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수도승 두 명이 질척거리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길 저편에서 아리따운 아가씨가 길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비단 신발이 더럽혀질까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수도승이 그 녀를 업고
진흙탕 길을 지나 내려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없이 계속 걸었다. 저녁이 되자 여자를 업고 길을
건넌 수도승에게 다른 수도승이 질책하듯 말했다.
“어떻게 자네는 여자를 업어줄 생각을 할 수 있었지? 수도승은 여자를 멀리해야 하는 것을 몰랐나?”
그러자 여자를 업어줬던 수도승이 대답했다.
“나는 길을 건너자마자 그 여자를 내려 줬다네. 그런데 자네는 어째서 아직도 그 여자를 업고 있는가?”
여기서 여자는 걱정거리를 상징한다. 여자를 업어준 수도승은 진흙탕을 건너면서 잠시 걱정했을
뿐이지만 다른 수도승은 한 번도 걱정과 시름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으면서도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비유하는 얘기다.
이 어리석은 수도승처럼 우리도 항상 걱정을 등에 업고 산다. 특히 직장에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일중독자일수록 수많은 걱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일중독자와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 일중독자는 자신이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40시간 밖에 일하지 않는다.
일중독자가 일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일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하루에
70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하는 일중독자가 실제 일하는 시간은 30시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
40시간은 일에 대해 걱정만 하면서 보낼 뿐이라는 것이다.
주말, 어쩌다 곤한 낮잠을 자고 나면 기분이 왠지 찝찝하다. 이렇게 귀중한 주말시간을 허비해도
되는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다가 일요일 저녁이 되면 불안해진다. 주말에 너무 놀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월요병은 단순한 심리적 질병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월요일에 제일 높다. 모처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이들은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노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겠지? 이러다
영영 뒤 떨어지는 것 아냐?’하는 생각 때문이다.
자신뿐 아니라 사원들의 운명까지 책임져야 하는 CEO나 간부들의 불안과 근심은 가끔 도를 지나쳐
불면증에 이르기까지 한다. 옅은 잠결에 문득 생각난 일 걱정 때문에 다시 잠들어 보려고 애써보지만
허사다. 결국에는 안방에서 나와 냉수 한 잔 들이키고 이른 새벽 거실 소파에서 어제 신문이나 뒤적이는
안타까운 중년이 의외로 많다.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과연 이렇게 걱정할 일이 많은 것일까? 한 심리학자가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모아서 분류해 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
* 걱정하는 일의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즉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엎질러진 물을 걱정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 22%는 아주 사소한 일에 관한 걱정이다. 정말 ‘걱정도 팔자’인 일들에 관해 우리는 너무 많
은 시간을 할애한다.
*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4%는 전혀 손 쓸 수 없는 일들에 관한 것이다. 결국 걱정해 봐야 자신
만 손해 보는 셈이다.
* 이제 4%만 남았다. 이 4%만이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머
지 96%의 걱정거리 때문에 이 4%의 일들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진짜로 걱정해야 하는 일들은 걱정하지 않고 엉뚱한 일들만 걱정하느라 정력을 낭비한다는 뜻
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행복한 순간에도 걱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인간을 아주 잘
드러내주는 일화가 있다.
사막 한 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나무 그늘에서는 생각하는 모든 일이 이뤄진다. 사막을
막 가로질러 온 한 사내가 지친 몸을 겨우 가누며 나무 밑에 앉는다. 그 사내는 생각했다. 이럴 때
시원한 물 한 모금만 있었으면. 그러자 물 한 바가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목마름이 가시자 사내는 생각했다. 온 몸을 찬물에 담글 수 있다면. 그러자 눈앞의 모래밭이 화려한
수영장으로 변했다. 기쁜 마음에 다이빙으로 수영장에 뛰어들어 헤엄을 쳤다. 몸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시자 천국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여느 수컷이 다 그렇듯이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런 기막힌 수영장에
비키니의 아가씨가 있었으면. 그러자 ‘펑’하고 비키니의 아가씨가 나타났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씩이나.
수영장 물가에서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마사지를 받으며 이 사내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에
취한 것도 잠시. 사내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 행복한 순간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갑자기 굶주린
호랑이가 나타나 이 행복을 빼앗아 가지는 않을까? 그러자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아가씨들을
물어뜯고 사내마저 위협했다. 결국 사내는 다시 사막으로 쫓겨났다.
행복한 순간에조차 불행해질 것을 예상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때에
따라 완벽주의자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명칭이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행복을
즐기기는커녕 행복한 순간에 다시 불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결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강박증
환자일 뿐이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부질없이 걱정이 떠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의 놀랜
획스마 교수는 오버 씽킹(over-think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오버 씽킹이란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현상을 뜻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이미 내뱉은 말에 대한
후회, 다른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 지나가면서 던진 동료의 한마디에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
추측 등.
