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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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 그 후


지난 1월 1일 단행된 사실상의 전면개방이 상당히 큰 파급영향을 국내에 미칠 것으로 일부에서 전망됐으나 일본대중문화는 우려와 달리 별다른 충격 없이 안착하고 있다.
4차 개방이 남긴 자취와 영향 그리고 전망을 가요, 방송, 영화 등 세 분야로 나눠 점검해 본다.

◆ 가요 ◆
ㆍ일본가수와 그룹 음반 잇따라 선보이며 손짓
ㆍ음반시장 침체 한국가요 강세로 큰 영향 없어
ㆍ아무로 나미에 등 스타 내한 앞세워 공세강화

제4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점진적 개방을 거쳐 온 일본 대중가요가 일본어 가창 음반의 전면 허용으로 완전히 빗장을 제거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전국의 주요 레코드 숍에서는 J-팝(일본 대중가요의 별칭)이라는 일본 음반 특별 코너를 마련해 일본어 재킷에 일본어 가사가 적힌 일본 음반들이 진열되고 있다.
지난 1월 1일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축하하는 한·일 합동 콘서트를 펼쳤던 록밴드 튜브의 베스트 앨범을 시작으로 정상의 R&B 솔로가수 히라이켄, 남성 듀오 차게 앤 아스카, 3인조 발라드 그룹 딘, 정상급 여가수 우타다 히카루와 미샤, 나카지마 미카, 아이돌 댄스 그룹 윈즈, 톱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 일본의 대표적 혼성그룹 드림스 컴트루, 그룹 안전지대 등의 앨범이 잇따라 발매됐다.
그밖에도 힙합 그룹 킥 더 캔 크루와 스테디 앤 코, `프렌즈의 여배우 후카다 교코, 일본 비주얼 록밴드 `라르크 안 시엘, 솔로 로커 각트, 혼성 팝밴드 `에브리 리틀 씽, 90년대 문화 아이콘 구도 시즈카, 일본의 아이돌 보이밴드 `FLAME 등 지금까지 수십 장의 일본어 가창 앨범이 J-팝 코너를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앨범들이 앞 다투어 한국에 상륙했지만 음반 시장의 침체와 한국 대중가요의 강세가 맞물리면서 큰 센세이션은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지상파 TV가 아직까지 일본 가요를 자유롭게 방송하지 못하기 때문에 큰 파장이 일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는 일본 가수가 국내 방송에 출연해 일본어로 노래하거나 국내 공연 실황의 경우에 한해 지상파 방송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면 개방된 케이블 위성의 경우에는 J팝 전문 프로그램이 앞 다투어 신설됐다.
일본 음반은 외국 음악인 팝 시장을 통해 판매량이 집계되고 있다. 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1월 팝 차트 집계에서 20위권에 든 앨범은 11위인 아이돌 그룹 윈즈와 19위인 여가수 미샤의 싱글 컬렉션 등 단 두 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2월 집계에는 컴필레이션 앨범인 `J팝 베스트 앨범이 1만 장에 육박하면서 2위를 차지하는 등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음반사들의 집계에 따르면 1만 장 이상 팔린 앨범은 나카시마 미카의 `러브, X-재팬 베스트 등 40여 장의 앨범 중 10개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 가수들의 음반 홍보 및 공연을 목적으로 한 내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관록의 록밴드 제이워크와 발라드 그룹 딘, 크로스 오버, 뉴에이지 프로젝트팀 이마주, 아카펠라 그룹 고스페라즈, 기타리스트 호테이 도모야스 등이 잇따라 내한했다.
톱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첫 내한 공연도 5월 13~15일 열리게 된다.
소니뮤직의 김경태 홍보팀장은 “대형 타이틀 위주로 낸 앨범들이 생각보다 저조한 실적을 나타낸 현 상황을 감안하면 지상파 일본 가요 방송의 전면 개방이 있기 전까지 당분간은 대중적이라기보다 마니아층 위주의 시장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높아진 한국 대중 가요의 수준과 언어적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본이 막강한 자본력과 기획력을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게 되면 이야기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섞인 지적도 일고 있다.
이에 앞서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는 틈새 파고들기 전략도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앞으로 최근 각종 차트 상위권에 포진한 MC 더 맥스의 ‘사랑의 시’는 안전지대의 멤버인 다마키 고지가 작곡한 것으로 당분간 이런 형태의 연착륙 방안이 모색될 것으로 전망된다.

