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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조업 왕국으로 부활
생산거점 다시 국내로 옮겨 온다


첨단제품의 자동화, 디지털화, 고기능화로 제품가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눈에 띄 게 낮아졌다. 이로써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부품은 인건비가 비싼 일본에서 생산하 더라도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생산거점의 일본 회귀는 디지털 가전제품을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사진은 일본의 첨단 로봇들
'제조업 왕국' 일본이 부활하고 있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던 일본 기업들이 생산거점을 다시 국내로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업계의 화두였던 산업공동화 논의는 이제 잦아드는 분위기다.
생산거점의 국내회귀는 디지털 가전제품을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 다. 후지쓰, 마쓰시타전기, 소니, 샤프, 캐논…. 세계 톱 메이커로 꼽히는 완제품 업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해당 제품의 부품 메이커들도 일본 국내생산을 강화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일찌감치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겼던 의류메이커들도 고부가가치 니트류와 스웨터 등의 의 류공장을 일본 국내로 옮기기로 해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생산거점 국내 회귀추세는 공장용지 취득 통계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경제산업성 집계에 따르면 작년 1년간 일본 국내에서 1천㎡ 이상의 공장용지를 취득한 건수는 1천52건으로 파 악된다. 이는 기업의 공장용지 취득실적이 가장 적었던 2002년에 비해 건수로 20% 증가한 것. 취득면적은 40% 증가한 1천200만㎡에 달했다.
내각부 통계에 따르면 기업의 2003년 상반기 대 아시아 설비투자액은 전년 대비 9.2% 감 소했다. 이에 비해 국내투자는 5.1% 증가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작년 9월에 조사한 대 기업들의 2003년 해외 설비투자 계획에서도 해외설비 투자는 전년 대비 7%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생산거점의 U턴 현상을 보여주는 통계들이다.
이런 추세는 박형(薄型) TV와 디지털 카메라 등 디지털 가전 관련업계가 주도하고 있다.
디지털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전기, 정밀기기 관련 업계의 공장용지 취득건수는 110건으로 전년 대비 30% 늘었다. 디지털 가전은 가공·조립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바꿔 말하면 공장을 쉽게 해외로 옮길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품공장이 주변에 같이 들어서는 단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샤프가 올 1월에 가동을 시 작한 미에 현 가메야마에 있는 액정공장 주변에는 철판인쇄가 컬러필터 공장, 닛토전공이 편광필름 공장을 잇따라 건설해 소재류를 포함한 액정TV 핵심부품 생산기지가 탄생했다.
캐논은 오이타 시에 디지털 카메라 공장을 지었으며 마쓰시타전기는 도야마 현 우오즈 시 에 DVD 리코더용 SLSI(시스템 대규모 집적회로) 공장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효고 현 히메지 시에 자동차 엔진시동 부품 공장용지를 취득했으며 산요전기는 태양전지 제 조공장을 오사카 가이즈카 시에 건설할 계획이다.
300㎜ 웨이퍼 가공공장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업계의 설비투자도 디지털 가전에 못지않 다. 후지쓰는 미에 공장에 1천600억 엔을 들여 300㎜ 웨이퍼를 한달에 최대 1만3천 장 처 리할 수 있는 새로운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이 공장은 DVD 녹화재생기용 반도체를 비롯, 디지털 가전용 다품종 소량생산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는 오이타와 미에 현 공장에 각각 2천억 엔씩 총 4천억 엔을 투자해 300㎜ 웨이퍼 를 가공할 수 있는 새 공장을 짓기로 했으며, NEC는 작년 11월 야마가다에 있는 자회사에 600억 엔을 들여 300㎜ 웨이퍼를 월 4천 매 가공할 수 있는 라인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NEC와 히타치제작소의 자회사인 엘피다메모리는 히로시마 공장에 1천억 엔을 들여 라인을 증설키로 했고, 마쓰시타전기도 1천300억 엔을 투자해 도야마 공장에 300㎜ 웨이퍼를 월 7 천500매 가공할 수 있는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일본 반도체 업계가 이처럼 대대적인 설비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년 하반기부 터 디지털 가전제품 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D-램 투자에서 시기를 놓쳐 한국과 미국, 대만 업체에 시장을 뺏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계산에 따 른 것이다.
