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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업, 철저한 현지화로 승부한다
말단행원서 정상까지 외길 30년

이영식 아스카 신용조합 이사장

한국인의 사고방식 중에 비즈니스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하는 것이 ‘괜찮아요’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어물쩍 넘어가는 적당주의로는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이길 수 없다.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 역사까지 파악하는 철저한 현지화가 필요하다.

일본 내 한국계 신용조합 중에 매출 및 실적 2위로 동경을 중심으로 관동 및, 동북지방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아스카신용조합의 이영식(58세) 신임 이사장은 일본유학파 출신의 교포1세다. 1972년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발을 딛은 이후 현지취업을 하여 말단행원에서 조합의 총수자리까지 오른 그는 외곬인생 ‘금융맨’이다.
아스카 신용조합은 일본 전국의 138개 신용조합 가운데 신용도가 상위에 랭크된 금융기관이다. 1966년에 설립되어 현재 조합원 7천여 명에 예금액 1조4천억 원에 대출금이 9천억 원 정도의 중급 금융기관이다. 일본의 금융기관 평가는 예금 규모보다 경영실적을 우선 하는데 아스카의 경우 대손충당금을 제외하면 실제 불량채권은 3%가 안될 정도로 우량하다.
얼마전 전임 이사장이 대출 비리 의혹으로 중도 하차된 후 직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이사장이 된 이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기존의 불합리한 대출관행부터 개선했다. 기존에는 대출 최종승인을 이사장이 결정했다. 일본내의 대다수 신용조합들은 이런 관행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것을 상무급 이상 임원회의에서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이사장의 독단을 막고 합리적인 대출을 늘이기 위해서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은 민단에 소속된 숫자만 약 45만 명으로 소속되지 않은 숫자까지 합치면 55만 명을 넘어선다. 그들의 대부분이 일본사회에서 독특한 신분으로 살아간다. 한?일 관계는 근대사의 불행을 포함하여 쉽게 동화되기 어렵다. 특히 3세대 이상을 살아오면서 아직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일본사회에서 교포들의 경제활동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교포들은 일본기업에 취업이 어렵다 보니 대부분 풍속업종에 진출하고 있다. 흔히 ‘3대 사업’이라고 부르는 음식점, 빠칭코, 사채놀이다. 그런데 일본의 시중은행은 풍속업종에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교포끼리 뭉쳐서 만든 것이 신용조합이다.
몇 해 전 한국계 최대 신용조합인 간사이흥은의 파산 및 경영진 구속 등을 비롯하여 많은 신용조합이 문을 닫았다. 그 와중에 총련계의 신용조합은 대부분이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총련계 신용조합이 북송대금의 주요 공급루트로 밝혀진 것이 악영향을 끼쳤다. 더욱이 일본인 피랍사건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어 총련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신용조합들이 합종연횡을 거치면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아스카도 최근에 몇 개의 지방신용조합을 합병했다. 여기에는 내실과 규모가 작은 신용조합을 정리하려는 일본당국의 의중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내실경영이 튼튼한 아스카의 몸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괜찮아요”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
이 이사장은 한국인의 사고방식 중에 비즈니스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하는 것을 ‘괜찮아요’라고 보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어물쩍 넘어가는 방식으로는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외국인에게 ‘괜찮아요’는 통하지 않는다며 일례를 소개했다.
“동경에서 직원이 1만명 넘는 어느 중견기업의 사장 및 임원과의 회식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회식은 그쪽에서 본인을 접대하는 자리였다. 몇 차례 술잔이 오가서 술이 올랐던지 기업측 전무가 옆에 앉아서 약간의 술 주정을 했다. 좀 언짢았지만 술 때문이려니 싶어 그런 대로 참았는데 다음날 그 기업의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회식자리에서 무례했던 전무를 해고했으니 화를 푸시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를 가지고 해고를 하다니 안 됐다는 생각도 들어 어떻게 구제해주면 안되겠냐고 말하자 그쪽 사장은 고객에게 그런 실수를 한 것을 한번 봐주면 다음에 또 하게 되고 결국 그 피해는 회사가 떠맡게 된다며 단호하였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다. 우리처럼“ 괜찮아요”라든가 “뭘 그런 일을 가지고 술김에 그럴 수도 있지”라며 어물쩍 넘어가는 법이 없는 것이다. 냉정하다 싶을 수도 있지만 비즈니스는 원래 냉정해야 된다.“
인정에 치우치다 보면 결국엔 그가 속한 조직마저 피해를 입게 된다며 ‘괜찮지 않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이 이사장은 주문했다.