◆ 방송 ◆
ㆍ일본드라마 35편 소개에 관심작은 겨우 1~2편
ㆍ주류 일본 드라마 미상륙이 주된 이류로 꼽혀
ㆍ'고쿠센'은 잠재력 입증, 평가 단정 시기상조

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에서 단연 주목받는 분야는 방송 개방이었고, 그 중에서도 일본드라마의 안방 방영 허용이 관심의 초점이 됐다. 일본드라마 개방을 앞두고 방송계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든 부정적인 부분이든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막상 뚜껑을 열자 그런 기대나 우려가 맞았는지 구태여 검증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는 게 방송계의 대체적 평가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던 주류 드라마가 아직까지 한 편도 국내에서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드라마는 이렇다’고 단정하는 건 시기상조이며 일본드라마 국내 개방의 영향과 전망도 그때 가서야 제대로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올 들어 지금까지 케이블·위성방송 영화, 드라마, 오락채널을 통해 국내 안방에 소개됐거나 현재 방영중인 일본드라마는 모두 35편에 이른다. 이들 중 ‘고쿠센’과 ‘춤추는 대수사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1% 이하의 저조한 시청률을 얻는 데 그쳤다.
더 좁혀서 말하면 수입작은 10~20대층을 주 시청층으로 하는 트랜디 드라마 일색이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국내 젊은층들의 일본드라마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해 1차 공략에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이다. 다만 ‘고쿠센’은 일본드라마 개방 초기에 예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2~3월 SBS 드라마 플러스에서 방영된 12부작 ‘고쿠센’은 최고시청률 4.8%에 평균시청률 2.7%를 기록해 케이블·위성방송 업계를 놀라게 했다.
조직폭력배 딸이 반항심 가득한 문제아들이 모인 학급의 교사가 돼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면서 감동적인 사제간의 정을 키운다는 드라마였다. 이 ‘고쿠센’의 히트는 일본 드라마의 잠재력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방송 최초로 일본 지상파 TV에 진출하는 KBS 애니메이션 사이버영혼 바스토프레몬
SBS 드라마 플러스 편성팀 박영희 차장은 “비슷비슷한 배우들, 비슷비슷한 느낌의 일본드라마들 속에서 ‘고쿠센’이 특이한 소재라는 점에서 인기를 얻었다”고 ‘고쿠센’의 흥행 요인을 소재의 차별성에서 찾았다.
지금까지 국내 방영된 작품들에 국한한다면 국내 시청자들은 일본드라마를 구성이 간단하고, 복잡한 인간관계 대신 인물 개개인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고, 10~12부작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드라마 정도로 느낄 듯 싶다.
전문가들은 일본드라마의 외형은 시청자들의 이 같은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일본드라마의 ‘알맹이’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주류 드라마들이 따로 있는데 아직 국내에 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차장은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트랜디 드라마의 주연 대부분이 일본의 한 대형 연예기획사 소속이다. 이들의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국내 수입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랜디 드라마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이들 드라마가 국내에 소개될 무렵 일본드라마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당분간은 일본드라마를 표피적으로 맛보는 수준이 유지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MBC드라마넷 손인철 편성팀장도 이들 주류 드라마가 국내에 소개될 때 비로소 일본드라마 개방의 파급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 “그 때까지는 일본드라마 저변이 서서히 확대되는 추세를 그리지 않을까 싶다”고 진단했다.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은 개방 초기 일본드라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작품을 고르고 있는 국내 케이블·위성방송 채널들이 경쟁이 치열해지는 방송환경에서 시청률 제고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일본 드라마를 택할 경우 현재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 영화 ◆
ㆍ한국영화 맹위 따라 개봉일정 미루며 주춤
ㆍ이달 들어 '배틀 로얄 2' 등 줄줄이 도전장
ㆍ대부분 마니아 전용영화, 파장 적을 것

