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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비운의 한국인 동포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됐다가 일제 패망의 기운이 짙어가던 1944년 또다시 강제로 배에 실려 규슈 등지 탄광으로 끌려가 생사조차 모르게 된 3천여 명의 한국인 광부들이 있다. 이른바 `2중징용'을 당한 이들 비운의 한국인 동포의 후손들이 사할린 서북해안 탄광도시 우글레고르스크에 아직 삶의 둥지를 틀고 있다.

한서린 우글레고르스크
1939년부터 한인 동포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돼 탄광과 군수공장 등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슬픈 역사를 간직한 섬 사할린.

일제시대 아버지가 강제징용돼 사할린 우글레고르스크 지역 탄광에서 일하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4년 8∼9월에 일본의 규슈(九州)와 도쿄 인근의 이바라키(茨城)현 탄광으로 재징용(2중징용)당한 한인 광부 자녀 1세대들이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위로부터 오세욱.최금순. 강정순씨
사힐린 주도(州都) 유주노사할린스크시에서 북쪽으로 300여㎞ 올라가면 서북해안에 한적한 시골마을 우글레고르스크가 자리잡고 있다. 현재 이 곳 인구는 약 2만여 명이며 한인동포 1천800여명이 살고 있다.
러시아 말로 `석탄 도시'라는 의미의 우글레고르스크는 과거 일제시대 한인동포들이 대거 강제징용 돼 탄광에서 중노동을 했던 지역일 뿐만 아니라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44년에는 또다시 일본 지역으로 재징용(2중징용)을 당해 사랑하는 처자식과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해야 했던 눈물과 한이 그대로 배인 도시이다.
일제시대 우글레고르스크 일대에는 토오로(塔路)ㆍ다이헤이(太平) 등 고품질의 탄광이 모두 14개에 이르렀는데 이곳에 강제징용 돼 광부로 힘겨운 삶을 살았던 한인 동포 중 대다수가 2차대전 말기에 갑자기 배에 실려 재징용의 길을 떠나야 했다.
1944년 일본 정부는 미국의 해상공격 강화로 이 지역의 석탄을 수송할 수 없게 되자 그해 8월11일 각의(閣議) 결정으로 12개 탄광을 폐광시킨 후 그해 8∼9월에 이 지역에서 일하던 한인 광부 거의 전부인 3천192명을 일본의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나가사키(長崎)현의 9개 탄광과 도쿄 인근의 이 바라키(茨城)현 탄광으로 재징용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5년 패전한 일본은 사할린에 있던 일본인 31만2천452명은 귀국시키면서도 일본으로 재징용한 한인 광부들은 그대로 방치했다. 재징용된 한인 광부 3천192명 중 해방 후 사할린에 있는 가족 품으로 돌아온 인원은 고작 100여명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머지 인원은 대부분 생사조차 모른 채 지내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사할린으로 징용당한 남편과 아버지를 따라 조선반도에서 우글레고르스크에 온 가족들은 가장과 남편을 잃고 동토의 땅 사할린에서 60여년의 세월을 힘겹게 살아왔다.
낮선 땅 사할린에서 갑자기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재징용 광부 아내들의 모진 삶이나 아버지 없이 자라야만 했던 아이들의 정신적, 물질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더욱이 재징용 광부의 자녀들이 이제는 70∼80세의 고령으로 여생이 많지 않은 데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에다 건강문제까지 겹쳐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1년 7월 재징용 광부들의 유가족들이 모여 사단법인 `사할린주 한인 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회장 서정길)를 결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해방 이전에 출생한 유가족 276명의 명단을 작성한 데 이어 2001년 7월에는 일본을 직접 방문해 외무성과 적십자사, 재징용 한인 광부들이 일했던 탄광 등을 찾아가 관련 문건과 협조를 요청했지만 "잘 모르는 일이다", "전체 사할린 한인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서 회장은 밝혔다.
유가족회는 8월에 일본을 다시 방문, 조사활동과 관계자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특히 올해가 재징용 60년이 되는 해여서 유주노사할린스크에 지을 예정인 한인문화센터 옆에 위령비를 건립할 방침이다.