해외취업 철저한 프로정신이 필요
이 이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취업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철저한 현지화’를 꼽았다. 한국에서 통하던 상식이나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취업에서 현지 언어는 기본이고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 등에 관한 공부가 없으면 무시당한다고 말한다.
“재일교포 중 체재기간이 20년 미만인 사람들을 교포사회에선 ‘뉴까마’(원래 일본사회에서 같은 동료나 무리를 ‘나까마’라고 부르는데 이 말 앞에다 영어의 New를 붙여서 발음하는 것)부

철저한 현지화와 프로정신만이 해외추업에서 성공하는 비결이다
른다. 이 들의 특징은 일본사회에 대한 상식과 공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지 사회에 대한 적응 노력을 게을리 한다. 그러다 보니 뉴까마 열에 아홉은 수준이 낮다. 그 덕에 일본사회에서 재일교포에 대한 인식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일본생활을 하려면 현지에 적응해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이들은 일본은행에서도 대출을 꺼려한다. 종종 대출사기를 벌이기 때문이다. 주된 내용은 대출을 받고 한국 등으로 도망가는 경우다. 주소지 등을 허위기재해도 추적이 안 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뉴까마 들은 현재 재일교포 대표단체인 민단가입도 안되고 있다. 민단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이 일본유학을 마치고 아오모리현의 상은신용조합에 처음 취직했을 때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게 무시를 당했다고 한다. 시중은행에서 발탁되어 온 일본인 간부들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빨리 능력을 인정받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당시 은행업무관련 판례집 16권을 서점에서 몽땅 사서 매일 2～3시간씩 2년 동안 다섯 번을 보며 암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은행업무 돌아가는 것도 상세히 알게 되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비슷한 판례를 적용하여 적절하게 대처하게 되었고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 많은 판례를 외우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유일했다고 한다. 그 일은 지점내 일본인들로부터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외국생활에서 한국인은 그 행동 하나 하나가 전체에 대한 인식으로 비춰지므로 민간외교관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된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소신이다.

일본 경기는 살아나고 있는가
90년대 버블붕괴의 여파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소비위축 심리도 조금씩 풀리고 있고 기업의 투자도 늘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 국제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일부기업(필름기업 등 시장 독점 산업)들의 경기는 활발히 살아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올해 신규채용이 작년의 2배로 급등했다. 경기가 살아나면 소비가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은행의 수신고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높은 저축률이 유지되고 있다. 일본인의 검소한 생활과 절약의 습관은 가정교육에 있다. 학교에서도 우선해서 검소함과 절약을 가르친다. 바로 이런 것들이 일본경제의 원동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금융맨이 바라보는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의 차이는
일본은 불황기에 회사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원가를 절감했고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그런 노력이 이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기업은 활력은 있지만 경영의 노하우가 일본보다 부족하다. 기술과 영업력은 뛰어나지만 경영능력이 떨어진다. 기업들이 경영에 대한 자체적인 노하우를 갖지 못해서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쓰러지는 대기업을 종종 보게 된다.
일본기업들이 작성하는 사업계획서는 세세한 조항까지 문구를 삽입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반면에 한국기업은 계획서를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만든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해도 적절한 대처를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일본기업인이 볼 때 한국의 기업경영은 아직 어린애 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경영과 자본의 분리도 경영의 전문화라는 측면에 맞추어서 진행되어야 한다. 경영을 잘하고 있는데 무조건 분리시킬 필요도 없지만 반대로 문제가 있는데 오너라는 이유로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으면 기업자체가 쓰러질 수 있다.
일본은 기업의 역사가 한국에 비해 오래됐다. 그렇기에 신규비즈니스 창출이 쉽지 않다. 반면에 한국은 아직도 비즈니스 기회가 많은 곳이다. 사회 경제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역으로 보면 그만큼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한국기업은 순발력이 일본기업보다 뛰어나다. 이 장점을 잘 살리면 최근의 침체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외골인생 금융맨 이영식 이사장은 '괜찮아요'식의 정당주의가 한국기업 문화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민족금융의 향후 앞날은
재일교포가 중심이 된 민족금융은 점차 없어질 것으로 본다. 재일교포가 임원으로 있는 신용조합의 대부분이 방만한 경영을 해왔다. 설립초기부터 전문은행원들이 아니다 보니 업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규정보다 관행에 의한 대출이 이루어지는 등 전문성이 떨어졌다. 그런 것들이 누적되다보니 급기야는 도산에 이르는 신용조합도 생겨났다. 지금 일본은 제2금융권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는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 안정된 경영을 펼치는 신용조합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특히 재일교포 중심의 예금 수신과 대출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실제로 아스카의 경우 고객의 대부분이 재일교포가 아니다. 오히려 예금주의 60%가 일본인이다. 대출에도 일본인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각 지점 중에는 예금주의 97%가 일본인인 곳도 있다. 이는 시중은행보다 약간 높은 금리와 일본인의 높은 저축률에도 기인하지만 글로벌 경쟁시대에 스스로 업무영역을 제한해서는 성장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정이 변하다 보니 교포사회도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시중은행보다 대출심사도 덜 엄격했고 적당히 서류를 꾸며오고는 민족혼에 호소를 하면 대부분 대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처럼 적당히 사업체를 운영해서는 대출 받기가 어렵다. 이제는 경영능력이 없으면 도산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의 한류 열풍이 교포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
드라마 ‘겨울연가(일본판 ’겨울소나타‘)’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특히 40대 이상의 중년여성들이 더 열광하고 있다. 주인공들의 인기도 최고조다. 드라마 속의 촬영 지 방문뿐만 아니라 소품 등의 구입이 늘고 있어 비즈니스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재일교포에 대한 인식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파산한 한국계 신용조합의 불법 사실이 일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됨으로써 교포사회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었다.

