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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건설의 신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돌이켜보면 한국경제가 어렵지 않은 적은 없었다. 말 그대로 부침의 연속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그들의 목적달성을 위해 기간산업을 위시한 이른바 ‘경제’의 싹을 띄운다. 하지만 ‘통제경제’ 였다. 해방 역시 마찬가지여서 남북이 막히면서 경제는 단절되었고, 사회는 혼란의 극치를 보였다. 그리고 1950년의 6?25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하지만 한국경제는 결코 쓰러지지 않았고, 그 많은 위기들은 한국경제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자양분의 역할을 해왔다.
또 하나 우리 경제의 자양분이 되어준 것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시절에 기업을 일으키고 국가경제를 건설한 ‘도전’이 있었다. 물론 그 도전은 아무 것도 없는 시절이어서 맨땅을 일구어 도로를 만들고, 건물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안될 것도 없었다. 무조건 밀어 부쳐야 했고, 실패하지 않아야 했다.
정주영. 그 스스로 한국경제의 성장과정과 너무 닮아있다. 닮은 정도가 아니라 정주영이 곧 한국경제의 역사였다. 그는 오직 일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었고, 일에 관한 한 뭐든지 해보고 싶어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는 뭐든 도전했다.

지난 1985년 서산간척지를 둘러보고 있는 정주영 명예회장
정주영의 첫 사업은 알려진 대로 쌀가게였다. 쌀가게 복흥상회에서 신뢰를 쌓은 덕에 이를 인수하여 경일상회로 상호를 바꾸며 시작한 쌀 도매상이었다. 하지만 경일상회는 1939년 일제의 전시체제령에 따른 쌀배급제가 시행되면서 문을 닫고 만다. 그후 정주영은 자동차 수리 공장 '아도서비스'를 시작하며 제조업을 경험하게 되지만 이마저도 4년만에 일제에 의해 강제합병 당하며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해방 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 운영하게 된다. 하지만 정주영은 그것이 양에 차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된다. 자동차 수리공장인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던 어느 날 관청에 수리대금을 받으러 갔다가 건설업자들이 공사비를 받아 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액수가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자신이 수리비로 100원을 받는다면 그들이 받아 가는 액수는 몇 천 원이었다. 같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서 하는 일인데 그 대가가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 정주영은 당장 정비공장 안에 현대토건사 간판 하나를 더 달게 된다. 말 그대로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그때가 1947년으로 그것이 현대건설의 출발이었다.
현대는 바로 이 '현대토건사'를 기반으로 전후복구사업을 수행하면서 마침내 한국경제계의 전면으로 부상한다. 각종 다리와 도로, 부두시설 등 전후복구사업을 도맡아 수행하면서 현대건설은 설립 10년만에 국내건설업계 1위로 올라서게 된다.
'강(强)한 나라'의 상징산업이던 자동차, 중공업 등 국가기간산업 분야에 과감히 진출, 우리나라 중공업 분야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그리고 정주영은 중동 주베일산업항 공사, 현대조선소 신화, 포니?엑셀 신화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을 신흥공업국의 대열에 올려놓는다.
'인간 정주영'이 현대라는 간판으로 국내외에서 벌인 사업은 한마디로 신화였다. 국내 최초 우리 기술의 자동차 포니를 생산 해 내고, 부지를 찍은 사진만으로 유조선을 수주하고, 거북선이 그려진 화폐로 1억 달러의 차관을 받아낸 인물이었다. 2년5개월만에 완공하여 '세계 최 단기간 완공'이라는 기록을 남긴 경부고속도로 건설, 9억3천만 달러 규모의 20세기 최대의 대역사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 6억3천만 달러 짜리 알코바 공공주택 공사, 여의도의 33배에 달하는 4천700만평 규모의 서산간척 사업 등 '정주영의 카리스마' 가 있었기에 가능한 대역사들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주베일산업항 공사의 9억 3천만 달러라는 공사 금액은 1976년 당시 환율로 4천6백억원, 이는 그 해 우리나라 예산의 절반에 해당되는 큰 금액이었다. 그리고 서산간척사업을 위해 빈 유조선을 서산 앞 바다까지 끌고 와 제 위치에 세운 후에 '빈 유조선'에 '물'을 채워 서해안 급물살을 막았던 그의 창의적 사고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정주영의 절정은 역시 소떼몰이 방북이었다. 1989년 민간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이후 약 9년만의 일이었다. 그 당시 나이 83세였다. 정주영이기에 가능했던 이벤트였고, 국민들은 그를 통해 감격을 느꼈다.

자동차의 날 기념식장 앞에서 관람객들이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인 현대 '포니'승용차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신용'을 목숨처럼 중하게 여겼다. '아도서비스'를 차린 지 한달 여 만에 큰불이 나 모든 것을 잃었을 때, 현재 가치로 환산해 4억 원에 해당하는 3,500원을 무담보로 빌려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정주영은 확실한 보증수표'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이때 빌린 돈을 1년만에 이자까지 붙여 갚았다.
6?25전쟁이 끝나고 그가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공사를 수주했을 때의 일이다. 계약조건은 공사기간 26개월에 총 공사비 5,478만환. 하지만 물가폭등, 물난리 등으로 인해 공사 여건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결국 노임은 밀리고 자금을 빌려준 전주들이 갚으라고 아우성을 치는 상황이 계속되자 임원들은 공사 중도포기를 건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주영은 "신용을 잃으면 사업가의 생명은 끝난다"며 또 다른 빚을 얻어 공사를 마무리한다. 결국 그는 7,000만 환이라는 막대한 적자를 냈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정신을 높이 산 정부가 2억3,000만환 규모의 한강인도교공사와 같은 대형공사를 잇따라 맡겼고 이는 건설분야에서 현대가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한국경제사에 있어서 정주영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후복구사업에서 공업입국, 중화학공업화, 첨단산업화로 이어지는 우리 경제사의 주요 물줄기를 민간부문에서 이끌어 온 주역이 바로 정주영이기 때문이다. 6?25동란으로 피폐된 국토를 재건 할 때에도 정주영은 그 선두에서 전후복구공사를 담당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사회간접시설은 거의 정주영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다.
정주영이 절대적으로 이윤만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기업가가 단순한 이윤추구를 떠나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주판알'을 엎고 사업을 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철저했다. 막무가내로 밀어 부친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치밀했다. 사우디 주베일산업항을 건설할 때의 항만 시설의 일부인 철 구조물을 울산 조선소에서 블록으로 제작해 바지선에 싣고 아라비아 반도까지 운반한 아이디어는 세계 건설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엄청난 일을 하면서 그는 보험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보험료 대비 수습비용과 사고 후 구조물이 떠내려갈 위치까지 파악해두고 있었다.
스스로 "나는 성공한 기업가가 아니라 단지 부유한 노동자"라고 생각했던 정주영. 그의 인생은 늘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도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정주영' 하면 넥타이 맨 모습보다는 작업복 차림의 공사현장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또 다른 정주영이 필요할 때다.

임순철 객원기자| top@isto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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