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피플 > 한국경제인물열전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자

한국 에너지 산업의 역사

연탄이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석탄이 한국경제의 동력이었던 시절 역시 동시대였다. 돌아보면 이는 우리 한국사의 힘들고 가슴아팠던 시절의 이름이기도 하다.
연탄을 사용해본 가정치고 대성연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대성그룹 창업자 고 김수근 회장. 국내 자본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연탄공장을 세운 이다.
그가 1947년 대구 칠성동 100 평 짜리 땅에 세운 대성산업공사는 말이 좋아 공장이지 직원 세 사람이 손으로 기계를 돌려 연탄을 찍어내는 가내공업 수준이었다. 한 트럭 분씩 석탄을 사서 그것을 손으로 돌려 연탄을 찍어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대성연탄의 시작은 그렇게 초라함의 극치로부터였다.
당시 김수근은 이웃 회사 사장들로부터 사장 대접은 아예 받지도 못했다. 규모가 워낙 작아 사장으로 쳐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금융조합 이사를 지낸 경력 덕택으로 ‘이사님’ 정도가 가장 높이 불린 호칭이었다. 그 때의 상황을 그의 아내는 “모욕이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김수근은 그의 아내에게 “나는 아무래도 사업가 될 소질이 없나 보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연탄은 숙명이었다. 연료라고는 산에서 마구잡이로 베어오던 장작밖에 없던 시절,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리 산림의 황폐화는 불 보듯 분명한 일이었기에 김수근은 연탄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리라.
하지만 일개 사업가가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연탄 보급에 진력했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김수근은 진심으로 그 같은 생각이었다. ‘잘 사는 나라는 산림이 푸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터였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에너지 확보가 국력의 기본”이라는 그의 지론 또한 이때 싹텄다.



본격적인 탄광개발에 착수한 이후 대성연탄은 사업영역을 다각도로 확대해 갔다.

대성그룹 창업자 김수근은 국내 자본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탄공장을 세웠다.

김수근의 연탄사업 성공과 산림의 푸르름은 정확하게 비례했다. 당시 남벌로 인해 심각하게 황폐해져 가는 산림을 보호하는데 연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연탄은 땔감으로 사용되던 장작의 수요를 빠른 속도로 대체해 나간 것이다. 가난하고 서러운 백성들의 아랫목을 데워주고, 이 나라 산업이 굴러갈 원동력은 그렇게 마련됐다.
이후 연탄의 대량생산, 보급의 길이 열리면서 대성의 성장곡선도 가파르게 상승한다. 1959년에는 왕십리 연탄공장을 인수해 대성연탄을 설립하며 서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된다. 또 문경탄광을 인수해 본격적인 탄광개발에 착수하고, LPG가스, 석유류 판매업도 시작하게 된다. 이 같은 꾸준한 사업영역의 확장은 서민 연료인 연탄과 석탄, 석유, 그리고 LPG가스 등을 일반 가정 및 산업체에 공급하는 국내 최초의 종합에너지 업체로서 대성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1973년과 1978년 1,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대체에너지 보급에 눈을 돌려 대구도시가스를 설립하고, 서울도시가스를 인수했다. 이는 석탄과 연탄의 대량생산으로 발전을 거듭하면서도 대체에너지 개발 및 보급에 전력을 기울여 국가산업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80년 후반부터는 국내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해외 에너지 자원 개발에도 나섰다. 이 같은 연탄에서 석유로 가스로 사업영역을 넓혀간 대성의 역사는 바로 우리나라 에너지 발달사 그 자체이다.
물론 대성의 에너지 역사는 누구보다 일찍 시작된 김수근의 에너지에 대한 관심에서 기인한다. 이는 에너지 산업에 국가적인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한 것이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부터라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이에 반해 대성산업의 에너지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47년이었다. 그것도 최초의 국내자본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은 소년시절 연탄 리어카를 끌던 일을 자신의 사업으로 키우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 출발한 사업이기도 하며,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출발이기도 하다.
1916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수근은 가정형편으로 1933년 대구상고 3학년을 중퇴하게 된다. 부모를 여읜 탓에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것이다. 그 때 일하게 된 곳이 연탄회사였다. 그 후 그는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되고, 1943년 일본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한다. 귀국한 그의 첫 직장은 금융조합이었다. 그 이후 설립한 회사가 대성산업이었다.
김수근의 성격을 보여주는 단면들도 많다. 대성그룹이 보유한 경북 문경새재 주흘산 수백만 평을 관광지역으로 개발하자는 권유가 많았지만 그는 번번히 거절했다. 연탄사업을 벌인 것은 황폐화하는 삼림을 보호하자는 뜻이 컸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곳 주흘산 입구에 “대성그룹은 청정 산림지역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고자 한다” 는 내용의 푯말이 서있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또한 김수근은 출장을 갔다오면 영수증 한 장까지도 빠짐없이 챙기고, 경비가 남으면 회사에 고스란히 넘겼다. 뿐만 아니라 외국 호텔 객실에서 쓰고 남은 일회용 비누를 “집에서 면도할 때 쓰면 좋겠다” 며 가방에 넣어 오기도 했다.
정치권의 변화와 압력에도 초연했다. 대성이 정치적으로 스캔들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3공 시절에 정치헌금을 내라는 실력자들의 요청을 거부해 세무조사를 받았을 만큼 그는 끝까지 정치인에게 줄을 대는 일이 없었다.
그의 경영철학 또한 남다르다. 그는 무엇보다 ‘번 만큼만 투자한다’는 경영지론을 일관되게 지켰다. 그래서 한 우물 경영이 가능했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경영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체형에 맞는 사업을 하나씩 일궈가며 천천히 정도를 걸어 커가겠다”고 평소 강조했던 그의 경영철학과 무관치 않은 대목이다. 이 같은 그의 경영철학은 ‘대기만성’의 약자인 ‘대성’이라는 그룹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삼형제에게 ‘투명경영’ 을 유훈으로 남긴 일화는 유명하다. “기업이 내 소유란 생각을 버려라. 또한 이사회를 사장의 들러리로 만들지 마라. 기업이 이익을 못 내면 죄악이니 이익을 못낼 때는 과감히 전문경영인을 써라. 국민의 사랑을 못 받을망정 지탄받는 기업은 되지 마라.” 이런 김수근의 철학은 대성을 남의 돈을 안 쓰는 튼실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다분히 보수적일 정도로 신중했던 경영자였지만 그 같은 철학이 있었기에 대성이 한국의 에너지 대표기업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병상에 남겼다는 필담 유언 역시 이를 확인해준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

임순철 객원기자| top@istory.net




  기사제보 | 구독신청 | 광고문의 | 회사소개

(110-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85-1
TEL 02-398-3762~8, FAX 02-398~3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