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과 거리 좁히기
무한경쟁시대, 공감대 형성에 안간힘
호프집. 여기저기서 맥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흥겹게 들려온다. 피로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업무 후 들이키는
한 잔의 시원한 맥주는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매일 8시간 이상을 함께 생활하는
동료, 상사들이지만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마음속에 묻어두기 마련. 그러나 이렇게 열린 분위기에서라면
모처럼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가 한결 쉬워진다.
신한은행의 신상훈 CEO는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해 직원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시간을 마련했다. 일명
‘호프 데이’가 그것. CEO의 입장에서는 일선에서 땀 흘리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 반면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평소 멀게만 느껴졌던 CEO를 직접 보며
회사의 경영방침을 전해 듣거나 인간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신상훈 행장은 언젠가 “호프 데이를 통해 직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경영에 참고할
사항도 많이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나아가 그는 직원들로부터 “호프 데이에서 편하게 만나
대화를 나눴던 은행장으로 나를 기억해주기 바란다”는 바람도 갖고 있다. 퇴직 후 큰 기념행사가
있어 선배들을 초청할 때 가장 초청하고 싶은 선배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인 셈이다.
요즘 들어 은행장들이 이처럼 직원들과 거리를 좁히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기적인 조찬이나 만
찬, 점시시간을 이용한 도시락 간담회, 이메일 주고받기 등 방법도 가지각색. 그러나 공통점은 두꺼운
권위의 벽을 넘어 직원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평소 접하기 힘든 직원들과 가능한
한 자주 몸으로 부딪히려 한다.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가 하면 직원들로서는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미래의 비전도 알기 쉽게 전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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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은행 지점에서 직원들이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직원들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필수. 조직의 성장에너지를 극대화시켜 탁월한 재무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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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칫 형식적인 절차로 자리매김 하면 오히려 새로운 권위로 탈바꿈하게 될지 모를 일. 따라서
이들은 젊은 시절의 연애담에서 자잘한 일상의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권위의 벽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조흥은행의 최동수 행장. 그는 작년부터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직원들과 함께 설렁탕을 먹는다. 식사
자리에서라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가 좀더 부드럽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저녁
시간까지 직원들에게 할애하고 있다. 영업점 직원들을 만나보기 위해서다.
이 때 영업점은 무작위로 선정하는 게 원칙. 3~4곳을 적당히 고른 뒤 지점장을 비롯해 일선 직원들까지
모두 불러 저녁을 먹는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리고 나면 얘기는 자연스럽게 영업현장의 애로
사항이나 건의, 제안 등으로 이어진다고.
최 행장의 입장에서는 이 자리를 빌어 자신의 경영철학이나 앞으로의 전략을 상세히 알려줄 수
있다. 물론 미리 예정된 자리도, 공개석상도 아닌 데다 모처럼의 기회인만큼 서로가 가능한 한
허물없이 얘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얘기들을 가능한 한 경영에 반영하려는 노력까지.
이에 대해 조흥은행 직원들은 “최고경영자의 경영전략을 상세히 알 수 있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어 한식구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말에 취임한 외환은행의 로버트 팰런 행장. 그는 매주 두 번 꼴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도시락
간담회를 갖는다. 번잡하게 이것저것 준비할 필요는 없다. 가까운 회의실에서 직원들과 샌드위치나 돈가스 등을 시켜 먹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시간이지만 이들은 이 짧은 동안에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공감한다.
팰런 행장은 그밖에 노조 체육대회에 참가해 직원들과 뒤섞여 마라톤을 하거나 농구경기에 참가하는
등 격의 없이 지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기업은행의 강권석 CEO는 인터넷 시대의 경영자답게 이메일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을 넘나들며 직원들과 자유롭게 만나 대화하는 것이다. 경조사를 맞은 직원에게 축하나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 그밖에도 경영에 얽힌 다소 굵직한 얘기에서 과거 연애담이나
친구들에 얽힌 시시콜콜한 얘기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내용도 제법 많이 공개한다.
일방적으로 회사의 방침을 전달하거나 형식적인 접근으로 주눅이 들게 하는 것과는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은행 업계에서는 최근 은행장들의 ‘거리 좁히기’ 원인을 치열해진 영업환경에서 찾고 있다.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최고경영자에서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한 마음, 한 식구’라는 의식이 생겨나지
않으면 경쟁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뜻이다.
신한은행의 신상훈 행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의 평소 경영철학은 열린 조직과 다 함께 만드는 조직을
지향한다는 것. 어느 조직에서나 나타나곤 하는 갈등구조를 생산적인 구조로 승화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서도 직원들과 친밀도를 높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필수. 결국은 이런 노력이 조직의
성장에너지를 극대화시켜 탁월한 재무성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가족의 개념이 변화되고 그 범위가 축소되면서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는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에도 새로운 변화와 바람이 모색되고 있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가능한 한 인
간애가 넘치며 서로 협력하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경영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터. 그렇다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CEO들의 이런 노력이 더욱 잇따를지도 모를 일이다.
강윤경 기자 | bookwo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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