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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입시 도전하는 한국학생들
 학교수업 뒷전, 고액의 한국식 사교육 여전히 기승


소수정예만 살아남는 중학 졸업자
중국에서 7, 8월은 ‘입시 혹서’의 잔인한 여름이다. 오는 9월 신학기를 앞두고 고등학교 입시 연합고사와 대학입시가 실시되고 그 결과가 발표돼 청소년들의 장래 향방이 어느 정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입시험 자녀를 초조히 기다리고있는 중국의 학부형들
청도도 예외가 아니다. 자식의 교육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한국인 학부모들은 뙤약볕에 벼가 타들어가고 태풍에 논이 침수되는 최악의 상황을 지켜보는 농민의 심정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청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1992년 한국-중국 수교 당시보다 100배 가량 늘어난 5만여 명(7월 현재, 청도시 집계). 청도진출 한국기업은 5천3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은 2천5백여 명. 이 중 초?중?고생은 2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현지 한국상공회는 추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대학입시도 중요하지만 고교 연합고사 역시 대입수능 못지않게, 어느 의미에서는 더 중요하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인문고교에 진학해야 하는데 정원이 중학생 정원의 20~3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 중학교 졸업자는 사실상 4년제 종합대학 진학이 불가능하다. 1차로 대거 걸러내 소수정예만 살아남게 하는 셈이다. 중학 졸업자의 70~80%는 매년 실업계 고교, 예체능 전문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업전선에 나서야 한다.
청도의 고교입시는 특별전형과 연합고시로 나누어 실시된다. 금년에 처음 도입된 특별전형은 지난 6월 중순 실시됐다. 청도에서 최고의 명문고교로 알려진 청도2중은 청도 시내 중학교에서 3 % 내에 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전형을 실시, 100명(750명 응시)을 선발하고, 7월부터 합격자를 기숙사에 입소시켜 공부시킨다.
7월초에는 등록을 끝낸 합격자 100명을 학교에서 인솔, 북경대학과 청화대학을 찾아 “너희들이 3년 뒤에 진학할 대학”이라고 각인시키는 등 각종 MT를 실시한 후 곧바로 본격적인 자율학습에 들어간다.
중국의 학제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6년, 대학교 4년이다. 중학교는 전 3년, 후 3년으로 구분되는데 우리나라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전 3년은 초급중학이며,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후 3년은 고급중학이라 부른다.

한국학생에겐 기부금 요구
올해의 고교 연합고사는 지난 6월 하순부터 7월 상순에 걸쳐 수험생이 제1지망한 학교에서 세 차례에 나누어 실시됐다. 우선 체력장을 치룬 뒤 사흘에 걸쳐 하루에 두 과목씩 총 여섯 과목의 시험이 실시됐다.
첫날에는 오전에 국어(중국어) 2시간, 오후에 화학 1시간 반으 시험 치르고, 둘째 날엔 수학, 정치 (사회주의 국가라서 대학 때까지 필수과목이다)시험을, 마지막 날엔 영어, 물리 시험이 각각 실시됐다. 이어 7월 상순엔 영어회화가 별도로 실시됐다.
그런데 영어회화 시험 절차가 꽤 흥미롭다. 수험생은 지정된 날짜와 시간에 자신이 응시한 고교에 가서 시험을 본다. 먼저 시험지문 번호를 추첨해 받은 뒤 고사장 번호표도 추첨받는다.
이어 순서가 되어 호출당하면 자신이 뽑은 고사장으로 입장한다. 고사장에는 세 명의 중국인 교사가 기다리고 있다. 다가가서 수험지문 번호표를 건네면 교사가 시험지문을 건네준다. 수험생은 5분 동안 시험내용을 읽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다시 5분 동안 교사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이윽고 시험이 끝나면 세 명의 교사는 자신의 채점결과를 토대로 협의, 사정해 즉석에서 기록한 뒤 당사자에 점수를 통보한다.
