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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성장 제동 걸렸나
 하나 둘 켜지는 성장 둔화 신호등


증시 - 침체된 나스닥 기술주
최근 몇달 동안 박스권 내 등락을 거듭하던 뉴욕증시가 7월 들어 뚜렷한 하락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주가가 약세였던 계절 탓으로 돌리기에는 상서롭지 못한 징후들이 너무 많아 투자자들과 증시 분석가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7월 셋째 주(12~16일)까지 뉴욕증시는 주요지수가 3주 연속 하락하면서 나스닥 종합지수 2,000과 1,900 포인트가 차례로 무너졌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 역시 심리적 지지선인 10,000 포인트와 1,100 포인트를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만큼은 아니더라도 올해 10% 정도의 주가상승은 기대해 볼만하다던 대다수 증시 분석가들의 연초 예측은 지금으로서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스닥 지수는 연초 이후 300 포인트 가까이 빠졌고 다우존스 및 S&P 역시 연초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장세 하락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주로 나스닥 기술주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적으로 주가가 폭락한 DVD 대여 체인 넷플릭스와 반도체 업체 PMC 시에라 등은 물론, 기대를 모았던 인텔이나 AMD 등 대형 반도체 업체들도 평범하거나 다소 부진한 실적 또는 전망으로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며 기술주 전반의 부진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주가상승을 기대하던 미국 증시 분석가들의 예측이 빗나가고 있다. 최근 장세 하락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스닥 기술주다

모든 기업뉴스가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컴퓨터 업체 IBM이나 델, 애플 컴퓨터 등 기술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형 업체들이 고무적인 실적이나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 재료가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예전과 달리 극히 제한적이었다.
악재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호재에 둔감한 시장 분위기는 투자자들의 자신감 상실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상황의 불확실성에서 온다고 증시 분석가들은 지적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증시와 경제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킨 요인이 돼온 중동지역 테러 등 지정학적 상황과 미국 대선 및 금리정책 등에 한동안 잠잠하던 국제 석유시장의 불안 양상까지 재연되고 있다. 게다가 일부 경제지표는 미국경제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고 있음을 시사해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주요기업들의 2/4분기 실적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호전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동안 실적 호전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투자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몇 주간 그랬던 것처럼 주요 기술업체들로부터 수요 정체를 반영하는 전망이 나올 경우 오히려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미스 바니의 토비아스 레프코비치 분석가는 보고서에서 “우리는 수익 모멘텀이 너무 강력해 지속되기 어렵다고 지적해 왔다”면서 “최근 긍정적인 실적에도 투자자들의 반응이 시큰둥한 것은 기업실적 재료가 힘을 상실하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의 자신감 상실은 거래량에도 반영된다. 6월 들어 거래소 거래량은 13억 주, 나스닥은 15억 주로 모두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7월 들어서도 이와 같은 거래 부진은 별로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뉴욕증시에서는 어떤 분석가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가 두려운 분위기다. 도미니 소셜 인베스트먼트의 에이미 도미니 대표는 “주식시장은 부침이 있게 마련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방향을 알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어렵다”고 밝혔다.