공장 U턴은 첨단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편직기 메이커인 시마제작소는 무봉제 니트(호 울 가멘트)를 짜내는 자동편직기 개발에 성공하자 이 기계 공장을 일본 국내에 짓기로 했 다. 고급 니트제품의 해외생산 이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무봉제 니트의 특징은 사람의 손 이 거의 가지 않는다는 점. 이음매가 없기 때문에 착용감이 좋고 디자인성이 뛰어난 의류제 작이 가능하다.
이 소재를 이용하면 수입품이 휩쓸고 있는 니트의류 시장에서도 국산품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산요상회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니트 제품의 20%를 무봉제 제품으로 바꿨다. 작년 가을에는 이 소재를 이용한 9만 엔(약 90만 원)대의 제품을 내놓았다.
일본 최대의 니트메이커인 온워드도 20대와 30대 여성층을 겨냥한 1만 엔대의 제품을 선 보였다. 온워드는 연간 생산량 340만 벌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생산, 수입해왔으나 시마제작 소의 무봉제 자동편직기 개발을 계기로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34만 벌을 국내에서 생산키 로 했다. 생산비용은 중국 공장수준이지만 부가가치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고가상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월드사도 니트메이커인 다이이치섬유와 제휴해 작년에 2만~3만 엔 대의 추동용 속옷을 내놓았다.
일본 기업의 생산거점 해외이전이 본격화된 것은 1970년대다. 2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가격경쟁이 격화되고 미·일 무역마찰의 파고가 높아진 것이 직접적인 계기다. 대표적인 예 가 컬러TV 공장이다. 일본 기업들은 자율규제에 묶인 수출규제를 피하기 위해 부품 생산기 지는 한국, 홍콩, 대만으로, 완제품 생산기지는 유럽과 미국으로 옮겼다.
80년대 후반과 95년 전후의 2차 해외이전은 플라자 합의에 따른 급격한 엔화 평가절상이 계기가 됐다. 84년에 달러 당 평균 252엔이던 환율이 86년에 단숨에 160엔 대로 급등하자 값싼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으로의 공장이전이 붐을 이뤘다. 미국과 유럽에 공장을 두는 이른바 '소비지 입지'에는 물론 무역마찰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 다. 90년대 들어 환율이 한때 달러 당 100엔 대를 돌파하는 등 엔화강세가 계속되자 공장이 전 무대는 대부분 최후의 저임 노동시장으로 평가되던 중국에 집중됐다.
첨단제품은 자동화와 디지털화, 고기능화로 제품가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다.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부품은 인건비가 비싼 일본에서 생산하 더라도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일본기업들은 공장을 일본으로 옮기면서 생산기술과 노하우의 '블랙박스화' 전략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블랙박스화는 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보안강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 기업들은 과거 PC산업의 참담한 실패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
미국의 발명품인 PC생산기술을 단숨에 익혀 미국 업체들을 제치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 (OEM) 방식으로 납품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핵심부품인 CPU(중앙처리장치)는 인텔, 운영 소프트웨어(OS)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벽을 넘지 못했다. CPU와 OS를 제외한 PC 자체는 오늘 날 세계 어디서든 생산이 가능한 제품이 됐다.
블랙박스화 전략은 디지털 가전과 반도체로 대표되는 첨단산업과 재래산업 중에서도 부가 가치가 높은 분야에서 PC산업의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체 개발한 기술을 세계 도처에 특허로 등록해 침해를 막되, 기술을 제공할 때는 로열티를 철저히 챙기는 것이다. 후지쓰가 최근 삼성을 PDP 관련 특허침해 혐의로 미 국과 일본에서 제소한 것도 그런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일본 언론은 이런 전략을 가격경쟁이 치열한 제품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생산하고, 고부가가치 상품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선진국과 개도국간 '분업'이라고 그럴싸하게 표현하 고 있다.

이해영 도쿄 특파원 | lh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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