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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근로시간 단축 후회
'미국형 옳았다' 자성론 확산


바야흐로 바캉스의 계절. 연간 한 달이 넘는 휴가기간을 부여받고 있는 유럽인들은 늘 여름을 손꼽아 기다린다. 유럽인들의 주당 근로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낮고 여가시간은 가장 길다.
유럽인들은 올해도 긴 휴가를 만끽할 것이다. 다만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이처럼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삶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어렵다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개미와 배짱이
유럽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주당 근로시간이 계속 단축되는 추세였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평균 주당 근로시간이 35시간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국가들에 속한다. 프랑스인은 연중 25일, 독일인은 연중 30일의 휴가를 인정받고 있다. 반면 일본인은 18일, 미국인은 12일에 불과하다. 독일의 연중 휴가는 지난 70년대에 20일이었으나 80년대에는 28일, 90년대 중반에는 30일로 늘어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의하면 유럽인의 평균 근로시간은 미국보다 10%가 적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18%나 차이가 난다. 지난해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천400시간을 밑돌았다. 반면 미국은 1천777시간, 영국은 1천650시간이었다. 영국은 유럽에 속하지만 주당 근로시간이 EU가 정한 한도인 48시간을 넘기고 있는 예외적인 국가다. 일벌레로 소문난 일본인의 근로시간은 여전히 1천828시간에 달하지만 30년 전에 비해서는 17%나 줄어든 것이다.
이와 달리 미국인들의 근로시간은 속절없이 늘어나기만 했다. 현재 미국인은 1970년보다 20%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인 가족들이 8월 한 달을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해변에서 출근 걱정을 잊고 지내는 동안 미국인 가족들은 휴가기간을 쪼개 디즈니 월드 같은 데서 겨우 며칠을 즐기다 돌아오는 게 일반적인 휴가 풍경.
미국인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할 뿐 아니라 노동 강도 역시 상대적으로 높다. 일례로 직장을 가진 미국인 부모들은 자녀를 데리고 휴가지에 가서도 항상 이메일로 본사와 연락을 취하곤 한다. 그 결과는 노동생산성의 꾸준한 향상이다.
OECD는 미국인들의 근로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히 1인당 소득증가율도 유럽을 계속 앞서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노동자 개개인의 부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국가경제도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열린 유럽경제정상회의 모습. 유럽경제의 성장률은 지난 12년 가운데 11년 동안 미국을 앞서지 못했으며, 성장속도도 지난 40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유럽병의 증상
유럽경제의 성장률은 지난 12년 가운데 11년 동안 꼬박 미국을 앞서지 못했다. 성장속도도 지난 40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유럽중앙은행(ECB) 통계에 따르면 이 지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70년대에 연간 3.2%였지만 80년대에는 2.4%, 90년대에는 2.1%를 기록, 갈수록 속도가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 유럽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올해 1분기에 미국은 1%, 일본은 1.5%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지만 유로화를 사용하는 지역은 0.6%에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상하는 유럽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1.7%로, 미국과 일본의 절반에 불과하다.
향후의 성장 잠재력도 낮다. OECD는 유럽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현재 2%지만 지금부터 오는 2020년까지 20년간 1~1.5% 정도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크레디 스위스 애셋 매지니먼트의 수석 투자전략가 필립 폰드란은 “유럽은 앞으로 15년간 세계경제의 성장률보다 계속 뒤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모건 스탠리의 저명한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7월 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경제는 지난 10년간 일본 없이도 사는 법을 배웠듯이 유럽의 동맥경화증에 대해서도 점차 체념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해 유럽의 실업률은 평균 9%로, 미국의 두 배에 달한다. 고실업으로 소비자 지출은 둔화 상태이고 역내의 기업들은 노동비용의 상승을 피하기 위해 중국이나 동유럽 등으로 줄줄이 생산설비를 이전하는 추세다.
출산율 저하로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 노동인구의 감소는 국가의 생산역량과 잠재력을 해치기 때문이다. 1인당 생산량이나 소득이 증가하지 않는 한 경제성장은 둔화, 혹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평균 주당 근로시간이 35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가에 속한다. 사진은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을 맞아 에펠탑 앞에서 펼쳐진 화려한 불꽃놀이 모습
유엔 통계에 의하면 오는 2050년의 인구는 현재보다 5% 줄어든 2억8천900만 명 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미국 인구는 44%가 늘어난 4억900만 명으로 늘어난다는 것. 인구의 고령화가 심화되는 것도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니다. 연금 수혜 대상자가 늘어나면서 보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정부가 경기팽창 정책을 취할 공간도 협소해지고 있다.
