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전에 조기은퇴를 하는 것이 ‘멋지게’ 생각됐던 때가 있다. 그러나 막상 모든
일에서 벗어나 은퇴한 이들을 보면 해방감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더라는 후문. 오히려 삶
의 활력을 잃고 무기력에 빠지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일과 삶의 균형만 맞출 수 있다면 노후에도 뭔가 의미 있는, 또한 정당한 소득이 보장되
는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게 ‘보통사람들’의 정서 아닐까.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평균 은퇴 나이는 57세. 안타까운 것은 삶의
여유를 찾거나 진로를 바꾸기 위해 일을 그만둔 사람보다는 건강이나 명예퇴직 등으로 어
쩔 수 없이 그만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은퇴자의 은퇴사유 및 은퇴 후 소득원천' 보고서에 따르
면 은퇴 원인은 ‘본인의 건강 때문’이 절반에 가까운 46.9%로 가장 많이 나타났다. 그
다음은 권고사직 및 명예퇴직 16.4%, 정년퇴직 14.5%, 가계의 여유 및 여가 11.5%, 가족원
부양 10.7%의 순서.
문제는 은퇴 후의 생계다. 이들의 은퇴 후 소득은 가족을 통한 소득이나 각종 보조금 등을
모두 포함해도 월평균 80만1천 원에 지나지 않는다. 정년퇴직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
지만 116만2천 원으로 다른 소득이 없는 경우에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크든 적든 지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본인의 건강 때문에 그만둔 경우는 54만8천 원으로 최저생
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조사를 맡았던 한국노동연구원 김지경 책임연구원은 “본인의 건강문제로 은퇴
하는 경우가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의 소득수준이 매우 낮은 만큼 제도
적 보완이 요구된다”며 “은퇴자 부양의 상당 부분이 자녀, 배우자 및 친지에 의한 사적
이전소득에 의존하는 데 대해서도 방안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OECD는 97년부터 2003년까지 30개 나라 남성들의 실질 은퇴연령을 추계한 결과 한국
남성들은 실질적으론 68세에 은퇴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멕시코(74세),
일본(70세), 아이슬란드(70세)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
이유는 아직 정착되지 못한 국민연금제도 등 퇴직 후 사회보장제도가 불안정한 데 따른 것
으로 풀이된다. 나이가 들어도 생계 등을 위해 단순직이나 임시직 등에서 지속적으로 일해야 하
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여성의 실질 은퇴연령 역시 67세로 아이슬란드와 멕시코에 이어 세 번
째로 높은 수준이다.
오는 2025년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 대비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3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2050년에는 70%에 육박할 전망. 따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들의
노후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재테크 수단으로 부동산이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데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
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기대하는 은퇴 후 노후자금 규모는 평균 3억6천500만 원.
이를 위해서도 은퇴 후 일자리 창출과 소득 보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정부
에서는 퇴직연금제 및 개인퇴직계좌 마련 등 은퇴 후 노후소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구상하는 눈치다.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장?노년층의 일자리 창출 역시 중
요하고 시급한 사회적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강윤경 기자 | bookworm@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