주요 경제지표 - 낮아진 신규고용
미국의 경제지표들은 한동안 장밋빛 일색이었지만 이제는 경제성장의 둔화를 알리는 신호등이 하나 둘 켜지고 있다. 먼저 6월 신규 고용증가가 11만2천 개에 그쳐 지난 2월 이후 가장 저조했을 뿐 아니라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의 일반적인 증가 예상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 5월 새롭게 선보인 인텔이 신제품 755M 프로세서. 하지만 인텔을 비롯해 기대를 모았던 대형 반도체 업체들이 부진한 실적을 내면서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이밖에도 6월 소매판매(-1.1%), 6월 공급관리연구소(ISM) 제조업 지수(61.1, 전달 대비 1.7 하락), 6월 산업생산(-0.3%) 등 월가 분석가들과 투자자들이 눈여겨보는 지표들이 일제히 약세를 나타냈다.
부정적 지표의 홍수 속에서 긍정적인 조짐이 있다면 물가의 안정세를 들 수 있다. 유가의 고공행진에도 불구하고 6월 소비자 물가지수(CPI)는 0.3% 오르는 데 그쳤고 에너지, 식품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근원지수는 불과 0.1% 올라가 월가 전망치를 밑돌았다. 도매물가를 반영하는 생산자 물가지수 (PPI)는 6월에 0.3% 하락했고 근원지수는 오르긴 했지만 상승폭이 0.2%에 불과했다.
일부에서는 경제성장의 둔화를 나타내는 지표들과 인플레이션 압력의 완화가 그 동안 증시 투자자들의 주된 우려사항 가운데 하나였던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를 완화해줄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 원회(FOMC)는 ‘조심스러운 속도’의 금리인상 방침을 천명했고 이에 따라 연말까지 2.0~2.5% 정도로 금리가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가에 반영돼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금리동결’ 선언이나 이에 준하는 파격적 조치가 나오지 않는 한 금리인상 완화 전망이 주가에 큰 활력소가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설사 금리인상이 중단되더라도 경기가 주저앉는다면 그로 인한 파괴적 영향이 더 클 것이기 때문에 최근 경제지표의 악화는 투자자들 에게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경제 현안 - 국제유가 재상승
한동안 급등세를 타다 하향 안정세로 돌아섰던 국제유가가 7월 중순 들어 다시 고공행진을 시작해 금융시장 투자자들의 관심이 유가의 흐름에 쏠리고 있다. 많은 투자자들은 유가가 급등하면서 금융 시장 전반에 암운을 드리웠던 지난 5월에서 6월 초까지 상황이 재연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세계 석유시장의 기준 유가 역할을 하는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 가격은 하루 4% 가까운 폭등 양상을 보이기도 하면서 배럴 당 42달러에 육박해 사상 최고였던 지난 6월 1일의 배럴 당 42.33달러 기록을 위협했다.
이와 같은 유가급등의 배경에는 수요와 공급 양 측면의 우려가 있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세계 최대의 유류 소비국가인 미국의 소비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 에너지부가 발표한 미국의 유류 재고는 캘리포니아 등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휘발유 수요가 크게 증대되면서 정유공장들이 최대 생산능력까지 가동률을 극대화한 결과 감소세를 나타냈다. 많은 석유시장 분석가들이 미국의 유류 수입증대에 따라 재고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반대로 나타난 에너지부의 통계는 수요 진정에 따른 가격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불러 일으켰다.

보안이 강화된 사우디의 한 정유사 하향 안정세로 돌아섰던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다시 시작하면서 금융시장 투자자들의 관심이 유가의 흐름에 쏠리고 있다
공급 면에서는 연일 그치지 않는 테러와 석유시설 파괴가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의 수출 차질 우려로 이어졌다. 미국 석유 기반시설에 대한 테러 가능성과 유조선들이 테러 위험을 들어 이라크 등의 항구에서 선적을 거부할 우려가 있고, 실제로 한국 등의 유조선이 이라크 항구에 기항하지 못했다는 보도 역시 공급차질에 관한 불길한 전망에 힘을 실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추가 생산능력에 대한 회의가 여전한 가운데 러시아 주요 석유업체인 유코스가 정부와의 긴장관계로 인해 생산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예측 또한 석유시장의 분위기를 짓누르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상황들이 쉽게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수요 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유가 안정책처럼 보이지만 계속되는 경기 팽창세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소비자들이 고유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유류 소비가 꺾일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난달에는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잠시 주춤해진 탓에 수입물가지수가 예상 밖의 하락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은 당분간 유가의 강세가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석유시장 분석가들은 지적한다. 석유시장 조사업체인 스트래터지 에너지 앤드 이코노믹 리서치의 마이클 린치 사장은 “에너지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중동지역의 공급차질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원유 재고량이 3천만 배럴은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석유 거래업체 인피니티 브로커리지 서비시스의 존 퍼슨 분석가는 “유코스 사태로 인한 러시아의 수출감소,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여력 고갈에다 미국의 재고까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여기에 이라크의 수출능력에 대한 회의가 유가 앙등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앨러론 트레이딩의 필 플린 수석분석가는 “세계 주요국의 유류 재고가 큰 여유가 없는 상황이어서 테러 위협이 즉각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면서 “특히 미국의 재고는 석유산업에 대한 테러가 있더라도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판을 전혀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현재의 경제상황이 지속된다면 유류 수요 억제는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테러 등에 따른 심리적 불안이 진정되고 유코스 사태를 비롯한 공급차질 요인들이 해소돼야만 유가가 안정세를 회복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큰 폭의 하락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으로 보인다. 다만 다우 존스는 지난주 미국의 정유재고가 예상 밖으로 큰 폭의 증가를 기록한 것은 겨울철 난방유 공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임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좋은 징조라고 지적했다.

추왕훈 뉴욕 특파원 |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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