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1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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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되는 법을 배워야 주인공이 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호주의 브리즈번(Brisbane). 아름다운 강변에 세워 진 컨벤션 센터에서 세계레저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푸른색 카펫 위에 고동색의 탁자가 유난히 잘 어울리는 노천카페의 한 구석에서 컴퓨터를 켰다. 부러움뿐이다. 이렇게 깨끗한 도시가 있을 수 있을까? 또 날씨는 어 쩌면 이토록 포근할 수 있을까?
지금 이곳의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느낌은 한국의 아름 다운 초가을 날씨와 똑같다. 일년에 최소한 300일 정도는 이 정도의 맑은 날씨를 선보인 다고 카페의 아가씨가 자랑하며 주문을 받는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날씨가 꽤 쌀쌀하지만 한낮의 햇볕은 무척 뜨겁다. 그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자니 나른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어릴 적 동네 어귀의 큰 나무 아래 평 상에서 누워 낮잠을 청하던 바로 그 기분이다. 이러한 유년기의 추억 때문에 난 아직도 햇볕이 따뜻한 날, 시원한 그늘에 앉으면 그저 누워서 낮잠 잘 생각뿐이다.
길 너머로 보이는 강가에는 인조 해수욕장이 있다. 하얀색이 눈부신 모래사장에는 아이들 이 나와 모래성을 쌓고,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아주 튼튼해 보이는 엄마는 풀밭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풍경 전체가 서로 어울리며 너무 멋있게 보인다.
자세히 보면 이곳 여자들은 얼굴을 가릴수록(?) 멋있다. 인물만 따지고 보자면 우리네 낭 자들이 훨씬 더 예쁘다. 하지만 이곳 여자들은 주위환경과 어울려 풍경화를 만들 줄 안 다. 마음속의 편안함과 여유가 어떻게 자연과 어울려 드러나는지 아는 것이다. 자연이 주인공이 되고자 할 때, 기꺼이 배경이 되어 준다.
한결같이 강한 톤의 화장과 화려한 복장으로 눈에 번쩍 뜨이지만, 배경과 별로 상관없 는 우리네 예쁜 낭자들과는 너무 다르다. 진정한 즐거움은 배경이 될 때 나온다. 물론 기 꺼이 배경이 될 때에 한해서지만.
배경이 될 줄 모르는 것은 한국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배경이 되 길 거부한다. 노래방에서조차 마이크를 놓을 줄 모르고, 부하직원들의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앵콜에 흥분하는 철없는 상사처럼 안타까운 사람은 없다. 관객이 되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까닭이다. 춤이 필요 없는 상사의 60년대식 뒤집어지는 노래에 단체로 나와 백댄서를 해야 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노래하는 상사나 속으로 꿍얼거리면서 백댄서 하는 부하직원이나 모두들 배경이 되기는 죽도록 싫어한다. 하지만 배경이 없는 곳엔 주인공도 없다. 관객이 없는 놀이처럼 썰렁한 경우는 없다.
호주의 대표적 관광도시인 이 곳에서는 주말이면 도시 곳곳에서 갖가지 퍼포먼스 가 열린다. 별로 신통치 않은 재주로도 이 곳에서는 관객을 모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모습에도 기꺼이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사진 속에서 항상 자신이 가운데 들어가야만 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이 곳의 거리가 즐거운 이유는 모두들 기꺼이 관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동네축제가 한결같이 연예인 사회의 노래자랑으로 끝나는 이유는 관객이 되길 거부하는 놀이문화 때 문이다. 유명 연예인이 아니면 아무도 기꺼이 관객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만으 로는 부족하다. 관객들에게도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으로 시작해서 관객으로만 끝나는 퍼포먼스는 너무 시시하게 생각한다. 차라리 쇼핑센터에서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하지만 이 곳의 거리는 다르다. 아빠는 아이를 목마 태워주며 관객이 되는 방법을 교육시 킨다. 관객이 있어야 주인공이 생기는 아주 평범한 질서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다. 관객을 해본 사람만이 주인공을 오래 할 수 있다. 관객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기 때문이다. 관객과 주인공은 항상 하나다.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게슈탈트(Gestalt) 원리로 설명한다. 게슈탈트란 통합된 전체를 의미한 다. 주인공과 관객이 동시에 통합된 전체로 존재해야 각각의 의미가 부여된다는 뜻이다. 세상 을 볼 때 우리는 자신에게 중요한 일은 지각의 중심, 즉 전경(foreground)으로 놓고 그 이외의 것들은 배경으로 보낸다.
