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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 팔리는 상품 따로 있다

가격파괴, 보상판매, 긴 상품명 봇물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웰빙 식생활 문화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중인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건강, 웰빙, 메스티지, 꽃미남….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말. 현대백화점 상품본부와 유통연구소가 매출 기여도, 집객력, 화제성, 파급성 등을 기준으로 상반기 히트상품을 선정한 결과 이들 키워드와 관련된 상품이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크게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식품 선택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웰빙의 영향으로 채식 및 자연식이 확산되면서 고기 소비는 전반적으로 크게 줄었다. 대신 유기농 음식이나 건강식품은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클로렐라나 비타민 등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세 배나 많이 팔렸을 정도.
또 광우병과 조류독감의 여파로 돼지고기 매출이 유독 크게 늘었다. 제주흑돈, 무항생제 돈육, 녹차 돈육 등은 값이 비싼데도 수요가 몰리는 상품. 최근의 만두 파동도 그렇고, 건강을 생각해 다소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사먹겠다는 소비자들의 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반신욕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와 관련된 상품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요가가 대중화되면서 요가 매트 등 관련용품을 비롯, 몸매 관리에 필요한 용품 역시 큰 인기를 누리긴 마찬가지. 모두가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웰빙의 열풍은 끄떡없음을 증명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가격 면에선 값비싼 상품보다 중저가의 실속형 웰빙상품이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
대중적 중고가 명품인 ‘메스티지’도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명품의 가치와 더불어 실속까지 함께 따지는 새로운 소비유형인 셈이다. 명품에 대한 소비는 전반적으로 크게 줄었지만 메스티지는 크게 늘어난 것이 이를 잘 반영해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경기침체를 맞아 소비자의 굳게 닫힌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파격적인 할인제품들. 이에 따라 각 유통업체는 손님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와 이색 이벤트를 총동원하는 중이다.
사용하던 제품을 갖고 오면 새 것으로 바꿔주거나 특정 제품에 한해 1원에 판매하는 ‘1원 상품전’ , 10원부터 시작되는 경매, 순금 보상판매 등이 그것이다. 관련업계가 불경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지 역력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출을 아끼거나 재활용을 염두에 두는 소비자들을 의식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펼치려는 노력도 눈에 띤다. 현대백화점은 일부 브랜드에 한해 긴소매 셔츠를 가져올 경우 여름용 반소매로 고쳐준다. 수선비는 당연히 무료. 신세계백화점도 유행 지난 모피를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실시했다.
이런 수선 서비스는 외환위기 때 일부 유통업계와 매장에서 실시했던 것. 불경기일수록 이런 류의 서비스가 소비자들에게 먹혀 들여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보상판매 역시 큰 인기다. 선글라스, 핸드백, 피아노 등 사용하던 물건을 일정 금액으로 보상해 새 물건을 구입할 때 그만큼 할인해주는 것이다.
나아가 유통업계의 세일 열풍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내수침체가 연일 바닥을 기록하고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활을 걸었다고까지 보일 만하다. 특히 최근의 세일은 다른 때보다 기간이 길고 세일 참여율이 높은 게 특징.
한편 불경기에는 긴 제품명이 매출에 유리하다는 속설도 등장했다. 이는 특히 식품업계에서 유행한다. 이유는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것은 물론 특별히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상품의 특성을 잘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가전, 가구, 침구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할인 혜택과 사은품을 증정하고 있는 현 대백화점의 이색 할인행사
‘들기름을 섞어 바삭바삭 고소하게 튀겨낸 김’ ‘조개와 멸치로 맛을 낸 된장’ ‘청정원 우리 아이 한입에 쏙~ 돌돌이 김’ 등이 대표적인 긴 상품명의 예. ‘녹차를 넣어 만든 산뜻한 면과 시원한 동치미 육수가 그대로 들어 있는 풀무원 녹차 생냉면’은 무려 36자나 되어 그 자체만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풀무원은 그밖에도 ‘간편하게 만들어 맛있게 먹는 새콤달콤 초밥용 유부’ 등 긴 이름의 상품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여성들의 치마 길이는 짧아지고 남성들의 넥타이 폭은 넓어진다는 속설 역시 건재함을 과시한다. 백화점 신사복 매장에 가보면 한눈에도 자연스러운 어깨선, 넉넉한 바지통 등 여유가 느껴지는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잔뜩 위축된 심리에서 벗어나 편안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디자인으로 표출되기 것일까?
이런 경향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다름 아닌 넥타이. 최근 들어 폭이 넓고 풍성한 느낌을 주는 넥타이가 주목받고 있다. 이것만으론 부족한지 이런 넥타이는 목에 맬 때도 두껍고 크게 보이도록 매듭을 두 번 지어야 제 멋이 난다고.
한편 이마트는 최근 불경기 소비의 특징으로 ‘가치 소비’를 꼽았다. 이는 상품의 용도와 가격, 만족도 등 상품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한 후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불필요한 소비는 최대한 줄이고, 대신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망설이지 않고 지출하는 게 가치 소비의 특징이다. 이에 따라 이마트는 올해 상반기에 높은 매출을 기록한 상품의 가치기준을 평가, 생필품은 가격, 삶의 질과 관련된 상품은 품질, 식품은 신뢰도를 기준으로 소비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이런 노력은 유통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텔이나 면세점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본격적인 여름과 휴가철을 앞두고 모두가 앞 다퉈 대대적인 세일에 들어가고 있다. 비싼 외식을 꺼리고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주부들이 늘면서 외식업계 역시 경쟁적으로 가격파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경기가 계속해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벌이는 이들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추세.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불경기에 적당한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형성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윤경 기자 | bookwo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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