서유럽 정부는 이미 공공예산의 12%를 연금 부문에 할당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일본, 호주보다 두 배가 많은 것이다. 사회복지 비용의 부담은 고스란히 지금의 청장년 세대로 옮겨가고 있는 형국이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현재는 네 명의 노동자가 한 명의 연금 수혜자를 부양하고 있지만 오는 2050년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과거 미국처럼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일 것을 권하고 있지만 높아가는 국민들의 반 이민정서가 걸림돌이다. 최근 유럽 일부 국가에서 극우 정당이 득세한 것도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처럼 우울한 시나리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소비자들은 되도록 지출을 억제하고 저축을 늘려 간다. 2000년에서 2003년 사이에 독일의 저축률은 9.8%에서 10.7%로, 이탈리아는 14.4%에서 15.1%로 각각 상승했다. 2003년에 미국 가정은 가처분 소득의 3.4%만을 저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도이체 방크의 이코노미스트인 토마스 마이어는 유럽이 수출회복으로 간신히 성장의 엔진을 유지해 가고 있지만 수출의 모멘텀이 국내수요로 반영되지 않는다면서 자동차로 말하면 트랜스미션이 부러진 셈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기업들이 역내 시장에 대한 미련을 접고 있는 분위기라면서 역내의 생산활동이 보다 매력적이어야 이 같은 악순환을 멈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모델의 실패
‘선진사회가 되면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이는 가능하며 바람직하다’는 통념이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이런 컨센서스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균열을 일으켰다.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 행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기업친화적인 정부가 등장하고 공급 중시 경제학이 득세하면서 근로시간은 계속 늘어났던 것이다.
OCED 자료에 의하면 미국뿐 아니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의 근로시간이 70년 이후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4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취약한 노동자 보호법을 갖고 있는 국가들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근로시간이 큰 폭의 감소율을 보였다. 심지어 스웨덴에서는 주당 30시간제의 사회적 효과를 연구하고 있을 정도다. 유럽은 일자리의 수평적 확산을 위해 임금인상을 억제하되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정반대의 길을 밟았다. 독일은 강력한 노조가 84년에 대대적인 힘의 과시를 통해 주당 35시간제를 쟁취했고, 프랑스의 리오넬 조스팽 정부도 2000년 이를 뒤따랐다 이를 유심히 살펴보면 청교도적 직업윤리가 뿌리 깊은 국가들이 미국 모델을 따랐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 유럽의 문화적 전통이 아담 스미스보다는 토르스타인 베블렌에 가까운 탓일지 모른다는 해석도 있다.

유럽이 ‘휴식 중독’에서 깨어나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생산성 증가율 둔화 등 부정적 측면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일자리의 수평적 확산을 꾀하는 동안 미국은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 유연한 노동시장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90년대까지는 양측 간에 이렇다 할 격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유럽형 모델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큰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한동안 노동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결과는 달라졌다. 유럽형 모델은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면서 부정적 측면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의 선택은 장기적 성장을 통해 결국 옳았음이 입증됐다. 미국경제는 닷컴 버블의 붕괴 이후 탄력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유럽경제는 아직도 10여 년이 넘는 장기침체의 상처를 핥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독일정부는 최근 실업수당을 줄이고 해고 여건을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지도 저하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경기 진작을 위한 감세정책을 놓고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연립정부가 내홍에 빠져 있다.
일자리의 확산을 통한 높은 고용수준을 달성한다는 유럽 모델의 구상은 실패로 끝난 듯하다. OECD 통계를 보면 지난해 미국 노동연령층의 4분의 3이 일자리를 갖고 있는 반면, 유럽은 3분의 2 수준이다. 유럽의 실업률은 평균 9%로 미국의 두 배다.
독일 경제연구소의 클라우스 짐머만 회장은 이에 대해 “우리는 레저 사회를 만들었지만 미국인들은 근로 사회를 만들었다”면서 “우리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재검토할 단계에 와있다” 고 말하고 있다.
씨티그룹의 런던 주재 이코노미스트인 위르멘 미켈스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유럽의 실험은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그는 유럽에서 당분간 근로시간 연장이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켈스는 이런 변화가 단기적으로 고용증대의 효과는 없을지 모르지만 기업들의 해외이전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고용이 안정되면 소비자 신뢰가 증가하고 저축률의 가파른 증가 추세를 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기업의 수익성이 증가해 투자를 촉진하고 낮은 생산비용은 낮은 금리를 뒷받침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
미국계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도 유럽의 경제성장이 오랫동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노동인구는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반면 적게 일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잘라 말한다.
모건 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인 엘가 바르치는 “근로시간을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독일이 구조적 문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왕도”라고 단언했다.

내부에서도 자성론 ‘솔솔’
유럽 내부에서도 이런 충고에 서서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최근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반성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 그 실례다.