이곳, 강가의 노천카페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내겐 전경이 되고, 비 키니 차림으로 파란 잔디 위에서 일광욕을 하는 아가씨들은 배경이 된다. 나는 야한 차림의 여성들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나이가 절대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카페에 들어와 지금의 자리에 앉은 이유는 비키니의 여성들이 잘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금 전만 해도 비키니의 여성들의 전경이 되고 책 읽는 튼튼한 엄마는 배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켜고, 휴식의 의미에 관한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전경과 배경은 순식 간에 뒤바뀌었다.
아이를 모래사장에서 놀게 하고,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책을 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등에 수영복 끈 자락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비키니의 아가씨보다 훨씬 휴식의 의미에 가깝게 여겨 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의미 있는 대상을 전경으로 두고 나머지를 배경으로 보내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전문용어로는 ‘게슈탈트를 형성한다’고 한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전경과 배경이 끊임없이 바뀐다. 또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지속적으로 전경에 올려놓을 줄도 안다. 하지만 이를 구분 못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초점이 맞지 않는 고장 난 카메라처럼 세상이 항상 뿌옇다. 그리고서 하는 이야기는 항상 세상이 뿌옇다는 이 야기뿐이다. 이런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도대체 뭘 이야기하려는지 도통 헷갈린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조선일보를 읽은 날에는 조선일보의 초점으로 이야기하고, 중 앙일보를 읽은 날에는 중앙일보의 초점으로 이야기한다. 가끔은 자신과 전혀 안 어울리는 이야 기도 하는데, 그런 날에는 인터넷으로 오마이뉴스를 읽었음이 분명하다. 내가 세상을 보는 초점이 분명치 않으니 항상 남의 초점에 끌려 다닐 수밖에.
뭐 먹을까를 묻는데 ‘아무거나’를 대답하는 사람처럼 답답한 경우도 없다. 게슈탈트가 형성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여가정보학과 교수라니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딜 가면 재미있어요?” “뭘 하면서 주말을 보내면 좋을까요?”
그럼 나는 되묻는다. “당신은 좋아하는 게 뭐예요?” 도대체 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 야 어딜 가면 재미있는지, 뭘 하면 재미있는지 알려줄 것 아닌가? 그러나 내가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당황해 한다. 한참 생각하다가 남들 다하는 여행, 영화, 먹는 것이라고 머쓱해 하며 대답한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왜 사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에게 “왜 사냐 ”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다. 하지만 왜 사냐는 질문에는 그냥 웃을 일이 절대 아니다. 사 람마다 사는 이유는 다 달라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하려고 산다. 불행하고자 인생을 사는 사람은 절대 없다. 그러나 행복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이 있을 때만 얻어진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순간을 ‘플로우(flow)’라고 한다. 이 때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생리적, 심리적 지수는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가리키 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고, 왜 사냐고 묻거든 그저 씩 웃기만 하는 사람은 플로우에 빠져 본 경험이 없다. 전경과 배경이 뿌연 사람이다. 뭐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의외로 이렇게 게슈탈트가 형성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 에게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그저 사회적으로 성공이라고 정의된 가치만을 좇는다. 성공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목마르다. 그러나 왜 목마른지 모른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이 다. 일이 좋아서 일한다고 하지만 엄밀한 관점에서 보자면 일은 그저 수단일 뿐이다.