끝나지 않은 望鄕歌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요. 하루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일제시대 아버지가 강제징용 돼 사할린 우글레고르스크 지역 탄광에서 일하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4년 8∼9월에 일본의 규슈(九州)와 도쿄 인근의 이바라키(茨城)현 탄광으로 재징용(2중징용)당한 한인 광부 자녀 1세대들이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석탄 도시'라는 뜻을 가진 우글레고르스크는 일제가 한인 광부 3천192명을 일본 땅으로 재징용, 사랑하는 가족들과 한순간에 생이별을 하게 된 곳. 이들 재징용 한인 광부 가운데 사할린으로 귀환한 인원은 100여명 정도이다.
기자가 유주노사할린스크로부터 비포장 길을 7시간이 넘게 달려 우글레고르스크를 찾아 가자 이 지역 임명학(50) 한인회장과 노인들은 손을 부여잡고 "한국 언론으로서는 최초의 방문"이라며 "2중징용 문제를 자세히 알려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 달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정순(72) 할머니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아버지(강진길,1893년생), 어머니(이광순,1900년생)와 함께 3남2녀의 둘째딸로 행복하게 살다 아버지가 1942년 사할린 탄광으로 강제 징용 당하자 불행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2001년 7월 사할린으로 징용됐다 1944년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 규슈(九州) 지방 등으로 재징용(2중징용)된 한인 광부들의 유가족들이 모여 결성한 사단법인 `사할린주 한인 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를 이끌고 있는 서정길(60) 회장은 12일 재징용 실태 파악은 물론 보상청구, 위령비 건립, 유가족 영주귀국 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 가족이 1943년 사할린으로 합류했지만 이듬해 9월 아버지와 큰오빠가 일본 규슈지방으로 재징용을 당해 생이별을 한 후 해방과 함께 한국으로 나간 아버지가 6ㆍ25전쟁으로 소식이 두절됐기 때문이다. 탄광과 농촌일로 어렵게 4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1982년에 사망했고 큰언니와 첫째 동생도 북한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막내동생만 남아있다.
1952년 결혼한 강 할머니는 3남1녀를 뒀으나 1988년 남편을 여의고, 둘째와 막내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며느리, 손녀와 생활하고 있지만 매달 연금으로 지급되는 1천370루불 (47달러)과 며느리가 벌어오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살다 6살 때 사할린으로 온 최금순(66) 할머니도 굴곡진 삶을 살아오기는 마찬가지
아버지(서자근, 1903년생)가 1942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되자 1년 후 어머니(이점순, 1917년생)는 두 딸을 데리고 사할린으로 왔고 1944년 8월 아버지가 다시 일본으로 재징용 당한 직후 유복자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사할린주 한인 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 회장인 서정길(60)씨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사조차 모르자 최 씨와 재혼을 해 최금순 할머니도 의붓아버지 성을 사용하게 됐다.
1953년 결혼한 남편은 1982년에 사망했고 2남1녀는 객지로 떠나 도로변 판잣집에서 연금을 받으며 홀로 살고 있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신상희(70)씨와 부인 이혜순(65)씨는 아버지가 모두 재징용을 당한 한인 동포들로 둘 다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라 생활 자체가 말이 아니다. 부부가 5천여 루블(170달러)의 연금을 받고 있지만 생활고와 병마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이 고향인 오세욱(76)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일본으로 재징용 당한 후 후쿠오카(福岡) 히라야마 탄광에서 사고로 사망, 1945년 2월 유골이 도착해 장례를 치렀다.
그는 당시 부조금을 적어 놓은 향전장(香典帳)과 부친이 탄광에서 가입했던 적금통장 기록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8월 하순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착공될 예정인 사할린 한인문화센터 부지 전경
이들 재징용 한인광부 자녀 1세대들의 염원은 일본으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과 고국으로의 영주귀국이다.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렵고 몸도 안 좋은데다 긴 겨울철의 혹한과 엄청난 적설량도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측의 보상은 형식적이다. 일본측은 재징용은 애써 외면한 채 사할린 한인 실태조사를 벌여 지난 94년 32억엔(350억원)의 예산을 내놓아 경기도 안산에 부부노인들을 위한 아파트 500가구와 요양원, 양로원 등 모두 1천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건립한 후 한인 동포 2∼3세들의 모국방문사업을 매년 실시하고 있지만 더 이상의 보상에 미온적이다.
현재 영주귀국 대기자는 무려 3천명에 달해 수용시설을 대폭 확충하지 않는 한 영주귀국은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 2001년 7월 재징용 광부들의 유가족들이 모여 사단법인 `사할린주 한인 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 (회장 서진길)를 결성, 해결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이렇다할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회 서정길회장의 꿈
"일제의 이중징용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며, 징용광부 1세 동포들의 영주귀국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지난 2001년 7월 사할린으로 징용됐다 1944년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 규슈(九州) 지방 등으로 재징용(2중징용)된 한인 광부들의 유가족들이 모여 결성한 사단법인 `사할린주 한인 이중징용광부 유가족회'를 이끌고 있는 서정길(60) 회장은 재징용 실태 파악은 물론 보상청구, 위령비 건립, 유가족 영주귀국 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가족회는 사할린의 우글레고르스크 지역 탄광으로 징용됐다 일본으로 재징용 된 한인 광부 3천192명의 실태파악을 위해 1945년 이전에 출생한 징용광부 1세대 유가족 276명의 명단을 이미 작성했다.
또 2001년 7월에는 대표단이 일본을 직접 방문, 외무성과 일본 적십자사, 강제징용 됐던 탄광 등을 방문해 관련 문건을 보여줄 것과 보상문제를 제기했고 한국 정부 당국과 대한적십자사 등으로 적극적인 협조를 호소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서 회장 일행은 8월 재징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인 초청으로 재방일, 조사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더욱이 올해가 한인 광부들이 일본으로 재징용 당한 지 60년이 되는 해인만큼 유주노사할린스 크에 지을 한인문화센터 옆에 위령비를 건립할 계획이다.
서 회장도 일제의 한인 동포 강제징용 피해자 가족 중 한 명. 그의 아버지 서자근(1905년생)씨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아내, 두 딸과 단란한 생활을 하다 1942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당했고 이어 1944년 8월 규슈지방 탄광으로 재징용 됐다.
서 회장은 아버지가 재징용을 간 후 석 달 만에 사할린에서 태어나 아버지 모습조차 본적이 없다.
그의 아버지가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에도 돌아오지 않고 생사조차 모르게 되자 그의 어머니 (1974년 사망)는 최 씨와 재혼했고 그 결과 한 때 서 회장도 최정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나 나중에 생부의 성을 되찾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의 큰 누님은 아직도 최씨 성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사할린 네빌스크 해원학교를 나와 `드루주바 수산콜호즈'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지금은 수산업과 선박계통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넉넉한 체격에 언제나 소탈한 성격을 지닌 그는 아버지를 보거나 불러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맺혀 `마마', `빠빠'라는 러시아 말을 좋아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또 사업상 한국에 자주 가는 편인데 모래시계를 흥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앞으로 영주귀국을 원하는 노인들이 한국으로 조속히 갈 수 있도록 하며 사할린에 남는 사람들에게 우선 생활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서 회장은 부인과의 사이에 남매를 두고 있다.

김두환 민족뉴스부 | dh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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