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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정한 인터넷 강국인가?
외국회사들 시장 노릇은 이제 그만


충남 태안군 안면읍 신야 1리 김용산(59) 이장(서있는 사람)이 마을회관 야학방을 찾은 주민에게 인터넷 활용 법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1위이며, 2위와의격차도 크게 벌어져 있다
재작년 세계경제포럼, 일명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다보스 포럼은 일반 에 널리 알려져 있듯이 세계 각국의 영향력 있는 정치지도자, 세계경제를 주름잡는 유명한 경영자, 학자, 언론인 등이 한 곳에 모여 여러 가지 현안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는 장이다.
여기서 논의된 내용들은 세계경제의 방향을 잡는 큰 틀을 제시함은 물론이며, 시간 과 공간상의 제약으로 서로 만나기 힘든 유력 인사들이 한꺼번에 한 장소에 모여 개인 적인 친분을 나누고 정보를 교류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다.
모임의 형식도 다양해서 청중들이 일방적으로 전문가들의 토론을 듣는 경우도 있지만, 식사 를 하면서 테이블별로 주제를 논의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참여한 모임 중에는 IT 산업 불황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저녁모임이 있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고위 임원을 비롯해 각국의 많은 오피니언 리 더들이 참석했다. 테이블별 논의가 끝난 후에는 각 테이블마다 한 사람씩 앞에 나와서 발 표를 하고 모두 같이 토의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놀라웠던 점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테이블에서 한국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는 점이다. 당 시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이며, 2위와의 격차도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나아가 IT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의 사례를 잘 연구해 적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세계 각국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한 국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일 줄 몰랐고, 우리도 이제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왔다는 자부심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분의 시기가 지나가면서 다시 한번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 리는 과연 진정한 인터넷 강국인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이외에도 앞서 있는 것이 있 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는 장비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이 외국산이며, 국내 기술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속도가 빨라지고 용량이 커 질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장비뿐만이 아니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거의 대부분이 외국산이다. 심 하게 말하면 우리는 인터넷 망을 설치하고운영하고 있을 뿐 외국 회사들에게 돈을 벌어주 는 거대한 시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인터넷 사용시간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게임, 채팅, 음란물, 동영상 교환 등 소비적 츠겸ㄴ이 주류를 차지한다. 사진은 한국마이크로스프트 주최로 열린 '2004 노소동감(老少同感) IT 경진대회'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이들이 이너넷 검색을 하고 있는 모습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프라 외에 컨텐츠 분야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미국 유학시절, 미 국의 컨텐츠 경쟁력을 실감한 적이 있다. 이사를 마친 후 우연히 서점에 들렀는데 서점 한 구석에 그 도시에 정착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 빼곡히 차있었다.
집을 구하는 방법, 주요 관공서의 위치, 각종 물품을 싸게 사는 방법 등 처음 그 도시에 정착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각종 정보들이 책으로 정리돼 있었던 것이다. 다 른 도시에 가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정착하는 방법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정보들이 정리돼 책으로 나와 있었다.
90년대 중반 들어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이렇게 풍부한 오프라인 컨텐츠들이 인터넷 컨텐 츠로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다. 인터넷 컨텐츠는 인터 넷이 생긴 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갖고 있던 오프라인 컨텐츠가 커다란 경쟁력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록문화가 미흡하고 오프라인 컨텐츠가 부족한 우리의 실정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넷의 사용 행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인터넷 사용시간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내용 면에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성하기보다 소비적인 측면이 주류를 차지한다. 즉 게임, 채팅, 음란물, 동영상 교환 등 소비하고 즐기는 일이 인터넷 사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소비문화가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인 측면과 소비적인 측면이 같이 균형 있게 자리 잡아야 하는데, 한쪽으로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 게 문제라는 뜻이다.
세계 1위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컨텐츠, 사용 행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들이 아직 너무나 많 다. 따라서 우리는 샴페인을 터뜨리거나 자만할 때가 아니라 아직도 모자라는 점이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인 저돌적 추진력으로 앞으로 나가야 할 때인 것이 다. 이렇게 전 국민이 공감대를 갖고 열심히 노력할 때 우리가 진정한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는 날은 멀지 않을 것이다.

안 철 수
안철수 연구소 CEO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고문
벤처기술협회 부회장
서울대 의학박사
펜실베니아대 공대 기술경영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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