자신이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 치가 분명치 않다면 그는 그저 일중독자일 뿐이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일중독자는 마약중독자, 알콜중독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은 앞의 사람처럼 “어딜 가면 재미있어요?”라고 물어봐 주기만 해도 고마운 경우가 있다 . 어떤 이는 ‘여가정보학과’라고 하면 요즘 시대에 정말 필요한 학과라며 침을 튀기며 흥분 해서 관심을 보이더니 잠시 후 묻는다. “그거 여자정보학과를 잘못 쓴 것 맞죠?”라고. 정말 한대 쥐어박고 싶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앞의 사람과는 달리 게슈탈트가 아주 분명하게 형성되어 있는 사람이다. 모든 관심이 여자에 집중돼 있다. 즉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항상 전경이 되고, 그 이외의 모든 여 자는 배경이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사람 또한 전경과 배경이 구분되지 않는 앞의 사람만 큼이나 문제가 많다.
자신이 처한 상황, 필요에 따라 전경과 배경이 유연하게 바뀌지 않는 사람처럼 대하기 힘든 경우도 없다.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 중요하고 남이 어떤 관심과 가치를 갖고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우선 속이 보이지 않는 필통을 비우고 그 안에 사탕을 가득 채운 다. 그리고 한 어린이를 불러 필통을 흔들며 물어본다.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 아이는 대답한다. “연필”. 필통을 열어 아이에게 내용물을 보여준다. 아이가 필통 안에 연필이 아닌 사탕이 들었음을 확인하고 나면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다시 물어본다. “얘야, 저기 바깥에서 놀고 있는 친구에게 이 필통을 보여주며, 이 안에 무엇이 들었냐고 물어보면 저 친구는 연필이라고 할까, 사탕이라고 할까?” 자신의 생각 과 남의 생각이 자신이 가진 정보의 양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아는 아이는 당연히 “연필” 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아주 어린 아이들은 “사탕”이라고 대답한다. 남의 시선과 내 시선이 관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탓이다.
이렇게 남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관점 획득(perspective taking)’이라고 한 다. 남의 관점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남과 의사소통할 수 없다. 의사소 통이란 내게는 전경이 되는 것이 타인에게는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발달심리학적으로 4~5세면 습득하는 이 ‘관점 획득’의 능력을 40~50이 돼서도 갖추지 못한 사 람들이 의외로 많다. 전경과 배경을 유연하게 바꾸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가를 보낸다는 것은 여유를 갖는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내게 너무나 중요했던 것을 배 경으로 보내고 그 동안 잊고 왔던 것들, 배경에만 흐릿하게 있어 왔던 것들을 전경으로 끌어 올 린다는 뜻도 된다. 예를 들면, 아내, 아이들, 내 젊은 날의 꿈같은 것들.
전경과 배경을 유연하게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은 쉬어가는 여유가 없으면 절대 생기지 않는다. 앞 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 아름다운 시대는 지났다. 그런 사람은 남과 전혀 의사소통이 불가능 한 자폐증 환자인 시대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바뀐 것을 모른다. 아직도 자신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인 줄 착각하며 자신의 가치를 강요한다. 이런 사람이 위험한 것은 자신의 자폐증을 남에게 전염 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증세의 유일한 처방은 여유를 갖는 법을 배우는 것뿐이다.
이렇게 노천카페에 앉아 내 스스로 찬란한 풍광의 배경이 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내 스스 로 배경이 되고 관객이 되어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해야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리더는 전경과 배경을 통합한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정해진 분량의 원고를 끝냈으니 이제 나도 전경과 배경을 다시 바꿔야겠다. 비키니의 아가씨들 을 맘껏 전경으로 올리고, 튼튼한 아줌마는 뿌연 배경으로.

김 정 운
명지대학교 기록과학대학원
여가정보학과 주임교수
명지대학교 여가문화연구센터 소장

저 서
[문화의 심리], [휴테크 성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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