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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은 이제 현실이다

미국의 군사전략과 미군 재배치

주한미군 재배치는 미국의 세계 미군재배치 구상과 어떻게 연관돼 있을까?
한반도 평화정착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미국의 세계 군사재배치 전략의 기본 틀은 영구 군사중추, 전진 작전 기지, 전진 작전 지역의 3단계로 구분된다.

구 소련이 해체된 것은 미국에게 ‘적의 상실’을 뜻했다. 이후 미국은 새로운 적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마침내 ‘국제테러’ 및 ‘불량국가’라는 적을 찾아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때까지는 그런대로 구 소련을 상대하던 때의 군사전략을 유지했었다. 중동과 동북아시아에서의 두 개의 전면전을 가상한 소위 ‘윈-윈(Win-Win) 전략’이 그것이었다. 중동의 적은 이라크와 리비아 등이었고 동북아의 적은 다름 아닌 북한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했고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신 군부는 곧바로 새 군사전략 수립에 착수했다.
미국의 군사전문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아킨(William M. Arkin)은 3월 21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에 ‘미 전쟁계획, 간소화는커녕 더 요란해져’(War Plans Meaner, Not Leaner)라는 글을 게재해 미 국방부가 마련한 새 군사전략의 개요를 공개했다. ‘1-4-2-1 국방전략 (Defense Strategy)’이 그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8년간 유지해 오던 ‘두개 전쟁 동시수행 전략’(일명 ‘윈-윈 전략’)을 대체하는 부시 행정부의 신(新) 군사전략이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이 군사전략의 핵심은 2001년 9월 30일 4개년 국방검토보고(QDR)에서 언급된 △본토 방어와 △주요 지역에서의 긴급사태 대비 △한 개 전선에서의 ‘결정적 승리’ 개념을 계승하고 있다. QDR 발표 당시 미 언론은 ‘한 곳에서의 결정적 승리’ 개념에 착안해 이를 ‘원-플러스’(One-Plus) 전략이라고 지칭하면서 이것이 ‘윈-윈 전략’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1-4-2-1 전략’은 2001년 QDR 발표 당시 윤곽을 드러낸 ‘원-플러스 전략’을 조금 더 구체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라크와 북한을 상대로 했던 과거의 ‘윈-윈 전략’ 개념을 계승하면서 군사작전 대상 지역을 4곳으로 확대한 것이다.
‘1-4-2-1 전략’에서 첫 번째 ‘1’은 미국 본토 방어를, ‘4’는 유럽과 동북아시아, 동아시아, 중동-서남아시아 등 4개 핵심 지역(critical regions)에서의 ‘침략 및 위협 억제’(deterring aggression and coercion)를 의미한다. ‘2’는 이들 4개 지역 가운데 2개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침략을 동시에 물리칠 수 있는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이고 마지막 ‘1’은 두 개 전쟁(conflicts) 가운데 한 곳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미국의 새 군사전략은 주한미군 재배치를 포함한 미국의 세계군사력 재배치 구상과 맞물려 있다. ‘1-4-2-1’에서 미국 본토를 뜻하는 첫 번째 ‘1’이 뜻하는 본토에서의 군사작전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신설된 ‘북부사령부’(NORTHCOM)가 맡는다. 다음 ‘4’로 표시된 곳 가운데 중동과 서남아시아는 부시 행정부의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을 수행한 중부사령부 (CENTCOM) 관할이고 유럽은 유럽사령부(EUROCOM), 동북아시아 및 동아시아는 주한미군령부가 포함된 태평양사령부(PACCOM)가 맡고 있다. 다만 동북아시아와 동아시아를 구분한 것은 한때 논의됐던 ‘동북아사령부’를 신설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부시행정부가 수립한 새 군사전략에서 또 하나의 미군 사령부인 남부사령부(SOUTHCOM) 역할이 빠진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1-4-2-1 전략’을 공개한 아킨의 설명대로라면 미국은 북부사령부와 중부사령부, 유럽사령부, 태평양사령부에게만 정규 군사작전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 아킨은‘1-4-2-1 전략’을 설명하면서 미국이 특수전사령부와 미 중앙정보국(CIA)가 벌이는 ‘특수작전’을 전략 개념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정규군 사령부가 아닌 특수 목적 사령부의 하나였던 특수전사령부가 남부사령부를 대체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새 군사전략 및 세계군사력 재배치 구상과 관련해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바로 주한미군 감축 여부다. 미 군산복합체의 의중을 가장 신속하게 전달하는 워싱턴타임스는 2월 3일자에서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를 포함, 태평양사령부의 대대적인 재편을 추진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이를 즉각 부인한 것으로 보면 아직은 구상단계로 봐야 하겠지만 그 구상이 매우 구체적이다.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사, 한미연합사를 책임지는 4성 장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는 대신 하와이 포트섀프터의 육군 태평양사령부에 4성 장군직이 신설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또 미 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태평양사령부 재편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그리고 냉전시대의 유산으로서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휘체계를 감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부시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수시로 거론됐던 새 전략 수립의 기본 컨셉이었다. 뭔가 구체적인 안을 만들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2월 22일 주한미군 재배치를 추진하는 미국의 실무책임자인 더글러스 파이스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의 말을 인용, 미국은 테러나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같은 ‘새로운 위협’을 강조하며 이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유럽에 이어 주한 및 주일 미군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군 재편에 본격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주한미군 재배치는 미국의 세계 미군재배치 구상과 어떻게 연관돼 있을까? 한반도 평화정착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미국의 세계 군사재배치 전략의 기본 틀은 △영구 군사중추(HUB) △전진 작전 기지(FOB : Forward Operating Base) △전진 작전 지역(FOL : Forward Operating Location)의 3단계로 구분된다. 한국은 미군이 상시 주둔하면서 지역 전략의 중추 역할을 하는 HUB나 수십 개의 소규모 작전 및 훈련 기지로서의 FOB가 아니라 비상시에 대비해 항공 및 항구에 병력 주둔을 위한 ‘사용협정’이 필요한 FOL에 해당한다고 앤디 헌 미 국방부 전략담당 부차관보는 말했다(동아일보 2004.3.10 <글로벌 이슈>). 한국이 FOB인지 FOL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최소한 미국령 괌이나 오키나와 및 호주 등 미국이 영구주둔기지로 지목하는 대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 행정부 및 군부 인사들은 주한미군 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와 관련해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을 피하면서 유사시 선제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전술적 이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주한미군 재배치가 북침전쟁 구상이라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미국 측 주장의 의미와 또다른 움직임을 찬찬히 살펴보면 상황 판단이 달라진다. 그동안 전방에 밀집돼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던 미군이 후방으로 물러나는 것이고 또 주한미군 병력 수가 줄어든다면 한반도의 전쟁에 대한 불안감 또는 불확실성은 그만큼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설왕설래하는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은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인가? 워싱턴타임스가 3월 25일 미국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합쳐 약 1만5천 명을 본토 또는 아시아 내 다른 기지로 이전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3월 21일자에서 국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주한미군 감축 규모가 약 1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주한미군 감축은 서서히 구체화되면서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강진욱 북한부 기자 | ki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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