재일교포에 대한 한국사회에 요청할 점은
재일교포 사회는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계 신용조합의 파산으로 촉발된 경제적 어려움과 ‘참정권 거부’등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강경 정책, 그리고 1세대가 현재 5%에 불과할 정도로 세대교체로 인해서 ‘재일교포’라는 개념의 존속조차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재일교포를 너무 푸대접한다. 고국을 방문해도 대접도 못 받고 오히려 불쾌해져서 돌아간다. 한국말 모른다고 무시하고 바가지를 씌운다. 한국을 방문하는 교포들을 이용만 하려한다. 특히 고국방문 시 첫인상이 되는 공항에서부터 얼굴이 구겨진다. 여권상에 교포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한국말 못한다고 무시한다. 택시를 타면 서비스도 바가지 요금을 물게 만든다.
일전에 만난 민단의 동경청년회의소 청년들이 고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모두들 일본에서 작은 사업을 하거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한국에 투자를 하거나 한국기업과의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그런데 공항에서부터 세관원으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택시를 나누어 타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요금이 제각각이었다. 체류기간 내내 한국말 못한다고 무시당하는 등 실망만을 가득 안고 돌아왔다. 이들은 모두 다시는 한국에 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이 재일교포들의 지원을 받아서 설립된 사례에서 보듯이 교포들은 한국에 대한 투자와 지원에 적극적이다. 그들의 애국심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해외동포들 특히 현지에서 나고 자란 2～3세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 이사장은 2002년 7월 아오모리 상은신용조합의 이사장으로 아스카신용조합과 합병 할 때 체제가 안정되면 퇴임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전임이사장이 불미스런 일로 중도하차 했을 때도 이사장에 오를 생각이 없었는데 임직원과 조합원의 적극 지지를 받았다. 이사회에서 아무런 반대 없이 선임된 것이다. 순수한 교포라기 보다 오히려 ‘뉴까마’에 가까운 이 이사장이 이렇듯 지지를 받은 것은 한 우물을 파온 전문성과 합리적인 일 처리 방식을 인정받아서다. 최근 국내의 시중은행장들이 현장경영을 중시해 지점순례를 벌이고 있는데 이 이사장은 이전부터 지점의 말단사원들과 돌아가며 회식을 하는 등 권위의식 타파에 앞장서 왔다.
이 이사장은 아스카신용조합이 재일교포 사회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신뢰받는 기업으로 만들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스템이 자리잡고 다음세대를 짊어질 후배들을 키운 후나 은퇴를 생각할 예정이다.

강성철 기자 |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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