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웰빙’이라고 하면 가진 자의 ‘사치’ 정도로 치부되곤 했다. 아니면 기업의 ‘상품화’
전략에 세뇌당하는 것이라고 폄하되거나.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웰빙은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잡아 가고 있다. 단순히 비싸고 좋은 것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삶의 질적인 측면, 정
신적인 측면으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뭘 해서 먹고 사나?’에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가?’로 질문의 내용과
수준이 바뀌어 가고 있다. 따라서 꼭 돈이 많아야 웰빙이 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 가족과 함께 나온 집 근처 산책, 아이들과 보내는 동
네 놀이터에서의 한때 등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모두 웰빙이 될 수 있다. 육체적 아름다움
못지않게 지적인 아름다움, 내적인 아름다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위해 애쓰는 마음 역시
모두가 웰빙이다.
그런데 세대별로 삶의 관심사나 화두가 다른 만큼 웰빙에 대한 개념이나 실천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일기획에서 최근 서울 및 수도권 거주 600명을 대상으로 웰빙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대에서 40대에 따른 웰빙의 세대차는 다음과 같이 조사됐다.
1318(13~18세) - 부모가 챙겨주는 베이비 웰빙
본인 스스로 실천하기보다는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하는 웰빙이다. 입시 때문에 기초
체력을 다지는 건강식단이 밥상을 가득 채우며, 기름지고 몸에 좋지 않은 패스트 푸드는 가급적
삼간다. 하지만 학교 수업, 학원 강의 등 하루 24시간이 공부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들에게 웰빙은 마치 딴 나라 이야기 같다.
1924(19~24세) -내 식대로 즐기는 프로슈머 웰빙
뉴 트렌드의 전도사. 온라인을 통해 웰빙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유행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따르지 않으면 소외당한다는 생각에 웰빙을 적극 실천한다. 금전적으로
여유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맘대로 떠날 수 있고, 맘대로 즐길 수 있는 게 이들의 웰빙 방식. 말하자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웰빙이라고 할 수 있다.
2534(25~34세) - 제대로 즐기는 프로페셔널 웰빙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는 실속파 웰빙.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 조직에 의한 스트레스를
몸소 체험하며 이러다가 빨리 늙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 삼겹살에 소주보다는
샐러드에 와인 한 잔으로 분위기를 살릴 줄 알며, 동시에 건강도 생각한다. ‘무늬만’
요가보다는 정통 명상법으로 지친 몸과 마음도 달랠 줄 아는 게 이들 세대. 10년 후 모습을
상상하기보다는 현재의 멋진 인생이 더 중요하며, 결혼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일 뿐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과감한 투자도 서슴지 않는다.
3544(35~44세) - 잃어버린 나를 찾는 구도의 웰빙
웰빙이 가장 간절한 세대. 하지만 이들에게 웰빙이란 복고이자 회귀. 숨 가쁜 디지털 사회의
휴식처로서 웰빙을 택하고 이를 통해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꿈꿔 본다. 대학에 다닐
때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른바 386 세대로, 치열하게 젊음을 불태웠던 시절을
뒤돌아보며 차분히 자신을 식히고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디지털 만능인 20대와
노후를 걱정하는 중년의 틈바구니에서 자신만의 인생 좌표를 설정해 가는 아름다운 웰빙족.
웰빙은 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그만큼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모두 포용하는 게
웰빙이다. 웰빙의 생명이 길게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단, 여유와 휴식을 찾는다고
해서 자신이 해야 할일을 게을리 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제대로 일하고, 자신의 일에
즐겁게, 기꺼이 몰입할 줄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웰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윤경 기자 | bookworm@yna.co.kr