상황에 따라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경우와 불필요한 오버 씽킹은 아주 간단히 구별된다. 오버 씽킹의
대부분은 ‘만약?’ 이라는 가정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만약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하고 생각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만약 이 일이 잘못되면?’하는
걱정이 끝이 없다.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오버 씽킹을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자기반성이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자신의
과오를 분명히 하고 개선해야 할 것을 찾아내는 자기반성은 자신의 긍정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여 삶의
의욕을 높인다. 그러나 오버 씽킹은 다르다.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하게 할 뿐이다. “난
정말 안돼!”라는 부정적 생각만 반복하게 해 자신의 긍정적 능력마저 상실케 한다. 결국 우울증과
같이 부정적 정서가 지속되는 병적인 상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버 씽킹으로 야기되는 부정적 정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나는 혼자야.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
‘도대체 집중할 수가 없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
‘또 이런 식이야. 나는 어쩔 수가 없나봐!’
문제는 이러한 오버 씽킹이 아주 쉽게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정서는 아주 간단한 눈짓, 몸짓, 표정으로도
그대로 전염된다. 특히 불안과 같은 부정적 정서는 긍정적 정서에 비해 더 빠르게 전염된다. “밥
먹어라”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어떤 느낌인가에 따라 식탁에 앉는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조직의 리더가 오버 씽킹할 경우다. 리더의 오버 씽킹은 휠씬 빨리 전염된다. 그 결과
부하직원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 일의 효율이 높아진다면 때에 따라 부하직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도 나쁜 방법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리더의 오버 씽킹은 지속적으로 부하직원들을 불안하게 하고
좌절과 공격성으로 이어져 결국 조직의 팀워크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오버 씽킹하는 경향을 보인다. 끊임없는 인수합병, 퇴직에
대한 지속적 위협,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주식시장, 컨설팅 결과에 따른 조직변화의 소문
등등. 높은 지위에 따른 높은 연봉이 행복하게 만들기는커녕 오버 씽킹의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평가받는 이 사회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오버
씽킹하게 만든다. 내가 무엇을 해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얼마만큼 해냈는가가
중요해진다.
자신이 불행하다는 오버 씽킹에 빠져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목숨을 건다. 다른 사람이
120만 원 받고 내가 100만 원을 받는 경우보다 내가 80만 원을 받고 다른 사람이 60만 원을 받는 경우를
더 선호한다는 심리학 연구결과가 있다. 절대적인 가치보다는 타인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가
더 마음 편하다는 얘기다.
오버 씽킹은 이렇게 합리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하고 세상 보는 관점을 왜곡시킨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오버 씽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된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일이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을 뜻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황해 한다. 재미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니? 이렇게 묻는 이들에게
나는 되묻는다. 아닌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 주어진 의무를 다하며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줄로 착각한다. 자유, 민주, 정의가 한때 최고의 가치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는 수단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이러한 가치들은 소외당하는 사람
없이 모두 행복하게 살자는 궁극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를 추구하는 것만 정당하고 정작 삶의 목적이 되는 행복, 재미를 추구하면 뭔가 죄의식을
느낀다. 잘못된 생각이다. 모두 독재와 억압으로 얼룩졌던 과거로 인해 생긴 피해의식이다.
중요한 일을 찾아서 그 것에 푹 빠지는 재미처럼 오버 씽킹을 예방하기 좋은 방법은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몰입(flow)이라고 한다. 구태여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무아지경 정도가 적당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는 상태 말이다.
낚시의 예를 들어보자. 낚시를 하면서 인생과 우주 전반을 생각한다는 낚시꾼처럼 가짜는 없다. 진짜
낚시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직 찌 끝만 바라볼 뿐이다. 수면으로 겨우 올라온 찌 끝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하루고 이틀이고 앉아 있는다. 물론 가끔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찌가 조금만 움직여도 모든 생각은 간데없고 온 몸에 소름이 끼칠 뿐이다. 손으로
낚싯대의 끄트머리를 움켜쥐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린다. 드디어 찌가 쑤우욱~하고 위로
솟구친다. 순간 잡아채는 손끝으로 고기의 육중한 무게가 느껴진다. 이때 느끼는 희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의 존재는 바로 이런 재미를 통해 확인된다.
물고기의 작은 움직임에도 이렇게 감동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가끔 놓친 물고기에 대한 허풍
(왜 놓친 물고기는 하나 같이 힘이 어마어마한 월척일까?)을 빼면 낚시꾼들처럼 순수하고 행복한
사람은 없다. 낚시꾼들에게 오버 씽킹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허풍쟁이 낚시꾼처럼 재미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행복을
되찾는 길이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행복한 사람 주위에는 행복한 사람이 모여든다. 특히
리더의 행복은 아주 쉽게 전염된다.
오늘 당신의 새벽잠을 빼앗아 가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오버 씽킹으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푹 빠질 수 있는 삶의 재미를 되찾는 일뿐이다. 원치 않는
오버 씽킹으로 괴로운 당신,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삶의 재미를 추구해야 할 때다.
김 정 운
명지대학교 기록과학대학원
여가정보학과 주임교수
명지대학교 여가문화연구센터 소장
저 서
[문화의 심리], [휴테크 성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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