‘놀자’ 분위기에 대한 각성을 촉발한 것은 독일 기업 지멘스였다. 지멘스의 경영진은 지난 6월 주당 35시간을 40시간으로 환원하지 않는다면 국내의 두 개 휴대폰 공장을 인접국 헝가리로 옮기고 2천 명을 감원한다는 계획을 노조 측에 통보하면서 압박을 가했다.
독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동비용이 높은 국가. 헝가리의 임금은 독일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지멘스로서도 글로벌 경쟁시대에 주당 35시간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
노조 측은 결국 이에 굴복, 임금동결과 주당 40시간 근무제로 환원하는 데 동의했다. 사측은 이에 호응해 앞으로 최소 2년간 생산설비를 유지하고 기술혁신을 위해 3천만 유로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지멘스의 노사는 이는 특정기업에 국한된 사례이며 확대해석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독일 언론을 비롯해 이를 대세의 전환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우세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십 개의 다른 기업들이 이를 뒤따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독일 최대의 단일 산업노조인 금속노조(IG메탈)조차도 주당 35시간을 고수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 분위기다.
동독 쪽에서는 서독보다 더욱 수용적인 자세다. 동독 자동차 노조는 지난해 6월 IG메탈이 이 지역의 주당 38시간 근무제를 서독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파업을 시도했으나 참여를 거부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IG메탈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헝가리나 폴란드에 일자리를 빼앗기느니 더 일하겠다” 는 것이 이들의 메시지였다.
독일 고용연구소의 오이겐 슈치나겔 연구원은 사측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며, 노조도 경제환경이 나빠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독일의 한 경제전문지가 실시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독일국민의 57%가 주당 40시간 근무제 환원을 노사가 논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일자리 안정을 위해 추가수당 없이 근로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데는 79%가 찬성했다. 심지어는 노조원의 63%도 이에 동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의 공공부문에서도 근로시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바바리아주는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에서 42시간으로 늘렸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연방정부 공무원의 근로시간을 38.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길 희망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근로시간 연장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을 의식해 대안으로 법정 공휴일의 축소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공휴일이 종교축제와 연관된 것이어서 교회의 반대가 심한 것이 문제다.
주당 근로시간이 35시간에 불과한 프랑스에서도 중도우파 정부가 전임 사회당 정부 때 도입된 이 제도에 본격적으로 메스를 가하려 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니콜라 사르코지 경제재무 장관 등 일부 각료들이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조차도 최근 “주 35시간 근무제의 긍정적 효과를 결코 믿은 적이 없다”며 이들을 거들어 주고 있다.

미국인은 1970년에 비해 20%나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고 노동 강도도 높다. 하지만 그 결과는 노동생산성의 꾸준한 향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전임 사회당 정부의 핵심공약으로 지난 2000년 채택된 주 35시간 근무제 실시로 연간 160억 유로(195억 달러)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라크 대통령 정부는 프랑스의 재정적자가 EU의 97년 성장안정화협약 체결 당시 합의된 GDP의 3% 상한선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주요인의 하나로 주당 35시간 근무제를 꼽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도 35시간 근무제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20만~3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지만 이 정도는 90년대 후반의 강력한 성장의 결과만으로도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국민여론도 돌아서고 있다. 7월 7일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10명 중 9명이 소득증가를 위해서는 주당 35시간 근무제를 완화하는 데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의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1.7시간으로 연간 기준으로는 1천891시간이다. 이는 독일보다 200시간 이상 많은 것. 하지만 스위스에서도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근로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스위스 경영자 단체는 최근 프랑스와 독일처럼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실수를 범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스위스는 지난 2002년 3월, 주당 36시간 근무제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3분의 2가 이를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미국, 유럽 모델의 접점
“노세, 노세”를 구가하던 유럽의 노동자들은 이처럼 위기의식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직장의 안정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있어 급여를 소폭 인상하거나 동결하는 조건으로 보다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 결국 유럽인은 열심히 일해야만 잘 살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에 다다른 듯하다.
영리하게 일하든, 아니면 어리석게 일하든 열심히 일하는 것은 보답을 준다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은 프랑스인보다 두 배나 많은 시간을 바쳤기 때문에 세계 최고수준의 고도성장을 경험했지 않은가.
물론 근로시간 연장이 처방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브뤼셀에 소재한 유럽정책연구구 센터의 다니엘 그로스 소장은 근로시간이 늘어나더라도 한계생산성은 체감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럽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직업훈련과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로스와 같은 사람들은 근로시간 연장이 장점을 갖고 있는 유럽 모델을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할 것이라 우려한다. 반면 지지자들은 유럽 모델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여하튼 유럽인은 휴식 중독에서 깨어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은 부를 늘리는 대신 나날이 소중한 시간을 일에 소모하며 휴식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해답은 중용, 즉 두 모델의 중간지점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문정식 제네바 특파원 |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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