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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상하이 야경

35도 넘으면 오부조명 켤 수 없어




상하이의 화려한 야경. 그러나 뉴욕이나 도쿄의 야경이 일하는 사람들에 의한 불빛인 데 반해 상하이는 맹목적인 조명이라는 비난이 높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야경
중국의 개혁ㆍ개방을 상징하는 상하이의 화려한 야경이 온도계를 쳐다봐야 할 처지에 처했다. 극심한 전력난 속에 고통 받는 시민들의 생활을 감안해 당일 기온이 35도가 넘는 날에는 상하이 고층건물의 외부 장식등을 소등하기로 상하이 시당국이 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여름 밤을 수놓았던 황푸강 양안의 와이탄과 푸둥의 야경도 쉽게 볼 수 없게됐다. 현재 상하이 고층건물의 야간조명을 위해 소요되는 전력은 3만㎾h에 달하는데 이는 상하이 시 전체 전력소모량의 0.2%에 달한다.
야간조명을 끌 경우 상하이 시민 3만 가구에 여름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하이시는 또 고층건물의 야간조명에 소요되는 전력량을 줄이기 위해 전력을 적게 소모하는 전등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력난이 가중되면서 ‘애물단지’로 추락했지만 ‘뉴욕의 밤거리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상하이 야경은 얼마 전까지도 1년에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는 효자로 인식돼 왔다.

황푸강의 화려한 변신
무더운 남국의 여름날씨에 시달리는 상하이 사람들에게 오후 6시를 전후해 여름날 해가 서서히 힘을 잃어 가면, 상하이 황푸강 양안은 화려한 변신을 보여준다.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신시가인 푸둥의 야경은 초현대적이다. 타워로는 동양 최고, 세계 3위인 둥팡밍주(東方明珠廣播電視塔)는 460m나 되는 거대한 몸을 마치 고급 살롱의 마담처럼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치장한다.
둥팡밍주와 함께 바로 우측에는 진마오 빌딩(金茂大廈)이 은은한 빛으로 화답한다. 88층으로 역시 동양 최고, 세계 3위인 진마오 빌딩은 420.5m나 되는 거대한 칼 모양을 드러내놓고 둥방밍주와 함께 황푸강 동쪽인 푸둥의 야경을 멋들어지게 연출한다.
황푸강 서쪽인 푸시의 야경에는 전통의 아름다움이 있다. 와이탄으로 불리는 푸시 쪽 야경은 1세기 전에 지어진 외국풍 건물들이 고즈넉한 조명을 받아 화려한 나들이를 하고 있다.
각 건물마다 ‘날 보러 와요’를 외치듯 저마다 화려한 조명발을 비추고 또 그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이리로 꾸역꾸역 모여든다. 프라하 야경이나 상페테르부르크의 야경이 최고라는 말들은 적어도 황푸강의 야경을 보는 순간만큼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연출된 ‘빛나는 상하이’
상하이의 야경에는 철저한 통제가 따른다. 원래부터 상하이 시가지에 건물을 지을 때 건물마다 똑같은 설계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서울이나 다른 동양의 도시에 비해 화려한 상하이다. 그런 상하이를 더욱 상하이답게 하기 위해 시 당국은 스카이 라인을 따라 야간조명을 강제로 하고 있다. 물론 야간조명에 소요되는 전력은 모두 당국의 부담이다.
조명의 강도는 물론이고 색깔마저 시 당국이 통제하고 있다. 건물주들이 불만을 제기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여전히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밤 10시(하절기에는 11시)만 되면 한순간 화려했던 조명이 하나둘씩 꺼진다. 언제나 어김없다.
도시 조명의 시작은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재위 1643~1715)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경찰이 보안을 목적으로 도로에 면한 창에 오후 9시 이후 밤새도록 등불을 켜두도록 한 데서 시작됐는데 당시는 어두운 거리에 그것만으로도 밝고 안전하게 느껴져 획기적인 조명으로 유명해졌다.
이것이 ‘빛나는 파리’로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는 시초가 됐다. 루이 14세의 치세는 ‘빛나는 시대’로 불려졌고 파리의 조명은 당시 유럽문화의 상징이 됐다.
상하이의 야경에도 통치자들의 속내가 담겨 있다. 한마디로 ‘상하이는 빛나고 있다’는 것을 연출하기 위해 상하이의 고층빌딩을 배우로 활용하는 셈이다. 밤이 돼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빛들이 하나 둘 나타나면 상하이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황푸강의 더러운 황톳물도 와이탄 뒷골목의 허름함도, 푸둥 건설을 위해 희생 당한 원주민의 서러움도 야간조명에 모두 묻혀버린다.