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극장용 영화에 관해 빗장이 완전히 풀렸다. 지난 해까지는 국제영화제 수상작이 아닌 일본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 이하 등급에 한해 수입이 허용됐다.
그러나 등급분류 이전에 수입추천이라는 두 단계의 심의 관문이 가로놓여 있는 데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상영금지를 의미하는 ‘제한상영가’ 등급이 존재하고 있어 성인물에 대한 추가개방 조치는 애당초 제한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물론 두 가지 장애요인은 모든 외국 영화에 적용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배일감정’이라는 국민 정서가 엄연히 살아 있고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영화의 상승세가 두드러져 일본 영화의 한국 시장 진출에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 되고 있다.
1998년 ‘하나비’를 시작으로 일본 영화는 해마다 개봉 편수를 늘려가며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려왔으나 신통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전국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러브레터’ ‘주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세 편에 불과하다.
더욱이 올해 들어서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며 관객을 끌어모으는 바람에 기왕에 잡아놓은 개봉 일정도 미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올해 들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수입추천을 받은 일본 영화는 4월 6일까지 모두 15편. 그나마 1월 2일 가장 먼저 수입추천 신청서를 냈던 무라카미 류 감독의 ‘도쿄 데카당스’는 변태적 성관계 장면을 여과 없이 묘사했다는 이유로 1월 29일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 영화는 2월 24일 재심을 거쳐 수입추천을 통과하기는 했으나 일반 상영이 가능한 등급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형편이다.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에 미개봉작 일본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이 일본영화 포스터를 구경하고 있다
등급분류를 거친 영화는 지금까지 10편으로, 이 가운데 제4차 개방에 힘입어 개봉할 수 있게 된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민(일본명 후에키 유코)이 주연을 맡은 ‘신설국(新雪國)’,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브라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등 세 편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3개월여 동안 흥행 성적도 미미한 실정. 유일한 4차 개방 수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설국’은 2월 27일 개봉에 앞서 유민 출연과 성애장면의 인터넷 유포로 관심을 끌었을 뿐 관객 동원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앞서 맹인 검객의 이야기를 그린 ‘자토이치’도 1월 30일 간판을 내걸었으나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자 기타노 다케시 감독·주연이라는 후광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성적에 그쳤다. 그러나 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 100일을 맞는 4월 9일부터는 일본 영화가 본격 상륙한다.
지난해 수입추천과 등급분류를 마친 ‘배틀 로얄2-레퀴엠’과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연애사진’이 9일 개봉하는 데 이어 23일에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을 비롯해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사무라이영화 ‘고하토’, 오키나 메구미 주연의 공포물 ‘오토기리소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공포물 ‘강령’과 성장영화 ‘밝은 미래’ 등 화제작이 한꺼번에 선보인다. 30일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가 뒤를 잇는다.
이밖에 4차 개방 수입 1호작이었던 이와이 순지 감독의 `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라스트 씬’, `오누마 가쓰 감독의 ‘가루자와 부인’, 이토 준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토미에’ 등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영화수입사 프리비젼의 황인옥 대표는 “이제 관객은 일본 영화라고 해 특별히 호기심을 갖거나 거부감을 갖지 않은 채 작품으로만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한 뒤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할 만한 일본 영화는 1년에 다섯 편이 채 되지 않고 대부분은 마니아 전용 영화여서 국내 시장에 미칠 파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제성 여론매체부 기자 | sa@yna.co.kr
황정우 여론매체부 기자 | jung-woo@yna.co.kr
이희용 여론매체부 기자 |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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