청도시내 최고의 명문고교인 청도2중에 응시한 정모(16세) 양의 시험과정을 소개해 본다. 정 양이 추첨한 지문내용은 ‘7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어느 가정의 어머니는 1층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다리를 부상당했고 아기는 2층에서 자고 있다. 어머니는 부상으로 움직일 수 없어 큰소리로 구조를 외치고 있다. 그 집에서 기르는 개가 엄마의 외침을 듣고 아기를 구해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pipa를 연주하고 있다

교사들은 번갈아 가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당시 어머니의 심경은” “아기는 누가 구했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고, 이에 정 양은 차분히 대답했다. 이어 판화가 한 장 건네졌고 질문은 다시 이어졌다.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가” “감상소감은” 등등.
정 양은 15점 만점의 영어회화 시험에서 14점을 받았다. 교사는 어느 나라 학생인가를 물은 뒤 영어회화를 잘한다는 칭찬을 덧붙였다.
연합고사 성적은 7월 중순 응시생의 중학교로 통보되고 본인에게도 통지된다. 연합고사는 청도시 교육청이 주관, 출제, 채점한다. 전 응시생의 점수와 청도시 전체석차도 공개된다. 수험생은 연합고사 전에 세 학교까지 지원할 수 있다.
고교당국은 연합고사 성적을 기초로 사정에 들어가 7월 하순 합격자를 발표한다. 제1지망학교에 낙방한 수험생은 제2지망 고교에 다시 응시한다. 이 경우 다시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자신의 연합고사 성적에서 10점을 감점한 성적으로 경쟁한다. 여기서도 실패한 수험생은 제3지망 고교에 다시 도전한다. 이번에는 2지망 점수에서 5점을 뺀 점수로 겨루게 된다.
청도고교의 등록금은 중국학생과 한국인(외국인) 간에 차이가 크다. 중국학생은 한 학기당 인민폐 1천3백 원(한화 19만5천 원)인 반면 한국인은 인민폐 4~5천원(한화 60만~75만 원)으로 최저 세 배나 비싸다.
하지만 한국학생은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이해하거나 쓸 수 없기 때문에 중국학생과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명문교교는 물론 보통고교에 진학하기도 힘들다.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교 당국은 이를 명분으로 한국학생에게 기부금을 받는다. 명문고의 경우 일반적으로 한 사람당 인민폐 2만~3만 원(한화 3백만~4백50만 원)을 받고 입학시킨다. 무사히 등록을 마치면 고교 합격자 (중학 합격자도 동일)는 학기 시작 전인 8월 중순 4박 5일의 군사훈련을 받게 된다. 남녀 구별 없이 사격, 유격훈련 등 소위 지옥훈련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식 사교육에 전력
청도(중국)중학교의 교육은 하루 8교시. 공교육에 충실한 게 특징이다. 매일 1~2시간씩 자율학습도 해야 한다. 주5일제 수업이라서 토?일요일에는 원칙적으로 수업이 없다. 그러나 대개는 토?일요일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국?영?수 등 중요과목에 대한 보충수업이나 진도가 느린 과목에 대한 보강, 프린트 시험이 실시된다.
중학교육의 특징은 우수학생을 특별관리, 장차 명문대학 진학을 겨냥한 명문 인문고교에 진학시키는 소수정예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다. 인문고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실업계 고교, 예체능 전문고교에 진학하거나 취업전선에 나가야 하는데 이들의 능력, 적성, 소질에 맞는 진로 및 진학지도 역시 비중이 크다.
교사들은 엄격하며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평가가 대부분다. 청도5중의 경우 교사는 모두 120명. 매년 이들에 대한 고가가 5등급으로 평가돼 보수나 승진에 반영된다. 최고 고가인 A급은 10% 수준인 10여 명만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에서 상주하며 중국의 초?중?고?대학에 다니는 한국학생들은 미국 등 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똑같이 문화적 충격, 중국어 학습의 어려움, 현지적응 문제 등 많은 시련에 직면해 어렵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현지에서 공부하더라도 중국학생과의 경쟁에서 따라가기 힘든 게 현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아 숙제를 내줬는데도 알아듣지 못하고 숙제를 못한 채 등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현지 중국교사들은 전한다.
