총액의 2%에 이르는 액수다.
또 각국 정부는 사스 퇴치를 위해 180억 달러를 투입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감염자
한 명당 200만 달러를 들인 셈이 되는 등 아시아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
게다가 아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 것까지 더한다면 그 피해는 액수로 산정한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러다 보니 아시아 각국은 조류독감 발생 사실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은폐기도는 오히려 조류독감에 대한 조기대처를 불가능하게 해 피해를 더욱
확산시킨 데다 대외적으로 `방역대책의 투명성'에 대한 불신만 키워놓았다.
조류독감 경제적 피해 얼마나
아시아 경제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조류독감 피해가 확산되자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는
아시아 경기가 다시 움추러 들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조류독감의 경제적 피해를 산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아직 지난해 사스와 같은 피해를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게 대세다.
싱가포르 최대은행 중 한 곳인 유나이티드 오버시스(UOB)는 27일 보고서에서 조류독감
발생에 따른 아시아 국내총생산(GDP)의 감소규모는 0.036%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했다.
IDEA 글로벌 싱가포르 사무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폴 시믹도 "조류독감은 사스위기와
매우 다르다"며 "인체간 감염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작년 사스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조류독감 피해가 지난해 사스와는 달리 관광, 호텔, 소매 분야로까지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당시에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또 다른 불확실성이 함께 존재했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결론적으로 조류독감 피해가 관광분야 등으로 확산될 기미가 거의 보이
지 않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조류독감의 충격파가 가금산업에 국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
상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도 현 단계에선 지역경제에 심각한 영향
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제펀드매니저들은 아시아 증시에 대한 투자등급을 `비중확대'로 유지,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조류독감의 피해를 누군가 고의로 과장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주요나라의 피해상황을 보면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금류 생
산비중이 0.8%로 비교적 높아 작년수출이 3억8천 달러여서 조류독감으로 약간의 충격을 받
을 것으로 예상됐다.
태국은 GDP에서 가금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1.1%인데다 지난해 수출규모가 12억5천만 달
러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아 다른 나라에 비해 타격이 클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태국
중앙은행은 성장률이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도치체방크는 0.5%포인트 떨어
질 것으로 예상했다.
사스의 1천배 위력의 시한폭탄
그러나 이처럼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우려되고 있는 것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인간'으로 전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지난해 아시아를 괴롭혔던 사스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
고 아시아를 피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모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세계경제를 다시 주름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보건 및 금융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WHO 독감분야 책임자인 클라우스 슈퇴르는 이와 관련, 9일 오스트리아신문 스탠더드와
의 회견에서 "현재 조류독감의 경우 동물 간 감염속도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데다 인체
감염 시 치사율이 80%나 된다"면서 전염속도와 치사율이 "가히 충격적"이라고 토로,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WHO 요원으로 사스억제를 위해 중국에 파견됐던 호주 퀸즐랜드 대학의 존 맥켄지 교수
는 아시아 조류독감은 사스보다 1천배 더 위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으로 조류독감의 피해가 얼마나 확산되고 지속될지 여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으며 그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산출하는 것도 조류독감의 폭발성 등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다만 WHO 등 국제기구와 아시아 각국의 확산저지 노력 등에 힘입어 조류독감이 조속하
게 통제되기를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