중국의 푸둥, 한국의 새만금
상하이에 대한 중국 통치자들의 의욕, 그리고 중국사회의 특색은 우리네와 비교하면 잘 알 수 있다. 중국개방의 상징인 상하이 푸둥 신구 개발사업과 국내 대규모 간척 프로젝트인 새만금 사업은 모두 1991년 첫삽을 떴다. 그러나 둘의 운명명은 10여 년이 지난 오늘 판이하게 다르다.
1989년부터 시작된 푸둥사업은 상하이 시장과 당 총서기를 역임한 장쩌민과 주룽지 등 시대를 이끈 지도자들에 의해 차질 없이 진행됐다. 그리고는 서울의 86.3%에 달한다는 522km2의 황푸강 지역에 세계 금융 중심지와 정보 하이테크를 건설해냈다. ‘동양의 맨해튼’이 불과 10년 만에 건설된 것이다. 오죽하면 2001년 초 상하이를 방문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천지개벽을 운운했을까.
폭 넓이만 100m가 되는 쓰지(世紀)대도, 2개의 해저 터널과 지하철이 완공됐고, 금융의 심장부인 류자쥐에는 100여 동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세계 100대 다국적 기업의 대부분이 이곳에 진출해 있다. GM과 IBM 등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이 아태지역의 본부를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중국 최초의 와이가오차오 보세구는 물론,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의 세계적 메카로 떠오르는 창장 하이테크 단지, 세계 최대를 지향하는 양산 심수항 개발 등 한 나라를 움직이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장쩌민을 비롯해 중국식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영도자들의 강력한 추진력에 의해 현실로 옮겨졌다.
반면 세계 최장의 방조제(33km)를 건설해 여의도 면적의 14배인 1억2천30만 평의 국토를 넓히겠다며 야심 차게 출발했던 국내 최대 간척사업, 새만금 사업의 오늘은 어떠한가. 1996년 시화호 오염사건을 계기로 국내 환경단체가 개펄 보호와 수질오염을 이유로 사업중단을 촉구하며 오도 가도 못하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국가적 골칫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이처럼 상하이의 야경에는 중국의 오늘이 담겨져 있다. 화려함 속의 통제, 그 속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는 ‘무시될 수 있는 대상’으로 치부된다. 광화문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붉은 악마들의 촛불행진과는 애초부터 다른 도시의 치장인 셈이다.

‘맹목적인’ 상하이의 조명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상하이의 야경을 날씨에 따라 자유롭게 볼 수 없게 됐다. 그 속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숨어 있다. 극심한 전력난에 공장들이 제한송전과 강제휴무 등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민들이 에어컨마저 제대로 켜지 못해 자연스럽게 ‘전력 먹는 하마’에눈길을 돌리게 됐다.
예전 같으면 감히 당국의 처사에 대들지 못했지만 최근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하이 야경을 즐길 때인가’라는 탄식이 나오더니 어느덧 업계 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사회주의 혁명 제4세대 지도자들에 의해 공산당 입당 등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있는 자본가 계급인 이들은 미국의 뉴욕이나 도쿄의 야경은 실제 일하는 사람들이 연장근무를 하거나 안전을 위해 켜놓은 불빛이 만들어낸 광경이지만 상하이는 맹목적인 조명을 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일부 언론마저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상하이시가 다급해졌다는 후문이다. 결국 ‘35도가 넘으면 야간조명 제한’이라는 시 당국의 조치는 민간드의 점증하는 불만을 감지한 상하이시의 타협책으로 해석될 만하다.
이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새만금 사업의 운명을 사실상 좌우하는 한국의 시민단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중국 땅 상하이에도 서서히 민간의 목소리가 움트기 시작했다는 점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개혁?개방의 결과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우탁 상하이 특파원 |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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