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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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밥 손튼이 출연한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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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실현하는가? 이미 거장이 되어 버린 코헨 형제의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소설이건 영화건 일부러 한번 이상을 본 적이 없지만
이 영화를 다시 보기로 작정했다. 대여섯 군데의 동네 비디오 대여점을 찾았으나 ‘그 비디오는 거기에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인터넷상의 영화보기 사이트에서 이 음울하고도 의미심장한 영화를 두 번째
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세 번째 다시 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하면서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반추해 본다.
사건-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칼라로 찍은 후 색깔을 모두 빼고 흑백으로 프린트했다는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1940년대
캘리포니아의 산타 로사라는 작은 마을의 과묵한 이발사 ‘에드’의 메마른 저음 독백으로
시작된다. 느리게 진행되면서도 꽉 찬 긴장감이 묘하게 뒤섞인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보면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가에 대해 무서우리만큼 냉정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발사로서의 단조로운 일상이 진행되던 어느 날 에드는 다른 지역에서 온 사기꾼에게 속아
드라이크리닝업을 마음먹는다. 에드는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아내 ‘도리스’의 불륜문제를
이용하기 위해 아내의 정부에게 익명의 협박편지를 써서 현금 1만 달러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 후 일이 꼬이기 시작하여 우발적으로 그 아내의 정부이자 아내의 직장 사장인 ‘빅
데이브’를 살해하게 된다. 여기서 더욱 사건은 뒤틀려서 엉뚱하게도 자신의 아내 도리스가
살인용의자로 체포된다. 에드는 어쩔 수 없이 아내를 구명하기 위해 인근 대도시에서 유능한
변호사 ‘프레디 리든 슈나이더’를 선임한다.
당대 최고의 변호사로 자처하는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진실을 말하는 에드의 말을 입증해 줄
사람이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질투하는 남자’ ‘부인을 위한 눈물나는 거짓자백’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는 자신의 확신에 따라 멋지게 짜맞춘 그럴듯한 ‘법정의 진실’을 조작해낸다.
그러나 재판을 앞두고 아내 도리스가 교도소에서 자살함으로써 진실 캐기가 더 이상 불가능해지는
듯 해진다. 텅 빈 것 같은 혼란 속에 그 자신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에 젖어들며 살아가던
에드는 친구의 딸인 ‘레이첼’에게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게 된다. 그러나 ‘착한 아이’
‘맑은 아이’로 알고 있던 레이첼에 관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그 마지막 희망마저 철저히
부서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새롭게 찾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후에 에드는 다시 엉뚱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자신을 속이고 돈을 챙겨 달아난 드라이크리닝 사업자의
사체가 호수 깊은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가방 속에 에드와 동업계약을 맺은 서류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범인이었던 사건에서는 용의선상에도 오르지 않았지만, 자신과 무관한 사건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에드는 전기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진실-그 남자는 거기 ‘있었다’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도대체 우리가 아는 진실의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자아내게 만든다. 다른 한편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긴다.
검사는 검사대로 판사는 판사대로 변호사는 변호사 나름대로 사건의 실체에 대한 관찰을
시도한다. 진실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가 바람에 걷히듯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희망하면서 상식과
과학과 논리로 무장하여 합리적인 의심의 자세로 인지력을 동원한다. 그러나 ‘진실 밝히기’는 그
진실을 둘러싼 안개를 걷어내는 바람이 불어주기 전에는 한낱 우리의 바람에 불과할지 모른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속물과 같은 변호사를 내세워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
속의 변호사는 하이젠베르크의 상대성 원리를 독일의 ‘프리츠 아니면 버너’의 이론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이 변호사는 어떤 사실을 관찰하면 관찰자의 관찰행위 자체가 그 사실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진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변한다. 요컨대 그는
관찰하면 할수록 사실은 더 모르게 되는데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뒤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될 바에야 우리의 불완전한 눈에 보이는 사실을 보지 말고 차라리
사실의 의미를 캐는 데 그칠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보는 진실’과 ‘보여 지는 진실’ 그리고 ‘보고 싶은 진실’
우리 사회에서 대선자금 및 대통령 측근비리와 관련한 진실 밝히기 행진이 한창이다. 여러 가지
사실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가운데 다양한 추측과 억측이 그 사실들을 다시 채색하고 있다. ‘일반’
검사에 이어 ‘특별’검사까지 진실의 바람을 가르는 정의의 칼을 뽑았다. 그러나 어떤 수사결과가
나오더라도 우리가 알게 되었다고 하는 그것만이 진실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영화 속을 잔잔하게 흐르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들으면서, 그리고 벽면에 어른거리는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보면서 ‘거기에 있었지만 거기 없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권태와
희망과 좌절, 그리고 그가 도달하게 된 평화에로의 행로를 추적해 보자.
그러다 보면 내가 보는 사실과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사실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그 양자는 모두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사실과 또 다시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법을 적용하는 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은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과
의심하는 자세’라고.
-김성돈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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