따라서 청도 중?고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 중국학생들과 경쟁해 중국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고 대다수는 특례로 한국고교?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지의 한 한국중학교 교사인 박모(37세?여) 씨는 “한국 학부모들은 자식을 특례로 고교?대학에 보내려고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에서 받는 정규수업은 대충하고 국?영?수 전문 특례학원에 다니거나 집에서 과외를 받는 등 한국식 사교육에 전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중국 공립학교에 다니거나 다소 뒤쳐지는 것으로 알려진 사립학교에 다니더라도 학교 정규교육을 열심히 받는 학생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현지 중국인, 한국인 교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중국최대 도시 상하이에 2006년 초에 완공될 한국학교 조감도
청도x중학교에 다니는 이모(16세) 군의 별명은 ‘곰퉁이’. 이 군은 학교에 등교하면 첫 시간부터 잠을 잔다. 오전수업을 마치면 오후수업엔 불참한 채 부모가 시킨 대로 집에서 중국어 과외를 두 시간 받는다. 그리고는 잠시 쉬었다가 저녁을 먹고는 방에 틀어박혀 인터넷에 매달린다. 가끔 부모가 야단이라도 치면 “학교에서 컴퓨터 숙제를 내줘서 하고 있는 중” 이라고 답변한다.
같은 반의 최모 군은 이 군이 거의 매일 새벽 4시까지 컴퓨터 앞에서 게임이나 채팅을 하고는 이를 다른 한국학생들에게 자랑한다고 전한다. 사정이 이러니 학교에 등교하면 잠을 이길 수 없어 수업중에 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도xx중학교에 다니는 이모(15세) 양. 이 양 역시 오후수업은 주기적으로 불참한다. 대신 다른 한국학생들과 학교 공터나 한국 음식점, 피자집, 패스트 푸드점, 대형 마켓 등이 밀집돼 있는 시내로 나가 논다.
PC방이나 오락실도 이들이 단골로 찾는 쉼터. 낮에 어른이 계시지 않은 친구 집에 가서 비디오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고 이 양의 친구는 전한다. 그러나 하학시간에 맞춰 귀가하기 때문에 부모는 이 양이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온 줄로 알고 있다. 이 양 같은 학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청도xxx중학교 왕모(40) 교사의 증언이다.
청도 모 백화점 미용업소에서 일하는 한국인 박모(31) 씨의 증언은 청소년들이 방황하는 원인의 일단을 밝혀준다. 단골인 한국 부인들이 “애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고 있고, 하교하면 집에서 중국어, 영어과외를 하거나 특례학원, 보습학원에 가서 과외를 받는다. 매일 학교수업 외에 학원 등에서 고액의 과외를 하고 있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과외선생이 알아서 잘 가르친다” “매일 시간을 보내기가 무료하다. 자주 골프장에 나간다” “건강관리를 위해 사우나, 헬스클럽, 인도어 골프장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한 학생이 영어, 수학, 중국어 과외를 할 경우 1인당 월 인민폐 4천 원(한화 60만 원) 정도를 내야 한다.
지난 5월부터 한 한국인 학교에서는 한 주에 1~2명의 학생들이 어머니와 함께 찾아와 입학문의 등 진학 상담을 하고 돌아간다.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게 이 학교 박모(37) 교사의 말이다.
한국학생의 최근 청도 러시는 어머니가 초?중?고교에 다니는 자식과 함께 오는 유학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버지는 그냥 한국에서 일하는 ‘기러기 가족 유학’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게 청도시 한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기업의 해외진출 및 이전에 따라 어린 학생들의 청도(중국) 진출은 한국의 경제사정, 교육환경, 한?중 경제관계의 증진 등을 고려할 때 피할 수 없는 흐름. 그러나 아직까지는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나라의 동량인 학생들이 특히 같은 또래 중국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승리, 2000년 서울월드컵의 신 화가 재현되길 기대해 본다.

김기성 칭다오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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